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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Feb

신약에 나타난 안식일(1) 예수의 입장

작성자: blue IP ADRESS: *.168.111.128 조회 수: 5258

신약에 나타난 안식일(1) 예수의 입장


 구약에서의 안식일과 바리새인들의 안식일에 대한 입장을 살펴보았다. 이제 이번 호부터는 몇 차례에 걸쳐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하셨는지를 마태복음을 중심으로 살펴보도록 하겠다. 마태복음에서 안식일에 대한 예수님의 입장은 12장 1∼8절의 밭에서 곡식을 먹은 사건과 12장 9∼14절의 손 마른 자를 치유하신 사건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그 중 먼저 첫째 본문을 2회에 걸쳐 살펴보도록 하겠다.

# 밭에서 일어난 안식일 논쟁(12:1∼8)

이 안식일 논쟁 단락을 적절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 단락을 그 앞 단락인 11장 28절에 비추어 이해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특히 본 단락과 11장 28∼30절 사이의 주제상의 연결성은 상당히 두드러진다. 28절이 언급하고 있는 그들이 시달리던 '무거운 짐'은 아마도 바리새인들의 율법에 대한 율법주의적 해석에 의해 그들에게 지워진 짐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23:4 참조).

그에 반해 29절의 '내 멍에'는 예수님의 가르침뿐만 아니라 그와의 인격적 관계도 지칭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렇다면 30절에 나타난, 역설적으로 보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니라'는 구절은 그리 어렵지 않게 설명될 수 있다. 예수님의 요구와 가르침은 철저한 성격에도 불구하고(5:21∼48 참조), 자비와 겸손으로 특징 지워지는 그와의 관계(=제자도)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에, 바리새인들의 가르침처럼 무겁지 않고 오히려 쉽고 가벼운 것이다.

한편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29절의 '안식'은 종말론적·메시아적 안식을 지칭하는 것이 명백하다(렘 6:16 / 신 12:9, 25:19 / 시 95:11 / 사 14:3 / 특히 히 4장 참조). 이렇게 볼 때, 11장 28∼30절은 전체적으로 뒤이어 따라오는 안식일 논쟁 단락들(12:1∼8, 9∼14)을 향한 길을 효과적으로 닦아준다.

# 마태복음의 전반적 상황들(12:1)

12장 1절은 이 이야기의 전반적인 상황―사건에 연루된 사람들, 일어난 사건, 그 사건이 일어난 때와 장소와 이유―을 묘사해준다. 그런데 마태복음의 상황 설정은 마가나 누가의 그것과 상당히 다르다.

첫째, 마태복음에서만 나타나는 '그 때에'는 본 단락을 바로 앞 단락(11:28∼30)과 보다 긴밀하게 연결시켜주는 효과를 갖는다.

둘째, 마태는 마가나 누가와는 달리 예수님을 본 단락 첫 문장의 주어로 내세우고 있는데, 이러한 변화는 특히 본 절을 이야기의 마지막 문장과 연관해서 읽을 때 그 의의가 특별히 두드러지게 된다. '이는 인자가 안식일의 주(主)이기 때문이다'(8절). 마태는 아마도 처음 시작 문장의 구조를 바꿈으로써 일종의 '감싸기 구조'(inclusio)를 만들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함으로써 마태는 처음 시작부터 이야기의 주인공이 제자들이 아니라 예수 자신임을 명백히 하고자 했던 것 같다.

#  예수를 비난하는 바리새인들(12:2)

이제 마태복음에서 예수의 (그리고 그의 제자들의) 가장 두드러진 대적들인 바리새인들이 예수의 비난자들로 등장한다. 그들이 예수 제자들의 행동과 관련하여 (제자들이 아니라) 예수를 비난하고 있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선생이 그 제자들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은 당시 통례였기 때문이다.

본 절의 내용에 의하면, 바리새인들은 들에서 이삭을 꺾는 행동을 안식일에 해서는 안될 추수 행위로 간주했던 것으로 보인다(출 34:21 참조). 어쩌면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그러한 견해에 대해 동의하지 않으셨을 수도 있다. 그러나 예수님의 논증 초점은 바리새인들의 그러한 견해에 반대하여 그와 그의 제자들이 안식일을 범하지 않았음을 밝히는데 집중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오히려 자신이 안식일의 성취이기 때문에, 그 자신뿐 아니라 제자들까지도 안식일 율법 자체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는 점을 논증해 나갈 것이다.

