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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Apr

잊혀진 사람들의 마을 - 1부

작성자: blue IP ADRESS: *.91.201.234 조회 수: 12892

et152.jpg

사랑의 실천자이신 김요석 목사님을 소개합니다.


김요석 목사님은 독일에서 15년 동안 신학을 공부하고,
한국에 귀국하여 대학 강단에 서지만 영적인 갈증을 해결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마침내 어떤 목사님의 소개로 나환자 정착촌인 영호 마을의 한 교회에서 사역을 시작합니다.

이 글은 영호를 방문하였다가 그들의 삶에 감동한 김요석 목사님의 독일 친구인
클라우드-디터 그래스가 1991년에 독일에 먼저 소개하였습니다.

김요석 목사님은 10년간 영호  교회에서 사역하시다가 중국으로 떠나셨다고 합니다.
그러나 현재 연락이 끊겨 소식을 아는 분이 없는 상태이기에 부득이 독일어판을 번역하여 출판하게 되었습니다.
(현재 중국 티벳에서 나병환자를 돌보며 선교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섬기는 교회의 지체들은 영호라는 작은 마을에 살고 있습니다.
이 마을은 서울에서 남쪽으로 약600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곳으로서 주민이 250명 정도 됩니다.
영호는 아주 특이한 곳입니다. 이곳을 설명하려면 먼저 다른 이야기부터 해야 할 것 같군요.

한국에는 아직도 나병이라는 무서운 병이 있는데, 나병이 양성으로 나타난 사람들은 소록도라는 섬에 강제 수용됩니다.
소록도에는 나병 환자들을 치료하는 의료시설이 있지요.
그곳에서 병이 호전되어 양성에서 음성으로 바뀐 사람들은 육지로 나갈 수가 있습니다.

그들은 두 마을 중에서 한 곳을 선택하게 되는데, 저는 그 중 한 마을에서 살고 있습니다.
나병환자들은 사람들을 만날 때 으레 손부터 감춥니다.
비틀려 있거나 아예 끊어져 나간 손가락이 남의 눈에 뜨이기라도 하면 나병을 앓았다는 사실이 금세 드러나기 때문이지요.
이것이 그들의 약한 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알려 주십니다.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  짐이라"(고후 12:9)  

김요석
저는 제 친구인 김요석 목사의 교회에서 한 달 동안 함께 지냈습니다.
그러면서 그가 이야기해준 것과 우리가 체험한 것 가운데 몇 가지를 두 사람이 함께 쓰기로 했습니다.
나환자 정착촌에서 함께 살면서 겪은 김요석 목사의 이야기들은 우리에게 잔잔한 감동을 줍니다.
김광운 화백은 몇몇 장면을 삽화로 그려 주셨습니다.

그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클라우스-디터 그래스(Klaus-Dieter Gress)  

1. 잊혀진 사람들의 마을 - 만남  

오랜만에 고향인 한국에 돌아왔다.
독일에서 공부한지 15년째 되던 해에 서울에 있는 신학교에 조직신학을 강의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돌아온 것이다.

나는 한 학기 동안 신학교에서 강의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분열된 감정에 휩싸이게 되었다.
이러한 감정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하나님에 관한 이론적인 질문에는 언제든지 대답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학생들에게 별 도움이 될 수 없음을 느꼈다.
그들은 여러 가지를 묻고 싶어했지만 내가 알고 있는 신학 이론으로는 그 문제들에 대해 거의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주말에 시간을 내서 목사님이 없는 작은 교회를 돌보고 있었다.
그들은 내게 배운 신학을 그곳에서 늘 적용하고 있었다.
그런데 교인들이 알고 싶어하는 것은 무미건조한 신학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이었다.

나는 스스로에게 만족할 수 없었다.
나는 인간을 친히 만나기 원하시는 하나님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다는 말인가?
그러나 그 문제를 생각하면 할수록 나의 체험보다는 교리가 더 많이 떠올랐다.
이러한 불만족스러운 마음은 오랫동안 나를 따라다녔다. 이것이 내 얼굴에 씌어 있었던 모양이다.

어느 날 나이 많으신 목사님 한 분이 다짜고짜 다음과 같이 물으셨다.
"교수님은 하나님을 만나셨습니까?" 나는 대답할 말이 없었다. 그 목사님은 계속해서 말씀하셨다.

"하나님을 알고 싶으시다면 교수직에 머물러 있지만 말고 차라리 무슨 일을 해보십시오!"
그러면서 목사님은 한 가지 일을 제안하셨다.

