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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

2007-Oct

베드로전서

작성자: blue IP ADRESS: *.91.195.194 조회 수: 75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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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신의 저자는 사도 베드로이며(1:1) 그가 불러주는 내용을 필기한 사람은 실루아노이다(5:12). 역사상 베드로전서를 가장 일찌기 인용한 책은 베드로후서이다(벧후 3:1). 2세기의 폴리갑과 이레니우스, 3세기의 터툴리안과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 등은 본서신을 인용하였고, 특히 이레니우스는 본서신을 인용하면서 베드로전서라고 급하였다.

본서신을 받은 자들은 '흩어진 나그네'인데, 그들은 주로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이었다(2:9, 10). 본서신의 저작 시기는 아마 바울의 옥중 서신보다 후 그리고 베드로의 순교 이전, 즉 주후 65년경일 것이다.

본서신의 특징적 주제는 그리스도의 고난이다. 본서신은 고난받는 성도들에게 소망과 위로를 주는 책이다(1:6, 7; 2:18-21; 3:14, 16, 17; 4:12-19; 5:8-10).

1장: 믿음의 시련

1-2절, 문안 인사

[1]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

베 드로는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 중에서도 그가 항상 데리고 다니시던 세 제자들 중의 한 사람이었다(막 5:37; 9:2; 14:33). 베드로는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라고 소개한다. 사도는 주 예수께서 친히 불러 세우신 자들로서 12제자들과 바울에게 해당되었다(눅 6:13; 롬 1:1). 열두 사도들은 예수님과 함께 있고 나아가 전도하며 권능을 받아 병자들과 귀신들린 자들을 고쳤던 자들이었다(마 10:1; 막 3:14, 15).

베 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져 살고 있었던 성도들에게 편지하였다. 위의 지역들은 소아시아의 지역들로서 오늘날 터어키 지역에 해당한다. 성도들을 '나그네'라고 부른 것은 우리의 본향이 천국이기 때문이다(히 11:13-16). 역대상 29:15에 보면, 다윗은 "주 앞에서는 우리가 우리 열조와 다름이 없이 나그네와 우거한 자라. 세상에 있는 날이 그림자 같아서 머무름이 없나이다"라고 하나님께 고백했다.

[2]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입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베 드로는 성도들을 삼위일체 하나님의 구원을 받은 자들로 묘사하였다. 첫째로, 성도들은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택하심을 입은 자들이다. '미리 아심'이라는 말은 어떤 이들이 잘못 생각하듯이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것을 미리 아셨다는 뜻이 아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아셨다. 그러나 이 말은 단순히 그런 지식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고 하나님의 사랑의 선택을 나타내는 말이다. 성경은 우리의 구원이 하나님의 예정과 선택으로 된 것임을 분명히 증거한다(엡 1:4, 5, 11). 하나님의 선택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한 것이 아니고 우리가 하나님을 선택한 것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택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우리를 택하셨다.

둘 째로,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께 순종하며 그의 피뿌림을 얻은 자들이다. 성도들은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고백하며 그를 따르게 된 자들이다. 그들은 주님을 따르기 위해 자신을 부정하고 자신을 미워하며 자신의 모든 소유를 버린 자들이다(눅 9:23; 14:26, 33). 그들은 오직 주님만 따르며 그의 말씀만 따르는 자들이다. 또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피뿌림을 받은 자들이다. 그들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救贖)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들'이다.

셋 째로, 성도들은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을 입은 자들이다. 고린도전서 6:11,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 디도서 3:5,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성령의 사역은 일차적으로 교회 창설 시기에 있었던 방언과 예언과 병고침 등의 초자연적 은사들에 있었던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택하신 죄인들을 구원하는 일에 있었다. 죄인들은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구원을 얻는다. 이로써 성도는 세상과 구별되고 죄악과 구별되는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된다.

[3]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라는 말은 삼위일체 하나님, 특히 성부(聖父)와 성자(聖子)의 관계를 나타낸다. 아버지와 아들은 서로 구별되시지만, 신적 본질 즉 신성(神性)에 있어서는 동일하시다. 이것이 성경이 밝히 계시하는 하나님의 삼위일체의 신비이다.

하 나님께서는 그 많으신 긍휼대로 우리를 거듭나게 하셨다. 우리들의 거듭남 곧 중생(重生)은 하나님의 전적인 긍휼과 은혜로 된 것이다. 또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되었다. 그것은 우리의 중생의 근거를 나타낸다. 죄의 형벌은 죽음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代贖) 즉 대리적 형벌의 속죄로 말미암아 우리의 죄가 씻음을 받았고 그것에 근거하여 영원한 새 생명이 우리 속에 심어진 것이었다. 예수님의 부활은 이 모든 사실을 확증하고 보증하였다. 하나님의 선택도,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도, 성령의 중생케 하심도 다 하나님의 크신 긍휼의 결과이었다.

성도는 거듭난즉 산 소망을 가지게 되었다. 죄의 결과는 죽음과 멸망이었고 거기에는 두려움과 절망만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 죄씻음과 영원한 생명을 얻은 성도는 소망을 가지게 되었고 그 소망은 결코 헛되지 않은 산 소망인 것이다.