# 예수님의 첫 번째 응답(12:3∼4)

바리새인들의 반발에 대한 예수님의 첫 번째 응답은 다윗이 율법을 어긴 사건(삼상 21:1∼6)에 기초하고 있다. 예수님의 논점은 단순히 과거에 율법을 어긴 경우가 있었기 때문에 다시 어길 수 있다는 것이 아니다. 많은 학자들은 오히려 사무엘상 21장 1∼6절에 대해 예수가 호소하는 근본적인 이유로서 기독론적 주장을 주목한다. 그들은 본 응답에서의 요지가 5, 6, 8절에서와 마찬가지로 예수의 권위라고 제안한다. 만일 위대한 왕(=모형) 다윗이 율법을 재해석할 권위를 가졌다면, 더 큰 왕·메시아(=원형) 예수는 더 높은 정도의 권위를 가지셔야 한다.

다윗 이야기에 대한 예수의 호소 배후에는 이처럼 암시적 다윗-모형론이 자리잡고 있는데, 이 모형론은 예수의 논점을 적절히 이해하는데 필수적이다. 이 암시적 모형론적 논점은 그 자체만으로는 예수의 메시아적 권위를 주장하기에 충분히 강력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마태복음에서는 이 암시적 주장이 예수의 뒤이은 응답 가운데 나타난 명시적 성전-모형론에 의해 보다 명확해지고 있다.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6절).

마태복음 단락에 나타난 예수의 논점 흐름에 있어서, 예수의 첫 번째 응답은 암시적으로 '다윗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고 말함으로써, 그의 두 번째 응답의 명시적인 성전-모형론으로의 길을 이처럼 예비해준다. 암시적 모형론은 마태복음에서 특히 의미심장하다. 왜냐하면 마태는 예수를 다윗적 메시아로 제시하고자 하는 명백한 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1:1∼17, 12:23, 21:9·15 참조).

더욱이 12장 41∼42절의 이중 모형론 역시 우리로 하여금 다윗 이야기에 대한 메시아적 해석을 지향하도록 해준다. 만일 마태가 예수를 구약 성경의 중요한 권위들 가운데 몇몇(즉 성전, 왕 솔로몬, 선지자 요나)에 견주고자 하였다면, 그는 예수를 또 하나의 위대한 인물인 왕 다윗에 견주려고 했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예수의 첫 번째 응답과 그 다음 두 응답들의 메시아적 중요성은 8절의 결정적인 메시아적 선언('인자는 안식일의 주(主)이니라')의 기반이 될 것이다.

양용의 / 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

주일 문제와 관련해 양용의 교수의 글이 연재되고 있습니다. 지금 연재되는 글은 필자의 책 「예수와 안식일 그리고 주일」(이레서원 펴냄)의 내용을 <뉴스앤조이> 독자들을 위해 요약 재구성한 것입니다. 보다 자세한 내용을 보기 원하시는 분들은 앞의 책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성막에서 행한 제 절기(All the feasts of Israel & Spiritual Meaning)

위에서 성막과 그 안에서 실행된 제사들에 대하여 생각했다. 그 성막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계시하여 주었다. 또 그 성막에서 실행된 제사들은 그리스도의 구속사역과 죄인들에게 적용된 구속의 사역으로 그 죄인들이 어떻게 사죄되고,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며 지상에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하여 생각했다. 그런데 우리가 앞으로 생각할 절기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의 생애에서 일어날 사건들을 계시하여 준다. 즉 그 사건들은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이루어졌고, 그 사건으로 인하여 죄인들이 구속된 것이다. 다시 말하면 도성인신 하신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을 속죄하고 구속하기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시어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계실 뿐만 아니라 지상의 성도들에게 성령의 충만을 주셔서 주의 피로 사신 교회를 세우고, 택한자들을 불러 모아 주의 일을 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경배할 뿐 아니라 장차 재림하시는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국의 영광을 영원히 누릴 것을 계시한다.
위 진리를 계시하는 것이 곧 절기들이다. 성경에 이 절기들에 대하여 기록한 곳이 두 곳에 있다.


그림 : 광야교회 성막제사 장면의 모형.