"남부 지방에 제가 아는 작은 마을이 하나 있는데, 교회에 목사님이 안 계십니다. 그곳에 가보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 결정은 쉽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마침내 교수직이라는 좋은 직장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나는 하나님을 만나고 싶었다. 책 속에서 만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사람을 직접 만나 악수를 나누듯이, 그렇게 만나고 싶었다.

목사님은 내게 그 마을의 주소를 건네 주셨다. 어느 토요일, 나는 고속버스를 타고 그 마을을 향해 떠났다.

긴 여행이었다.
영호에 도착하자 날이 벌써 어둑어둑해져 있었다. 두서너 사람이 나를 마중 나왔다.
그 사람들의 얼굴 생김이 특이한 것 같았지만 가로등 불빛으로는 자세히 볼 수 없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새로 온 목사입니다."
나는 스스로를 소개했다. 그 사람들은 별말 없이 어떤 작은 방으로 나를 안내해 주었다.

이것이 내 방인가? 방에는 가구가 없었을 뿐 아니라 벽은 더러웠으며 작은 벌레들이 여기저기 기어  다니고 있었다.
방바닥에는 밤을 지낼 만한 이불 한 채 깔려 있지 않았다. 나는 너무 피곤해서 옷을 입은 채로 잠들어 버렸다.

주일 아침 8시 30분이 되자 교회 종소리가 작게 두 번 울렸다. 오래된 교회당에 가보니 아이들이 스무 명 가량 모여 있었다.
함께 찬송을 부르고 나서 어린이예배를 시작하려고 하는데,
첫 줄에 앉아 있는 꼬마가 계속 콧물을 훌쩍이는 것이 보였다. 그 모습이 내 눈에 거슬렸다.

"얘야, 이리 와 봐. 내가 코 닦아줄게!" 코를 닦아주고 나서 다시 예수님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데,
이 번에는 다른 사내아이 하나가 코를 훌쩍였다. 못들은 척하고 그냥 지나칠 수가 없는 소리였다.

결국 나는 스무 명의 코를 모두 닦아주어야 했다. 아이들이 재미있다는 듯이 삐죽삐죽 웃었다. 첫 어린이예배는 그렇게 끝났다.

나는 긴장된 마음으로 대 예배를 기다렸다. 마침내 시간이 되어 강대상 앞에 섰다.
몇몇 사람들이 머뭇거리며 교회당 안에 들어서는 모습이 보였다.
그들은 마치 무언가를 숨기려는 듯이 내 눈길을 피하고 있었다.
왜 저렇게 부끄러워하는 걸까?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의문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었다.

교회 마루바닥 맨 앞자리에 쪼그리고 앉아 있던 할머니 한 분이 눈에 띄었던 것이다.
눈길이 그 할머니에게 닿는 순간,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람의 모습이 저럴 수도 있단 말인가!
할머니의 얼굴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오직 구멍 다섯 개뿐이었다.

눈도, 코도, 입술도 없었다. 양손조차 다 끊어져 나가고 없었다. 내가 나환자촌에 왔긴 왔구나!
예배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르겠다.
오직 한 가지 생각만 망치질하듯 나를 두들겨대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여기를 떠날 수 있을까?'

처음에는 예배 후에 사람들과 인사를 나눌 작정이었다. 그러나 나는 예배가 끝난 뒤에 일부러 천천히 설교원고를 정돈하였다.
내가 늑장부리는 동안 사람들이 전부 돌아가기를 바랐던 것이다.
마침내 교회 문을 닫으려고 강대상에서 내려오는데, 그 얼굴 없는 할머니가 고개를 드셨다.

"목사님, 말씀 감사합니다." 할머니는 손가락이 없는 손을 내게 내밀었다.
이 손을 어떻게 잡아야 하나? 나는 할머니의 손위에 내 손을 그냥 올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 순간의 느낌은 앞으로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곁에 있던 다른 할머니 한 분은 내 손을 잡고 아예 놓아주지 않았다.
"할머니, 혹시 어디가 편찮으세요?"
나는 마침내 이렇게 물었다. 할머니는 흉한 얼굴로 웃어 보이려고 애쓰면서 대답했다.