[4]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세상의 것들은 다 썩고 더러워지고 낡아진다. 그래서 시편 102편에는 "천지는 없어지려니와 주는 영존하시겠고 그것들은 다 옷같이 낡으리니 의복같이 바꾸시면 바뀌려니와"라고 말씀했다(시 102:26). 또 이사야 40장에는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라고 말씀했다(사 40:6, 7). 그러나 성도들을 위해 하늘에 간직된 기업 즉 천국은 썩지도 않고 더럽지도 않고 쇠하지도 않는 영원하고 영광스러운 것이다. 성도들은 그 천국을 기업으로 받을 하나님의 상속자들인 것이다(롬 8:17).

[5] 너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

앞절에 말씀한 천국 기업은 본절에서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이라고 표현되었다. '말세에 나타낸다'는 것은 예수님의 재림시에 나타내신다는 뜻이다. 성도들이 부활하여 영생을 누릴 천국은 예수님의 재림으로 더불어 영광스럽게 나타날 것이다. 그리고 성도들은 이 놀라운 구원 곧 천국을 얻기 위해 지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고 있다. 예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고 하셨다(요 10:27, 28). 바울 사도도 말하기를, "이를[이 복음을] 인하여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나의 의뢰한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나의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저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고 했다(딤후 1:12).

[6, 7]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의 구원이 이와 같이 확실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의 보호하심이 확실히 있기 때문에, 성도들은 세상에서 여러 가지 환난과 시험을 당하며 잠깐 근심하게도 되지만 도리어 크게 기뻐할 수 있다. 없어질 순금도 용광로 속에서 제련함으로써 나온다. 우리의 믿음의 시련은 금의 제련보다 더 귀하다. 왜냐하면 성도들은 환난과 시험을 통해 신앙 인격의 단련을 받아 거룩하고 겸손하고 믿음 있는 자가 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선한 열매들을 많이 맺게 되므로 장차 예수님의 재림시에 '잘했다'는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울도 로마서 5장에서 말하기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줄 앎이로다"라고 했다(롬 5:3, 4).

결론적으로, 1절부터 7절까지의 내용은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을 거듭나게 하셔서 천국을 얻게 하시며 세상에서 믿음으로 보호하심을 입게 하신다는 것이다. 먼저, 우리는 우리 자신이 여기에 해당하는 참된 성도들인지 스스로 질문해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성령의 거룩케 하시는 구원을 받았는가? 우리는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했는가? 또 그의 속죄의 피뿌림을 받았는가? 속죄 신앙은 성도의 기본적 신앙이며 생명선이다. 이 질문에 분명한 대답이 없다면, 여러분은 지금 이 시간에라도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한다.

만일 우리에게 속죄 신앙이 분명히 있다면, 하나님께 감사드릴 일이며,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크신 긍휼과 은혜의 선택과 대속(代贖)과 중생과 구원과 보호와 천국을 감사하고 찬송하며 그 은혜에 억만분지 일이라도 보답하는 양으로 믿음과 순종의 삶을 힘써 살아야 한다. 산 소망을 굳게 가지자. 천국을 확신하자. 천국을 즐거워하자. 또 이 확신과 즐거움 속에서 현실의 고난과 시험을 기쁘게 맞자. 그 속에서 믿음의 단련을 받자. 그래서 하나님께 영광이 돌려지고 장차 칭찬을 받을 만한 선한 열매들을 이 세상에서도 많이 맺는 자들이 되자.

8-12절, 구약에 예언된 그리스도

[8]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베드로가 편지하고 있는 소아시아 지방에 흩어져 살고 있던 성도들은 참으로 귀한 믿음을 가진 자들이었다. 그들은 예수님을 보지 못한 자들이었다. 그러나 그를 사랑하였다. 그들은 지금도 예수님을 보지 못하고 있지만 그를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고 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인가!

이 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이것은 성령의 증거와 사도들의 증거로 가능하였다. 요한복음 15장에 보면 예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 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 증거하느니라"고 하셨다(요 15:26, 27). 요한복음 20장에 보면, 예수님은 자신의 부활을 목격했던 동료들의 증거를 의심하는 도마에게 자신을 나타내 보이신 후에 말씀하시기를,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라고 하셨다(요 20:29). 또 요한 사도는 요한복음을 쓴 목적을 진술하기를,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고 하였다(요 20:30, 31).

초대 교회 성도들은 예수님을 믿고 사랑하였다. 사랑은 상대방의 가치를 알 때 생긴다. 사람들은 돈의 가치를 알 때 돈을 사랑한다. 그러나 돈의 헛됨을 알 때 돈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다. 우리는 사람들의 영혼들의 가치를 알 때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도 불쌍히 여기고 그들을 사랑할 수 있다. 우리는 예수님의 가치를 알 때 그를 사랑할 수 있다.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과 우리를 위해 사람이 되셨고 십자가 위에서 우리를 위해 대속의 죽음을 죽으셨음을 알 때, 그를 사랑할 수 있는 것이다.

