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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Oct

요한계시록 강해

작성자: blue 조회 수: 10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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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강해


요한계시록의 저자는 요한 사도이다.

주후 2, 3세기의 이레니우스, 터툴리안, 히폴리투스 등은 본서를 요한 사도의 저작으로 인용하였고

서방교회에서는 일찍부터 본서가 요한 사도의 저작으로 인정되었다.

동방교회에서는 오랫 동안 논란되었으나,

주후 2, 3세기의 순교자 저스틴,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 오리겐 등은 본서를 요한 사도의 저작으로 인용하였고,

특히 수리아의 가장 위대한 교부 에브라임 시루스는 계시록을 반복해서 정경으로 그리고 요한 사도의 저작으로 인용하였다.

요한계시록의 저작 시기에 관하여, 어떤 이들은 로마의 네로 황제 때인 주후 68년 혹은 69년경으로 보지만,

다른 이들은 도미시안 황제 때인 주후 95년 혹은 96년경으로 본다.

유세비우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 이레니우스 등에 의하면,

요한 사도는 도미시안 황제의 통치 제15년에 밧모섬에 유배되었고(주후 95년) 도미시안 통치 말기에(주후 96년) 그 섬에서 이 계시를 보았고

도미시안이 죽은 후 네르바 황제(주후 96-98년)의 통치 초기에 에베소로 돌아와 트라얀 황제(주후 98-117년) 때까지 에베소에 머물렀다.

요한계시록의 특징적 주제는 종말 예언이다. 요한계시록은 종말 사건들, 특히 앞으로 있을 대환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마지막 심판, 부활 및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예언이다. 이것은 순종하는 성도들에게는 믿음과 인내로 대환난을 잘 견디고 마귀와 세상의 악에 지거나 타협치 말고 주의 재림을 맞이하게 하려고 주신 위로와 격려의 말씀이지만, 거역하는 악인들에게는 무서운 경고의 말씀이다.
요한계시록의 내용은 1장: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2~3장: 일곱 교회들에 주신 교훈, 4장: 하늘 보좌의 광경, 5장: 어린양, 6장: 첫째 인~여섯째 인, 7장: 흰옷 입은 무리들, 8장: 일곱째 인, 첫째 나팔~넷째 나팔, 9장: 다섯째 나팔~여섯째 나팔, 10장: 작은 책, 11장: 두 증인, 일곱째 나팔, 12장: 사탄이 내어쫓김, 13장: 두 짐승, 14장: 구속받은 성도들(14만 4천명), 15장: 승리자의 노래, 16장: 일곱 대접, 17장: 큰 음녀, 18장: 바벨론의 멸망, 19장: 하늘의 찬송, 백마 탄 자의 심판(그리스도의 재림), 20장: 천년왕국과 대심판, 21장: 새 하늘과 새 땅, 새 예루살렘, 22장: 재림의 확실한 약속 등이다.

제1장:에수 그리스도의계시
요한계시록의 주된 내용은 종말 예언이다. 요한계시록 1장은 이 책의 내용과, 요한 사도의 기원과 송영, 그리고 요한이 계시를 받은 경위 등을 기록한다.

1-3절, 계시의 성격

본문은 본서의 내용인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의 원천, 주체, 내용, 목적, 천적 전달자, 인간적 전달자, 방법, 계시와 성도의 관계, 계시의 복됨 등을 증거한다.

[1]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
요한계시록의 내용은 한마디로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신 계시이다. 요한계시록 22:16,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거하게 하였노라." 계시란,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 보여주는 것을 뜻한다.

첫째로, 계시의 원천은 하나님이시다. 이 계시는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주신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자신의 뜻을 계시하여 주셨다. 히브리서 1:1, 2,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사실상, 진리는 하나님께서만 계시하실 수 있다. 구원의 진리도, 종말 사건들의 진리도 그러하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라는 말씀에서와 같이, 성경에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는 자주 구별되신다. 여기에 삼위일체(三位一體)의 신비가 있다. 성경은 삼위(三位)의 구별을 하나님, 주 예수 그리스도, 성령으로, 혹은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의 영으로 표현한다. 신성(神性)에 있어서 아버지와 아들은 구별되신다. 그 두 분의 인격적 관계는 신비에 속한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또한 인성(人性)에 있어서도 하나님과 구별되신다. 예수님은 참 하나님이신 동시에 참 사람이시기 때문에 사람이신(딤전 2:5) 그는 하나님과 구별되신다. 예수께서는 신성과 인성을 가지신 한 인격이시며 하나님과 인간 예수와의 인격적 관계는 역시 신비에 속한다.