"목사님, 전 열여덟 살 때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건강한 손을 잡아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목사님이 이렇게 제 손을 잡아 주시니 너무 기뻐서......"
나는 그 생각을 미처 못했다. 너무나 부끄러웠다. 하나님이 나를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손가락이 다 끊어져 나가고 없는 이 할머니의 뭉툭한 손 끄트머리에서 하나님은 내게 악수를 청하셨다.
바로 그 자리에서 나를 맞이하시기 위해서. 나는 누군가와 악수하듯이,
바로 그렇게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음을 느꼈다. 나의 소원은 이렇게 이루어졌다.

나는 할머니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었다.
"할머니, 할머니의 가혹한 운명 때문에 하나님을 원망하지는 않으십니까?"
"어떻게 제가 감히 하나님을 원망하겠습니까? 오히려 감사드려야지요.
하나님은 아픔 가운데서 제게 복을 주셨는걸요."

"복을 주셨다구요?" 나는 당황해서 되물었다.
"그럼요. 예전에는 저도 많이 원망했어요. 하지만 하나님은 여기에서 살아온 긴 세월 동안 나를 잊지 않으시고
그 아들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선물로 주셨지요. 하늘나라에 갈 소망도 주시구요.
목사님, 이것이 진짜 복이 아니겠습니까?"

나는 부끄러웠다. 지금까지 나는 한 번도 나의 건강을 하나님의 복으로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문둥병자로 살면서 어떻게 하나님의 복을 말할 수 있을까? 할머니는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2. 잊혀진 사람들의 마을 - 가혹한 운명  

열여덟 살 때였습니다. 어느 날 아침 세수를 하는데 살갗에 이상한 반점이 생긴 거예요.
햇볕에 타서 그렇겠지 생각하고 그리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지요. 그런데 군데군데 허연 부분이 점점 늘어나면서 고름이 차더군요.

어머님께 그것을 보여드렸더니 어머니가 비명을 지르셨습니다.
'문둥병'이라는 말이 제 귀를 때렸어요. 저는 제 방으로 뛰어가 방바닥에 엎드려서 많이 울었지요.
그렇게 울고 있는데 어머니가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오시더니 저를 꼭 안아주시더군요.

"아니야,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요!" 나는 죽어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어머니는 아주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씀하셨어요.
"얘야, 내 말을 좀 들어보거라. 에미가 도와주마. 동네 사람들에게는 숨겨야 한다.
아무도 널 보지 못하게 해야돼.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이 널 섬으로 보내버릴게다. 하지만 에미는 널 잃고 살 수 없다."

그때부터 저는 방안에서만 살았지요. 어머니만 이따금씩 돌보아 주셨어요.
밤에는 마당에 데려다 주시기도 했지요. 그렇게 저는 짐승처럼 갇혀 지냈습니다.
"어머니, 전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거예요? 정말 괴롭고 무서워요."
하지만 어머니도 그 답을 아실 리가 없었지요. 어머니는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셨어요.

어느 날 저녁, 선잠이 들었는데 누군가 방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아버지였어요.
손에는 낫을 움켜쥐고....... 저는 숨을 쉬지 않으려고 애를 썼어요. 가슴이 두방망이질을 쳤습니다.'정말 아버지가 날 죽이실까?'
아버지는 거기 서서 자신과 싸우며 망설이고 계셨습니다.

그렇게 몇 분이 지났어요. 아버지는 다시 밖으로 나가 버리셨습니다.
바로 그날 밤, 아버지는 쌀과자가 가득 담긴 그릇을 가지고 제 방에 들어오셨어요.
"남기지 말고 다 먹거라." 제가 하나씩 집어먹는 동안 아버지는 나를 지켜보고 계셨어요. 아버지는 한숨을 깊이 내쉬셨어요.
"네 병 때문에 우리 집안은 풍비박산 나버렸다.
네가 우리 집에서 사는 한 우리 식구는 살 수가 없어. 동네 사람들이 우릴 쫓아내 버릴게다.

네 동생들은 이제 같이 놀 친구도 없고, 용삼이 색시네에서는 파혼하자고 하는구나.
차라리 내 손으로 널 죽이는 것이 낫겠다 싶었는데......이 애비 심정을 알겠느냐?"
저는 솟구치는 울음을 억지로 참으면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래. 오늘 저녁이 마지막이다. 내일부터 넌 이 집에 살 수 없는게야."

아버지는 자리에서 일어나시더니 한 번도 돌아보시지 않고 나가 버리셨습니다. 저는 아버지 마음을 알 수 있었어요.
아버지는 차마 아버지 입으로 자살하라고 말씀하실 수 없었겠지요. 저는 아버지의 말씀을 따라야 했어요.