사랑은 교제와 대화로 표현된다. 사람은 누구를 사랑할 때 그와 교제하고 그와 대화하기를 좋아한다. 이와 같이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면 성경을 읽고 기도하기를 좋아할 것이다. 또 사랑은 봉사와 수고로 표현된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봉사하고 수고하고 돈을 쓰는 것은 아깝지 않다. 이와 같이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과 그의 일을 위해 봉사하고 수고하고 물질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사 랑은 특히 기쁨으로 표현된다. 사랑하면 기쁨이 생긴다. 그래서 사랑하면 얼굴이 예뻐진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기쁨이 생겨서 그런 것이다. 기쁨이 있는 얼굴은 예뻐 보이지만, 근심과 슬픔이 가득하면 미워 보이기 마련이다. 초대 교회 성도들은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기쁨'으로 주를 기뻐하였다. 익명의 찬송 작가는 이렇게 썼다: "구주를 생각만 해도 내 맘이 좋거든 주 얼굴 뵈올 때에야 얼마나 좋으랴/ 만민의 구주 예수여 귀하신 이름은 천지에 온갖 이름 중 비할 데 없도다/ 참 회개하는 자에게 소망이 되시고 구하고 찾는 자에게 기쁨이 되신다/ 사랑의 구주 예수여 내 기쁨 되시고 이제와 또한 영원히 영광이 되소서"(찬송가 85장).

[9]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믿 음의 목표는 영혼의 구원이다. 우리의 영혼은 죄로 인하여 죽었었고 지옥에 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보내주셨고 그의 십자가 대속으로 말미암아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의 구원을 얻게 된 것이다. 우리가 선한 행위로 구원을 얻을 수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길을 주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끝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해야 하며 그래야 구원을 얻고 영원한 나라에 확실히 들어갈 것이다.

[10, 11] 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얻으실 영광을 미리 증거하여 어느 시, 어떠한 때를 지시하시는지 상고하니라.

베드로는 이 구원이 구약의 선지자들에 의해 예언된 은혜요 그 선지자들이 부지런히 연구하였던 바임을 증거한다. 또 그들 속에서 역사하셨던 그리스도의 영이 그가 장차 받으실 고난과 후에 얻으실 영광을 미리 증거하였으므로 선지자들은 그것이 어느 시, 어떠한 때를 지시하는지 연구하였다고 증거한다.

베드로 사도가 구약 선지자들 속에 역사한 성령을 '그리스도의 영'이라고 표현한 것은 삼위일체의 신비를 증거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한 신성(神性)을 가지신 분이시므로 사람으로 이 세상에 오시기 전, 즉 구약 시대에도 선지자들 속에 역사하실 수 있었고 또 역사하셨다.

구약의 선지자들 속에 계셨던 그리스도의 영이 그가 받으실 고난과 후에 얻으실 영광을 미리 증거하셨다는 것은 구약 성경 이사야 53:5, 6과 시편 16:10을 예로 들 수 있다. 이사야 53:5, 6,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시편 16:10,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임이니이다."

또 구약의 선지자들이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의 때와 시기를 연구했다는 것은 다니엘 9:24-26을 예로 들 수 있다: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칠십 이레(7x70)로 기한을 정하였나니 허물이 마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영속(永贖)되며 영원한 의(義)가 드러나며 이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부음을 받으리라. 그러므로 너는 깨달아 알지니라.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令)이 날 때부터 기름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 일곱 이레와 육십 이 이레가 지날 것이요 그 때 곤란한 동안에 성이 중건되어 거리와 해자[성밖에 둘러판 못]가 이룰 것이며 육십 이 이레 후에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며 장차 한 왕의 백성이 와서 그 성읍과 성소를 훼파하려니와 그의 종말은 홍수에 엄몰됨 같을 것이며 또 끝까지 전쟁이 있으리니 황폐할 것이 작정되었느니라."

이 70이레의 기한에 관하여, "기름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 일곱 이레와 육십 이 이레가 지날 것이요"라는 말씀은 음력으로 69이레(7이레+62이레) 즉 483년을 양력으로 환산하여 예루살렘성의 중건을 허락받았던(느 2:5, 6) 느헤미야의 때 즉 바사왕 아닥사스다 20년(느 1:1)인 주전 445년으로부터 계산하면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실 무렵이 된다고 본다.

[12] 이 섬긴 바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임이 계시로 알게 되었으니 이것은 하늘로부터 보내신 성령을 힘입어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 이제 너희에게 고한 것이요 천사들도 살펴 보기를 원하는 것이니라.

구약 선지자들이 예언한 내용이 자신들을 위한 것이 아니요 신약 성도들을 위한 것이라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드러났다. 예수께서는 구약 예언의 성취자로서 나타나셨다. 또 이 사실은 하늘로부터 보내신 성령을 힘입어 복음 전도자들이 사람들에게 선포하고 전파한 바이었다. 또 하늘의 천사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보기를 원한 바이었다. 천사들은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섬기는 자들이므로 그들은 하나님의 뜻인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보기를 원했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8절부터 12절까지의 내용은 초대 교회의 성도들이 믿고 사랑하며 기뻐했던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약의 선지자들을 통해 이미 예언되셨던 분이심을 증거한다. 구약의 선지자들이 예언하였던 그리스도 예수께서 오셨다. 예수께서는 성경에 예언된 대로 우리 죄를 위해 죽으셨고 삼일 만에 부활하셨다. 천사들도 살펴 보기를 원했던 하나님의 구원 사역이 다 이루어졌다. 하나님의 택하신 많은 죄인들이 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다. 많은 이들이 예수님을 보지 못했으나 믿고 사랑하며 그를 기뻐하였다. 오늘날 우리도 하나님의 은혜로 그런 자들 중에 속하였다.

본문은 우리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져준다. 첫째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확실히 믿었는가? 우리는 그를 믿고 구원을 받았는가? 둘째로, 우리는 예수님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가? 우리는 예수님과 교제하기를 좋아하고 그를 위해 봉사하기를 좋아하고 있는가? 셋째로, 우리는 특히 그를 얼마나 기뻐하고 있는가? 초대 교회 성도들과 같이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그를 기뻐하고 있는가? 우리 모두 자신을 점검하고 주님을 믿고 주님을 사랑하고 기뻐하는 일에 분발하자!