첫째가, 출애굽기 23장 12-19절에 기록된 사대절기 즉 안식일,무교절,맥추절 그리고 수장절이다. 이 성경 귀절에 준한 다른 성경 기록이 출애굽기 34장 18절이다. 이곳의 위의 성경 귀절과 절기의 순서가 약간 혼동이 되어 있는데 무교절, 안식일, 맥추절 그리고 수장절등으로 되어 있다.
둘째는 레위기 23장이다. 이곳은 여러 절기에 대하여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이곳은 위에 기록한 출애굽기의 절기와 차이가 있다. 출애굽기에는 4대절기가 나타나 있으나 이곳에는 7대절기가 기록되어 있다. 그 레위기의 7대 절기는 안식절(레23:1-3),유월절 (정월 15일부터 일주간 레 23:6-8[유월절 마지막에 무교절이 있다. 그래서 무교절은 유월절에 포함된 예가 있음],맥추절(오순절,레 23:15[맥추절 전에 오순절이 있으나 어떤때 같이 포함하여 기록됨]) 속죄절(레 23:26-32), 그리고 초막절(레33:33-36)등이다.
이상의 두 성경 귀절들의 차이에 대하여 적중한 기록은 없으나 출애굽기의 4대절기는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40년간 생활하면서 지킨 근본적인 절기이고, 레위기에 나타난 7대절기는 이스라엘이 광야새활을 청산하고 가나안에 들어 갔을 때 지킬 절기들인 것이다. 레위기의 절기, 즉 하나님께서 명하신 이 절기들은 그들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해마다 지킬 성회이며, 규례들이다.
이 절기들에는 이스라엘의 조상들이 광야에서 당했던 여러가지 고난과 그 고난 중에서도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신 은혜와 축복을 기리면서 지킬 절기들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절기의 수가 많아진 것 같다. 그 증거는 포로시대 후에 이스라엘이 멸종의 위기에서 구원된 날을 기념하는 부림절이 포로시대를 지나서 이스라엘의 절기에 포함된 것이다. 또 그들은 광야생활에서는 지키지 않았던 수장절을 가나안에서 지킨것도 그 하나의 좋은 예증이라고 하겠다.
그러므로 위에 기록한 (1) 전자는 광야에서 지킨 절기들이고, 후자는 가나안에 들어가서 지킨 절기들이다. (2)전자는 종교적인 절기이고, 후자는 민족적인 절기이다. (3) 전자는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과 같이 광야에서 지킨 경험적인 절기이며, 역사적인 사건의 기록이다. 그러나 후자는 모세가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예언적이고 지도적이며, 미래적이고 정치적인 측면에서 규례를 선로한 것 같다.(4) 끝으로 전자와 후자는 그 지역과 상황에 맞게 규정하여 준 귀중한 신앙적인 절기이다.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잠깐 생각할 것이 있다. 그것은 절기에 관한 언어이다. 출애굽기에서는 절기를 칵으로 되어 있다. 이것은 축제일(feast) 또는 경축일(feastival)이다. 이것은 분명히 종교적인 목적을 가지고 예배하며 기념하는 제사일이다. 그 단어는 복수로서 절기들이라 할 때는 카낌으로 된다.
그러나 레위기에는 모아데이로 되어 있다. 이것은 복수상태(Consto)이다. 이것은 야아드에서 온 것이다. 이 야야드는 "정한 장소에 모이는 회합"이다. 그것은 다시 에닿로 되었다. 그 "경축일"또는 "총회"는 어떤 종교적인 목적으로 지키는 것이 아니라 국가적인 행사를 의미하는데 그것을 기념하고 경축하는 날로 회중이 모여 즐기는 것이다. 그 민족에게 가장 경사스럽고 가장 기념될 만한 날이다.
그러므로 출애굽기는 그 단어가 종교적인 기념 예배일이다. 그러나 레위기는 국가적인 기념일이다. 그렇다고 종교적인 기념일을 배제하는 것이아니다. 오히려 레위기의 절기는 종교적인 축제일을 포함하고 있는 경절이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은 신정국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치적이고 종교적인 경사일을 통합하여 기념하는 나라이다. 그러므로 레위기는 국가적인 경축일에 종교적인 축제일을 총합한 절기들이라 할 수 있겠다.
그래서 이하에서 레위기 23장을 중심하여 이스라엘의 7대절기를 생각하여 보겠다.