다음 날 아침, 저는 집을 몰래 빠져 나와 강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미리 와 있는 사람이 있었어요. 어머니엿습니다.
"넌 내 딸이야. 내 눈앞에서 널 죽일 순 없다. 자, 이 쌀자루를 들고 산으로 올라가거라.
산신령께 치성을 드리면 혹시 고쳐주실지도 모르잖느냐? 그럼 너는 다시 집에 돌아올 수 있을게고."
어머니가 절 꼭 안아 주셨어요. 어머니의 사랑이 따뜻하게 절 감싸주었습니다.

저는 어머니가 주신 쌀자루를 들고 서둘러 그 자리를 떠났어요. 그리고 그 날 이후 한번도 저희 식구들을 보지 못했습니다.

저는 하루 종일 산 속을 돌아다녔어요. 산꼭대기에 올라가 산신령을 기다렸지만 허사였어요.
저를 도와주려고 나타난 것이라고는 허깨비 하나 없었습니다. 저는 혼자였어요.
배가 너무 고파서 결국 저는 산에서 내려와 버렸어요. 그리고 어느 농가에 밥 한바가지를 구걸했어요.

나는 거지처럼 밥을 동냥하는데, 산 속에 두고 온 쌀자루는 어떻게 되었을까?
산신령이 벌써 다 먹어 버렸을까, 아니면 남아 있을까? 저는 엉터리 산신령에게 화가 났어요.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에게 잡혀서 소록도에 가게 되었지요.

소록도에서는 적어도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거기 있는 문둥병자들은 날 한 가족처럼 맞아 주었어요.
우리는 가족을 대신해서 서로가 서로에게 잃어버린 아버지와 어머니와 오빠와 언니가 되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소록도 사람들에게는 다른 점이 하나 있었어요. 이 사람들은 신령과 우상을 믿는 대신 하나님 한 분만 믿었습니다.
이 하나님은 다른 신들과 달랐어요. 하나님이 세상에 보내신 아드님은 문둥병을 무서워하지 않으시는 분이었지요.

저는 이 예수님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어요. 처음에 문둥병은 제게 사형선고나 다름없었습니다.
저는 아무 가치 없는 사람이 되었지요. 친부모와 형제도 절 거부했어요.

하지만 이제 저는 하나님을 찾았어요. 하나님은 저를 '딸'이라고 불러 주셨습니다!
그리고 저는 새 형제와 자매들도 얻었지요. 제게는 장차 하나님의 전에 영원히 거할 소망이 있습니다.

목사님, 이것이 진짜 복이 아니겠습니까?

3. 잊혀진 사람들의 마을 - 평화를 위한 굶주림  

어느새 겨울이 시작되었고 눈이 많이 내렸다. 얼음처럼 차가운 날씨였다.
어느 날 아침 새벽예배를 마친 후 집에 가보니, 꼬마 다섯이 문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무슨 일이니?" 내가 물었지만 아이들은 얼어붙은 듯이 서 있기만 했다.
마침내 그 중에서 가장 큰놈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목사님, 우리 엄마 좀 찾아 주세요. 엄마가 집을 나갔어요."
"무슨 일로?" "할아버지가 엄마를 때렸어요."
나는 아이들을 집까지 바래다주었다. 할아버지는 집에 계셨다.

"할아버님, 애들 어머니가 왜 집을 나갔습니까?"
"그년이 아주 못된 년이어요." 노인은 욕을 했다.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다 듣고 보니 며느리의 잘못이었다.
"엄마는 곧 집에 돌아오실거야."

일단 아이들을 달래놓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이게 왠일인가? 집에서는 동네 아주머니들이 몰려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주머니들은 여러 가지로 내게 이의를 제기하면서 애들 어머니는 아무 잘못이 없다고 말했다.
"애기들 엄마가 잘 도망가부렀어요. 그 노인네가 자기 며느리 징허게 못살게 했당게요.
맨날 며느리 욕이나 허고 돌아댕기는디 그 정도 참은 것도 다행이지요."
"......시아버님이 잘못하시긴 잘못하셨군요."

나는 다음 주일 설교를 준비해야 했다. 그러나 머리에는 온통 이 집 생각뿐이었다.
두 사람의 태도에 다 일리가 있었지만, 그 사이에 끼인 아이들은 울면서 지내야 했다.
아이들로서는 어른들 일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당연했다.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 가족은 모두 주일마다 예배드리러 나오는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내가 하나님의 사랑과 인간들 사이의 화평에 대해 충분히 전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긴 것이 아닐까?
그제야 나는 이 일의 책임이 어디에 있는지 깨달았다. 바로 내 잘못이었다.
그렇지만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내 죄를 회개하며 금식하기로 결심했다.