이렇게 삼위의 구별이 성경에 분명히 나타나 있고 그들의 관계성이 이해하기 어려운 신비에 속함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하나님이라고 고백하는 까닭은 성경이 그의 신성에 대해 충만히 증거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참 하나님'(요일 5:20) 혹은 '우리의 크신 하나님'(딛 2:13)으로 불리우셨다. 그는 갈릴리 바다 속에 있는 한 물고기의 입 속의 은전 한 세겔을 보셨다(마 17:29). 또 그는 하나님만 하실 수 있는 많은 기적들을 행하셨다(5병 2어, 죽은 자들을 살리심 등). 또 그는 하나님과 나란히 영광과 찬송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셨다(계 5:13). 이와 같이 성경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가 구별되면서도 신적 본질과 본체에 있어서 하나이심을 증거한다. 즉 성경은 한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이다. 여기에 삼위일체의 신비가 있다.

둘째로, 계시의 주체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예수께서는 계시의 내용을 하나님께 받아 알려주셨다. 사도 바울이 받은 구원의 복음도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이며(갈 1:12), 요한 사도가 받은 종말 예언도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이다(계 1:1). 이 말씀은 요한계시록의 신적 권위성을 다시 한번 더 증거한다.

셋째로, 계시의 내용은 '반드시 속히 될 일들'이다. 이것은 미래의 일들, 특히 종말 사건들이다. 그것들 속에는 대환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마지막 심판, 죽은 자들의 부활, 새 하늘과 새 땅 등이 포함된다. '반드시'라는 말은 계시된 내용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는 뜻이다. 종말 예언의 내용은 진실하고 확실하다. 또 '속히'라는 말은 하나님의 마음을 나타낸다. 이 계시의 내용들은 반드시 속히 될 일들이다. 이 말씀을 주신 지 2000년이 지났다. 교회는 이 말씀대로 때가 가까움을 의식하며 살아왔다. 우리는 하나님의 시간을 알 수 없으므로 항상 종말 의식을 가져야 한다. 사람의 편에서 볼 때 하나님의 일이 더딘 것 같지만, 하나님은 그의 일을 속히 이루실 것이다.

넷째로, 계시의 목적은 '그 종들에게 보이시기 위함'이다. '그 종들'은 주의 사도들과 모든 제자들을 가리킨다. 로마서 1: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유다서 1:1,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야고보의 형제인 유다는." 로마서 6:22,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이 마지막은 영생이라." 모든 성도는 하나님의 종이다. 요한계시록은 바로 우리를 위한 책이다.

다섯째로, 계시의 천적 전달자는 천사이며, 여섯째로, 계시의 인적 전달자는 그의 종 요한이다. 요한계시록 22:8, "이것들을 보고 들은 자는 나 요한이니 내가 듣고 볼 때에 이 일을 내게 보이던 천사의 발 앞에 경배하려고 엎드렸더니."

일곱째로, 계시의 방법은 상징으로 나타내심이다. '지시하신'이라는 원어(세마이노)는 '상징으로 나타내다'는 뜻이다. 이것은 본서의 내용이 증거하는 바이다. 요한계시록은 종말 사건들에 대한 상징적 예언의 책이다.

[2]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의 본 것을 다 증거하였느니라.
본절은 계속하여 계시의 기술자와 그 내용과 그것의 충분함을 증거한다. 첫째로, 계시의 기술자는 요한 자신이다. 요한은 자기가 받은 계시를 책으로 기록하였다. 둘째로, 계시의 내용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의 본 것'이다. 하나님께서 주신 이 계시는 하나님의 말씀이며 주께서 친히 증거하신 진리이며, 요한 사도가 본 바이었다. 본서에는 '본다'는 동사(에이돈)가 57회나 사용되었고, 그 중에 '또 내가 보니'라는 표현(카이 에이돈)이 32회나 나온다. 요한 사도는 많은 상징적 내용들을 환상 중에 보았다. 셋째로, '다 증거하였다'는 말씀은 요한이 기록한 본서가 하나님의 계시를 원만하고 충분하게 기록하였음을 증거한다. 성경은 하나님의 충족한 말씀이다. 그 말씀은 우리를 온전케 하고 선한 일을 위하여 온전히 준비되게 한다(딤후 3:16, 17). 그러므로 이 책에 무엇을 가감해서는 안된다(계 22:18, 19).