제 1절 안식일(The Sabbath Day)

안식일은 첫째, 그 근원이 하나님이시다. 즉 하나님이 이 날을 시작하셨다. 하나님께서 6일간에 하늘과 땅과 그 가운데 만물을 창조하시고, 제 7일에 쉬셨다(창2:1). 둘째로, 하나님이 복을 주시는 날이다. 인간만이 아니라 만물에게 복 주시는 날이다. 즉 육신은 육적인 일에서 해방되고, 영혼이 영적인 일을 하므로 하나님께로 부터 준비한 축복을 받는 날이다. 이날에 육적인 노동을 하고 영적인 노동을 하지 않는 자들에게는 축복이 주어지지 않는다. 세째로, 거룩한 날이다. 그 이유는 택한 하나님의 자녀가 하나님과 영적으로 교제하고, 하나님께 경배하고 감사하며, 하늘로부터 주어지는 신령한 양식과 영력을 받는 날이다. 끝으로 하나님은 안식일에 쉬심으로 인간에게 모범을 보여 주셨다. 또 쉴 것을 명령하셨다. 그 이유는 인간의 신체와 마음과 사업을 그 조건에 맞게 지으셨기 때문이다. 이날은 하나님께로부터 유래되어 만물에게 복주고 그 영장인 인간에게 영과 육신에 축복하시는 날이다. 이날은 성수하는 여부에 따라 신앙도수를 측정하는 계기가 된다.

1.어의

안식일에 관한 말씀은 성경에 매우 많다. 그런데 주의 할 것은 창세기에 "안식일"에 관한 단어가 없다. 그러나 "안식일"이란 단어만이 없는 것이지 "안식일에 관한 기사이다. 그 "안식일은 귀한 날인데 위에 언급함과 같이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모범을 보여 주실 뿐 아니라 가장 귀한 날이므로 성수하실 것을 명령하셨다.그렇기 때문에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뿐 아니라 신약의 예수님도 지킨 것이다. 이 날은 신앙의 조상들에게 잘 지키어 진 것 같다. 창세기에 신앙의 조상들이 이 날을 지켰다는 기록이 없다. 그러나 신앙의 조상들이 하나님께 경배하고 제사드린 날들이 어느 날이겠는가? 이 날이 아니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창세기에 성수 안식일에 관한 기사가 없는 것이다. 또 그 후대에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이 타락하여 이날을 지키지 않음으로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명령하고, 가르칠 뿐 아니라 그 후대인들에게 교훈고 율법으로 주신 것이다.하나님은 위의 법을 모세에게 주실 때에 그를 시내산에 불러 40여일만에 주셨다. 그것은 두 돌비 중에 하나에 속했는데 10계명중에 네째 계명이었다. 그 네째 계명은 "안식일을 기억하여 그날을 거룩히 지키라"였다.
이것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의 언약이요, 또 약정서였다. 그 이유는 하나님을 사랑하며 그를 섬길 때 이 계명을 지키고, 그대로 시행케 되기 때문이다.또 그들에게 하나님의 고귀한 축복이 따르게 된다. 그러나 만일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그 법을 지켜 행하지 않을 때 하나님의 진노가 따른다. 그러므로 그것은 언약서이다. 만약 어떤 하나님의 백성이 그것을 파괴하든지 아니면 그것을 멸시할 때에 그것이 하나님과 바른 신앙관계인가? 아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가지지 못한 그들에게 보상이 주어질 수 있겠는가 아니다. 보다 그들에게 진노와 형벌이 따르게 된다(느13:15-18). 이 안식일에 관한 교훈과 경고는 성경에 매우 많이 기록되어 있다. 그 성경 귀절들은 출애굽기 16:2325262920:8101131:13.14,15, 16, 35:23,레위기 16:3119:33023:3111516323824:825:246826:
2,34,43,민수기 15:3228:910,신명기 5:121415,열왕기하 4:2311:579, 18, 16:18,역대기상 9:32,23:31,역대기하 2:4,8,13,23:4,8,31:3,36:21,느헤미야 9:1410:313313:15161718192122,시편92: 이사야 1:1356:24, 58:13, 66:23,예레미야 17:21,22,24,27,애가2:6,에스겔 20:1213162021, 24, 22:8, 26, 23:38, 44:24,45:17,46:1,3,4,12,호세아 2:11,아모스 8:5등이다. 신약에도 적지 않게 기록되어 있다. 마태복음 12:1510111228:1,마가복음 1:212:23243:24,누가복음 4:16356:2913:10,사도행전 13:1416:1317:2 골로새 2:16등이다. 그 외에도 이에 관한 성경 귀절은 콘콜단스를 참고 하기를 바란다.92)
이 안식을은 히브리어로 샵밭이다. 이 샵밭은 명사인데 동사 샤밭에서 나온 것이다. 샤밭는 "노동으로부터 쉰다""끝인다"는 뜻도 있지만 또한 "옮긴다"는 뜻도 있다. 이것은 명사로 되어 샵밭이 되었다. 그것은 "안식일"또는 "쉬는 날"로 되었다. 그 의미를 보면 "우리의 심신이 육신적이고,세상적인 노동에서 그치든지 아니면 쉬고, 그 마음과 몸과 영혼은 거기에서 옮겨 하나님께로 나가서 신령하고 거룩한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안식일의 의미는 "전환"이라고 할 수 있다. 육신에서 영혼에게로,인간에게서 하나님께로 물질의 세게에서 영적인 세계로, 세상의 일에서 주님의 신령한 일로 전환하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이런 깊은 뜻을 바로 인식하지 못하여 일방적인 면과 그릇된 면으로 나아가서 범죄하며 범법하게 되었다. 즉 습관적이고 형식적이 되어 버렸다. 이때에 주님께서 바르고 참된 진리의 면에 서서 나아갈 때는 그들과 충돌이 있게 되었고, 투쟁이 일어났다. 그리하여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는 무섭고 용서 받을 수 없는 죄에 빠지게 될 것이다.
위의 히브리어 샵밭는 헬라어로 십바톤이다. 이것은 헬라어 역인 70인경(LXX)에 의하여 헬라어화 한데서 기인한 것이다. 유감스러운 것은 안식일에 관한 고찰에 있어서 그릇된 이론을 제기하는 자들이 있다. 우리는 그들을 소위 고등비평가라고 하는데, 그들 중에 일파는 "안식일"이 바벨론(Babylon)의 신화에서 왔다고 한다. 즉 바벨론 설형문자로 된 문서(Babylon Cuneiform)에 의한 신화에 "Sabattu",또는 "Sabattum"이라는 단어가 있다. 그것은 히브리어 Sabbatton과 같은 형과 의미가 있다고 했다. 그러나 성경과 그 신화의 차이를 비교하여 보면 신화는
첫째로, 쉬는 날이 아니고 속죄일이다. 즉 신의 노함에서 면하고 사유함을 받기 위한 것이다.
둘째로, 바벨론 비문에 의하면 반드시 5째 또는 6째로 나타났는데 그 둘중에 어떤 하나가 제7일과 관계를 가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세째로, 그 해의 어떤 달에 7째,14째,19째,21째,28째 날들은 왕, 제사장 그리고 의사들이 신의 진노를 주의하지 않아도 되는 날로 유명하며 불을 주의하는 유명한 날로 정했다. 이 날에 왕은 불에 굽지 않은 음식을 먹고 조복을 입지 않고, 그의 병거를 타지 않아야 했다.93)
이런 신화의 안식일이 성경의 안식일과 어떻게 같고, 그 영향을 관계가 있고, 둘째로, 창조와 관계를 가지고, 세째로, 거룩하고 복된 날이고,네째로,인간에게 주어진 고귀한 날,즉 영혼의 복받는 날이다.그러므로 성경의 안식을은 바벨신화의 Sabattum(사발툼)과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2. 안식절의 유래

