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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2007-Oct

빌립보서

작성자: blue IP ADRESS: *.91.195.194 조회 수: 128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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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적인 배경
1) 저자

&빌립보서를 쓴 이는 사도바울 이었다. 확실히 바울은 디모데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었다. 그래서 "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과 디모데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들에게" 라고 서두를 시작하였다. 그러나 바울이 제1인칭 단수로 전체를 썼다는 사실은 양자 중 바울에게 주된 책임이 놓여 있다는 점에서 분명히 밝혀진다. 빌립보서의 저자는 디모데가 아니라 바울이었다.
 전통적인 기독교 교리의 요새의 공격을 지휘한 사람은 바우어 였는데 그는 갈라디아서,고린도후서, 그리고 로마서를 제외한 나머지 사도의 이름으로 통하는 모든 서신들에 대하여 바울 저작권을 공격 하였다. 그들이 주장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첫째로,감독들과 집사들에 대한 언급(1:1)은 바울 후기의 교회 정치 무대에 속한다. 그러나 행6:1-6, 11:30,14:23,20:27,28 그리고 살전5:12,13의 연구는 이런 직분이 빌립보서가 기록되기 오래 전부터 있었음을 지적해 주고 있다.
 둘째로 본서는 원본이 아니라는 것으 보여준다. 본서는 바울 서신의 진본을 모방한 글로 가득차 있다. 그러나 만일 바울이 로마서등을 쓴것 같이 빌립보서를 썼다면 비슷한 표현을 한다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다.
 세째로 본서는 영지주의의 흔적을 보여준다. 특별히 2:5-8에서 저자는 아이온의 마지막 즉 소피아를 생각하며,충만에서 공허로 타락하는 절대자를 이해하려고 한다. 그런데 이 특이한 해석은 문맥에 모순된다.
 네째는 본서는 유오디아와 순두게로 각각 대표도니 유대인 기독교파와 이방인 기독교파를 화해시키려는 바울 후기적 작품이다. 그런데 문맥은 이런 이름들이 빌립보 교회에 있는 여인들에 속하며,따라서 그들중에 어느 한 사람도 결코 반 바울적인 어느 파당의 지도자일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빌립보서는 바울이 쓴 서신이다.이 편지의 전기체 언급은 분명히 바울의 독특한 문체이며, 그 전체 내용도 바울 저작의 특징이 담겨있다.