13-25절, 거룩과 사랑을 권면함

[13]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올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과 부활의 영광을 통해 우리에게 주신 구원을 믿음으로 받았으므로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주실 은혜를 온전히 바라야 한다.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라'는 말은 나태하고 해이하거나 정신 없이 살지 말고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는 태도를 가지라는 뜻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올 은혜'는, 4절에 말씀한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며 5절에 말씀한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이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이루어질 우리의 몸의 부활과 영광스런 천국과 영생을 가리킨다.

우리는 주님의 재림과 주께서 주실 이 영광스런 구원을 온전히 바라야 한다. 하나님께서 주신 이 소망의 내용을 조금 바라거나 일시적으로만 바라지 말고 마음을 다하여 끝까지 바라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모든 소망을 거기에 두어야 한다. 그렇다. 성도의 소망은 그것뿐이다. 우리는 그것만을 바라는 자들이다. 히브리서 6:11, 12,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너희 각 사람이 동일한 부지런을 나타내어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러 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 되게 하려는 것이니라."

[14-16]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이전 알지 못할 때에 좇던 너희 사욕을 본 삼지 말고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구원받은 우리는 이제 순종하는 자녀들처럼 살아야 한다. 우리는 이전에 하나님과 그의 진리를 알지 못했던 때 좇던 육신적이고 세상적인 욕망을 본 삼지 말고 우리를 구원하신 거룩하신 하나님처럼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위의 모든 면에서 거룩한 자가 되어야 한다. 구원받기 전에는 우리가 불순종적이고 불결한 삶을 살았었다. 그러나 이제는 순종하는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 거룩은 세상의 더러운 죄악들로부터 구별되어 하나님께 드려진 상태를 말한다. 우리의 생각도 말도 행위도 다 거룩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라고 친히 말씀하셨다(레 11:45).

[17]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판단하시는 자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의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우리가 사람들을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판단하시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며 섬기는 자들이 되었으므로, 우리는 나그네와 같은 세상 생활에서 두려운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살 것이 아니다. 우리의 본향은 영광의 천국이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나그네와 같이 살고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만일 우리가 불순종과 불결의 죄악들만 지어 하나님의 진노를 쌓는다면, 우리는 어떻게 천국에 들어갈 수 있으며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의와 거룩과 선과 진실을 행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18, 19]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너희가 알거니와'라는 말은 복음 지식과 신앙은 모든 성도들에게 공통적이고 기본적임을 가리킨다. 속죄 신앙 없으면 구원받는 참 신앙이 없는 것이다. 복음의 기본적 지식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배로운 피로 우리를 구속(救贖)하셨다는 것이다. 우리의 구원은 은과 금으로 계산할 수 없을 정도로 가치 있는 일이다. 그것은 1억원이나 100억원이나 1조원으로도 살 수 없는 구원이다. 우리의 구원은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예수, 즉 참된 신성(神性)을 가지신 그 분의 보배로운 피값으로만 가능하였다. 이렇게 귀한 은혜를 입은 우리들이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배은망덕한 자가 되지 말고 두렵고 떨림으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

[20] 그는 창세 전부터 미리 알리신 바 된 자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 바 되었으니.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창세 전부터 예정된 분이시다. '미리 알리신 바 된'이라는 원어는 '예정된'이라고 번역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말세에 우리를 위해 나타내신 바 되셨다. '이 말세'는 신약 시대를 가리킨다. 신약 시대는 인류 역사의 마지막 시대로 표현되었다. 구약 4천년의 역사가 지나고 이제 마지막 시대가 온 것이다. 이 마지막 시대는 예정된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참 사람으로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의 구속 사역을 이루신 시대이다.

[21] 너희는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리셔서 부활의 영광을 주셨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믿게 되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것은 또한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것이며 하나님께 우리의 소망을 두는 것이다. 우리의 믿음과 우리의 소망은 오직 하나님께 있다. 우리는 우리의 믿음과 소망을 땅에 있는 사람들이나 땅에 있는 것들에 두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두어야 한다.

[22]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

전통 사본에는 본절의 시작 부분이 '너희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진리를 순종함으로'라고 되어 있다. '진리'는 복음을 가리킨다. 진리를 순종한다는 것은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복음 진리를 받아들이는 것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된 일이다. 우리는 성령의 역사로 거듭나고 회개하고 복음을 믿게 된다. 그 결과, 우리의 죄악된 영혼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피로 깨끗하게 되었고 그 깨끗해진 마음으로 거짓이 없이 형제들을 사랑하게 되었다. '마음으로'라는 말은 전통 사본에는 '깨끗한 마음으로'라고 되어 있다. 성도들은 깨끗한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해야 한다. 이것이 구원받은 성도다운 삶이다. 예수께서도 '서로 사랑하라'는 한마디로 요약된 새 계명을 주셨다. 참 성도들은 이미 형제 사랑을 실천하고 있겠지만, 우리는 '깨끗한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더 명심하자.

[23]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우리가 받은 구원은 이론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우리의 죽었던 영혼이 다시 살아나게 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고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영원히 있는 말씀으로 되었다. '항상 있는'이라는 말은 전통 사본에는 '영원히 있는'이라고 되어 있다. 중생의 새 생명은 죽지 않는 생명이요 하나님의 영원한 말씀으로 된 생명이다. 우리가 받은 구원은 실제로 거룩한 순종과 뜨거운 사랑으로 계속 나타나는 생명이다.