[3]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본절은 계시와 성도의 관계, 계시의 복됨, 그리고 계시된 내용의 긴급성을 증거한다. 첫째로, 성도들은 하나님의 계시를 읽고 듣고 지켜야 한다. 옛날에는 한 사람이 읽고 나머지 사람들은 들었다. 그래서 읽는 자(단수명사)와 듣는 자들(복수명사)이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감사하게도 모든 성도들이 마음껏 읽을 수 있다. 우리는 성경책을 많이 읽고 듣고 지켜야 한다. 지킨다는 말은 말씀을 보수(保守)하고 실천하는 것을 가리킨다. 우리는 성경 말씀을 하나도 버리지 말고 다 보수하고 실천해야 한다.

둘째로,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은 복이 있다. 특히 계시록을 통한 복은 환난을 대비함과 인내와 위로의 복이고(13:10; 14:12) 또한 성도가 환난과 죄악을 이겨 마침내 천국과 영생을 누리는 복이다(22:5, 17). 계시의 책인 성경은 그것을 읽고 듣고 지키는 자들에게 참으로 복되다.

셋째로, 계시된 내용은 긴급한 일들이다. "[마지막] 때가 가깝다." 성도에게는 항상 종말 의식이 필요하다. 오늘날에는 더욱 그러하다. 지구의 종말이 가깝다. 본서와 성경 다른 곳들에 예언된 세상 종말의 징조들, 예를 들어 거짓 목사들의 나타남, 교회들의 배교(背敎), 전쟁, 기근, 전염병, 지진, 핍박, 세계 복음화 등이 이미 많이 나타나 있다. 자연계에도 이상 징조들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 예컨대, 자원의 고갈, 환경의 오염, 생태계의 파괴, 오존층의 파괴, 지구 온난화 현상 등이 그러하다. 세상의 종말과 주의 재림의 때가 가까워지고 있다. 그러므로 진실한 성도들은 이 계시의 책에 주목해야 한다. 요한계시록은 어려운 책이므로 너무 주관적으로 해석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겠지만, 그러나 우리가 덮어두어서는 안될 중요한 책이다.

결론적으로, 1절부터 3절까지에서 우리는 몇 가지 교훈을 찾는다. 첫째로, 우리는 요한계시록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야 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이다. 이것은 신적 권위로 인쳐진 말씀이다. 둘째로, 우리는 요한계시록을 종말 예언의 말씀으로 받아야 한다. 이 책은 미래의 역사에 대한 지도책과 같다. 이 책은 미래를 향해 가는 모든 성도의 지침서이다. 셋째로, 우리는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기를 힘써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이렇게 이 책을 읽고 듣고 지키는 자들은 복되다. 그들은 이 책을 통해 장차 올 대환난을 대비할 믿음과 인내와 위로를 얻을 것이며, 마귀와 세상과 죄악을 이기고 마침내 천국과 영생에 들어가는 복을 얻을 것이다. 우리는 이 책의 말씀을 받고 열심히 읽고 듣고 지키자.

4-8절, 문안과 송영
4-8절에는 요한 사도의 문안 인사와 송영이 기록되어 있다.
[4]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와 그 보좌 앞에 일곱 영과.

요한 사도는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였다. 종말 예언의 계시인 본서는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의 형태로 되어 있다. 여기에 아시아는 소아시아, 지금의 터어키 지역을 가리킨다. 요한은 먼저 삼위 하나님으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그들에게 있기를 기원하였다.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는 영원 자존(永遠自存)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가리킨다. 출애굽기 3:14,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그 보좌 앞에 일곱 영들은 성령을 가리키는데, 그것은 성령께서 여러 신들이라는 뜻이 아니고 그의 완전한 지혜와 지식, 충만한 위엄과 능력을 상징한다. 요한계시록 5:6, "[어린양의 일곱 눈은] 온 땅에 보내심을 입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 시편 139:7, "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며."

