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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Sep

히브리어 성서

작성자: blue IP ADRESS: *.132.108.206 조회 수: 24626

히브리어 성서

동굴에서 찾아낸 구약성서
동굴에서 찾아낸 구약성서 두 소년은 베두인 족장을 따라 베들레헴으로 갔다. 아메드는 두루마리 3개를 한 골동품상에게 헐값으로 넘기고 돌아갔다(아메드가 판 두루마리 3개는 그 해 11월24일 히브리 대학 고고학 교수인 수케닉에게 팔렸다. 그 무렵 예루살렘은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아랍인 구역인 구 예루살렘과 유태인 구역인 신 예루살렘으로 나뉘어 있었다. 수케닉은 철조망 너머로 아랍인 골동상인이 보여주는 두루마리를 보자 눈이 번쩍 뜨여 목숨을 걸고 철조망을 넘어가서 그 두루마리들을 샀다). 무하마드와 족장은 돈을 더 받고 싶은 욕심에 다른 골동품상점으로 갔다. “이거 아주 귀한 물건인데, 좀 넉넉히 쳐줄 수 없겠소?” 족장의 말에 상인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글쎄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것이어서 뭐라고 말할 수 없군요. 한 사흘 기다려 주신다면 알아보고 나서 값을 매기겠소만.” 무하마드와 족장은 두루마리 5개를 그곳에 맡기고 돌아섰다. 골동품상점 주인은 뭔가 짚이는 것이 있어 그 길로 예루살렘의 성 마르코 수도원으로 사무엘 대주교를 찾아갔다. 한동안 두루마리를 살펴본 대주교는 할 말을 잊은 듯했다. 그의 눈에 놀라움과 경외감이 가득 차 있었다. 한참 지나 그의 입에서 새어나온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다. “5파운드에 사겠소. 이 글자는 틀림없이 헤브라이 글자일 거요.” 헤브라이(또는 히브리, 헤브류)는 이스라엘 민족의 옛 왕국 이름이다. 사무엘은 두루마리에 쓰여진 헤브라이 문자가 구약성서 원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신약과 함께 그리스도교의 2대 경전인 구약은 특히 유태인이 가장 성스럽게 여기는 경전이다. 구약은 야훼(여호와) 하나님이 당신께서 선택한 민족 이스라엘과 맺은 약속으로서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와 야훼의 계시가 담겨 있다. 그런데 그토록 성스러운 구약의 원본이 그때까지도 발견되지 않아서 많은 이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었다. 사무엘의 가슴은 너무나 두근거려서 폭발할 것 같았다. 그는 서둘러 예루살렘에 있는 아메리카 동방연구소로 트레버 박사를 찾아갔다. 확대경을 대고 두루마리에 적힌 글자를 한 자 한 자 읽어 내려가던 트레버가 눈을 지그시 감았다. “오, 야훼여! 이것이 꿈이 아니기를! 어떤 은총으로 내가 이 귀중한 것을 보게 되었을까. 대주교님, 이것은 틀림없는 구약 원본입니다. 더 조사해 보아야 하겠지만 제 생각으로는 구약 원본이 틀림없습니다!” /이병철(칼럼니스트)

