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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의 기도는 어떤 결과를 가져왔을까요? 다니엘 9장 20-27절을 읽어보십시오. 위대한 발견은 위대한 기도를 낳았고, 위대한 기도는 위대한 계시를 낳았습니다.
우리는 다니엘이 얼마나 오랫동안 기도했는지 모릅니다. 아무튼 그는 저녁때까지 기도를 계속하고 있었습니다(21절). 다니엘은 이스라엘의 죄와 그 쓰디쓴 열매를 되씹으며 하나님의 크신 이름이 더럽혀지지 않도록 주께 탄원할 때, 위대한 계시를 받았습니다.
가브리엘이 다시 그에게 와서 그를 만졌을 때에도 다니엘의 입술은 기도로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가브리엘은 다니엘에게 놀라운 사실을 먼저 알려주면서 안심을 시켰습니다. 다니엘이 기도를 한 순간부터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듣고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결과 가브리엘이 신속히 그에게로 날아왔던 것입니다!(23절).

다니엘은 이번에도 하늘에서 내려온 방문객을 보고 두려워 떨었을까요? 그렇다면 그의 두려움은 금방 사라졌을 것입니다. 그는 가브리엘 천사로부터 자신이 하늘에서 큰 사랑을 받고 있으며 거기서도 잘 알려져 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또한 하나님의 목적이 장차 어떻게 성취될 것인지를 듣게 될 것이었으므로 더 이상 염려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크신 이름을 위해 올렸던 그의 기도는 응답된 것이었습니다(23절). 가브리엘 천사는 다니엘이 계시를 받고서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통찰력을 주기 위해 온 자였습니다. “네가 간구를 드리기 시작할 때에 명령이 나왔으므로 내가 너에게 밝히 보여주려고 왔나니, 이는 네가 크게 사랑을 받는 자임이니라. 그러므로 너는 이 일을 분별하고 그 환상을 깊이 생각할지니라.”(23절).

24절과 25절을 풀어서 옮겨봅시다.
“너는 70년의 기간과 이스라엘 및 예루살렘에 대하여 생각해왔었다. 그런데 예루살렘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에는 70년이라는 기간만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부터 70주간(혹은 히브리어에서처럼 칠십 ‘이레’)이 지나면 예루살렘은 다음 네 가지를 보게 될 것이다.”

“첫째, 예루살렘에서 배도가 끝나고 죄악들이 종식되며 악행에 대해 화해가 이루어질 것이다. 하나님의 얼굴에 침을 내뱉던 배도가 그치게 되고 하나님의 형벌을 촉구하던 죄악들이 하나님의 눈에서 거두어질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과 백성들을 갈라놓는 악행들을 처리하기 위해 화해가 이루어질 것이다. 지금부터 칠십 ‘이레’가 되는 때에 되에 대한 어떤 조치가 취해질 것이다.”
연로한 다니엘 선지자에게 이 말씀은 얼마나 커다란 위안이 되었겠습니까! 다니엘의 기도에서는 커다란 죄가 가장 막중한 짐이었습니다. 이제 다니엘은 그 무거운 죄가 처리된다는 소식을 들은 것이었습니다!

“둘째, 지금부터 칠십 ‘이레’가 되면 영존하는 의(義)의 시대가 열릴 것이다.”
복음이란 단순히 죄가 용서되는 것만이 아닙니다. 우리에 대한 죄의 기록이 지워진다는 것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우리가 중립적인 상태에 있다는 말입니다. 복음은 그 이상의 것을 약속해 줍니다. 복음은 죄인들이 노여워하시는 하나님께 어떻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지도 가르쳐 줍니다. 복음은 죄인들이 하나님의 누에 의롭게 비치도록 해줍니다.

“셋째, 지금부터 칠십 ‘이레’가 되면 환상과 예언을 봉인할 것이다.”
옛날의 두루마리를 상상해 보십시오. 다 읽고 나면 말아서 봉하게 되어 있습니다. 성경 말씀 속에는 미래에 대한 예언들과 환상들이 많습니다. 이것들이 칠십 ‘이레’가 지나면 모두 성취된다는 말씀입니다.

“끝으로, 지금부터 칠십 ‘이레’가 되면 지극히 거룩한 분에게 기름을 부으심이 임하리라.”
‘기름부음’이란 말이나 ‘메시야’ 혹은 ‘그리스도’란 단어는 본질적으로 같은 말입니다. 앞으로 오시게 될 메시야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예루살렘은 이 모든 사건들을 목격하게 될 것이었습니다. 칠십 ‘이레들’은 작정된 시기입니다. 미래에 발생될 이 사건들이 바로 가브리엘이 선포한 메시지였습니다.