[5]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는 그가 충성된 증인, 그의 부활, 땅의 임금들의 머리되심을 언급하였다. 예수 그리스도는 참으로 충성된 증인이셨다. 증인이라는 헬라어(말투스)는 순교자라는 뜻도 가진다. 참 증인은 죽기까지 진리를 증거하는 자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죽기까지 증거하신 충성된 증인이셨다. 또한 그는 부활하셨고 지금도 살아계셔서 땅의 왕들의 머리가 되셨다. 그는 모든 교회의 우두머리인 동시에 온 세계의 왕들과 정치가들의 우두머리이시다. 우리는 만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있다.

요한은 삼위 하나님으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그들에게 있기를 기원하였다. 은혜와 평강은 성도에게 참으로 요긴한 것이다. 은혜는 하나님의 구원의 사랑이다. 우리는 은혜를 받아야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고 더 잘 믿을 수 있고 또 죄 안짓고 바르게 살 수 있다. 평강은 은혜의 결과로서 누리는 마음의 평안과 환경적 안전이다. 평강 속에는 모든 좋은 것이 다 들어 있다.

본절 중간부터는 예수께 대한 송영이 나온다.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다수의 전통사본들은 '해방하시고' 대신에 '씻으시고'라고 되어 있다. 뜻은 비슷하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의 소식의 내용이다. 이것이 죄인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기쁜 소식의 내용이다. 죄가 인생의 근본 문제이다. 범죄한 사람은 누구나 영원히 죽는다. 영원히 멸망한다. 지옥에 던지운다. 그러므로 죄씻음을 받아야 한다. 죄로부터 구원을 받아야 한다. 죄씻음의 구원, 이것이 예수께서 주시는 구원이다.

[6] 그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셨다는 것은 구원받은자의 특권을 가리킨다.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가 되었고 하나님의 제사장들이 되었다. 하나님과 성도들 간의 중보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이시다.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담대히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간다. 우리도 요한과 함께 우리를 죄에서 건져주시고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아주신 예수 그리스도께 영광과 능력을 돌리자.

[7]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본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약속이다.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이것은 계시록의 중심 주제이기도 하다. 예수님의 승천시 구름이 그를 가리웠듯이 그의 재림시에도 구름과 함께 오실 것이다. 구름은 그의 영광의 신비를 부분적으로 가리울 것이다. 그의 재림은 각인의 눈이 볼 수 있는 사건일 것이다. 그리고 심판주의 나타나심 앞에 어떤 이들은 기쁨과 감격의 눈물을 흘릴 것이지만, 다른 많은 이들은 후회와 공포의 부르짖음을 할 것이다. '그러하리라, 아멘'이라는 마지막 말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확실성을 강조하는 어구이다.
그리스도인은 이 땅의 것을 소망하지 않는다. 이 땅의 것들은 잠시 있다가 없어질 것들이다. 하나님의 심판의 날에 다 불탈 것이다. 그것들은 다 불 심판을 위해 있을 뿐이다. 우리의 소망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가 다시 오실 것이다. 우리의 기대는 전적으로 거기에 있다. 그가 다시 오시면 온 세상을 새롭게 하실 것이다.

[8]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본절은 다시 하나님의 영원 자존성을 증거한다. '주 하나님'이라는 말은 구약의 여호와 하나님의 신약적 표현이다. 구약의 여호와는 신약성경에서 '주'라고 번역되어 있다. '알파와 오메가'는 헬라어 알파벳의 첫 글자와 끝 글자이다. 하나님은 역사의 시작과 끝이시다. 시작은 창조요 끝은 심판이다. 그는 창조의 하나님이시요 심판의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창조의 사건을 기록한 창세기의 하나님이실 뿐만 아니라, 역사의 종말을 예언한 계시록의 하나님이시다. 그는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 곧 영원자존하신 하나님이시다. 그는 또한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모든 피조물은 다 제한성을 가지고 있지만 하나님께는 제한성이 없다. 그에게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 여기에 하나님과 모든 피조물의 질적 차이성이 있다. 이러한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 안에 인생과 역사의 모든 해답이 있다.
결론적으로, 4절부터 8절까지에서 우리는 많은 진리와 교훈을 발견한다. 첫째로, 우리는 영원하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자. 그는 또한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그는 살아계셔서 역사를 주관하시고 인생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섭리의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그 분을 믿고 의지하자.
둘째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소망하자. 그는 충성된 증인이시고 그는 부활하셔서 만왕의 왕이 되셨다. 그는 장차 하늘로부터 내려오실 것이다. 우리는 이 땅의 것을 소망하지 말고 그의 재림과 새 하늘과 새 땅을 대망하자.
셋째로, 우리는 성도의 특권을 감사한 마음으로 누리자. 우리는 주의 사랑 가운데 죄씻음을 받았고 하나님의 나라가 되었고 제사장들이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죄씻음을 받은 자답게 거룩하게 살고 하나님의 제사장답게 담대하게, 당당하게 살아야 한다.