   2) 기록연대 및 장소
 바울은 감옥에 있었음이 분명하기 때문에 중요한 문제는 바울의 투옥사실을 확인 하는 것이다. 전통적인 견해는 그 투옥장소가 로마라고 생각해 왔으나 이것은 두가지 다른 이론들인 가이사랴 이론과 에베소 이론에 도전을 받고 있다.
  ① 가이사랴설
 이 가설은 다른 두이론들 보다 훨씬 설득력을 결여하고 있으며, 오늘날 이 이론을 지지하는 학자는 거의 없다, 여기에서 주장하는 것은 먼저, 바울의 투옥은 최근의 일로 보이며, 따라서 투옥 기간은 짧았다고 주장되어 왔다.그리고 3장에 있는 유대인 교사들에 대한 노박은 본 서신이 유대인 이방인의 갈등이 있던 기간에 쓰여졌으며, 그것은 빌립보서와 유사성을 가지는 바울의 초기 서신들과 같은 저작연대를 보여주는 증거로 보았다. 그리고, 빌립보서1:13에 언급된 시위대는사도랭전23:25에서 언급된 것처럼 헤롯궁전으로 이해 될수 있을 것이다. 빌립보서는 바울의 투옥이 복음을 전파하는 데에 많은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었음을 명백히 하고 있는데 이것은 어느 정도규모의 교회를 가진 장소를 전제한다는 것이다.
  ② 에베소설
 에베소에 투옥되었다고 가정할때 그곳에서 빌립보서를 기록하였을 가능성이 있는가? 최근에 많은 학자들이 그와 같은 견해를 취하고 있다.다른 옥중 서신들 보다도 빌립보서가 에베소에서 쓰여진 것으로 주장되고 있다. 이제 그 이론의 근거는 선물문제와 방문들, 그리고 바울과 빌립보 사이의 잦는 서신 왕래, 문헌적인 연관, 유대인 논쟁의 문제, 재판의 문제, 시위대와 사이사의 가솔들, 그리고 누가의 위치의 문제를 근거로 삼고 있다.
  ③ 로마설
 본 서신이 로마에서 쓰여진 것으로 A.D 59-61년사이로 보는 전통적인 견해로서 가장 강력한 근거를 가지고 있다. 이 이론은 시위대(1:13)와 가이사 집(4:22)을 가장 자연스럽게 해석하는 것을 근거로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바울 사도에 관한 재판은 진행중 이었던 것처럼 보이며, 그는 임박한 느낌으로 삶과 죽음을 결정할 판결을 기다리고 있었던것 같다. 그런가 하면 많은 사람들이 용기 있게 복음을 전파한것은 상당한 규모의 교회가 이미 존재하고 있던 로마에서의 일로 쉽게 이해 될수 있으며, 이것은 가이사랴보다는 로마라는 이론에 결정적인 근거가 된다. 그리고 사도바울의 개인적 형편은 로마 투옥의 상황과 쉽게 일치한다. 바울은 가까운 장래에빌립보를 방문할수 있도록 풀려날 것이라는 강한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 로마 가설은 본 서신에 덧붙여진 마르키온의 서문에 의해 지지되고 있는데 이 마르키온 서문은 본 서신이 로마로 부터 발송 되었다고 되어 있다.

  2. 역사적 배경
 본 서신의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 빌립보 시의 역사와 빌립보 교회의 상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빌립보시의 역사
 빌립보는 에게해에서 내륙으로 약16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으며, 이 도시의 원래 이름은 "작은 우물"이라는 뜻을 지닌 "크레니데스"였으며,이 부근에는 유명한 판게우스의 금광이 있다. 그런데 B.C 356년 마게도냐왕 필립 2세가 그곳의 많은 사람을 이주 시키고 도시를 확장,증축하면서 자신의 이름을 본따서 이 도시의 이름을 빌립보라고 칭하였다. 그후 여러번의 정복 과정을 거쳐서 빌립보는 로마의 식민지가 되었으며,B.C42년 삼두 정치의 동맹자와 로마 공화주의자 사이에 유명한 빌립보 전쟁이 터졌다. 여기서 삼두 정치 동맹자들이 승리하고 곧 이어 B.C 31년 악티움 전쟁에서 옥타비아누스는 안토니우스를 패퇴시켜 로마의 실권자가 되면서 그의 퇴역한 군인들을 빌립보로 이주 시켰다. 이때에 빌립보의 위치가 상승하여 빌립보 시민들에게는 로마 시민권이 주어졌으며,자연히 그들은 로마시민으로서의 모든 권리를 누릴수 있게 되었다.
 빌립보 지역은 로마의 군사적 전초 기지로서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중요한 통로중 하나였으며,전략상 마케도냐 지방의 제일로 꼽히는 성읍이었다. 또한 빌립보에는 헬라인,로마인,아시아인,등 여러 민족이 모여 살았으며,각종 철학,종교,미신등이 성행하였다. 이도시의 공식 언어는 라틴어 였으나 그들의 생활,언어 관습은 오히려 헬라적 이었다. 빌립보에 거주하는 유대인은 소수였으므로 회당도 없었다. 또 종교와 생활습관의 차이 때문에 그곳 사람들이 유대인을 대하는 감정은 좋지 않았다.
 ② 빌립보 교회
 빌립보교회는 A.D50년경 바울의 2차 전도여행중에 세워졌다. 사도바울은 드로아에 있을 당시 환상중에 마게도냐를 향해 계속 나아가라는 지시를 받았는데 그 결과 빌립보는 바울이 복음을 전했던 유럽 최초의 도시가 되었다.
 유럽의 첫번째 교회인 빌립보 교회의 기원에 관한 설명은 사도랭전16장에 특별히 생생하게 기록 되어 있다.여기에는 빌립보에서 기독교의 능력이 나타난 세 경우를 기록하고 있다. 그것은 먼저 아시아로 부터 온 자주장사이며,신실한 개종자인 루디아 그녀는 복음을 받아들일 준비가 잘된 자들의 대표로 언급되어 있다. 그리고 점하는 귀신 들린 여인, 바울에 의해 그 귀신이 쫒겨나게 된다. 이것은 어두움의 세력들에 대한 그리스도의 승리를 예시하고 있다. 또 하나는 지진에 의해 자신의 곤경을 알게 된 간수 그와 그의 전 가족이 세례를 받았다. 그는 온 가족을 변화 시키는 복음의 능력을 보여준다.
 본서신에 언급된 빌립보교회의 다른 구성원들은 에베브로디도,유오디아,순두게,글레멘드이다. 이 모든 이름은 빌립보 교회가 두드러지게 이방인들로 구성되었다는 것을 시사해준다. 그리고 빌립보의 교인들은 사도 바울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그리고 빌립보 교회는 알렉산더 대왕의 부친에 의해 건설 되었으며, 그의 이름을 따서 명명한 역사 적인 도시에 위치해 있었다.
 그러나 빌립보 교회에도 몇가지 문제가 있었다. 그것은 두 여인 유오디아와 순두게를 중심으로 한 교회안의 분열,유대주의자들의 분쟁,바울의 장기화된 투옥에 대한 비판,외부의 적에 대한 불안,해우이로 완전에 이른다는 사상,의 발생등이다.