 

금식이 닷새 째로 접어든 날, 차씨 할아버지가 내 금식 소식을 듣고 찾아왔다.
"목사님, 저 때문에 금식하시는가요?" 할아버지는 나를 책망했다.
"아닙니다. 할아버님 때문이 아니라 저 때문에 금식하는 거예요.
할아버님도 옳고, 며느님에게도 잘못이 없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불쌍합니다.
아이들이 이렇게 울면서 배고파하는 것은 제 탓입니다.
제가 평화와 화해에 대해 충분히 설교하지 못한 탓입니다. 그래서 금식하는 겁니다." 할아버지는 아무 말씀 없이 돌아가셨다.

금식한 지 여드레가 지나자 몸이 많이 쇠약해졌다. 할아버지는 나를 찾아와 고백하셨다.
"목사님, 다 제 잘못입니다. 제가 식구들하고 며느리한테 너무 심했는갑네요. 인자 어째야 쓴당가요?"
"할아버님, 할아버님은 이미 가장 선한 길로 발을 디디신 겁니다. 저와 함께 기도하시지요."
나는 차씨 할아버지 댁에 가서 함께 아침을 먹었다. 그때 밖에서 아이들의 환성이 들려 왔다.

아이들의 어머니가 돌아온 것이다. 할아버지는 곧바로 며느리를 맞아들이셨다.
"아버님, 제가 잘못했어요. 용서해 주세요."며느리가 먼저 말했다.
"아니다, 인자 다 잘 될 것이다. 내 맘이 달라져야제."
이제 아무도 상대방에게 잘못을 넘기지 않았다. 이렇게 해서 두 사람은 화해하게 되었다.
나는 두 사람이 화해하는 것을 보면서 내 배를 슬쩍 만져보았다. 배가 쑥 들어가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선한 목적을 위한 굶주림, 평화를 위한 굶주림이었다.

4. 잊혀진 사람들의 마을 -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 있다  

이웃 동네에 살고 있는 한 가장이 우리 교회에 나오게 되었다.
그들은 초신자였기 때문에 예수 믿는 사람으로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아직 잘 모르는 상태였다.
게다가 이웃 동네는 워낙 불교가 지배적인 곳이었기 때문에
교회에 다니는 그들의 일거수 일투족은 온 동네 사람들의 관심거리가 되었다. 그들은 이웃의 따가운 시선 속에서 살아야 했다.

어느 날 저녁 그 집 아버지가 나를 찾아왔다.
잔뜩 화가 나서 목에는 핏대가 서고 얼굴은 시뻘겋게 달아오른 모습이었다.
"왜 그렇게 화가 나셨어요? 누구하고 싸우기라도 했습니까?" 나는 다그치듯 물었다.
"아니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제가 지금까지는 화가 나도 꾹 참았다구요.

예수 믿는 사람은 서로 사랑해야 한다고 목사님께서 늘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옆집 그 인간은 해도 정말 너무 하지 뭡니까?
도대체 제가 어떻게 해야 할지 말씀 좀 해주십시오.
목사님은 그래도 목사님이니까 뭔가 답이 있지 않겠습니까?"
양씨는 숨을 가쁘게 쉬며 씩씩거렸다. 우선 그를 진정시키는 일이 급했다.

"무슨 일인지 차근차근 말씀해 보십시오."

양씨는 깊이 숨을 몰아쉰 다음 이야기를 시작했다.
"오늘 오후에 우리 어미 돼지 다섯 마리가 옆집 채소밭에 들어가서 그 집 채소를 몽땅 먹어치웠거든요.
그랬더니 옆집에서 손해배상을 해달라고 하더라구요." "그야 당연히 배상해야지요." 나는 자신있게 대답했다.
"저도 손해는 배상해 주려고 했지요. 그런데 그 인간이 말도 안되는 걸 요구하지 뭡니까!"
"도대체 옆집 분이 원하는 게 뭔데요?"
"글세, 우리 어미 돼지 다섯 마리를 전부 달라는 겁니다!" 양씨는 다시 화가 치밀어 오르는 듯 소리를 버럭 질렀다.