이 모든 말씀을 들은 다니엘은 더없이 기쁘고 감격스러웠을 것입니다. 그는 오랜 세월 동안 예루살렘의 황폐를 슬퍼하며 그 재건을 갈망해 왔었습니다. 이제 그는 칠십 ‘이레’가 지나면 예루살렘이 기대 이상으로 중건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약속된 그리스도가 오시고 죄가 처리되면, 죄인들이 영원히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될 것이었습니다. 그때에는 그리스도께서 오신다는 예고가 실현되어 예루살렘에 메시야가 나타나실 것이었습니다.

다니엘은 가브리엘 천사로부터 이 모든 소식을 들어 알았지만 가브리엘이 그에게 들려준 소식은 이것이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25-27절에는 칠십 ‘이레’가 세 기간으로 나뉘어 진다는 또 다른 소식이 있습니다. 두 기간은 25절에, 셋째 기간은 26절과 27절에 언급되어 있습니다.
첫째 기간은 일곱 ‘이레’일 것입니다. 둘째 기간은 육십이 ‘이레’일 것이며, 끝으로 ‘한 이레’가 한 번 더 있게 될 것입니다. 이 기간의 구분은 단순하며 기억하기도 쉽습니다.
이 기간의 출발점은 “예루살렘을 회복시키고 건축하라는 그 명령이 나가는 때로부터”(25절)입니다. 그때부터 메시야가 올 때가지는 일곱 ‘이레’와 육십 이 ‘이레’가 될 것입니다(25절). 그런데 첫 기간인 일곱 ‘이레’가 끝나는 때는 “고난스러운 때들 중에 성이 중건되어 그 거리와 그 성벽이 다시 건축되리니”(25절)입니다. 이 시기는 분명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때를 가리킵니다.

그 다음 육십 이 ‘이레’ 동안에는 어떤 일도 발생될 것이라는 예고가 없습니다. 이 두 번째 ‘이레’의 기간들이 종료된 후에(26절) 메시야가 “끊어져 없어질 것”(26절)입니다.
이 구절에 대해서는 최근에 이상한 해석들이 돌고 있으므로 가브리엘 천사가 계시한 내용을 정확하게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메시야는 육십 구 ‘이레’ 동안이 아닌, 그 후에 끊어져 없어질 것이었습니다. 즉 메시야가 끊어지는 시기는 일흔 번째 ‘이레’ 동안입니다.
그런데 상당수의 교인들은 본 장에서 언급된 일흔 번째 ‘이레’가 세상 종말까지 연기되었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불가능합니다. 가브리엘은 메시야가 일흔 번째 주간에 끊어져 없어질 것이라고 분명하게 선포하였습니다. 만약 일흔 번째 주간이 연기되었다면 우리를 위해 죽은 구세주가 아직 없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그럴 경우, 우리는 아직도 죄 중에 있는 셈입니다.

메시야는 예고된 대로 육십 구 ‘이레’가 끝난 후에 끊어졌는데, 이는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사야는 이렇게 증언하였습니다.
“그분이 감옥으로부터와 심문으로부터 끌려갔으니, 누가 그분의 세대들을 선포하리요? 이는 그분께서 산 자들의 땅에서 끊어졌음이요, 그분께서 내 백성의 허물로 인하여 형벌을 받았음이라.”(사 53:8).
한편 26절은 이렇게 번역될 수도 있습니다.
“메시야는 끊어져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게 되리니,”
만약 이것이 올바른 번역이라면, 그 의미는 아마 그리스도께서 예루살렘과 절연한다는 뜻일 것입니다. 그럴 경우 이 말씀은 주님이 유대인들에게 “보라, 너희 집이 버림을 받아 너희에게 황폐하게 되는 도다.”(마 23:38)고 예언하신 구절과 연관 지을 수 있습니다.
메시야가 끊어짐으로써 생기는 결과는 26절에 나옵니다.
“또 통치자의 백성들이 와서 그 성읍과 그 성소를 파괴하리니, 그것의 종말은 한 홍수로 뒤덮인 것 같을 것이요 또 그 전쟁의 끝이 이르기까지 황폐하게 되는 것들이 정하여졌느니라.”
이 말씀은 예루살렘과 그 성소가 홍수처럼 덮치는 외국 군대에 의해서 찢겨지고 파괴될 것을 가리킵니다.