  3. 저술 목적

  먼저 어떤 정황에서 이 편지를 쓰게 되었는가?를 밝히는 것이 좋을 것이다. 첫째로 감옥에서 쓰고 있다는 것이다.감옥에서 편지를 쓰면서 디모데와 에베브로 디도를 빌립보 교회에 천거하고 있다. 둘째는 에바브로디도를 통해서 빌립보교회가 보낸편지, 헌금을 잘 받았다는 영수증을 떼어 주고 있는거자. 세째는 바울은 빌립보 교회의 몇가지 문제들을 이 편지에서 다루고 있다.에바브로디도에 의해서 바울에게 보고된 빌리보교회내의 분쟁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으며, 교회 전체가 하나됨이 중요하다는 사실과 하나됨을 위해서 서로 겸손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가질것을 강조하고 있다. 네째는 빌립보 교회는 어쩌면 고린도후서10-13장에서 우리가 볼수 있는 유대 기독교 열광주의자들에 의해서 복음의 이해에 혼돈을 가져오고 그리스도인의 삶에 혼돈을 가져오는 문제들을 갖게 된것 같다. 마지막으로 빌립보 교회는 또 외부 세력의 계속되는 핍박아래 놓여 있었던것 같다. 그래서 바울이 빌립보 그리스도인들에게 자신의 감사함과 그들의 선물과 핍박의 상황에서 그들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고, 또 핍박의 상황에서 그들을 위로하고, 교회 자체내에서 하나됨을 유지 하도록 권면하고, 외적인 이방인들의 핍박이나 유대 열광적 그리스도인들의 훼방에 맞서서 믿음에 굳게 서도록 하기 위하여 본 서신을 기록하고 있다.
  바울의 목적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수 있을 것이다. 먼저 글로서 그의 감사를 표시하기 위해서. 교회가 필요로 하는 영적 지침을 제공하기 위해서, 빌립보 교인들의 생각과 마음을 기쁨으로 채우기 위하여 그리고 더 나아가서 몇가지를 이야기 한다면,디모데가 머지 않아 방문할 것을 통보하고, 가능하다면 가까운 장래에 그들을 방문하려는 사도 바울 자신의 의도등도 있었음을 볼수 있다.