[24, 25]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우리가 전한 복음의 말씀은 바로 하나님의 영원한 말씀이다. 이 말씀은 모든 육체와 그 모든 영광과 비교된다. 풀이 마르고 꽃이 떨어지듯이, 모든 육체는 풀과 같이 쇠하여지고 그 모든 영광은 오래지 않아 풀의 꽃과 같이 다 떨어질 것이다. 구약 전도서의 증거한 말씀대로, 해 아래 있는 모든 것이 다 헛되다. 풀같이 늙지 않고 죽지 않는 사람이 누구인가? 꽃과 같이 떨어지지 않을 사람의 영광이 무엇인가? 그러나 모든 육체와 그 모든 영광에 대조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다.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다 쇠하여지고 없어지지만,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은 쇠하거나 없어지지 않고 영원하다. 이와 같이, 우리의 구원의 새 생명도 쇠하거나 없어지지 않고 영원하다. 따라서 여기에 근거한 성도들의 거룩하고 사랑하는 삶은 결코 쇠하거나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13절부터 25절까지의 내용에서 우리는 세 가지의 실제적 교훈을 받는다. 첫째로,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받을 은혜 곧 영광스런 부활과 천국과 영생을 확실하게, 충만하게 소망해야 한다. 이 소망은 우리가 조금 가지거나 일시적으로 가지는 소망이어서는 안된다. 우리는 이 소망을 온전히, 충만히, 끝까지 가져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순종하는 자녀들처럼 거룩하신 하나님을 본받아 모든 행실 즉 생각과 말과 행위에 있어서 거룩한 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조상 때로부터 물려받은 망령된 행실을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깨끗이 씻음을 받았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운 마음으로 거룩한 삶을 힘써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진리를 순종함으로 우리의 영혼이 깨끗하게 되었으므로 깨끗한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해야 한다. 복음 진리는 하나님의 영원한 말씀이며 우리가 그 말씀으로 거듭남을 얻었으므로 우리는 사랑이 변하거나 식어지지 말고 뜨겁게 피차 사랑해야 한다.


2장: 성도의 특권과 의무

1-10절, 순수한 말씀의 젖을 사모하라

[1]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모든 . . . 모든 . . . 모든 . . .'이라는 표현은 '온갖 종류의'라는 뜻이다. '악독'은 악한 생각과 뜻을 가리킨다. '궤휼'은 거짓과 속임을 가리킨다. '외식'은 겉으로 선하게 보이나 속에는 악독한 것이요, '시기'는 다른 사람의 잘되는 것을 싫어하고 그를 괜히 깍아내리고 미워하는 것이다. '비방'은 다른 사람에 대해 정당하지 않게, 왜곡되게, 악하게 비난하거나 평론하는 것을 가리킨다. 본문은 성도들이 이런 것들을 다 버려야 한다고 가르친다. 이것은 옛사람의 성질들이며 마귀적인 성질들이다. 구원받은 성도들도 이런 죄성들을 가지고 있고 언제든지 이런 악들에 떨어질 수 있다. 그러나 성도들은 마땅히 이런 악들을 다 버려야 한다.

[2] 갓난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갓난아이들은 엄마의 젖을 사모한다. 아기들은 엄마의 젖맛을 알기 때문에 배가 고플 때 그 젖을 못빨면 마구 울어댄다. 아기들은 아프거나 몸이 안좋으면 젖을 잘 안먹으려 하겠지만 그렇지 않고 정상적이면 엄마의 젖을 사모할 것이다. 갓난아이들이 엄마의 젖을 사모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런 일이다. 아기들은 이렇게 엄마의 젖을 잘 먹을 때 건강하게 잘 자라게 된다.

이와 같이, 구원받은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해야 한다. '순전하고 신령한 젖'이라는 말(토 로기콘 아돌론 갈라)은 '거짓 없는, 순수한 말씀의 젖'이라는 뜻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젖에 비유한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수한 말씀'이라고 표현한 것은 이단 사설들, 인본주의적 생각들이나 말들, 사람의 귀를 즐겁게 하고 흥미만을 위주한 예화나 이야기들 등과 구별시킨 말이다. 성도들은 하나님의 순수한 말씀을 사모해야 한다. 성경의 바른 교훈을 늘 읽고 듣고 배우고 연구하고 묵상해야 한다.

성도들이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해야 할 이유는 자라기 위해서이다.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자라게 하려 함이라." 에베소서 4장에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자라야 한다고 말씀했다(13-16절). 히브리서 5장에는 신앙 안에서 어린 아이와 장성한 자를 구별하였다(13, 14절). 우리는 주 안에서 자라야 한다. 그런데 신앙 성장의 정상적 방법은 순수한 성경 말씀을 섭취하는 것이다. 디모데후서 3:15-17,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구원에 이르도록'이라는 말은 전통 사본들에는 없다. 이 말씀을 오해해서는 안될 것이다. 구원은 우리가 노력하고 행해서 이루는 것이 아니다. 구원에는 두 단계가 있다. 첫째로, 중생(重生)과 칭의(稱義)의 구원은 우리가 이미 받았다. 에베소서 2:8, 9,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둘째로, 영화(榮化)의 구원은 장차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시에 우리에게 이루어질 것이다. 베드로전서 1:5, "너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얻었나니." 로마서 8:24,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우리의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이다. 예수 믿고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들은 다 장차 영화롭게 될 것이다. 로마서 8: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빌립보서 2:12에 "너희 구원을 이루라"는 말씀은 이미 받은 구원, 장차 영화롭게 완성될 구원을 현실 가운데서 다 드러내라는 것이다. 즉 온전한 경건 생활과 도덕 생활을 하라, 의와 선과 진실을 다 행하라는 뜻인 것이다. 이것이 성화(聖化)이다. 법적으로 이미 얻은 의(義)를 실제로 우리의 인격과 삶에서 나타내는 것이 우리의 성화 과정인 것이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순수한 성경 말씀을 주야로 묵상함으로써 거룩한 신앙 인격으로 점점 자라 가는 것이다.