안식의 유래는 위에서 잠간 언급했다. 그러나 여기서 다시 상세히 기록하면 아래와 같다. 안식일은 하나님께로부터 유래한다. 즉 안식일의 근원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친히 이 날을 제정하시고, 하나님께 친히 쉬셨고, 하나님께서 그 날을 엄수케 하므로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한다. 그 깊은 교제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받게 된다. 이 날을 지키지 않을 때 하나님과 유리되고, 하나님의 뜻을 불순종하고, 반역하는 것이 되어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축복을 거절하고, 사탄의 유혹에 빠져서 저주와 멸망을 취하게 된다.(창2:1-3)
또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준 이 귀한 날을 인류가 범하고 하나님을 떠나 그를 대적하고 자행자지 하므로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과 다시 언약을 세우셨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시내산에 불러 올리시고, 그에게 안식일의 언약을 하신 것은 이스라엘과의 언약이다. 그 이유는 그는 이스라엘의 대표자요, 지도자였기 때문이다.또 모세가 그들에게 이 언약을 공포할 때에 "아멘"으로 재확인했고, 굳게 인증한 것이다(출16:20,레23: 신5:참고).
성경을 상고하여 보면 하나님과 교제하는 자는 이 날을 엄수함으로 그 언약을 고수한다. 그러나 하나님을 떠난자는 제일 첫 단계로 이 날을 버리고, 범하게 되는 것이다(느13:15). 그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외형적인 형식이고, 행실이나, 그것을 지키는 행실과 형식의 배후에는 신앙과 순종의 내형적인 마음과 신앙이 깃들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행실만이 아니라 그 근거가 되는 마음과 신앙을 보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마음을 보시고 신앙을 보신다.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이 날을 마음을 드려 신앙으로 지키고 실행하기를 원하시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첫째는 하나님이 안식하신 날이다. 즉 하나님이 제정하시고, 하나님이 모범으로 보여 주시고, 또 인간을 위한 축복으로 장식하신 날이다. 법은 제정자와 받은 자가 다 지키는 것이 근본 원리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지키셨다. 그리고 인간이 이 날을 지키는 것이 당연하다. 인간이 이 날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고,그를 겨오이하고, 그의 뜻과 섭리를 순종하고 그의 일에 참여하여 충성함이 된다. 그러므로 성수 안식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언약을 실천하는 증거이다. 그 실천은 하나님을 향한 인간의 신앙의 척도이다.