1. 저  자
    빌립보서는 사도 바울이 기록하였다. 비록 빌립보서 1:1에서 발신자가 바울과 디모데 두 사람으로 기록되고 있으나 3절 이하에서 1인칭 단수인 '나'로 기록되어 전체를 이끌어가고 있고 간혹 복수로 언급되는 것은 바울과 디모데로 한정짓는 것이 아닌 공동체와 관련된 것이다. 2:19-23에서 좀더 객관적인 증명이 가능하며 마지막 인사말에 디모데의 이름이 빠져있다는 사실도 이를 입증한다.(4:21)   

2. 수신자
빌립보서의 수신자는 빌립보서 1:1에서 언급되고 있는 대로 빌립보에 살고 있는 이들이며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된 모든 이들이다. 이 교회의 구성과 지역적 특성들을 이해하기 위해 빌립보 지역에 대한 역사와 기타 배경들을 간략히 알아보기로 한다. 

빌립보 성 
  
1) 명 칭
  이 도시는 원래 드라게로 불려졌던 넓은 지역의 한 작은 구역이었다. B.C. 359년에 권좌에 오른 알렉산더 대왕의 부친 빌립2세(Philip Ⅱ)가 이 도시를 자신의 이름을 따서 '빌립보'라 하였다.   
 2) 정치적 상황
  B.C. 167년에 마케도냐가 로마에게 패한 후, 빌립보는 다른 도시들과 함께 로마의 영토가 되었으며, B.C. 146년에 빌립보는 재편제된 마게도냐도(道)의 일부가 되었으며, 그 수도는 데살로니가였다. 그 후 이 도시는 B.C.42년에 벌어진 빌립보 전쟁을 기점으로 중요하게 부각된다. 전쟁의 승리자인 옥타비안(Octavian)이 빌립보를 로마 퇴역군인의 은급지로 삼아 대규모 퇴역군인 이민단을 파견하였기 때문이다. 그들에 의하여 개발되고 확장된 도시는 로마의 식민지요 황제도시의 축소판인 소로마가 된 것이다. 빌립보 사람들은 로마 시민됨을 자랑으로 여겼다. 로마 시민으로서 그들은 어디에서나 로마시민의 모든 권리를 누릴 수 있었다. 매를 맞는데서나 극단적인 경우를 제외하고서는 체포되지 않았으며, 황제에게 호소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다. 그들의 이름은 로마 호적에 있고, 그들의 언어는 라틴어였다. 그들은 로마식에 따라 옷을 입는 것을 좋아했고, 세금의 면제와 재산을 취득하여 양도할 권리와 같은 경제적인 특권과 지방 총독에 의해 간섭을 받지 않으며, 사업 경영할 권리와 정치적인 특권도 누릴 수 있는 로마법(Jus Italicum)이 수여되었다.  
3) 지리적 상황
  빌립보는 지정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a. 빌립보는 마케도냐 지경 내에 위치하고 있다. b. 빌립보는 해안 도시인 네압볼리로부터 가까운 내륙에 자리 잡고 있다(약 10마일의 거리). 사도 바울이 빌립보를 처음 방문하기 위해 여행중에 중도에서 기착한 도시가 네압볼리이다(행16:11-12). c. 빌립보 성은 에그나티아대로(the Egnatian Way)라 불리우는 길을 따라 여러 도시와 연결되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이 길은 아비안(Appian)대로를 따라 이태리의 로마까지 연결이 되어 있다. 8마일 정도의 아드리아 바닷길을 건너면 에그나티아대로와 만나 곧 마케도냐 내륙에 들어갈 수 있다.  
4) 경제적 상황
  빌립보는 부유한 도시였다. 일년에 1천 달란트 이상을 벌어들이는 금광이 있었던 도시였다. 명성 높은 의과대학도 여기에 있었다. 빌립보가 의사 누가의 고향이었고, 그가 후에 이곳에서 개업했었다는 사실은 매우 흥미있는 일이다.  
 5) 인  구
  사도 바울이 빌립보에서 활동하던 시대에는 약 20만에서 50만의 인구가 이 도시에 살았다. 인구의 대부분이 헬라인이었고 소수의 로마사람과 유대인이 살고 있었다.  
6) 문화적 상황
  고고학적인 발굴에 의하면, 이 도시의 서쪽 1.6km 지점인 간지테스 강 근처에 로마 아아치의 폐허가 있다. 이 아아치는 보통 로마의 조계(租界:행정구역)의 도시 경계선을 상징했다. 이 도시 경계선 내에는 묘지나 이방 종교의 성소와 같은 불길한 것이 세워질 수 없었다. 따라서 헬라적인 문화관습에 따라 도시내에 유대인의 회당이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사실로 인해 바울과 실라는 "기도 처소가 있다고 생각되는 성문 밖 강가로 나간 것이다(행16:13).   