천지창조(베레시트)
창조하시니라 창세기 1:1b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중요한 문제는 이 창조가 어떠한 창조를 뜻하는가(유에서 창조냐 무에서 창조냐)이다. "창조하시니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바라(히1254)는 주로 칼과 니팔형으로 사용되었으며, 여기서 문자적으로 칼 완료 남성 3인칭 단수로 '그가 창조했다'이다. 피엘형 베레('베다, 베어넘기다, 분리하다' 등, 수17:I5; 겔21:19; 23:47)와 어원학적 관계는 불확실하다. 바라는 '창조하다'(create)라는 기본 의미를 지닌다. 바라는 창조 기사에서 등장하는 야차르(히3335; 모양짓다, 형성하다)와 아사(히6213; 행하다, 형성하다, 만들다)와 구별되는데, 야차르는 주로 어떤 물체의 형태(모양을 만드는 것이나 형성하는 것)를 강조하고(창 2:7, 8), 아사는 자주 바라와 상호 교대로 사용되어 단순히 창조 과정에서 관련된 대상들을 조성하거나 만드는 행동을 나타내는 반면에 바라는 그 물체에 대한 창시를 강조한다. 동사 바라는 칼형에서 오로지 하나님의 칭조행위를 나타내는데만 사용된 순전한 신학적 용어이다. 동사 살레흐(히5545; 용서하다)가 하나님의 용서에만 사용된 것과 비교할 만한다. 바라의 이러한 독특한 용법은 하나님의 명령에 의한 창조 개념에 특히 적절하다. 바라는, (l) 관련된 대상의 개시의 개념을 담고 있으며, (2) 항상 하나님만이 행하실 수 있는 것이라는 의미를 함축하며, (3) 창조된 대상의 완전한 새로움을 강조하며, (4) 무(용)에서 창조라는 암시를 전달한다.(T.E. Mccomiskey). 폰 라드(Von Rad)는 그의 명저 창세기 주석에서 바라, 곧 '창조하다'란 동사는, 한 편으로는 전척 힘들이지 않는다는 개념을 포함하고 있고, 다른 한 편으로는 재료에 대한 진술과 연결되지 않기 때문에 무에서의 창조(Creatio ex nihilo)란 의미를 포함한다고 말했는데, 이는 정당하다. 창조 기사의 공공연한 진술에서 사용된 바라의 용법은 그 당시에 물리적인 현상들이 존재하게 되었고 그 물리적인 현상들이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 창조된 형태 이전에는 어떤 존재도 없었다는 암시를 전달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천지를 '무에서 창조하셨다'는 것은 그가 창세 전에 그의 말씀으로 만물을 창조하셨다는 구절들에 확실히 함축되어 있다(시148:5; 잠8:22-27). 본 회퍼는 '하나님은 전적으로 무에서 창조하셨다. 그러므로 피조물에 대한 하나님의 절대 자유가 있다'고 말했다.