"아무리 예수 믿는 사람이라도 이런 경우에 화가 안나는 놈이 어디 있겠습니까, 예?"
양씨는 씩씩거리며 내 대답을 기다렸다. 나는 무슨 말을 해주어야 할지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 옆집 사람은 형제님을 시험해 보려고 그러는 것 같습니다. 그 사람은 형제님이 마구 흥분하고 화내기를 바랄 거예요.
그렇게 되면 예수 믿는 사람이 얼마나 형편없는지 온 동네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으니까요.
그러니까 그렇게 하지 못하게 하려면 그가 원하는 것을 모두 다 주셔야 합니다.

큰 손해를 입게 되더라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더 많은 것으로 갚아주실 겁니다."
내 말이 초신자 양씨에게 설득력이 있을까? 양씨는 양손을 허리에 얹고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좋습니다. 어쨌든 저는 예수 믿는 사람이니까요. 아까는 정말 화가 났지만, 다 접어두고 하나님께 순종하겠습니다.
목사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하지요." 그는 돌아갔다.

양씨는 정말로 한 마디 불평 없이 돼지 다섯 마리를 전부 옆집에 주어버렸다. 동네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랐다.
"양씨가 미친 거 아니야?"
많은 사람들이 양씨를 비웃었지만, 그 중에는 양씨의 태도를 보고 사뭇 진지해지는 사람들도 있었다.
'아, 예수 믿는 사람은 저렇게 하는구나.'

그것은 여름에 일어난 일이었다. 나는 그 사건을 까맣게 잊어버렸다.
나뭇잎이 곱게 물들어가던 어느 가을날 밤, 양씨가 내 방문을 두드렸다.
"목사님, 밤 늦게 죄송합니다. 꼭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전에 제가 목사님의 말씀을 따르기는 했지만, 사실 속으로는 굉장히 분했습니다.

그래서 옆집 사람이 한 짓을 오랫동안 잊지 못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오늘 아침에 엄청난 일이 벌어졌지 뭡니까?
글쎄 옆집 황소 일곱 마리가 우리 집 밭에서 실컷 뜯어먹고 있는 겁니다. 제 눈을 믿을 수가 없었어요.

그런데 옆집 사람이 그걸 보고 양심의 가책을 받았는지, 저한테 와서 난처한 얼굴로 이러는 겁니다.
'양씨, 어떻게 배상해야 할까?' 처음 생각 같아서는 그 황소 일곱 마리를 냅다 끌어오고 싶었지요.

하지만 목사님께 먼저 여쭈어 보아야 할 것 같아서 이렇게 달려왔습니다.
목사님, 이제 제가 이겼지요? 그렇지요? 돼지 다섯 마리에 황소 일곱 마리라니,
목사님 말씀대로 하나님은 정말 제가 잃은 것보다도 더 많이 주셨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양씨의 얼굴은 커다란 이익을 얻게 되리라는 기대감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의 기대를 저버릴 수밖에 없었다.
"사랑하는 형제님, 형제님은 예수 믿는 사람입니다. 악을 악으로 갚지 마십시오.
앙갚음하려는 마음을 버리시고 그분에게 용서하는 마음을 보여주십시오.
형제님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는 더 많은 것으로 갚아 주신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양씨의 얼굴이 갑자기 침울해졌다. 그는 올 때와는 달리 한 마디도 하지 않고 맥빠진 모습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다음 날 저녁, 양씨는 또 한번 신이 나서 나를 찾아왔다.
"목사님 말씀이 또 맞았어요! 하나님이 정말 더 풍성하게 주셨습니다.
어제 목사님이 말씀하신 대로 옆집 사람에게 아무런 배상도 받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오늘 오후에 그 사람이 돼지 아흔 마리를 끌고 우리 집에 왔지 뭡니까?

그러면서 하는 말이 '이 돼지 전부 자네 껄세. 내가 자네 때문에 지난밤에 한숨도 못 잤어.
지난 일로 틀림없이 화가 잔뜩 났을 텐데 왜 내 황소를 달라고 하지 않느냐 말이야.
내가 그걸 생각하느라고 머리가 다 빠개지는 것 같아.
자, 자네 돼지가 낳은 새끼 열 여덟 마리씩 다 합해서 아흔 마리 전부 데려왔으니 다 가져가게.
그리고 이제부터는 이웃끼리 잘 지내보세."