2 빌립보 교회
  바울이 빌립보 교회에게 이 서신을 보낼 무렵은 빌립보 교회가 설립한 후 10년이 지날 무렵이었다.   
1) 교회의 시작
  빌립보 교회는 사도행전16:12-40에서 알 수 있듯이 A.D.50년경 바울의 제2차 전도여행 중에 세워졌다. 바울은 하나님이 그곳에서 일하게 하시려고 특별히 부르셨다는 확신을 가지고 마케도냐 지방으로 가서 전도하기 시작한 것이다. 빌립보는 마케도냐 지방의 첫 성이었다. 빌립보 교회의 설립은 하나님의 능력의 세가지 역사로 시작된다. 첫째, 아시아로부터 온 자주베 장사로서 열렬한 개종자인 루디아(Lydia)인데, 그녀는 복음을 받아들일 준비가 잘된 자들 중의 대표자로서 나타난다(행16:11-15). 둘째, 점하는 귀신들린 점장이 여종이 바울에 의하여 그 귀신이 쫓겨나게 되는데, 이것은 어두움의 세력들에 대한 그리스도의 승리를 보여주고 있다(행16:16-18). 셋째, 지진에 의해 자신이 곤경에 빠졌음을 알고 두려워했던 옥졸에게 복음의 능력이 그의 전가족을 변화시킨 사실을 보여준다(행16:27-34). 귀신들린 그 점장이 여종이 기독교인이 되었는지에 관해서는 우리가 정확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다른 사람들은 확실히 교회의 핵심 인물들이 되어 빌립보 교회는 시작된 것이다.   
2) 교인들과 조직
  본 서신에 언급된 교회의 구성원들은 에바브로디도, 유오디아, 순두게, 클레멘트이다. 이 모든 이름들은 빌립보 교회가 이방인들로 구성된 탁월한 교회임을 시사해 주고 있다. 빌립보서 3:3이하에서 독자들이 할례받은 유대인들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바울이 참 할례에 대하여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4:8이하에서 바람직한 자질들을 열거하면서 그 당시 이방세계에서 유행하던 술어들을 포함시키고 있는데. 이 사실에서 빌립보 교회 성도들이 이방인임을 알 수 있다. 교회 조직에 대해 알려진 사실은 바울이 인사말에서 말하고 있는 것이 전부이다. 바울은 인사말에서 감독과 집사에 대해 언급한다. 우리는 여기서 교회 역사의 초기 단계에 있어서 두 가지의 구별되는 직분이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런 조직 상태가 바울 생전에 존재할 수 있었음을 부인하는 자들은 그 직분이 본 서신에 언급되어 있는 이유를 설명하지 못한다.   
3) 바울과 빌립보 교회의 친밀성
  빌립보 교회의 초기 교인들의 신분이 각계 각층이었고 주로 이방인들로서 회당을 구성할 만한 유대인들이 없었다. 처음에 빌립보 교회는 여자들이 현저하게 많았다. 이것은 마케도냐에서 여자들이 우세했던 상황과 일치한다. 누가는 개척 교회를 돕기 위해 빌립보에 남았던 것 같다. 이 사실은 누가가 빌립보 전도에 관한 그의 이야기를 끝낼 때 "우리들"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알 수 있다(행16:40, 17:1-4). 빌립보 교회 교인들과 바울은 아주 친밀하게 연관되어 있다. 이 서신의 내용중에서 데살로니가와 고린도에서 바울이 사역중일 때, 그의 사역을 위하여 후원함으로써 그에 대한 따듯한 애정을 표현했으며(빌4:15), 그 후에 다른 선물들도 보냈음이 명백하다(고후11:9). 바울은 제3차 전도여행 중 빌립보 에배소에서의 사역을 끝내자 마자 겨울을 보내기 위해 고린도로 내려가기 전에 떠난 지 약 5년만에 다시 방문한다. 그리스에서 석달을 보낸 후에 바울은 다시 빌립보를 방문하여 유월절을 보낸다(행20:3,6). 디모데전서 1:3은 바울이 로마의 감옥에서 석방된 후에 다시 빌립보 교인들과의 접촉이 상당히 자주 있었던 것으로 설명한다. 그들과 바울이 보낸 대리인을 통하여(행18:5, 19:22, 고후11:9, 빌2:25), 또는 서신을 통하여(빌3:1,18) 통신이 유지되었다.  