태초의 시기
태초의 시기 창세기 1:1a "태초에 하나님이..." 이 구절에서 중요한 문제는 베레쉬트가 '태초에'냐 '…의 시초에'냐 이다. "태초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베레쉬트(히7225)는 명사 레쉬트(히7225)에 전치사 베(be, …에)가 접두된 것이다. 명사 레쉬트는 (I) '첫째, 시초, 최초, 시작'을 의미하며, 일련의 역사적 사건의 개시나 과정의 첫 단계(첫 단계, 호9:10; 세초, 신11:12; 일련의 출발점, 사46:10), 또는 인생의 결과와 대조되는 시작을 가리킨다(욥8:7; 42:l2). (2) 하나님에 대한 존경이나 경외와 같은 기본적이거나 필수적인 요건을 가리킨다(시 111:10; 잠I:7). (3) 어떤 사물 중에서 첫째, 혹은 가장 좋은 부분을 의미한다(핵심,창10:10; 첫 생산, 창 49:3; 첫 부분, 신33:2l; 가장 좋은 것, 암6:6). 어떤 학자들은 이 의미가 본래의 의미이며, (l)의 시간적 의미는 여기서 발전되었다고 한다(1CC, Genesis, p.l2). (4) 특히 제의를 위해 구별해 둔 것들과 관련하여, 한 부류의 사물들 중에서 가장 정선한 것, 혹은 가장 좋은 것이라는 특수한 의미로 사용되었다(정선된 첫 열매, 레2:l2; 23:10; 느12:44). 본절에서 레쉬트는 (I)의 시간적 의미로 사용되었으며, '시초, 최초'라는 의미를 지닌다. 문제는 베레쉬트의 해석방법이다. 고대와 현대의 일부 학자들(Raschi, Ewald, Aben, Ezra, Speiser, Bauer, Bayer, Herrmann, Humbert, Lane, Lcretz, Skinner, RSV 난외, NEB, NAB 등)은 이 단어를 연계형으로 '…의 시초에', 또는 '…시작할 때'라고 해석하여,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기 시작할 때'(When God began creating the heavens and the earth) 또는 '하나님의 천지 창조의 시초에'(in the beginning of God's creating the heavens and the earth)라고 번역한다. 표준 새번역도 이 번역을 따라 난하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 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기 시작하셨을 때에'라고 번역했다. 이 번역이나 해석을 따르면 l절은 의존절로서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기 시작할 때를 지적할 뿐이며, 2절은 과도기의 상황 설명으로서 하나님의 그의 창조를 시작할 때, 이미 존재한 땅의 상태를 설명하며, 3절은 l절이 수식하고 관련시키는 결론을 형성한다. 따라서 이 번역은 무(無)에저 창조를 부인하고 유(有)에서 창조를 주장한다. 그들이 이 첫 단어 레쉬트를 연계형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두 가지 사실을 제시한다. 첫째로 이 단어의 용법에 대한 통례가 연계형임을 시사한다는 것이다. Humbert는 베레쉬트가 50회, 혹은 51회 사용되었으며, 단 한번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두 연계형으로 사용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경우, 용어의 사용횟수가 그 의미를 밝히는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오히려 바로 그 한 예외(사46:10)가 그 의미를 밝히는 결정적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사야는 46:l0에서 하나님이 '처음부터'(메레쉬트)종말을 선포하고 계신다고 선언했다. Ridderbos가 지적한 것과 같이 이 메레쉬트(히7225)가 절대형으로 사용되어 시간적 의미를 나타낼 수 있는 상당히 유익한 실례라고 할 수 있다. 히브리 성경 어느 곳에도 메레쉬트가 연계형으로서 동사와 함께 사용되는 일이 없다. 그러므로 창 l:1의 베레쉬트도 같은 맥락에서 동사 바라(히1254)와 함께 절대형으로 사용된 것이다. 그리고 모세가 만일 창세기 l:l의 이 문제 부분을 연계형으로 표현하려고 했다면 2:4에서 처럼 부정사 연계형 베힙발암(히1254,창조하실때)을 사용할 수 있었을 것이다. 둘째로, 베레쉬트가 관사가 없기 때문에 연계형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시간을 나타내는부사구는 관사가 없어도 절대형으로 사용된다. 레쉬트(시초, 사46:l0), 로쉬(처음, 사 40:2l; 41:4,26), 케뎀(옛날, 미5:1; 합l:12), 올람(영원, 창3:22; 6:3,4)과 같은 용어들은 거의 항상 관사없이 절대형으로 사용되었다(참조:B. K. Waltke의 창세기 l장 l-3에 나타난 창조 기사). 지금까지 살펴본바 베레쉬트가 연계형이라는 주장은 입지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단어는 절대형인 것이다. 이미 지적한 것 외에도 바로 뒤따르는 동사 바라의 의미(무에서 창조)가 절대형으로 확인해 준다. 이 단어를 절대형으로 보면 '최초에, 시초에'라는 의미가 되며, 전통적 번역, 곧 '태초(시초)에 하나님이 하늘들과 땅을 창조하셨다'라고 번역된다. 70인 역본도 베레쉬트를 절대형으로 보고 엔 아르케(태초에, 시초에)라고 번역했으며, 고대역본들(Vulgate, Aqailla, theodotion, Symmachum, Targim, Onk elos 등)도 절대형으로 보고 번역했다. 이 번역에 따르면 l절은 독럽절을 형성하고 2, 3절은 독립 문장으로서 뒤따른다. l절에서 천지 창조가 시작되어 계속진행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 해석은 무에서 창조(Creatio ex nihilo)를 시사한다. 그러므로 이 구절에서 베레쉬트는 '최초에'를 의미하며, 최초는 우주 창조의 \바로 첫 번 째이자 최초의 행위와 더불어 시작되는 시간임을 분명히 보여준 다.

땅의 최초 상태

땅의 최초 상태 창세기 1:2a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있고".

"땅이"에 해당하는 웨하아레츠(∠에레츠167: 땅, 지구, 대지)는 접속사 웨(그런 다음, 그리고 나서 )와 관사 하(그)가 접두되어 있어서, '그런 다음 그 땅이'라고 번역할 수 있다.
그리고 본절은 오직 에레츠(지구)에 대해서만 말하며, 강조 용법이다. 에레츠가 강조 위치에 있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에레츠는 인류가 거하는 곳이요, 우리가 생사고락을 하는 곳이요, 저자가 땅의 초기 상태가 어떠했는지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 "있고"에 해당하는 하예타(∠하야1961:이다, 되다, 존재하다)는 칼 완료 여성 3인칭 단수이여, 여기서 상태의 변화(그녀는... 되었다)가 아니라 존재상태를 나타낸다(그녀는...였다).
이것은(2절) 하나님의 우주 창조의 최초 행위가 있은 직후의 지구{땅)의 상태(상황)를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하예타는 3개의 명사와 함께, 과거 지구의 최초기 상황을 설명하는데 사용되었다. 이것은 이유가 있다. 무슨 연유인가?
히브리어에서는 다른 언어들에서 처럼 어떤 대상의 특성이나 성질을 형용사를 사용하여 표현하는 것이 통상적 용법이다.
그렇지만 명사를 사용하여 표현할 수도 있다. 이 경우 표현된 개념을 강화시키는 효과가 있다. 보기로 시편 35:5에서 "내잔이 넘치나이다"라고 읽는다. 그러나 문자적으로 '내 잔은 흥수'이다. '홍수'는 '넘치는' 것보다 더 강한 말이다.