다니엘은 이 사건을 주전 6세기에 보았지만, 그 실현은 주후 70년 타이터스(Titus)가 이끄는 로마군들에 의해서 정확하게 이루어졌습니다. 예루살렘의 멸망은 갈보리 사건 직후에 발생되지는 않았지만 유대인들이 그리스도를 배척했기 때문에 작정된 일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예루살렘의 파괴는 일흔 번째 ‘이레’에 발생된 것이 아니라 일흔 번째 ‘이레’에 작정된 사건이었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감람산 강론 때와 십자가로 가실 때에 유대인들이 주님을 배척하기 때문에 그들의 도읍과 성전이 파괴될 것이라고 분명히 예언하셨습니다(마 23:34-24:38, 눅 23:27-31).

본 사건의 이해를 돕기 위해 아담의 경우를 소급해서 생각해 봅시다. 아담은 금단의 열매를 먹었던 당일에 죽을 것이라는 선고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아담은 문자 그대로 당장 숨이 끊어져 죽지 않았습니다. 아담은 선악과를 먹은 그 날에 영적으로 죽었고, 육체적인 죽음은 그 결과 필수적으로 따르게 되었습니다. 예루살렘의 파괴도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배척했기 때문에 확정된 일이었지만, 실제의 사건 발생은 나중에 일어났습니다. 환언하면 예루살렘의 멸망은 일흔 번째 ‘이레’에 발생되지 않았지만 그 ‘이레’의 사건들에 직접 연결되는 일이었습니다.

그럼 마지막 ‘이레’에 대한 다른 예언들은 무엇일까요?
“그분께서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한 주간 동안 그 언약을 확정(confirm)하실 것이요”(27절).
이 본문에 나오는 ‘그분’은 그리스도이십니다. 마태복음 26:28절에 이 언약이 선포되어 있습니다.
“이는 이것이 죄들을 사면해주려고 많은 사람을 대신하여 흘리는 나의 새 유언의 피이기 때문이니라.”
예수님은 자신을 단 한 번에 희생예물로 드리셨기 때문에 “그 주간의 중간에 그분께서 그 희생예물과 봉헌예물을 폐지"(27절)하는 일도 이루셨습니다(참조. 히 7:27). 성전의 휘장이 둘로 위에서부터 아래로 찢겨졌고, 지성소로 들어가는 길은 다시 반복될 필요가 없는 예수님의 종결적인 단 한 번의 희생으로 영원히 열렸습니다. 따라서 구약의 의식들과 기타 의무들이 더 이상 필요치 않게 된 것입니다. 사실 예루살렘이 파괴되었기 때문에 건물 성전 희생이 계속될 수도 없었습니다.

본 주제와 27절의 나머지 말씀에 대한 추가적인 조명을 위해서는 푸시(E.B. Pusey)의 논평을 인용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그는 영국의 카톨릭 신학자이긴 하지만 구약의 선지자들에 대한 탁월한 전문가였으며 보기드문 통찰력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다음 인용문은 그가 26절과 27절에 대해서 19세기에 언급한 글입니다.
“이 모든 것들은 복음서에서 모두 확인될 수 있다. 오랜 세월 동안 고대했던 그분은 드디어 오셨다. 그분은 메시야였고 율법의 희생제사를 그치게 하셨다. 그분은 끊어지셨으나 많은 사람들과 언약을 맺으셨다. 한 외국군대가 예루살렘과 성전을 황폐케 하였으며 1,800년 동안 성전이 황폐한 채로 있다. 예루살렘 성전의 희생제도는 종식되었지만 이는 경배자들이 그 제사의 효용성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다.”


사실임이 입증된 고서(古書)

다니엘은 축복을 받은 자였습니다. 그는 현재의 포로 생활이 끝날 것을 미리 내다보는 특권을 누렸습니다. 그는 또한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신다는 것도 들었습니다. 가브리엘 천사는 그에게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언제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실 것인지도 알려주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주의할 사항이 있습니다. 본문은 ‘이레’가 7년을 의미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히브리 원문에서는 그냥 칠십 ‘이레’라고만 되어 있습니다. 다니엘서의 대부분은 상징적인 표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다니엘서에 나오는 숫자를 문자적으로 해석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특히 성경에 상징적으로 자주 사용되는 수인 7이나 10에 대해서는 더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칠십 ‘이레’가 490년을 의미한다는 결론을 내리기 전에 다시 생각하고 신중을 기해야 합니다.

한편, 본 장의 사건들 이후 약 80년 쯤 지난 때에 아닥사스다 1세가 예루살렘을 재건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참조. 25절). 왕명이 떨어진지 49년(7×7) 이내에 에스라와 느헤미야 및 다른 동역자들의 감독 하에 예루살렘이 중건되었습니다.
그로부터 434년(62×7)이 지난 때는 주후 20년대 후반입니다. 바로 그 시기에 3년 반의 사역을 마치시고(이레의 절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끊어지셨습니다. 그 후 사도들이 나머지 3년 반 이내에 소망의 미래는 심판을 받을 유대인들이 아닌, 이방인들에게 걸려있다고 선포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숫자들은 정확한 것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여러 학자들이 정확한 연대를 산출하려고 시도하였지만 모두 실패하였습니다.

