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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Oct

골 1:24-29-예수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 1

작성자: blue IP ADRESS: *.91.195.194 조회 수: 95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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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 (1) (골 1:24-29) (벧전 2:18-25)
글쓴이: 코로타코    http://cafe.daum.net/cultureofheaven

탄생에서부터 박해의 대상이 된 주님은 사역의 많은 순간들이 거절당하고,

수치를 당하시고,

멸시를 당하는 고난을 겪으며,

결국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자신의 육신을 모두  고난에 내어주었습니다.

이러한 주님의 고난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그리스의 남은 고난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남은 고난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요?
주님은 십자가에서 다 이루셨다고 말씀하셨는데 아직 고난이 남아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 것일까요?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주님의 남은 고난은 주님을 따르는 사람 곧 주님의 제자 된 사람들에게 주어진 고난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사람들은 그 안에 주님이 함께 하십니다.
이 그리스도의 사람들은 주님의 제자가 되어 주님의 길을 가고자 하는 결단을 하고,

주님이 걸으셨던 그 고난의 길을 가게 됨으로 주님과 함께 고난을 겪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주님은 아직도 고난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의 고난은 끝나지 않고 주님의 고난의 길을 걷고 있는 자들과 함께 하고 있으며, 그 짐을 함께 지고 계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새롭게 자신의 구원을 이루기 위해 가는 길이 아니라, 이미 주님이 십자가에서 승리하신 길을 따르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자 된 자와 그리스도의 사람들이 걸어야 하는 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고, 순종하는 사람이라는 뜻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 일꾼, 종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주님의 제자이며, 일꾼이고, 종이 되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의 영광에 참여할 수 있는 은혜를 누리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은 은혜와 영광만을 얻는 것을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롬 8:17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그렇기에 주님의 제자는 연단과 고난이 없이는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할 수 없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모든 사람은 주님이 걸으신 고난의 길을 같이 걸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고난의 길을 걸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주님을 따르던 주님의 12제자 중에서 9명이 순교를 당하였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들은 목베이고, 십자가에 달리고, 돌에 맞고, 창에 찔림을 당하는 등의 박해 속에서 죽었습니다.
신약성서에서 성도의 고난과 박해는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을 여러 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지금의 기독교는 이러한 박해와 순교가 흔하지 않지만 100년 전만해도 기독교는 고난과 박해를 뺄 수 없는 종교이었습니다.

 저는 오늘 주님의 남은 고난에 대하여 말씀 드리려고 합니다.
우리 임마누엘 열방 교회 각 지체들은 아직 주님의 남은 고난은 겪고 있지 않지만, 그 앞 단계인 연단을 겪고 있습니다.
“천국의 문화”까페에서 메시지의 진위에 대한 공방이 있은 뒤 지금까지 아무 일도 없는 것 같으나

각 개인들의 연단과 세움의 싸움들을 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저는 주님의 남은 고난을 통하여 우리 자신에게 주어진 연단이 무엇이고, 이를 극복하여 온전히 세워지며,

주님이 뜻하시는 사명을 감당하는 여러분들이 되기 원합니다.

주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자신의 뜻대로 하지 않으시고, 아버지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보고, 행하며,

 하나님의 뜻에 따라 행하셨습니다.
요 5:17-20절에 주님이 이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들이 아버지의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자기의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시고 또 그보다 더 큰일을 보이사

 너희로 기이히 여기게 하시리라.
그러므로 우리가 제자 된 자라면 주님이 보이시고, 말씀하신 것을 따라가는 것은 당연합니다.
이러한 제자 된 길에는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발견하기고 체험하기도 하지만, 고난도 있습니다.
주님은 주님을 따르는 자들에게 “제자가 선생보다, 종이 상전보다 높지 못하나니, 제자가 그 선생 같고,