우리가 본절에서 그 명사들을 서술적으로 부드럽게 번역해야하지만 명사들이 사용되어 그 의미를 강화시키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땅 곧 지구의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된 3개의 명사를 살펴보고자 한다.

1. "혼돈"/토후2492a. 남성 명사 토후는 그 어원을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그 의미를 구약 성경의 문맥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구약성경의 용법에 의하면 토후는 '황무지'(신32:10; 욥6:I8; I2:24; 시107:4), '폐허'{사24:l0; 34:11). '무, 없음'(사40:l7, 23; 49:4), '허공'(욥26:7), '허무, 무익, 공허'(도덕적, 영적 공허와 관련하여, 삼상 I2:2l, 사29:21; 44:29; 44:9; 45:l9; 59:4)등을 의미한다.
이러한 용법에 비추어보면 토후는 땅과 관련해서는 '황무지'를 의미하며, 사실 황무지 상태는 지구가 아직 산과 바다, 육지 등 분명한 모양을 갖추지 못한 상태인 것이다.
폰 라드(Von Rad)는 '토후는 광야의 개념, 곧 바로 광야 자체를 지시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원시 광야는 액체의 요소를 띠고 있는 것이다.

2. 공허/와보후∠보후205a. 접속사 와(그리고, ...와)가 접두되어 문자적으로 '그리고 공허'이다. 남성 명사 보후의 의미 역시 구약성경의 문맥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보후는 다른 두 곳(사34:11; 렘4:23)에서만 본절에서 처럼 토후와 함께 나오는데, 개역, 표준, NASB, KJV 등 대부분 역본들은 '공허'라는 의미로 번역했다. KJV도 한 곳에서(사43:l) '황폐'라는 의미로 번역하고, 다른 곳에서는 '공허'라는 의미로 번역했다.
이러한 용법에 비추어 보면, 보후는 지구를 채우는 무수한 가지 각색의 생물 등이 없는, 공허의 상태를 가리킨다.

학자들은 토후 와보후를 '무형태'(無形態; Von Rad), '형태 없는 황무지'(a formless waste; speiser), '황무하고 공허한'(waste and void; G.T.wenham의 문자적 번역) 등으로 해석 또는 번역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전통적인 번역들은 '형태 없고 공허한'(formless and void)이라고 번역했다. W.H Griffith Thomas는 그의 저서(Gensis-A Devotional commentary, p29)에서 이 전통적 번역을 옹호하는데, 여기서 그는 '형태없는'과 '공허한'이라는 형용사들(원전에는 명사들)은 창세기 l장의 문학적 구조를 이해하는
데 열쇠가 되는 것같이 여겨진다. 처음 3일간에 대한 기록은 '형태'(form)를 부여 받는 하늘과 땅을 묘사 기술하고, 마지막 3일 간에 대한 기록은 그 하늘과 땅의 '공허한 상태'를 꽉 채우는 것을 묘사한다 라고 쓰고 있다. 그러므로 재건관은 인정받을 수 없는 것이다.

[참고 - 간격관 또는 재건관(The Gap or Reconstruction).
(l) 창세기 1:1에서 하나님은 천지의 원초적 창조, 즉 완전한 우주를 창조하셨다.
(2) 창세기 1:1과 1:2 사이에서 사단의 반역과 하나님의 심판의 결과로서 완전한 우주가 손상되어 '흔돈하고 공허'하게 되었다.
(3) 창세기 1:2에서부터 하나님은 이 흔돈하고 공허한 우주를 재건하셨다.
(4) 간격, 아마 수백만년 내지 수십억년의 긴 기간이 1절과 2절 사이에 있었다.

