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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Oct

골 1:24-29-예수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2)

작성자: blue IP ADRESS: *.91.195.194 조회 수: 93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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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2)-골 1:24-29
글쓴이: 코로타코    http://cafe.daum.net/cultureofheaven

우리는 지난 주에 “연단”에 대하여 나누었습니다. 신앙인의 삶에서 “연단”은 매우 중요합니다.
연단은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닮기 위해 변화되는 과정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영광스러운 일이지만, 옛 사람의 모습을 버리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옛 사람을 벗어 버렸다 싶으면 어느새 다른 옛 모습이 나타납니다.
이 연단은 누구나 겪는 것이지만, 자신의 연단은 왜 이렇게 힘들고, 아픈지 우리의 삶을 곤고하게 만듭니다.
또 이 연단이 가까운 사람과 갈등의 관계 속에서 다루어지기 때문에 더디고, 힘들게 여겨집니다.
여러분 모두 지금 이 연단의 불구덩이에 들어가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연단을 온전히 이루십시오.
연단되지 않고는 온전한 신부단장을 할 수 없습니다.

신부는 신랑과 한 몸인 사람입니다. 그렇기에 신부는 신랑 되신 주님을 닮은 자 입니다.
신부가 신랑을 닮기 위해서는 주님의 길을 가야 합니다.
아름다운 신부를 꿈꾸십니까? 아름다운 드레스를 보고 계십니까? 꿈 깨시기 바랍니다.

세상적인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신부를 꿈꾸시는 분은 꿈 깨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결코 아름다운 비단 옷을 입고, 권력자들과 부유한 이들의 친구가 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이들로부터 핍박과 환난과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먼저 주님을 닮은 내면적, 이면적인 아름다움이 갖춰져야 하며, 이것들이 외면적인 행동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앞서 모두가 소망하는 아름다운 신부는 결혼식과 주님의 잔치에 나타납니다.
주님의 모습으로 변화 된 사람이 부활 후에 주님의 영광을 입은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고 결혼식장과 잔치에 나타납니다.
이러한 영광을 입기 위해 신부는 연단을 통과해야 하고, 고난 속에서 검증을 받아야 합니다.
여기서 온전히 연단되지 않는 다면 고난을 이길 수 없습니다.
마 13:20-21절을 보면 씨 뿌리는 비유 중에서 돌밭에 뿌리워진 씨앗에 대하여 나옵니다.

돌밭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을 인하여 환난이나 핍박이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라고 주님은 씨뿌리는 비유에 대해 말씀하고 계십니다.

말씀이 사람 속에 뿌리를 내리려면 돌을 캐어내고, 땅을 쟁기와 곡괭이로 갈고, 흙을 뒤집어 엎고, 굳은 흙을 부수는 “연단”이 필요합니다.
옛 사람의 뿌리 깊이 박힌 고정관념과 습관과 세상 풍습을 쫓는 삶의 행동을 캐어 내고, 뒤집어 업고, 굳어진 것을 부수어야 합니다.
그렇기에 씨앗의 뿌리는 연단으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연단이 없이는 씨앗이 뿌리를 내리지 못합니다.

뿌리를 내리지 않은 식물은 21절 말씀처럼 환난과 핍박의 고난이 있을 때 넘어 진다. 라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연단을 온전히 이루는 사람만이 뿌리를 내리고, 자라나 환난과 핍박을 견디어 열매를 맺게 됩니다.
그 열매는 주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백배, 육십배, 삼십배의 결실을 맺는 나무들이 되는 것입니다.
이 결실은 옥토에서 주어짐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기에 현재 우리의 심령의 밭은 어떠한지 항상 살펴보아야 합니다.
연단을 온전히 이루어 심령의 밭을 옥토로 가꾸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연단은 주님을 닮지 않은 모든 것이 용광로 속에서 다루어지는데 이 연단은 한번에 주님을 닮지 않는 모든 것을 다루지 않습니다.
이 연단은 한 가지 혹은 몇 가지의 것을 다룹니다.
이 연단 속에서 나온 정금은 반드시 만드시는 분의 목적된 모양에 따라 두들겨 지고, 다듬어 지는데 이것이 고난입니다.
그렇기에 연단은 고난으로 검증을 받습니다.
일구어진 밭은 뿌리를 내고 자라는데 거센 바람과 뜨거운 태양과 병충해의 고난을 겪어야 합니다.