그럼 조금 다른 각도에서 본 장의 시기와 관련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가령 어떤 사람이 다니엘서 9장을 펴놓고 칠십 ‘이레’를 490년으로 잡았다고 가정해봅시다. 그 결과 메시야의 출현 시기가 주후 1세기라는 결론에 이르렀다면 그 사람은 자신에게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때가 가까웠다. 내 계산이 옳다면 다니엘이 언급한 그 거룩한 분은 지금의 어느 때라도 태어날 수 있다……”
그럼 이러한 가상적인 상황을 염두에 두고 필자의 한 이론을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본인의 한 지론에 불과합니다. 다니엘은 메대와 바사 제국시대에 대단히 큰 명성을 누렸던 자였습니다. 그서 그의 글들은 페르시아(바사)의 도서관들에 비치되었습니다.
요즘 말로 한다면 박사학위를 원하는 자들이 도서관에 가서 문서들을 뒤지며 연구를 하였을 것입니다! 그런 연구생들 중에는 다니엘의 문서들을 펴놓고 메시야의 도래 시기를 주후 4년 경으로 잡고서 이렇게 말한 자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때가 가까웠다. 본 장에서 언급된 메시야는 지금의 어느 때에라도 탄생될 수 있다.”
한편 이 학자들은 밤하늘도 조사하다가 놀랍고 기이한 한 별을 발견하고 그것을 큰 왕이 태어난 증거로 삼았을 것입니다. 그들은 다시금 다니엘서에 예언된 메시야의 탄생 시기를 확인하고 예루살렘에서 대망의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다고 결론지었을 것입니다.
이 동방의 현인들은 낙타를 타고 황금과 몰약과 유향들을 싣고 곧장 예루살렘으로 향하였습니다. 그들은 목적지에 닿자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마 2:2)라고 물었습니다.

이것은 물로 하나의 이론입니다. 본인이 확실히 아는 것은 그 당시 예루살렘에는 메시야를 대망하는 겸손한 심령들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아무튼 그들은 메시야가 오실 날이 임박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들은 구약 성경을 통해서 메시야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날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예루살렘에서 구원을 고대하였습니다!(눅 2:38).
그럼 어떻게 이들이 메시야의 탄생시기를 알았겠습니까? 그들은 다니엘서를 읽고 시기가 임박했다는 것과 메시야가 거룩한 도성에서 출현할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을까요? 그들이 어떤 방법으로 깨달았든지 간에 적어도 성령께서는 한 사람에게 “주님의 그리스도를 뵙기 전에는 죽음을 보지 아니하리라”(눅 2:26)는 약속을 해주었습니다.
“그가 영의 인도를 받아 성전(聖殿)으로 들어가매 그때에 그 부모가 아기 예수님을 데려오니 이는 율법의 관례대로 그분에게 행하고자 함이더라. 그때에 시므온이 자기 양팔로 그분을 받아 안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말하기를, 주님이시여, 이제는 말씀대로 주님의 종을 평안히 떠나도록 허락하옵소서. 이는 내 눈으로 주님의 구원을 보았기 때문이요, 이 구원은 모든 백성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인들을 비추는 한 빛이요 주님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하니”(눅 2:27-32).
한 나이 많은 여인도 그 때 성전에 와서 메시야를 맞았습니다.
“마침 그녀가 같은 시간에 나아와서 주님께 감사를 드리고 예루살렘에서 구속(救贖)을 기다리는 모든 사람에게 그 아기에 관하여 말하니라.”(눅 2:38).

이 고서(古書)의 진실성은 확증되었습니다. 그리스도가 성경이 예고된 대로 오셨기 때문입니다. 시므온과 안나는 메시야를 맞이하고 평안히 눈을 감았습니다.
성경은 오래된 경전입니다. 그러나 이 고서의 진실성은 언제나 입증됩니다. 성경은 그리스도의 참된 초상화입니다. 우리는 성경의 말씀을 신뢰할 수 있습니다. 성경 말씀은 시기 뿐 만이 아니라 영생에 대해서도 진실된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스튜워트 올리오트
스튜워트 올리오트(Stuart Olyott) 목사님은 1967년부터 영국 리버풀의 벨비디르 로드 교회에서 목회를 하였고, 현재는 스위스의 로잔 잉글런드 침례교회에서 시무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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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ld_bible 다니엘에게 주신 위대한 계시 file blue 2007-10-04 38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