이 갭(Gap) 이론은 두 사람, 펨버(George K Pember; l876년)와 스코필드(Colo Scofield; l9l7년)에 의해서 인기를 얻고 널리 알려졌다. 이 이론을 추종하는 자들이 많다. 우리는 이들의 이론에 유혹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3. 흑암/웨호셰크∠호셰크769a. 접속사 웨(그리고, ...와)가 접두되어, 문자적으로 '그리고 흑암'이다. 접속사는 호셰크가 그 앞에 두 명사와 동격임을 가리키는 듯하다. 위의 3개의 명사는 한 개의 동사 하예타에 의존하고 있다. 이 세 명사는 l절의 최초 창조 행위 이후 땅의 상태를 묘사하기 위해 함께
구성되었다.
호셰크는 '어두움, 흑암'을 뜻하며, 이 "흑암"은 원시 지구를 뒤덮고 있던 최초의 흑암이다. 이 흑암은 빛의 상대물로서 물리적 의미의 두움이며, 악이 아닌 하나님의 순수한 창조이다.
하나님은 빛의 주(主)만이 아니라, 흑암도 그에게 굴복한다. 그는 빛을 창조하셨고(사4:7), 흑암을 지어 밤이 되게 하셨다(시l01:20; 창l:5). 이 어두움은 빛의 배경, 바탕으로 창조된 것이다.
흑암이 인간에게는 불투명하지만 하나님께는 투명한 것이다(시139:l2). 참으로 하나님은 큰 계시의 순간에도 흑암으로 자신을 가리우신다(신4:11; 5:23; 시l8:l2).
깊음(물)을 뒤덮고 있는 흑암에 대한 이 언급에도 이런 의미가 있는 것 같다. 그것이 황량한 원시적 황무지에 대한 또 하나의 묘사에 불과하지만, 그러나 하나님이 자신을 나타내어 역사할 채비를 하는 그의 숨은 임재를 암시한다(G.J. Wenham의
Genesis, WBC).

태홈(깊음)은 무엇인가?
태홈(깊음)은 무엇인가? 창세기 1:2b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흑암"은 태홈의 표면 위를 뒤덮고(알-페네) 있었다. "깊음"에 해당하는 테홈은 액체를 뜻하는 대부분의 히브리 명칭과는 달리 여성 명사이다. 때때로 남성도 될 수 있다. 이 여성 단수 명사는 동사 훔(고함치다, 노호하다)에서 유래했으며, '노호하는 물들, 소리치는 물들'(시42:7)을 나타내며, 구약성경에서 '넓은 수역(물이 모 인 곳)', 바다의 '큰물이나 깊은 물'(출15:5, 8; 사6313;2:5), 강의 '깊은 물'(시42:7; 겔31 :4), 지하수의 '깊은 물'(창7:11)을 가리키는데 사용되었다. 그리고 소수의 구절에서는 테홈을 지구(땅)를 둘러싸고 있는 그 기초가 되는 태초의 대양(大洋)과 동일시했다(시104; 잠8:27). 이 단어는 구약성경에 36회 나오며, 우리가 살펴본 바와 같이 그 대부분이 '깊은 물' 이라는 것을 전해준다. 그러면 본절의 테홈은 무엇인가? GunkeI는 히브리어 테홈이 말둑(Marduk)에 살해되어 그 시체가 궁창과 땅을 창조하는데 사용된 바벨론 여신 티아맛(Tiamat)과 동일시된다고 시사했다. 그러나 구약성경의 용법은 테홈이 티아맛을 죽여서 얻는 물질을 결코 암시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일부 주석가들이 주장한 것처럼 신화적 개념이나 명칭을 비신화한 것이라는 주장도 허락하지 않는다. 랍비 유대주의는 이 태홈을 '태초의 흥수'라고 주장하며, 공동번역은 '깊은 물' E. A. Speiser는 'The Seas'로 번역했다. "깊음(깊은 물)...물..."(l:2, 6-8) 이란 표현은 지구의 원재료가 물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베드로(벧후3:5)는 땅이 물을 재료 로 하여 형성되었거나 물에서 생겨났다는 것과, 물 가운데 서거나 물의 활동으로 존재한다고 설명한다. 어두움이 덮혀 있는 원시 대양(바다)은 B. Jacob에 의하면, 재료의 측면에서 액체적인 원요소(原要素)로서의 혼돈이며, 동시에 공간적 개념으로는 우주의 심연이다. Keil-Delitzsch 주석에는 그것이 '땅과 궁창이 아직 구분되지 않고 형체가 이루어지지 않은 혼돈의 덩어리로서, 굽이치는 깊음, 즉 물들의 심연이었다'고 기술했다. 이것은 무(無)와 피조물 사이의 (하나님이 창조하신) 특이한 중간 상태, 즉 혼돈체를 진술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형성, 진보의 과정에 있었으니 하나님의 성령이 그 물들 위에 역사하고 계신 것이다. 따라서 일부 학자들의 주장처럼 태초에 피조된 그 완전한 우주가 사 단의 반역과 하나님의 심판의 결과로 파괴되어 흔돈하게 되었다는 주장(갭 이론) 은 언어상으로나 내용상으로 전혀 불가능한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특별히 유의하여 보면 지구의 초기와 인간출생, 그리고 영적 출생(중생)의 유사성과 그들의 생성의 신비를 발견할 것이다.