둘째는, 하나님과 그의 백성과의 교제의 날이다. 하나님은 창조자이시고, 인간은 피조물이다. 하나님은 그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셨다. 하나님은 인격자이시고, 그의 창조물인 인간도 인격자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이 날을 주시어 지키게 하신 것은 인격의 하나님이 인격자인 인간과 인격적인 교제를 원하신 까닭이다. 그러므로 창세기 3장 8절에 "교제의 날" 즉 영교의 날을 정하신 것이다. 그 말씀을 우리 한글 성경과 영어 성경에는 "날이 서늘 할때"로 되어 있으나 히브리어 원어에 보면 도저히 이런 번역이 나올 수 없다. 즉 레루카 하욤이다. 여기의 (레-루)는 부사이고, 루카는 "바람"이라는 뜻도 있으나 "영"이란 뜻도 있다. 하욤은 "그날"이란 뜻이다. 하욤에서 앞에 관사가 붙은 것으로 버아 그 날은 전에 기록한 그날을 지시하는 것이고, 한번만 있은 날이 아니고 두번이상 계속하여 지켜 내려 온 날이다. 즉 하나님과 아담과 그의 아내 하와가 약속하고 상호 지켜 교제하던 그 날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담과 이브가 범죄하고 하나님이 오실 것을 알고 그 날에 숨은 것이다. "그 날"은 "영교의 날",즉 "영의 날"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 안식일에 인간과 인격적인 교제를 원하신다.

세째는, 거룩하고 복된 날이다. 하나님께서 이 안식일을 거룩하게 하신 날이다. 하나님이 거룩하시므로 그 하나님이 날이니 거룩하다 .구약에 보면 거룩한 제물에 접촉된 것이 거룩하다고 했다.그렇다고 하면 그보다 더 거룩한 거룩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관계를 가진 그 날이야 더욱 거룩하지 않겠는가! 또 하나님께서 쉬신 날이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정하여 준 날이요, 하나님과 인간이 만나는 약속된 날 즉 성별된 날이니 거룩하다. 일주일에 많은 날이 있으나 각각 자기를 위하여 일하다가 이 날만은 하나님과 약속하고 만나서 교제하는 교제의 날이다. 그러므로 거룩한 하나님과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이 피차 교제하는 날인 거룩한 날이다. 하나님께서 특별한 축복을 주시는 날이다. 즉 하나님의 사랑과 거룩한 뜻을 받는 날일 뿐 아니라 축복과 은혜를 주어서 인간,즉 하나님의 자녀요 선민인 그들에게 땅위에서 영육으로 생명과 평안과 행복을 누리게 하는 날이다. 인간은 이 날에 축복을 공급받는 것이다. 이 날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 날을 범하고, 어기는 것은 불신과 반역하는 것이다. 탕자의 소행이다.

네째, 장래 일의 그림자이다. 이것은 타락한 인간중에 택한 선민에게 주신 장래의 계시요 예언이다. 즉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오시고, 인간이 하나님께 나아가 만나는 귀중한 시점인 것이다. 그러므로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다"(히4:9) 함은 영원한 안식의 예표이다. 그 보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지상의 인간의 안식도 된다. 즉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을 성결케 하고 주님이 되심을 의미하는 것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과 주되심을 의미하는 것이다.94)