9-11절, 계시를 받은 경위
9-11절은 요한 사도가 어디에서, 언제, 어떻게 계시를 받았는지, 그 계시 받은 경위를 말한다.
[9]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인하여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

요한은 자신을 성도들의 형제라고 표현하였다. 이것은 노사도의 겸손한 인품을 나타낸다. 교회의 직분자들은 겸손히 처신해야 한다. 그러나 일반 성도들은 직분자들을 예수님의 이름 때문에 존경해야 한다. 요한은 자신을 또한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고 표현하였다. 성도들에게는 예수 믿기 때문에 받는 환난, 고통, 오해, 멸시, 핍박이 있다. 우리는 다 그 환난에 동참하는 자들이다. 그러나 우리는 동시에 그의 나라와 참음에도 동참하는 자들이다. 환난이 있지만, 그의 나라도 있다. 참으면 영광도 있다(딤후 2:12). 십자가의 낮아지심 뒤에는 부활과 승천의 높아지심도 있다.

요한은 밧모섬에서 이 계시를 받았다.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인하여"라는 말씀은 2절에 언급한 대로 요한이 받은 계시의 내용을 의미한다. 초대교회의 역사 기록에 보면, 요한 사도는 밧모섬에 유배를 당하였었다. 그러나 그 고난의 밧모섬이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받는 장소가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이 계시를 위해 그를 밧모섬에 유배를 당하게 하신 것이었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항상 모든 일이 합하여 선을 이룬다(롬 8:28).

[10]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하여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요한 사도는 주의 날에 계시를 받았다. 그는 주의 날에 성령에 감동하여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었다. 부활하신 주께서 제자들에게 다시 나타나신 날도 주일이었고(요 20:19, 26), 성령께서 강림하신 날도 주일이었다(행 2:1; 레 23:15, 16). 신약의 주일은 하나님께서 구약의 토요 안식일 대신 그리스도인들에게 안식일로 구별하여 주신 날이다.

[11] 가로되 너 보는 것을 책에 써서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일곱 교회에 보내라 하시기로.
요한은 보는 것을 책에 써서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일곱 교회에 보내라는 음성을 들었다. 그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이었다. 하나님께서 요한 사도가 본 내용을 책에 기록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계시 진리를 더 잘 보관하고 전파하고 그래서 성도들로 하여금 믿음에 더 굳게 서고 더 큰 위로를 얻게 하기 위함이셨다. 여기에 성경의 필요성과 목적이 있다. 기독교는 책의 종교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구원과 온전함을 위해 성경책을 주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책에 주목하고 귀를 기울여야 한다.

12-16절, 예수님의 영광스럽고 엄위하신 모습
12-16절은 요한이 본 일곱 금촛대와 촛대 사이에 서신 영광스럽고 엄위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묘사한다.
[12] 몸을 돌이켜 나더러 말한 음성을 알아 보려고 하여 돌이킬 때에 일곱 금촛대를 보았는데.
요한 사도가 본 첫번째 내용은 일곱 금촛대이었다. 그것은 일곱 교회를 가리켰다. 이 책의 주된 관심은 교회이다. 성경은 교회를 위해 주신 책이다. 하나님의 뜻은 참된 교회의 설립과 성장과 완성에 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참된 교회의 건립을 위해 협력할 것이다.

[13-15]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그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 같고 그의 발은 풀무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소리와 같으며.
요한 사도가 본 두 번째 내용은 일곱 금촛대 사이에 계신 인자 같은 이이었다. 그는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실제의 모습을 묘사한 것이 아니고 그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묘사한 것이 분명하다. 그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있는 것은 그의 대제사장과 왕으로서의 영광과 엄위함을 나타낸다. 그의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은 것은 그의 죄 없는 순결성을 나타낸다. 그의 눈이 불꽃 같은 것은 그의 깊고 철저한 통찰력을 나타낸다. 그의 발이 풀무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은 것은 그의 심판의 강한 힘을 나타낸다. 그의 음성이 많은 물소리와 같은 것은 그의 권위 있는 말씀들을 나타낸다.