하나님의 신"(루아흐 엘로힘)

하나님의 신과 창조 사역 창세기 1:2c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1) "하나님의 신"(루아흐 엘로힘)은 무엇인가? "신"에 해당하는 루아흐(히2131a)는 그 기본 의미가 '움직이는 공기'이며, '바람, 숨(호흡), 생기, 영' 등을 의미한다. 루아흐가 '바람'이란 의미도 지니고 있기 때문에 학자들 중에는 단지 원시혼돈에 대한 묘사로 보고 '강력한 바람이 물위로 휘몰아치고 있었다'라는 의미로 번역했 다, Von Rad는 '하나님의 폭풍, 즉 '무서운 풍', Speiser는 '무시무시 한 바람', 표준 새번역은 난하에 '강한 바람', '하나님의 바람', NRSV는 '하나님으로부터 온 한 바람' 이라고 번역했다. 루아흐 엘로힘이 최상의 것에 대한 대처어로 사용될 수 있다는 가정에서 '강한 바람' 이란 의미로 번역하지만 구약 성경 어느 곳에서도 루아흐 엘로힘라는 문구가 결코 그러한 의미로 사용되지 않았다. 더욱이 바로 앞에서 우주의 전능한 창조주 하나님의 명칭이 한 형용사로 나타난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Leupold가 지적한 바와 같이, 루아흐가 하나님의 칭호인 엘로힘에 의해 수식되고 있기 때문에 '바람'이 아니라 '영'이라는 것을 확신시켜 준다(창 4l:38; 출3l:3; 35:31; 신24:2; 삼상l0:10; l6:l4 등). 또한 동사 메라헤페트(개역:운행하시니라)는 루아흐 엘로힘이 하나님의 영'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므로 루아흐 엘로힘은 '하나님의 바람'이라기 보다는 '하나님의 영'으로 번역해야 한다. 하나님의 영은 오늘날 가장 완전한 기독교적 의미에서 삼위 일체의 제 3위인 성령이시다. (2) 성령은 하나님의 창조사역에 참여하셨다. 태초부터 하나님의 루아흐는 하나의 실재 흑은 인격으로서 태초의 "수면 위에 운행하"셨다. 이는 성령께서 하나님의 창조적 영이요, 생명과 질서의 원리이신 한 인격으로 창조사역에 참여하셨다는 것을 시사한다. "수면에"(알-페네 함마임)는 문자적으로 '물들의 표면 위에'이다. 함마임은 남성 명사 마임(4325, 물)의 복수이며 관사를 가지고 있다, 학자들은 대부분이 함마임과 앞의 테홈을 동의어로 본다. 그러나 태홈은 여성 단수이고, 함마임은 남성 쌍수이다. 만일 동의어가 아니라면 함마임이 태흠의 더 액체 부분을 가리키는 듯하다. "운행하시니라"에 해당하는 메라헤페트는 동사 라하프(2149)의 피엘 여성 단수이다. 학자들은 B.D.B. 히브리어 사전이 제시한 대로 동사 라하프를 '배회하다, (새끼를)감싸다, (알을)품다, 온화하게 움직이거나 작용하다, 자상히 돌보다, 귀여워하다'라는 의미로 보고 번역 또는 해석한다. 이 단어는 구약 성경에서는 본문 외에 다만 다른 두 곳에만 등장한다. 예레미야 23:9에서는 '흔들린다, 떨린다'라는 의미를 지닌다. 아마 하나님의 말씀에 어떤 형태의 영향을 받은 것을 나타낸다. 신명32:11l에서는 한 마리의 어미새(독수리)가 새끼들이 완전히 날 수 있을 때까지 새끼들 위를 맴돌며, 지키고 보호하고 양육(훈련)하는 행위에 대해 사용되었다. 어미새는 새끼들 위에 배회하며, 새끼들이 날때 비틀거리며 아래로 떨어질 때 그들 밑으로 급강하하여 그를 잡아채어 추락으로부터 지킨다. 이러한 상에 비추어 보면, 라하프는 알을 품고 까는 행위를 묘사하지 않고, 어미새가 새끼들 위를 배회하며 엄위하며, 소증하게 기르며, 훈련시키는 모습을 묘사한다. 본절에서도 라하프는 신명기 기사와 같은 의미를 지닌다. 