이처럼 고난의 특징은 첫째, 연단을 검증하는 역할을 합니다.
고난은 내면적, 이면적인 신앙을 외형적인 행동으로 나타내게 합니다.
이것은 환난과 핍박의 고난을 통하여 그 신앙이 바른 것인지 확인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의롭게 되었지만, 이것은 세상에서 시험을 받아 검증되어야 합니다.
믿음이 있으면, 이것이 사랑으로 표현되어야 합니다. 하나님도 자신의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

이 확증에 대하여 롬 5:8절에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라고 말하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도 사람들에게 자신의 사랑을 보이기 위해서 자신의 본체를 잘라내야 하는 아픔을 간직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고후 13:5절에서 자신의 믿음을 시험하고, 확증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연단을 통과한 것이 있다면 그 연단이 시험 받게 될 것을 위해 준비하시고, 시험을 통하여 확증 받으시기 바랍니다.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것처럼 고난으로 말미암아 여러분에게 소망이 넘쳐날 것입니다.

고난의 두번째 특징은 고난은 사역 중에 겪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의 몸 된 지체들이며, 그 사명들을 갖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엡4:11-12절에서 그 직책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우리는 한 개 또는 몇 개의 직책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고난은 이 직책을 감당하는데 있어서 방해하고, 핍박하고, 환난이 오는 것을 말합니다.

주님의 일을 감당하는데 있어서 고난은 당연히 따릅니다.
주님은 “너희가 나의 이름을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과 핍박을 받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요 15:20절에서 사람들이 나를 핍박하였으니 너희도 핍박할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주님과 주님의 12제자가 사역을 감당하는 가운데 환난과 핍박과 수모를 당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현재 우리는 사역지에 있지만 아직 본격적인 사역은 감당하고 있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사역지는 회사와 사업터, 학교, 가정과 이웃일 수 있습니다. 또 직책도 주어져 있습니다.

사도, 선지자, 목사, 교사, 복음 전도자로 세웠습니다.
그러나 아직 연단의 과정을 마치지 않았기에 직책은 있으나 능력 행하는 자, 은사자, 돕는자, 다스리는 자, 가르치는 자,
복음 전하는 자의 행동이 나타나지 않는 것입니다 주님은 시대가 급하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연단은 반드시 필요하기에 직책과 사역지가 주어진 상황에서 다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어서 어서 세워져야 하리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오늘도 그리스도의 몸이 세워지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고난의 세번째 특징은, 고난은 십자가의 길을 말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광야에서 시험을 받고 난 뒤 본격적인 사역을 시작 하셨습니다.
주님은 이 사역을 감당하는데 있어서 거절과 외면을 당하고, 수모를 겪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주님의 가장 큰 고난은 십자가의 길이었습니다.
십자가의 고난은 침 뱉음과 얼굴을 치는 것과 조롱하는 말의 모욕적인 고난이 있으며,
허기와 굼주림과 추위의 고통이 있습니다.