종이 그 상전 같으면 족하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10:24)
여기서 “같다”는 “선생처럼 된다”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지위가 같다” 라는 것이 아니라 “행동이 같다”라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주님이 보이신 모든 행동과 말은 그대로 우리가 따라야 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요구는 여기 있습니다. 주님은 자신과 같으면 만족하신다고 하십니다.
주님은 자신과 같은 길을 걸으면 만족하신다고 하십니다. 주님 보다 더한 어떠한 것도 요구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시험과 고난을 겪으셨는데 시험과 고난은 차이가 있습니다.
연단은 현재보다 더 나은 모습과 결과를 얻기 위해 치러야 하는 과정을 말합니다.
또 시험은 일정한 목적과 자격 요건을 달성하기 위해 치러야 할 과정을 말합니다.
연단과 시험의 공통점은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궁극적인 목적을 달성 위해 존재하는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십자가의 고난을 통한 구원의 완성입니다.
그렇기에 주님의 시험은 고난을 위한 과정이었던 것입니다.
우리 역시 우리가 겪고 있는 연단들은 고난을 위해 존재하는 과정인 것입니다.
이것은 연단과 시험이 없이는 고난을 이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연단의 특징은 일회성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즉, 한번 연단을 받고, 고난을 이기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주님과 같이 되고, 온전히 닮아질 때까지 계속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사람들에게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아들과 같이 변모된다는 것에 대한 영광이며,

한편으로는 아픔과 고통을 수반한다는 것입니다.
죄된 인간의 성품을 버리고, 신의 성품으로 변화된다는 것이 쉬운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현재 받고 있는 연단들은 이러한 고통과 아픔을 주고 있습니다. 남모르게 눈물 흘리며, 아픔을 호소하고, 절규합니다.
이 아픔을 가슴에 안고 기도하다가 지쳐 잠이 들기도 합니다.
참으로 주님의 제자 되는 길, 주님을 닮아가는 삶, 신부 단장은 쉽지가 않습니다.
또 이 연단은 앞으로 장차 있을 고난을 이기기 위한 준비 일뿐이라는데 있어서 우리를 무겁게 합니다.

연단의 세 번째 특징은 연단은 주로 개인의 성품과 행동을 다루는데 반드시 자신의 주변 사람들에게 아주 많은 영향을 주게 됩니다.
주님의 성품으로 바뀌지 않으면 나의 성품은 다른 사람을 옭아매는 엉겅퀴와 찌르는 가시가 내어서 억압과 상처를 줍니다.
이것을 주님은 모른척하고, 그 사람의 사명과 사역으로 내보내지 않습니다. 주님은 반드시 이것을 다루십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제자이며, 일꾼이요. 종된 사람들은 주님의 얼굴을 나타내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연단을 받지 않은 사람들은 주님의 얼굴보다는 자신의 인간적인 얼굴과 악한 얼굴을 다른 사람들에 나타내 보이기에

주님은 이 얼굴을 성형 수술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 연단 속에 들어가 있는 사람은 자신과 가장 가까이 있는 가족과 교회 공동체 일원들과 갈등을 겪게 됩니다.
이 문제는 주님으로부터 음성을 듣는 자라 할지라도 자신의 깊숙이 뿌리 박힌 고정관념과 자존심과 이기심과 습관과

인간적 욕심을 버리지 못하여 부지불식간에 이러한 행동을 합니다.
그렇기에 주님의 얼굴로 변화 되는데 있어서 많은 시간을 요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족하지 않고, 자신을 내어 놓으며, 예배로 나아가야 합니다. 성령님이 여러분을 가르치고 인도하실 것입니다.

연단의 네 번째 특징은 대부분 사람들은 자신들의 연약한 부분, 문제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를 보호하기 위해서 더욱 자신을 감싸 안는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이러한 문제가 노출되면 자신이 상처받을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엉겅퀴와 가시를 내는 이 사람도 역시 상처를 받은 흔적이 있는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또 그 문제가 어떠한 사람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면 서로 상처를 주고 받는 관계에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자신의 문제를 더 깊숙이 감추어 고질적인 병을 만들어 자신을 해치고 있습니다.
이것의 해결은 양쪽 모두 다루어지고, 치유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깊숙이 가라앉은 상처들을 끄집어 내어 수면위로 떠오르게 하며, 흩어버리게 하십니다.
주님은 이 연단의 용광로에 넣으실 때에는 양쪽 모두 이 부분을 불 속에 집어 넣습니다.
태워지며, 흩어지는 아픔을 주지만 정금같이 나올 때의 기쁨과 자유는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귀중한 것이 될 것입니다.
이러한 연단을 받고, 극복하지 못한 사람은 이 자유함을 느껴 보지도, 알지도 못할 것입니다.