양씨는 예기치 않은 이 이야기를 듣고 흥분해서 나한테 뛰어온 것이다.
"생각해 보세요. 별안간에 이렇게 많은 돼지를 되돌려 받은 것도 굉장하지만,
지금까지 옆집에서 그놈들 전부를 먹인 먹이를 생각하면
정말 하나님이 제가 손해본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주셨지 뭡니까?
이제 저는 확실히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런데 목사님, 이것보다 더 좋은 일이 뭔지 아십니까?"

좋아라 하던 양씨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마을 전체가 우리를 예수 믿는 사람으로 인정하게 된 겁니다.
이거야말로 하나님께 받은 최고의 선물이 아니겠습니까?"

5. 잊혀진 사람들의 마을 - 참사랑이란  

문둥병은 재발하는 경우가 많다. 이제 쉰여섯 되신 그 아주머니에게도 문둥병이 재발했다.
몸과 얼굴이 부어오르고 양쪽 눈과 콧구멍에서 고름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다른 마을 사람들은 아예 그 집에 발길을 끊어버렸고,
나이 지긋한 교회 어른 한 분은 그 아주머니를 소록도로 다시 보내고자까지 했다.

게다가 소문은 꼬리를 물고 이웃 동네까지 퍼져나갔다.
심한 불안과 절망에 빠진 아주머니는 한꺼번에 많은 양의 약을 먹어버렸다.

차라리 죽어서라도 문둥병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도리어 위만 상해서 이제는 제대로 먹거나 마실 수도 없게 되었다. 상황은 점점 더 어려워졌다.

그렇게 두 주가 지나갔다. 내가 찾아갔을 때 아주머니는 아무런 기력 없이 누워있었다.
아주머니는 나를 알아보고는 간곡히 부탁하기 시작했다.

"목사님, 제발 저를 다시 소록도로 보내지 말아주세요. 저는 두 번 다시 소록도에서 문둥병자로 살고 싶지 않아요!"
"그럼요. 하지만 여기 그대로 계시려면 건강을 빨리 되찾으셔야 합니다. 아무 거라도 좀 잡수어 보세요!"

"먹을 수가 없어요." 아주머니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부엌을 내다보니 아궁이 위에 생선찌개가 담긴 냄비가 있었다.

나는 숟가락으로 찌개를 떠서 맛을 보았다. 아주머니는 입을 다물지 못할 채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내가 병에 옮을 것을 겁내지 않고 자신의 숟가락을 쓰는 것에 깜짝 놀란 것이다.
나는 생선찌개를 가득 떠올린 숟가락을 아주머니에게 건넸다.

"맛 좀 보세요. 아주 맛있는데요!"
아주머니는 내가 건넨 국물을 꿀꺽 삼켰다.
'아주머니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 드실 텐데...... 내가 함께 있으면 어떨까?'
나는 신중하게 생각해본 다음, 더 이상 주저하지 않고 냄비가 텅 빌 때까지
아주머니와 함께 숟가락 하나로 번갈아가며 찌개를 먹었다.

배부르게 먹은 송씨 아주머니는 금세 잠이 들었다. 잠든 얼굴을 들여다보니 온통 고름투성이어서 아주 끔찍해 보였다.
나는 수건으로 고름을 깨끗이 닦아냈다. 닦아도 닦아도 고름은 다시 흘러나왔다.
창문을 통해 들어온 햇살이 그 누런 액체를 비추었다. 고름이 마치 금처럼 반짝였다.

"자매님, 자매님 얼굴에 금이 정말 많기도 하네요!"
나는 크게 소리내어 말했다. 내가 어떻게 아주머니에게 나의 사랑을 보여줄 수 있었을까?
나는 그 동안 아주머니와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었는지! 나는 건강한 사람이고 아주머니는 문둥병자였다.
그러나 아주머니는 내게 잔잔한 웃음을 보내주었다. 내가 그 아주머니의 숟가락을 썼기 때문이다!

그것은 아주머니에게 입맞춤과도 같은 것이었다. 우리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담이 무너졌다.
그때 나는 참사랑이란 바로 내가 그 사람의 자리로 옮겨가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 아주머니 앞에서 나는 그분과 똑같이 문둥병자가 되었던 것이다. 나는 이 아주머니에게 감사했다.
아주머니는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어떤 것인지를 내게 가르쳐 주었다.
하나님은 바로 나의 자리에 오셔서 나와 하나님의 사이를 막고 있던 담을 허물어 버리신 것이다.

6. 잊혀진 사람들의 마을 - 지체 높은 사람의 방문  

어느 나른한 봄날 저녁에 군수가 나를 찾아왔다.
군수처럼 지체 높은 사람이 우리 마을에 찾아온 적은 그때까지 단 한 번도 없었다.