[3]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

'주의 인자하심'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혜를 가리킨다.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크신 긍휼과 은혜와 인자로 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의 인자하심을 통해 의롭다 하심을 받았을진대 우리는 실제적으로도 의로운 자, 죄 없는 자, 도덕적으로 온전한 자가 되기를 힘써야 마땅한 것이다.

[4]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에게 나아와.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들에게 버림을 당하셨다. 사람들은 그를 하나님의 아들로, 의로운 자로 알아보지 못하였다. 불경건하고 악한 사람들은 자기 동류들이나 좋아한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버림을 당하신 예수님은 하나님께 택하심을 입으셨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아시고 인정하시고 사랑하시고 택하셨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보배이시다. 또한 그는 보배로운 산 돌이시다. '산 돌'이란 그가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시고 그 생명을 우리에게 주시는 분이심을 뜻한다. 그는 지금도 살아 역사하시는 생명의 주님이시다.

[5] 너희도 산 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본문은 우리도 산 돌같이 영원한 생명을 소유한 자들이 되어 '신령한 집'으로 세워져야 할 것을 말씀한다. '신령한 집'이라는 단수명사(오이코스 프뉴마티코스)는 성도들이 모여 한 교회를 이루는 것을 말한다. 교회를 돌들로 지은 건물에 비유한 것이다. '신령한' 집이라는 말은 교회가 단순히 물질적인 건물이나 육체들의 집합체가 아니고 성령께서 거하시는 집, 곧 성령의 전인 것을 나타낸다. 고린도전서 3:16,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신약 시대의 교회는 성도들의 연합 속에 성령께서 거하시는 신령한 집이다. 에베소서 2:21, 22,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신약 교회는 영적인 집으로 건축되어 가고 있다. 이것은 온 세계의 모든 성도들을 포함하는 거대한 교회이다. 지금도 이 영적 교회의 건축 소리가 온 세계 곳곳에서 요란하게 들려지고 있다. 이 영적 건축, 즉 한 명의 영혼 구원을 통해 벽돌 한 장이 쌓여가는 이 건축은 물질적 예배당 건축보다 수천배 더 큰 의미가 있고 더 중요한 건축이다. 우리 모두는 비록 물질적으로는 부족하지만, 이 영적 건축, 곧 전도의 일을 크게 여기고 이 일에 힘써야 한다.

또 본문은 지어진 이 신령한 집에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한다. '제사장'이라는 원어(히에라튜마)는 '제사장들의 집단'을 가리킨다. 구원받은 성도들은 다 하나님의 거룩한 제사장들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제사장들로서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들을 드려야 한다. 그 신령한 제사란 우리의 의롭고 착하고 거룩한 삶, 헌신과 봉사의 삶을 가리킨다. 우리는 모든 악독과 속임과 외식과 시기와 비방을 버리고 경건하고 거룩하고 의로운 삶을 살므로써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려야 하는 것이다.

[6-8] 경에 기록하였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롭고 요긴한 모퉁이 돌을 시온에 두노니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의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또한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이 되었다 하니라. 저희가 말씀을 순종치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저희를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

예수님은 믿는 자들에게는 보배이시다.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이 세상 부귀와 바꿀 수 없네." 그러나 그는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버린 돌, 부딪히는 돌, 거치는 반석'이 되신다. 많은 이들이 그 돌에 부딪혀 넘어졌다. 이와 같이 우리는 열심히 전하고 가르치고 권면하지만, 예수님을 믿는 자도 있고 믿지 않는 자도 있다. 하나님의 예정은 이중적이다. 그가 창세 전에 어떤 이들을 영생으로 선택하셨으나, 다른 이들은 그들의 죄 가운데 버려두셔서 영원한 형벌에 이르게 정하셨다. 죄 가운데서 멸망받을 자들도 하나님이 그렇게 정하신 것이다.

[9]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나 우리에게는 왠 은혜요 왠 사랑인지! 하나님의 영원한 선택을 받은 것은 인생에게 가장 큰 복이다. 본문은 구원받은 성도들의 특권들을 몇 가지로 증거한다. 첫째로, 성도들은 하나님의 택하신 족속이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우리들은 하나님의 선택을 입은 족속이 되었다. 선택받은 증거는 우리의 진실한 믿음과 회개와 순종이다.