그렇기에 연단의 다섯번째 특징은 모두가 같은 연단을 받는 것이 아니다 라는 것입니다.
나는 이러한 부분이 연약하여 자주 넘어져, 불 속에도 넘어지고, 물 속에도 넘지고, 좀처럼 극복할 수 없는 것을

 다른 사람은 이를 너무나 쉽게 뛰어 넘는 것을 보면서 홀로 고독한 싸움에 지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이처럼 연단은 개인적이면서도 상처를 주고 받는데 있어서는 또 관계성이 있습니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연단을 받고 있는 지체들에 대하여 판단하는 것을 주의해야 합니다.
저것이 무슨 문제가 된다고 그토록 힘들어하느냐? 고 탓해서는 안됩니다.
이러한 비판과 판단은 앞서 말씀 드린 상처를 더욱 깊숙이 가라앉게 하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해 오히려 내가 연단 받는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이러한 비판과 판단 역시 주님의 모습이 아닙니다.
나의 강점이 상대방의 약점이 될 수 있고, 나의 약점이 상대방의 강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반드시 생각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롬 3:10-12절에 말했듯이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라고 말하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여러분! 어떠한 사람일지라도 그 사람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사랑하십시오.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연약하면 연약한대로, 미련하면 미련한대로 사랑하십시오.
이러한 것이 내가 채워야 할 부분임을 생각하여 기도하고, 섬기고, 낮아지십시오.
여러분의 고정관념과 인식의 틀 속에서 그 사람을 재어서 자신이 생각하기에 저것은 필요 없고,

문제가 있는 것이야 라고 판단하여 그것을 자르고자 노력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이러한 노력들이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게 됩니다.
자신의 상처는 감추고자 하면서 상대방의 상처를 찌르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람이요. 주님의 제자이며, 일꾼이고, 종인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앞서 말씀 드린 바와 같이 나의 뜻대로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상대방을 판단하고, 만지시고, 바꾸시는 분은 주님뿐임을 인정하십시오.
여태까지 내가 다른 사람을 바꾸고자 하여 바뀐 사례가 있다면 무엇이 있는지 생각해보십시오.
또 어떠한 노력들을 해보았는지 생각해보십시오.
이러한 노력들이 오히려 갈등을 겪게 하고, 상처를 주고 받았음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서로 연단이 다른 것은 나의 강점으로 상대방의 약점을 보완하고, 채워지는데 있어서 그 필요성이 있는 것입니다.

서로 그 연단이 다를 뿐 모든 그리스도의 사람들은 연단을 받고 있습니다.
연단을 받는 이를 보면 기도하며, 위로하며, 섬기십시오.
주님이 시험을 받고 난 뒤에 행한 모든 것이 이러한 것이었습니다.
주님의 사역 중에 행한 모든 것이 연약하고, 병들고, 악한 영들로 고통 받는 이들을 위해 기도하고,

위로하며, 씻기셨으며, 고치셨고, 먹이셨습니다.

여러분은 현재 어떠한 연단을 받고 계십니까? 다른 사람이 연단을 받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까?
이제는 상처를 주고 받는 관계에서 서로 섬기고, 위로하고, 평안과 사랑을 주고 받는 관계로 변화되시기 바랍니다.

 

이러한 연단을 주님은 공중권세를 잡은 사탄에게 받았습니다. 주님은 사탄의 연단을 받을 분이 아닙니다.
사탄도 하나님의 피조물인데 어찌 피조물이 하나님을 시험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주님이 인간의 모습으로 세상에 오셨기에 사탄의 시험이 필요했습니다.
세상은 아담과 하와의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사탄의 것이 되었습니다.
마4:9절처럼 사탄이 천하만국과 영광을 주겠다고 한 것은 그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 주님은 사역을 시작하기 위해 세상 권세자와 싸워 승리해야 주님이 뜻하는 사명을 감당할 수 있기에

마귀의 시험을 받아야 했습니다.
주님의 시험을 통하여 우리의 연단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에 대하여 알고자 합니다.
고난은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이를 이기기 위해서 존재합니다.
시험과 고난을 십자가에서 승리하신 주님을 우리는 이 역시도 따라가야 합니다.

마 4:1-11을 보겠습니다.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하였으되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저희가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였느니라 하신대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가로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단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

 
주님이 겪은 이 세가지 시험은 사람이 겪는 모든 시험, 연단의 대표적인 것입니다.
물질욕, 영적 욕심, 권세욕으로부터 수많은 잔 가지의 엉겅퀴와 가시를 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탄이 주님이 40일 동안 주리신 것을 알고, 그 육신의 연약한 것을 보고 시험했습니다.
그렇듯이 시험과 연단은 자신의 연약한 것으로부터 출발합니다.