3. 안식일을 지키는 방법

안식일을 철저하고 엄격하게 또 거룩하게 지켜야 한다. 그 이유는 안식일은 위에 언급한 바와같이 하나님이 제정하신 날이요, 하나님의 피조물인 인간이 하나님과 영교하는 날이요, 은혜와 축복을 받는 날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날에는 자유인이나, 종이나 손님까지라도 쉬라고 했다. 출애굽기 20장 8-11절을 보면 "네 문안에 유하는 것"은 다 쉬라고 했다."네 문 안에"란 뜻은 "네 집안"이 아니고 네 땅에 있는 도성이나, 부락(신5:1414:21)등을 모두 의미한다. 또 "문(사ㅇ)은 마음을 들어가는 곳,큰 마당과 궁전에 둘러 막은 곳을 출입하는 문이다. 이 "문"은 집아나, 창고, 천막의 출입구에 적용된 것이 아니다. 그 예가 느헤미야 13장15-22절에 나타나 있다. 위의 성경 귀절에 의하면 안식일 전에 "성문"을 닫고 안식일이 지나기까지 열지 않았다. 성경에 안식일에 쉴 것이며 (마23:2831). 다른 날에 일 할 것이다. 노동이나, 작업이나,상업은 다른 날에 할 것이다. 이 안식일에 경작과 추수(출34:21), 술틀을 밟고, 물건을 나르는 것(느13:15), 무역 하는 것(암8:5).식물을 파는 것(느13:15)을 금했다. 하나님께서는 광야에서 생활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 안식일에는 만나도 주시지 않으시고(출16:26),나무를 하고(민15:32)불을 피우는 것(출35:3)도 금했다.95)
또 여행과 오락과 사사로운 말도 금하고, 여호와 안에서 즐기라고 했다(사58:13-14).
그러므로 (1)구약은 안식일을 성수할 것만 아니라. (2) 안식일 성수하는데 거리끼고, 방해되는 것도 제하여 버리고,(3) 인간적이고,육신적이고, 그리고 세상적인 모든 것을 제거하기끔 하였다. 신약도 마찬가지이다.예수님은 안식을을 철저히 지켰다. 누가복음 6장 6절에 회당에 들어 가서 성경을 가르쳤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아버지 하나님께 예배드린 것이다. 마가복음에도 같은 기사가 있다. 이 말씀은 육신적인 일은 쉬시고, 반면에 신령한 사업에 충성하신 것을 보여준다. 예수님은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셨다(눅 6:6-11). 예수님은 대적하는 자들에게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생명을 구하는 것과 멸하는 것 어느것이 옳으냐?"고 하셨다(눅 6:914:3).그러면서 주님은 안식일을 정의하기를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서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막 2:28)고 하시면서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라"(마12:8,눅6:5,막2:28)고 하였다. 요한복음 5장 17절에는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했다. 이것은 안식일은 성도가 (1)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을 기념하고, (2)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영교할 뿐 아니라, (3)신령한 가정 식구들이 모여 단락한 생활을 하여야 하며 (4) 주님의 거룩하고, 선한 사업을 실시하는 날임을 보여준다. 그래서 사도시대는 안식일이 주일로 변경이 되었다. 그 이유는 이 날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요20:1, 마28:1,막16:1)의 날이요, 성령의 강림의 날(행2:1-)이요, 사도 요한이 밧모섬에서 계시를 받은 날이요(계1:)의 날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구약은 안식일에 육신의 일만 쉬는 것을 말씀했으나 신약은 안식일에 신령한 일을 할 것을 말씀한다. 그러므로 성경에 근거하면 안식일에 육신의 일은 쉬고 영적인 일은 힘써 할 것이다.