여기서 피엘 분사가 사용되어 인격체에 의한 강력하고도 반복적인 행동을 나타내는데, 이 성령이 창조 활동을 계속 수행하고 계시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이 단어에는 알을 품고 까는 것과 같은 사상은 없으며, 그러한 어떤 신화적 의미도 없다. 일부 페니키아의 우주론에서 발견되는 개념, 곧 세계-알(world-egg)을 까는 영(靈)에 대한 묘사는 여기에 합당치 않다(G.J. wenham:Genesis). 하나님의 영이 '혼돈의 물덩어리' 위로 배회하고 있었다. 그 목적이 무엇인가? 그것은 성령의 단순한 임재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 활동은 하나님의 창조사역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 성령은 하나님의 한층 더한 창조 활동을 위해, 하나님의 최초의 창조 행위로 이미 태동한 혼돈의 덩어리, 곧 창조된 재료를 감싸 보존하고 준비(정리}하며, 또한 생명과 질서의 원리로서 그것에 형태와 생명과 질서를 부여하시는 창조 활동을 수행 하신 것이다. 이 구절과 창세기 l:26이하에서 하나님의 신, 곧 성령의 창조 사역을 수행하셨음을 분명히 한다. 다음과 같은 구절은 성령이 창조 사역에 관여하였음을 암시하여 준다. 욥기 26:l3과 33:4절에는 그의 신으로 하늘을 단장하시고, "하나님의 신이 나를 지으셨다"고 했으며, 시편l01:30절에는 "주의 영을 보내어 저희를 창조하사 지면을 새롭게 하시나이다"라고 했다. 여기서 성경 전체를 통해 내내 하나님의 영은 모든 신적 창조 조성에서 그 자체를 인격적 속성들과 함께 끊임없이 나타내어 역사하시는 유일한 형성원리이니, 지구에 대하여, 자연계에 대하여, 신권정치에 대하여, 성막에 대하여, 교회에 대하여 새 생명이나 새 사람에 대해서든지 그러하다(Lang's C.K.S: GENESIS, P.164). 특별히 우리는 2절과 관련하여, 지구의 창조와 조성과, 자연인의 잉태와 성장, 영적 출생과 성장을 비교 연구하면, 본절(2절)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제 태초의 혼돈의 물덩어리 위로 배회하고 있었던 성령의 활동이 오늘 우리에게 주는 그 상징적인 의미를 잠시동안 명상해 보자. 그 모두 중요한 교훈을 전해줄 것이다. 우리 인간의 마음은 현존하는 질서있는 우주가 형성되기 전의 그 원초적 혼돈파 같다. 그러나 누구든지 원하기만 하면 새롭게 될 수 있다. 그 하나님의 성령께서 형체없는 공포와 죽은 괴물이 가득한 인간의 소용돌이 치는 어둠 위로, 무질서한 의지, 반역적인 욕망, 괴로운 양심, 어두워진 지각 등의 온갖 혼돈 위로, 온유하게 임하셔서 우리를 소생시키며 혼란을 질로 환원시키고, 구름 덮인 우리 인간의 흑암에 광명이 몰려들게 할 것이다. 태초에 혼돈의 덩어리들 위를 배회하며 그것을 감싸, 코스모스(질서, 우주)를 만들었던 그 성령은 당신이 원하기만 하면 당신의 본성을 품어 감싸 그 전체를 재창조할 것이다. 사도 바울은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 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5:17)라고 했다. '창조주 성령이시여 내안에 깨끗한 마음을 창조하소서'.

출저:히브리선교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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