[16] 그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취는 것 같더라.
그의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는 것은 그가 교회의 목사를 붙드시고 보호하시고 사용하심을 나타낸다. 그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는 것은 사람의 영혼을 쪼개는 그의 예리한 말씀을 나타낸다. 그의 얼굴이 해가 힘있게 비취는 것 같은 것은 그의 크신 영광을 나타낸다. 부활, 승천하시고 장차 재림하실 예수 그리스도는 참으로 엄위하시고 영화로우시다. 그 영광의 주께서 교회의 머리이시고 인류의 역사를 주장하시는 분이시다. 그는 종말의 사건들을 홀로 주장하시는 분이시다.

17-20절, 주께서 하신 말씀
17-20절은 영광의 주께서 요한에게 친히 하신 말씀을 기록한다.
[17] 내가 볼 때에 그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가라사대, 두려워 말라.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고 그 앞에 엎드러졌다. 사람들 중에 그의 신적 영광을 보고 살 자는 아무도 없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보잘 것 없는 연약한 피조물에 불과하다. 예수께서 자신을 처음이요 나중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그가 본질과 본체에 있어서 아버지와 하나이심을 증거한다. 이것이 삼위일체의 신비이다. 예수 그리스도, 그가 바로 처음과 나중, 곧 역사의 시작과 끝을 주장하시는 참 하나님이시다. 이것이 성경이 증거하는 한 기본적 진리이다.

[18] 곧 산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죽으셨으나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 그는 이제 영원히 살아계신 주님이시다. 뿐만 아니라, 그는 사망과 지옥의 열쇠를 가지고 계신다. 열쇠는 주권(主權)을 뜻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생명과 심판의 주인이시다.

[19, 20] 그러므로 네 본 것과 이제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 네 본 것은 내 오른손에 일곱 별의 비밀과 일곱 금촛대라.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네 본 것'은 일곱 금촛대와 그 가운데 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과 음성이며, '이제 있는 일'은 사도 시대의 교회들의 일들을 가리키고 '장차 될 일'은 교회 역사상 되어질 일들과 주님 재림 직전의 일들과 인류의 최종 상태에 대한 것들이다.
일곱 교회와 일곱 별의 '일곱'은 땅 위에 있는 교회들 전체를 대표한 듯하다.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라고 하였는데, 이 사자는 교회의 목사를 가리킨다. '일곱 별의 비밀'이라고 한 것은 역사상 어떤 교회의 목사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므로 '비밀'이라고 표현한 듯하다. 여하튼, 교회의 목사들은 주의 오른손에 있다. 그러므로 성도는 너무 염려하거나 너무 낙심해서는 안된다. 주께서는 일곱 교회들 사이에 다니시며 일곱 교회의 사자들을 오른 손에 붙들고 보호하시고 자유로이 사용하신다.

결론적으로, 9절부터 20절까지에서 우리는 두어 가지 진리와 교훈을 깨닫는다. 첫째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과 위엄을 깨닫자. 우리는 그의 성결과 위엄, 그의 불꽃 같은 눈길, 권위 있는 말씀들을 깨닫자.
둘째로, 우리는 교회의 성격도 깨닫자. 첫째, 우리는 교회의 존귀함을 깨달아야 한다. 교회는 성도들을 가리킨다. 교회를 금촛대로 보여주신 것은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서 금처럼 귀한 존재임을 뜻한다. 구약 시대에 대제사장이 입는 옷의 흉패와 견대에 있는 12보석들은 하나님의 택하신 성도들이 심히 존귀함을 나타낸다. 주께서는 바로 이런 귀한 교회들 사이에 거니신다. 교회는 하나님의 특별한 관심과 사랑의 대상이다.