둘째로, 성도들은 왕 같은 제사장들이다. '왕 같은'이라는 원어(바실레이오스)는 '높은 특권을 가진'이라는 뜻이다. 성도에게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 그를 섬기는 높은 특권이 있다. 히브리서 10:19,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셋째로, 성도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나라이다. 세상 나라는 부정과 불법으로 가득한 나라, 속이고 속으며 죽이고 죽는 나라, 음란하고 부도덕한 나라, 슬픔과 탄식과 고통이 가득한 나라, 죽음과 절망의 나라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의의 나라, 진리의 나라, 사랑의 나라, 평강의 나라, 기쁨의 나라, 영원한 생명의 나라이다. 성도들은 바로 이 하나님의 나라가 된 것이다.

넷째로, 성도들은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이 세상이 다 하나님의 소유이지만, 우리는 특별한 의미에서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다. 하나님의 것의 가치는 돈으로 계산할 수 없을 정도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얼마나 가치 있게 여기셨던지 자기 독생자를 십자가에 내어주시기까지 하셨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귀한 보배들이 되었다. 또 하나님의 것은 아무도 그 손에서 빼앗을 수 없이 안전하게 보장되어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귀한 특권을 동반한 구원을 주신 목적은 '우리를 어두운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다. '기이한 빛'이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지식과 의와 생명을 가리킨다. 심히 무지하고 불경건했던 우리가 살아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알게 되었고, 죄악들 가운데 깊이 파묻혀 살았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 공로로 값없이 완전한 의(義)를 얻게 되었고, 죽음과 영원한 멸망의 그늘진 세상에 살던 우리가 영원한 생명, 다시 죽지 않고 죽을 수도 없는 생명을 은혜로 얻게 된 것이다. 이 지식과 의와 생명은 참으로 놀랍고 놀라운 '기이한 빛'이다. 그러므로 이 놀라운 구원을 받은 우리는 하나님의 그 기이한 은혜와 사랑과 의와 지혜와 능력을 마땅히 찬송하며 증거하고 선전해야 할 것이다.

[10]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전에는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었고 하나님의 긍휼도 얻지 못했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고 하나님의 크신 긍휼을 얻은 자가 된 것이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그러므로 우리는 마땅히 하나님의 백성답게 거룩하고 의롭게 살면서 하나님을 증거하고 찬송하는 자들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1절부터 10절까지는 우리에게 여러 가지 귀한 진리들과 교훈들을 준다. 첫째로, 우리는 모든 악독과 모든 거짓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려야 한다. 그것들은 다 옛사람에 속한 것들이며 마귀의 그리고 마귀와 함께 지옥에 던지울 죄인들의 성질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것들을 다 버려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갓난아니들같이 순수한 말씀의 젖을 사모해야 한다. 우리는 순수한 성경 말씀을 사모하여 열심히 성경을 읽고 듣고 배우고 연구하고 묵상해야 한다.

셋째로,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거룩한 신앙 인격에 있어서 자라가야 한다. 우리는 영적인 어린 아이와 철부지의 상태에서 벗어나서 영적으로 장성한 자의 모습이 되어야 한다.

넷째로, 우리는 산 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져야 한다. 교회는 영적인 건물이다. 그것은 구원받은 성도들로 이루어지는 신령한 집, 곧 하나님의 영, 성령께서 거하시는 전이다. 우리는 이 영적 성전 건축 곧 전도의 일을 외적 예배당 공사보다 더 크게 여기고 더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

다섯째로, 우리는 이 성전에서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들을 드릴 거룩한 제사장들이 되어야 한다. 이것은 우리의 경건하고 거룩한 헌신과 봉사의 삶을 가리킨다.

여섯째로, 우리는 성도의 특권을 깨닫고 감사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며 하나님의 거룩한 나라요 그의 특별한 소유가 되었다. 얼마나 놀라운 은혜인지!

일곱째로, 우리는 심히 무지하고 불경건하며 심히 죄악되고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었던 자들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기이한 빛, 곧 참 지식과 의와 생명을 인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지혜와 능력을 찬송하고 증거하며 선전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목적이다.

11-12절, 육신적 욕망을 제어하라

[11]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이 세상에 사는 인간은 '나그네와 행인' 같은 존재이다. 왜냐하면 육신의 생명이 끝날 때 하나님 앞에서 선악 간에 판단을 받아 내세에서 천국 혹은 지옥에 들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은 나그네 길이고 인간에게는 돌아갈 영원한 처소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인생은 내세를 준비할 것이다. 내세의 준비는 다른 것이 아니고 우리가 죄 가운데 정신 없이 살지 않고 죄를 회개하고 죄를 버리고 믿는 자답게, 성도답게 사는 것이다.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는 것은 바로 그것이다. 육신적 욕망들은 바로 죄악된 욕망들이다. 거기에서 음란과 방탕이 나온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성도들은 죄짓지 않고 바르게 살기를 힘써야 마땅하다.

[12]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권고하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성도들은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 가운데서 선하게 살므로써 그들에게 바른 깨달음을 줄 수 있다. 세상 사람들은 성도들을 그릇되이 비방하는 일이 많다. 심지어 하나님의 귀한 종 바울은 교인들을 교묘하게 궤계로 자기 사람을 삼는다는 비난을 받았었다(고후 12:16). 구약의 느헤미야도 예루살렘성을 건축하여 바사왕 아닥사스다를 모반하여 스스로 왕이 되려 한다는 비난을 받았었다(느 6:6). 그러나 그들은 다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고 착한 종들이었다. 성도들이 악한 세상 속에서 선을 행하면 그것이 세상에 빛이 되어 하나님께서 세상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시는 날 그들이 깨닫고 성도들에게 감동을 받고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자들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주께서는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가르쳐주셨다(마 5:16).