4. 영적의미

안식일에 대한 영적인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으로 죄인들에게 주어지는 영적인 안위와 평화이다. 그것은 신약에 말씀하신 이 한 말씀으로 알 수 있다. 즉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막 2:27-28)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제정하시고, 거룩하고 복되게 하여 인간에게 주시고 하나님과 인간이 영교하게 하신 것은 인간을 위하여 주신 것이다. 그렇다고 인간이 안식일의 종이 되거나, 또는 그날을 위하여 창조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즉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오시고, 인간은 하나님께 나가서 영적으로 교제하고, 거룩함을 누리고, 축복을 받게 함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안식일은 죄인인 인간에게 거룩함을 주고, 저주와 진노의 자식인 인간에게 거룩함을 주시고 축복을 받게 함에 있다. 그러면 안식일을 지키면 거룩하여지고, 또 안식일을 지킴으로 복을 받게 되는 것인가?아니다.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수단과 방편이다. 안식일은 지키는 내용은 하나님과 영적 교제이요, 하나님과 사귀여 영적 가정식구가 됨에 있다. 그 영적 가정 식구가 되고, 영적 교제를 하는 것은 죄인이 불가능하고, 도저히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먼저 인간의 죄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가장 필요하다. 그 죄와 악을 청산하고, 진노와 형벌에서 면제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안식일은 죄인들로 죄악을 사유함을 받고, 진노와 형벌에서 면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그러면 안식일이 그것을 하며, 하나님께서 안식일로 하여금 그렇게 하게 하였는가?아니다. 안식일은 영적인 사건의 그림자이다. 그 안식일의 실체는 무엇인가? 그 실체는 인격적 존재이다. 즉 인자이다. 그는 안식일의 주인이기 때문이다. 이 인자는 신성과 인성을 가지신 자로 신성으로는 하나님편에,인성으로는 인간편에 서서 양편을 중재하신 중재자이시다. 그 중재자는 누구인가? 마가복음 2장 28절에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되어 있다. 헬라 원어에 보면 ()되어 있다. 이에 대하여 American Standard Version(미국 표준역)은 "So that the Son of Man is Lord even of the Sabbath"로 되어 있다. 즉 "그러기 때문에(그래서)인자는 안식일까지라도 주인이다"는 것이다. 본문을 위의 성경 귀절과 함께 생각하면 그 안식일이 인간을 위한 것이다. 또 안식일의 주인은 인자이다. 안식일의 주인인 인자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된 인간을 위해서 사죄와 구원(거룩함)과 평안과 영생(축복)을 주신다는 것이다.그러므로 안식일은 예수 그리스도를 내용으로 한 날이다. 그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죄인을 거룩하고, 복되게 하는 날이다. 그래서 안식일은 하나님인 그리스도께서 인간에게 오시고(임마누엘 마1:23-),인간이 그를 맞이하는 귀한 날이다(마2:1-12).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눅2:14)가 있는 때이다. 즉 그리스도의 초림의 날을 에언하고, 그리스도를 맞이하는 성탄절이 아닌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이는 나와 너희 사이에 너희 대대의 표징이니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줄 너희로 알게 함이라(출31:12-13)고 증거 하였다.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표징은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사7:14)한 것이다. 성령으로 (사8:8) 처녀 마리아에게 잉태한 것이다.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는 사죄와 구원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다(마1: 20 -21).예수는 "자기의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에 근거하면 안식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즉 초림에 관한 예언이다. 레위기 24장 8절에 매 안식일에 새떡을 여호와 앞에 진설하는 것은 감사의 예물도 되지만 하나님의 신령한 양식 즉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희생에 대한 감사제사이다("성막"참조).
또 민수기 28:9-10절을 보면 1년되고 흠없는 수양을 번제로 드리게 되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과 구속의 죽음을 예언한 것이다. 즉 임마누엘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을 하나님 앞에서 속죄 구원을 예표한다. 신명기 5장 12-15절에는 하나님의 구원을 말씀하고 있다. 이 구원은 애굽에서의 구원이나, 영적으로는 죄악에서의 구원을 의미한다.(시92:1-15, 사56:24-758:14). 이상은 구약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과 안식일과의 관계를 생각했다.
이하에서는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와 안식일과의 관계를 생각하여 보자! 마태복음 12장 1-8절을 보면 안식일과 주님과의 관계를 말씀하고 있다.즉 안식일과 진설병의 관계를 말씀하시고, 성전과 주님의 관계를 말씀하셨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하셨다. 누가복음 13장 10-17절에 안식일에 주님은 병자를 고치셨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의 구원사역을 말씀하여 주며, 요한복음 5장 17절은 유대인들이 안식일에 일한 것을 반대할 때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선언했다. 이 모든 말씀으로 볼때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의 상징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은 죄인들에게 속죄 구원만 아니라 내세의 영생 복락과 영원한 천국의 축복과 영생도 허락한 것이다. 그러므로 신약에서는 이날이 주일로 되었다. 그날은 주의 죽으심을 포함한 부활의 날이요, 초대 교회의 성령 강림절이다. 또 주님이 부활하여 나타나 보이셨고,초대 교회가 예배를 드린 날이다. 이것은 에수 그리스도의 중보사역도 의미한다. 그의 신성으로는 하나님 아버지와 그의 인성으로는 인간과 관계를 가지고 교제케 하시고,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계시어 화목케 하셨다.그가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가 죄인을 변호하시고, 인간의 죄를 속하시고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가 속죄함을 받은 인간으로 한 영적 가정을 이루게 하셨다.
그러므로 안식일은 예수 그리스도를 중보자로 하여 인간이 하나님께 나아가 교제하고,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에게 오시어 영적으로 교제하며, 예배를 받으시는
거룩한 날이요 복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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