또 육체적인 채찍질과 결박됨과 돌에 맞음과 칼과 창에 찔림의 학대들이 있습니다.
십자가의 길은 주님의 이름으로 인하여 모든 사람으로부터 외면과 거절을 당하는 것을 말합니다.
세상의 외면과 거절은 육신의 죽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히 11:35-38절은 이 고난을 말하고 있습니다.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악형을 받되 구차히 면하지 아니하였으며
또 어떤 이들은 희롱과 채찍질 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에 죽는 것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 저희가 광야와 산중과 암혈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또 주님은 주님의 종과 사역자들을 이 땅에 보냈는데 이들이 세상에서 어떠한 고난을 당했는지 마 23:34절에서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선지자들과 지혜 있는 자들과 서기관들을 보내매 너희가 그 중에서 더러는 죽이고 십자가에 못박고
그 중에 더러는 너희 회당에서 채찍질하고 이 동네에서 저 동네로 구박하리라

십자가의 길은 수치스러운 죽음을 말합니다.
이 죽음은 연단과 고난 모두 “죽음”을 말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연단에 있어서 죽음은 옛사람의 죽음을 말하는 것이며, 주님을 닮지 않는 모습들의 죽음을 말합니다.
그러나 고난에 있어서 죽음은 주님을 닮은 자의 죽음을 말합니다.
즉, 이것은 믿음에 의한 죽음이며, 부활의 소망에 의한 죽음이고, 사랑을 확증하는 죽음입니다.

십자가의 길을 가는 것은 주님을 따르는 것을 말합니다.
주님은 마 16:24-25절에 주님의 길을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씀하십니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주님의 이 말씀에서 보면 “자기 부인”은 연단을 말하는 것이고, “십자가”는 고난을 말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십자가의 고난은 다음 절에 말씀하시는 것처럼 죽음을 말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자기 부인과 죽음은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내가 나이기를 거부하는 것은 죽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또 자기 부인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결코 죽을 수 없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이 어떻게 다른 사람과 주님을 위해서 죽을 수 있단 말입니까?
여러분! 여러분 주님을 사랑하십니까?
주를 위하여, 주님의 사역을 위하여,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고난과 죽음의 잔을 마실 수 있습니까?

예수님의 제자중 야고보와 요한은 마실 수 있다고 했으며, 이에 질투를 느낀 주님의 모든 제자들도 역시 마시겠다고 했습니다.
말하기는 쉽고, 상급에 대한 욕심과 질투로 고백하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지금 현재 연단되어 있지 않다면, 자기부인이 되어 있지 않다면, 죽어있지 않다면, 고난을 이길 수도, 십자가를 감당할 수도 없습니다.
여러분! 날마다 자신의 어깨를 보십시오. 양손을 보십시오.
내가 지금 십자가를 지고 있는지 보십시오. 나의 모든 것을 부인하고 있는지 보십시오.
그것으로 내가 예수그리스의 남은 고난의 잔을 마실 수 있는지, 없는지 판단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십자가는 또 못박혔다고 고난이 끝 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죽지 않은 이상 고난은 계속됩니다.
우리가 주의 이름을 부르며, 주님의 길을 가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는 이상 핍박은 계속된다는 것입니다.
마 27:40-42절에 주님이 십자가에 못박힌 상황에서 그 고난을 보겠습니다.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가로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 오라 하며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장로들과 함께
희롱하여 가로되 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저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러면 우리가 믿겠노라

여기서 보면 주님은 십자가에 달리셨지만 모든 사람들은 지나가면서 “사탄이 말한 것처럼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고 합니다.

참으로 이 모욕은 인간으로써 참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십자가를 지고 가는 중에 핍박을 당했으며, 십자가에 못박혀서도 모욕을 당하는 것은 십자가를 진 사람에게는 차라리
죽음이 빨리 찾아 왔으면 하는 바람이 있게 할 것입니다.

또 이 십자가가 핍박을 하는 사람들을 위한 사랑이라면 그 배신감은 더할 것입니다.
이처럼 사탄은 우리로 하여금 십자가에서 내려오라고 합니다.
그 십자가를 내려 놓고 고난에서 벗어나라고 합니다.
또 그것이 하나님의 아들, 자녀임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사탄은 어떻게 해서든 주님의 길을 가지 못하게 하려 하며, 사역과 사명을 내려 놓게 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교묘하게 사탄은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또는 “네가 주님의 종이라면”, “네가 주님의 제자라면”이라는 자격을 놓고 시험에 들게 합니다.