13-17절, 인간의 제도에 순복하라

[13, 14] 인간에 세운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복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 혹은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장하기 위하여 그의 보낸 방백에게 하라.

이 세상에서 성도들의 선한 삶은 여러 면에서 나타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인간에 세운 모든 제도를 순종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것은 우리가 왕과 그의 보낸 방백들 즉 관리들에게 순종하는 것을 의미한다. '주를 위하여'라는 원어(디아 톤 퀴리온)는 '주님 때문에'라는 뜻이다. 그것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자녀라는 주의 이름이 있기 때문에 그리고 세속 사회의 질서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 때문에라는 뜻이다. 우리는 주님의 이름과 주님의 뜻 때문에 인간의 제도들에 순종해야 한다.

로마서 13:1-7,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리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림이니 거스리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관원들은 선한 일에 대하여 두려움이 되지 않고 악한 일에 대하여 되나니 네가 권세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려느냐?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그에게 칭찬을 받으리라. 그는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네게 선을 이루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위하여 보응하는 자니라. 그러므로 굴복하지 아니할 수 없으니 노를 인하여만 할 것이 아니요 또한 양심을 인하여 할 것이라. 너희가 공세를 바치는 것도 이를 인함이라. 저희가 하나님의 일군이 되어 바로 이 일에 항상 힘쓰느니라. 모든 자에게 줄 것을 주되 공세를 받을 자에게 공세를 바치고 국세 받을 자에게 국세를 바치고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

[15] 곧 선행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의 무식한 말을 막으시는 것이라.

원문에는 "왜냐하면 선행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의 무식한 말을 막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이라"고 되어 있다.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은 무지하고 잘못된 말들로 성도들을 비난하기를 좋아하지만, 성도가 범사에 선하게 처신하므로 세상 사람들이 성도에게 아무런 바난할 말이 없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오직 선행에 힘써야 한다.

[16] 자유하나 그 자유로 악을 가리우는 데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

성도는 죄와 율법에서 자유함을 얻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으로 우리를 위해 율법의 완전한 의를 이루셨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결코 정죄함이 없다. 이것은 로마서 7장과 갈라디아서에서 밝히 증거된 내용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귀한 자유를 악을 가리우는 일, 즉 악을 변명하고 정당화시키는 일에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해야 한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도 동일한 내용의 말씀을 가르쳤다. 로마서 6:17, 18, 22,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 . .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이 마지막은 영생이라." 갈라디아서 5:13,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

[17] 뭇사람을 공경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왕을 공경하라.

성도들의 선한 삶은 세상에서의 인간 관계에서 나타난다. '뭇사람을 공경하라'는 말씀은 '모든 사람을 존중하라'는 뜻이다. 우리가 모든 사람들을 존중해야 할 이유는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자이기 때문이며, 또 주께서 피흘려 사신 자들이 누구인지 우리가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 눈에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자라 할지라도, 만일 주께서 그를 위해 피흘려 돌아가셨다면, 우리는 그를 얼마나 존중해야 하겠는가?

또 베드로는 형제들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왕을 공경하라고 교훈했다. 왕을 공경하라는 교훈은 사실상 10계명 중 제5계명 즉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에 포함되어 있는 하나님의 뜻이다. 부모를 공경하라는 명령 속에는 가정에서 부모님에 대한 공경 뿐만 아니라, 교회에서 장로들에 대한 존경, 이웃의 노인들에 대한 공경, 학교에서 선생들에 대한 존경, 직장에서 상사들에 대한 존경, 나라에서 대통령이나 관리들에 대한 존경 등을 포함한다. 이것이 다 하나님의 뜻이다.

18-25절, 종들은 주인에게 순복하라

[18] 사환들아 범사에 두려워함으로 주인들에게 순복하되 선하고 관용하는 자들에게만 아니라 또한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리하라.

'사환들'이라는 원어(오이케타이) 는 '집안의 종들'을 가리킨다. 베드로는 구원받은 종들에게도 선한 삶을 교훈한다. 그것은 주인들에게 순복하라는 것이다. '범사에 두려워함으로'라는 원어는 '모든 두려움으로, 온전히 두려워함으로'라는 뜻이다. 종들은 주인들을 조금 두려워하지 말고 범사에 두려워하고 온전히 두려워함으로 순종해야 한다. 종들은 또한 선하고 관용하는 주인에게만 순종할 것이 아니고 까다로운 주인에게도 순종해야 한다.

[19, 20]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베 드로는 말하기를, 종이 어떤 잘못이 있어서 주인에게 매를 맞으면 칭찬받을 것이 없지만, 그가 선하게 행함에도 불구하고 애매히 고난을 받고 그 고난과 슬픔을 잘 참으면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아름다운 일이라고 했다. '하나님을 생각함으로'라는 말은 '이렇게 주인에게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혹은 '하나님께서 나의 고난과 슬픔을 다 보고 계시고 다 판단하고 계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라는 뜻이다. 종이 애매히 당하는 고난을 잘 참는 것은 미덕(美德)이다.

[21]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 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성 도들은 이런 고난을 당하도록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해 이런 고난을 받으심으로 우리에게 본이 되셨고 우리로 하여금 그의 발자취를 따라오게 하셨다. 선을 행하면서 고난을 당하는 삶--그것이 성도들이 이 세상에서 가야 할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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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드로전서 file blue 2007-10-07 75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