3. 기록 장소와 연대   
1 기록장소
  바울은 감옥에 있었음이 틀림이 없다. 본 서신에 '매임'이라는 말이 바울의 형편을 설명해 준다(빌1:7,13,16). 중요한 문제는 투옥된 사실을 확인하는 것이다. 사도행전에 보면, 바울이 두 번 투옥된 일, 즉 가이사랴(행23:33-26:32)와 로마(28:16-31)에서 투옥된 사실을 말하고 있지만 고린도후서 6:5과 11:23을 보면, 바울이 전도 여행 중에 짧지만 여러 번에 걸쳐 투옥을 경험한 것이 분명하다. 빌립보서 기록장소로 전통적인 견해는 로마로 간주한다.  
2 기록연대
  본 서신은 바울이 로마의 옥중에 있을 때 기록한 것으로 그가 풀려날 것을 확신한 점등을 볼 때 옥중 생활의 말기인 A.D.62-63년경에 기록되었다고 추측할 수 있다.   
4. 빌립보서를 기록한 이유   
1 일차적인 이유   
  바울이 기록한 빌립보서의 내용으로 볼 때 그는 빌립보 교회가 안고 있는 문제들을 듣게 되었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를 도울 수 있게 되기를 바랐고 또 그렇게 하기 위한 많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음을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이 빌립보 교회로 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상황이 그렇지 않음을 인하여 바울은 자신의 가까이 있는 이들 가운데 누구를 천거할 것인지를 놓고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디모데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을 고려하면서 그들이 어떤 역할을 감당할 수 있을지를 저울질하여 본 뒤 바울은 디모데가 가장 바람직할 것이라고 생각하였던 것 같다. 그러나 모든 정황으로 보아 디모데는 갈 수가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 안타까웠고, 이에 대한 대안으로 에바브로디도를 생각하게 되었다. 에바브로디도는 빌립보 교회가 문제에 휩쓸리기 이전에 바울에게 보내졌으며 이는 빌립보 교회의 단합된 힘을 상징하는 상징적 요소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에바브로디도가 그들의 기대나 목적과는 달리 바울에게 도착한 뒤 심각한 병을 앓게 되어, 바울의 근심을 불러오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고,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도 실망과 우려를 낳게 하고 말았던 것을 기억하였다. 바울은 최선책으로 디모데를 생각하고 있었으나 에바브로디도를 보내며 소개하는 내용을 통하여 볼 때, 에바브로디도의 최근의 근황은 에바브로디도 본래적 사명인 바울을 돕는 자로서의 역할뿐만 아니라 함께 군사된 자요 동역자로 활동하는 자임을 말하므로 에바브로디도가 디모데 못지 않은 역할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을 고려한 듯 하다. 따라서 에바브로디도를 맞이하는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에게 그를 영접하는 자세가 어떠하여야 할 것인지를 주지시키고 있다. 이를 반증하듯 바울이 급히 에바브로디도를 보낼 마음을 갖게 된 것은 단순히 에바브로디도가 병들었던 일을 인하여 빌립보 교회의 근심과 에바브로디도의 근심을 고려하는 정도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에바브로디도를 통하여 빌립보 교회가 에바브로디도가 바울에게 떠날 당시의 위치로 회복되게 하고자 하는 의지와 분열된 교회의 분위기를 회복하게 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을 기대하는 것이다.   