여러분! 이러한 말에 대해 주의 하십시오. “당신이 하나님의 종, 주님의 제자라면 그렇게 해서는 안됩니다.
그리스도의 사람은 능력이 있는 자이기에 능력 없는 당신은 자격이 없습니다.
당신은 사역을 포기하는게 낫습니다.” 라는 말에 주의 하십시오.

또한 이러한 말을 결코 어떠한 그리스도의 사람들에게 하지 마십시오.
마 24:24절에 주님은 마지막 때에 이러한 일이 많이 일어난다고 합니다.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

택한 자들, 주님의 제자들은 무능하게 보이지만,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는 오히려 표적과 기사를 보이며, 능력으로 사람들에게 미혹 할 것입니다.
이들은 주님의 제자들에게 “봐라! 능력이 임한 내가 택함을 입은 사람이 아니냐?
무능한 너의 꼴을 보아라. 너는 주님의 제자 될 자격이 없다.
너는 주님의 일을 감당할 능력도 없다” 라고 말합니다.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들은 이러한 말로 실족하게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주님의 제자, 그리스도의 사람은 세상으로부터 판단을 받지 않습니다.
또 세상적인 기준으로 볼 때는 이들은 지극히 미천한 자들입니다.

여러분들이 주님이 세운 사람을 하나님의 아들로 삼지 않았으며, 주님의 제자 되게 하지 않았습니다.
또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만들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아들삼고, 제자삼으며, 하나님 백성 삼으셨습니다.

여러분이 이러한 말을 하여서 자신이 하나님이 되면 결코 안됩니다.
또 이러한 말에 대하여 현혹되어서도 안됩니다.
주님의 일꾼된 자격도, 사역도 결코 세상적인 판단을 받지 않습니다.

오직 택정함을 입은 자는 그 택함에 정해진 길을 따라 갈뿐입니다.
하나님은 완전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말씀도, 하시는 일도, 자녀 삼으심도 완전하십니다.
하나님이 세상의 판단을 받는다면 하나님은 하나님 될 수가 없습니다.
요 15:16절에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주님의 부르심에 확고히 서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십자가를 굳게 붙드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주님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러한 십자가의 고난을 어떻게 감당 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사명을 감당하며, 주님의 길을 갈 수 있을까요?

첫째로, 핍박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십시오. 마 5:44-48절에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 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지난 주에 연단을 통과하기 위한 방법이 기도라고 했듯이 기도는 또 고난을 이기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연단과 고난을 준비하기 위해 기도하며, 이를 감당하기 위해 기도하십시오.
또 핍박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십시오. 우리는 우리 자신의 길을 가는 것이 아니기에 이 고난은 나의 것이 아닙니다.

고난이 나의 것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고난을 극복하고, 승리하는 것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주님이 세상을 승리하신 그 사랑의 능력이 내게 있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의 그 사랑이 내 안에 충만하여서 핍박하는 자를 위해 기도 해야 합니다.

또 연단 받는 사람과 고난 받는 사람을 위해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기도 밖에 없습니다.
저마다 맡겨진 십자가가 다르기에 어느 누가 대신하여 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연단과 고난을 받는 사람을 위한 기도를 끊임없이 해주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의 이 기도가 고난 속에 있는 사람에게 소망을 주고, 원수들을 변화시키고, 자신이 앞으로 감당할
고난을 위한 기도를 쌓는 것임을 기억하십시오.

이 기도가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능력의 기도가 될 것입니다.