주님이 이 세가지 시험을 이기게 되는 것을 몇 가지로 나누어 보면
첫째로, 주님은 시험에 앞서 금식 기도로 준비 하셨으며,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따랐습니다.
기도는 자신의 모든 상처를 주님께 꺼내 놓음으로 말미암아 주님으로부터 위로와 평안과 자유를 얻게 합니다.
기도하지 않으면서 연단을 극복할 수 없습니다.
기도하지 않으면서 실족하고, 포기하는 것은 자신의 힘과 노력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주님 앞에 모든 짐을 내려 놓고, 주님의 가볍고, 쉬운 짐을 지시기 바랍니다.

왜 주님의 짐은 가볍고, 쉬울까요?
그 이유는 주님이 이미 세상을 이기셨으며, 모든 것을 계획하셨고, 성취하시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힘과 능력과 권세를 갖고 계신 주님이 이루시기 때문에 가볍고, 쉬운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가 필요한 것입니다.
특히 금식 기도는 연단의 중요한 특징인 세상적인 욕심으로부터 자신을 죽이고,

온전히 하나님 안에서 살기에 연단에서 승리할 수 있는 힘과 능력을 줍니다.
이 때 연단을 받는 사람은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순종하며 나아갈 때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시험과 연단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기도를 소홀히 하면 안되고,

그 속에서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주님은 기록된 말씀의 선포로 승리하셨습니다.

기록된 말씀은 마귀가 변경하거나 삭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진리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예수님 조차도 이 말씀에 따라 예정되고, 오셨으며, 기록된 대로 성취하셨습니다.
주님의 사역 가운데에서 주님은 말씀을 일점일획이라도 버리지 않고 이루셨습니다. 또한 이 말씀으로 시험에서 승리하셨습니다.

말씀은 살아 역사하고, 능력이 있어서 듣는 이의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한다고 합니다.
우리의 잘못된 행동과 생각과 마음을 쪼개고, 흩어서 진리에 바로 서게 할 것입니다.
말씀을 늘 심령가운데 새기며, 말씀으로 승리하는 성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셋째로, 주님은 온전히 하나님께 초점이 맞추었습니다. 사탄의 세 가지 요구는 모두 주님이 하실 수 있는 것들이었습니다.
돌을 떡으로 만들 수 있었으며, 성전에서 뛰어 내려도 아무런 상처도 남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또 모든 권세에 뛰어나신 분이셨습니다.
주님은 사탄이 요구하는 대로 행하여서 하나님의 아들임을 증명하시지 않았습니다.
돌을 만들어서 하나님 아들임을 증명하지 않았습니다.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 내려 영적 권위를 증명하지 않았습니다.

사탄에게 경배하여 하나님 아들로써 세상의 영광을 취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말과 요구들을 무시해버렸습니다.
오직 주님은 하나님에게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습니다.
그러하기에 연단을 이기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음성, 뜻이 아닌 것에 대하여 불응하며, 무시하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만 바라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주신 말씀을 행하며, 또 선포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넷째로,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인정 받는 자가 되어야 한다.
사탄은 세가지 시험 모두 “네가 하나님 아들이면 이것들을 행하라”고 말합니다.

사탄은 “네가 하나님 아들임을 나에게 증명하라”라고 말합니다.
나의 내면과 악한 세력들은 “너는 자존심도 없냐” “저 사람의 그 말과 행동을 듣고, 또 보고도 가만히 있냐?”

 “너는 침묵해서 결국 지게 될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네가 살아 있음을 네 입을 통하여 증명해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러한 음성과 욕구에 응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연단 받고 있는 것이 아님을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을 하나님의 자녀요. 주님의 종이요. 일꾼임을 인정 받는 것은 오직 주님으로부터 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죽기까지 연단과 고난은 끝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감당할 시험밖에 주시지 않는 주님이 여러분과 함께 이길 힘을 주시고, 길을 인도하실 것입니다.
오히려 이러한 연단을 감사하십시오. 하나님의 성품과 일에 참여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십시오.
벧전 1:7절은 이 영광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주님의 연단 속에서 정금같이 나아와 칭찬과 영광과 존귀가 여러분에게 있기를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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