2 이차적인 이유
1) 첫째는 1:5, 4:10-11이하에서 바울은 교회가 그들에게 보내 주었던 관심어린 사랑과 물질적인 도움 등에 대하여 따듯한 보답의 말을 하기 위해 기록하였다.
2) 둘째는 빌립보 교회에 있었던 여러 가지 어려운 일들에 대해 교훈하기 위해 기록하였다. 빌립보 교회에 가장 심각했던 문제는 불일치였다. 바울은 '모든'이란 말(1:1,4,7,8,25, 2:26, 4:21)을 빈번히 사용하면서 통일성과 일치에 대해 말하였다.
3) 셋째는 성도들의 일반적인 삶에 대한 권면이다.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겸손한 마음과 자세로 남을 돕고 사랑하라고 권면했다. 그는 고통중에서 기뻐할 것과 고상한 덕을 추구할 것과 서로 의견을 좁혀서 협력하는 마음을 가지라고 강력히 권고했다. 그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구원의 충족성을 인정하지 않고 율법의 요구를 주장하는 율법주의자들을 상종치 말라고 강력히 경고하고 저들 가운데  깃들어 있는 완전주의자 요소를 비난했으며 쾌락주의자들과 물질주의자들을 책망했다.   

5. 빌립보서의 구조(Diagram)
A: Greetings     1: 1-2
주 안에서 은혜와 평강이 있을지어다
 B: Paul's situation 1     1: 3-26
 고난 중의 감사, 기도, 복음 진보를 위한 삶
 C: First sermon     1:27 - 2:1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라
 D: Paul's hope and asking    2:19-30
 바울의 소망과 :
G: Greetings    4:21-2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있을지어다.

※빌립보서의 Diagram 설명
1) 빌립보서는 명백한 대칭구조이다.
2) 인사와 인사, 상황과 상황, 설교와 설교가 바울의 바람을 중심으로 대칭하고 있다. 전자는 각각 정적인 면을 가지고 있고, 후자는 각각 실천적이고 적극적인 면을
3) 구조를 통해 볼 때 빌립보서는 바울의 바람(소망)을 전환점으로 하여 전개되고 있다. 빌립보 교회를 돕기 위하여 그곳에 가고 싶어하는 간절함을 본 서신은 담고 있다. 그러나 자신의 환경이 이를 허락지 않으므로 바울은 디모데를 보내고 싶으나 역시 사정이 여의치 않으므로 고민끝에 에바브로디도를 급히 보냄으로 자신의 간절한 소망을 대신하게 한다.
4) D를 전환점으로 하여 대칭을 이루고 있다.   
 
빌립보서 강해 듣기

http://www.bamjoongsori.org/bil1.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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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빌립보서 file blue 2007-10-02 128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