"김 목사님이십니까? 지금에야 찾아뵙게 되어 죄송합니다.
사실은 우리 도지사 사모님께서 목사님을 꼭 만나고 싶어하셔서 말입니다. 내일 시간을 내실 수 있겠습니까?"
나는 깜짝 놀랐다. 그렇게 지체 높은 분이 어디에서 내 말을 들었을까?
"혹시 다른 사람과 저를 혼동하신 것 아닙니까?"
나는 좀더 신중을 기하기 위해 되물었다. 그런데 군수는 영호에 살고 있는 내가 틀림없다고 말했다.

다음 날 급한 환자를 심방할 계획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군수에게 사정을 이야기했다.
"날짜를 낼 모레로 연기할 수 없을까요? 그날은 시간을 낼 수 있겠는데요."

군수는 아주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어느 누구도 군수에게 이렇게 말한 사람이 없었나보다.
"음 목사님이 정 그러시다면 목사님의 대답을 그대로 전하지요." 다음날 아침 군수가 또 찾아왔다.
"내일 오후 두 시가 괜찮으시다면 기꺼이 오시겠답니다."

그가 돌아가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아 우리 마을 길에 무언가 덜거덕거리는 요란한 소리가 점점 가깝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영호는 국도에서 약 6킬로미터 떨어진 거리에 있기 때문에
마을로 들어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고르지 못한 들길을 통하는 것뿐이었다.

그 요란한 소리가 어디서 나는지 알아보려고 온 마을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때 저만치 한 무리의 일꾼들이 트럭과 불도져를 몰고 마을 쪽으로 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지체 높은 사람이 방문할 들길에 자갈을 깔고 땅을 평평하게 고르기 위해서 였다.

약속한 날 점심시간에 군수와 면장과 경찰서장이 공무원 몇 명을 거느리고 미리 왔다. 마을 분위기가 잔뜩 들떠 있었다.
그렇게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을 실제로 본적이 지금껏 한 번도 없었던 탓이었다.

정확하게 오후 두 시가 되자 도지사 부인이 도착했다. 부인은 스물다섯 명의 다른 부인들과 함께 왔다.
상류사회의 부인들이 가난한 우리 마을에 모두 모인 것이다.

물론 나도 긴장이 되었다. 도대체 우리 마을에는 왜 온 것일까? 도지사 부인은 서울에서 누군가에게 내 얘기를 듣고,
문둥병자들의 교회를 섬기는 이 목사에게 호기심을 품게 되었다. 그 부인은 자신의 삶에 의미를 줄 수 있는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부인은 그토록 풍요로운 생활을 하면서도 만족할 수 없었다.
삶의 의미를 찾고자 하는 그 부인의 갈증을 무엇으로 채울 수 있을까? 부인은 영호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기를 원했다.

"모두 교회로 가시지요. 이렇게 오셨으니 하나님께 예배를 드립시다!" 나는 그 사람들을 모두 교회로 안내했다.

도지사 부인이 이 특별 예배에서 자신이 찾고 있던 것을 찾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 부인은 떠나기 전에 내게 물었다.
"목사님, 목사님께 필요한 것을 하나 해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필요한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부탁드릴 것이 있습니다. 떠나실 때 우리 마을 사람들과 악수를 해주시겠습니까?"

부인은 확실히 불쾌한 듯 했다.
그러나 자가용에 오르기 전에 어떤 할머니 한 분에게 재빨리 손을 내밀었다.
할머니에게는 분명히 큰 영광이었다. 할머니는 그 후로 계속해서 그 부인을 위해 기도했다.
나중에야 나는 그 지체 높은 부인이 손씻을 물을 준비하기 위해 차들이 줄줄이 서서 기다려야 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 '지체 높은'분의 방문이 있은 후 우리 마을에는 약간의 변화가 있었다.
국도와 연결되는 길에는 콘크리트가 깔렸고, 전화도 연결되었다. 그리고 두 주 후에는 내 책상 위에 전화가 놓이게 되었다.

그로부터 몇 주가 지난 어느 날 아침, 낯익은 목소리가 전화기에서 들려 왔다.
"목사님, 목사님을 우리 집에서 모이는 성경공부 모임에 모시고 싶습니다. 와 주시겠습니까?"
나는 그 부인의 초대에 기꺼이 응했다. 그 부인은 자신이 찾고 있던 것을 우리에게서 찾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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