둘째로,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십시오.
주님은 죄인을 사랑하여 낮아지시고, 섬기시어 죽기까지 하였습니다.
주님은 주님을 사랑하는 자들을 위해 오신 것이 아니라 원수들을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 원수들을 구원하기 위해, 복주기 위해 오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롬 12:14절에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여러분이 핍박하는 자를 위해 빈 기도와 축복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 기도와 축복으로 인하여 원수가 변화되고, 구원을 얻게 됩니다.
또 이 축복은 다시 나에게 축복으로 돌아 오게 되어 있습니다.
원수를 향한 사랑의 마음은 온전히 주님의 마음을 가져야만 기도할 수 있고, 축복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주님의 사랑의 마음을 부어 달라고 기도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고난을 기뻐하고, 즐거워하십시오.
어떠한 사람이 자신이 죽는 것을 기뻐하고, 즐거워 할 수 있습니까?
이것은 어찌 보면 이해가 가지 않는 말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마 5:11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라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고난 중에 기뻐하고, 즐거워 할 수 있는 이유는 주님이 이 고난 중에서 영광을 얻은 것처럼 우리를 이 영광에
참여시키신 것에 대한 기쁨과 즐거움입니다.
또 이 영광은 부활을 통한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과 하나님 나라의 영광에 거하는 것에 대한 기쁨입니다.
그러므로 부활의 소망을 갖는 자만이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는 것입니다.
부활을 소망하지 않고, 영광의 모습을 꿈꾸지 않으며, 주님의 재림을 바라지 않는 사람은 이 고난을 기뻐할 수도,
즐거워 할 수도 없습니다.
여러분 모두 부활과 영광의 모습과 주님의 재림을 소망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에게 기쁨과 즐거움이 넘치게 될 것입니다.

넷째로, 성령충만 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성령 충만하시면 앞서 말씀 드린 원수를 위해 기도하게 되고, 축복하며, 고난을 기쁨과 즐거움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성령님은 여러분이 십자가의 고난을 감당할 수 있도록 여러분을 도우시는 분이십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주님의 모습으로 변화되게 하시는 분일 뿐만 아니라 십자가를 질 수 있게 하시며, 고난을 감당할 수 있게 하십니다.
스데반은 성령 충만하여 이 십자가의 고난을 감당하였습니다. 행 7:55-60절을 보면 이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 저희가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심으로
그에게 달려들어 성 밖에 내치고 돌로 칠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

저희가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가로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가로되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스데반은 성령 충만하여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으며, 주님의 얼굴을 보았습니다.
고난의 목적이며, 소망인 하나님의 영광과 주님의 모습을 본 것입니다.
성령 충만은 오직 고난의 목적과 소망을 잃지 않고 오직 주님만 바라보며 이길 수 있는 능력을 주십니다.
또 스데반은 성령 충만하여서 핍박하는 원수들을 향해 기도하고, 축복하였습니다.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라고 기도 하며, 축복하였습니다.
스데반의 이 기도는 이루어졌습니다.
이방인의 위대한 복음 전도자인 바울을 변화시킨 것은 바로 스데반이 원수를 사랑하는 기도가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기도의 위대한 힘과 능력은 여기 있습니다.

여러분! 성령 충만하도록 기도하시며, 원수를 위해 기도하고, 축복하는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이 십자가의 고난은 여러분 혼자 고통 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님이 함께 동행하시고, 아픔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성령님은 이 모든 고난을 감당할 수 있도록 여러분에게 힘과 능력을 주실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람들이 고난 중에 승리하는 방법은 세상이 승리하는 방법과 성공하는 방법과 완전히 다릅니다.
그리스도의 승리의 방법은 세상이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세상이 주는 고난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마 10:28-31절에 주님은 세상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이 고난에 대한 두려움의 극복은 오직 주님만 바라보며, 주님의 십자가만 바라보며 걸어갈 때 얻을 수 있습니다.
또 세상을 바라보지 않고, 오직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으로 가득 차게 되어 그 영광을 바라 볼 때에 감당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세상을 바라보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만 바라보며 두려움을 떨쳐버리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남겨진 고난은 여러분에게 영광을 주기 위해 남겨진 선물임을 기억하십시오.
그 고난의 선물을 기쁨과 즐거움으로 받으시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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