둘째, 우리는 교회의 사명을 깨달아야 한다. 촛대는 어두운 곳에 빛을 발하는 것이 사명이듯이, 교회의 사명은 세상에 빛을 비추는 것이다. 이 빛은 전도와 선행을 가리킨다. 베드로전서 2:9,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디모데후서 4:2,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마태복음 5:16,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셋째, 우리는 교회가 하나님의 도구임을 깨달아야 한다. 교회의 목사들은 하나님의 손 안에 있는 별들이다. 그가 그들을 붙드시고 보호하시고 사용하실 것이다. 혹은 그가 그들 중 어떤 이들을 버리실 수도 있다. 교회는 하나님 앞에 쓰임 받는 도구이다. 여기에 교회의 영광도 있지만 교회의 책임과 의무도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쓰임 받는 도구가 되어야 한다.

제2장: 일곱 교회들에 주는 교훈

요한계시록 2장은 아시아의 일곱 교회들 중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교회들의 목사들에게 주신 교훈이다. 그것은 첫 사랑의 회복, 죽도록 할 충성, 순결성 등을 강조한다.
1-7절, 에베소 교회의 목사에게 주신 교훈
[1]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오른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가 가라사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들에 보내진 모든 편지는 그 교회의 사자, 즉 감독자, 오늘날로 말하면 목사에게 보내졌다. 목사는 교회를 인도하는 자이다. 마치 목자가 양무리를 인도하듯이, 목사는 하나님의 양무리인 교회를 인도한다. 장로들은 이 일에 목사와 함께한다. 그러므로 목사가 바로 서면 교회는 바로 설 것이고, 목사가 잘못되면 교회에는 문제가 생기게 될 것이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주 예수께서는 오른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촛대 사이에 다니신다. 그는 모든 것을 아신다. 그는 세우실 능력도, 폐하실 능력도 가지고 계신다. 하나님은 주권자이시므로 자신의 원하시는 바를 다 이루신다. 그러므로 인생은 하나님 앞에 잠잠해야 한다. 우리는 고요히 그를 의지해야 한다.

[2, 3]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전지하신 주께서는 에베소 교회 목사의 선한 행위들을 아신다고 말씀하신다. 주께서는 그의 믿음의 수고와 인내를 아신다. 때때로 성도들은 목사의 중심을 모를지라도 주께서는 아신다. 특히 에베소 교회의 목사는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하였고 자칭 사도라 하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드러내었다. 진리를 지키기 위해 싸우는 일은 많은 원수들과 싸워야 하는 힘든 일이요 낙심하기 쉬운 일이지만, 그는 이 일을 잘 수행하고 잘 참고 피곤하지 않았다. '게으르지 않다'는 원어는 '피곤하지 않다'는 뜻이다.

[4]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나 주께서는 에베소 교회 목사의 현재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책망하신다. 그것은 처음 사랑을 버린 일이었다. 그가 처음 사명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는 주를 뜨겁게 사랑하고 그의 복음 진리를 전하고 지키는 일을 위하여 수고하고 참고 성실하였으나, 지금은 처음에 가졌던 그 사랑과 그 열심과 그 성실함을 버렸다는 말이다. 누구든지 지금 주를 진실히 사랑함이 없이는 아무도 주의 일을 바르게 수행할 수 없다.

[5]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주께서는 그에게 회개를 촉구하신다. 물론 근본적인 회개는 사람의 일생에 한번만 있다. 하나님 없이 죄 가운데서 방황하며 살던 사람이 죄를 떠나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회개가 그것이다. 그것은 단회적 성격의 회개이다. 이것은 '생명 얻는 회개'(행 11:18)이다. 아직도 회개한 적이 없는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한다. 회개치 않는 자는 영원한 멸망을 받을 수밖에 없다(눅 13:3, 5). 그러나 이미 이런 회개를 한 자도 어떤 구체적 죄 가운데 빠졌을 때 그 죄로부터 돌이켜야 한다. 이러한 각개적 회개는 반복적이다. 구원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이지만, 그 은혜는 죄인 속에 반드시 회개와 믿음을 일으킴으로써 구원하는 은혜인 것이다.
주께서는 그에게 만일 네가 회개하지 않으면 네게 임하여 그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겠다고 말씀하셨다. 촛대를 옮기는 것은 교회를 폐하시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한국의 예루살렘이라고 불리우던 평양 교회, 그러나 신사참배를 가결했던 그 교회를 폐하신 것과 같다. 그것은 무서운 경고이다.

[6] 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
그러나 에베소 교회의 목사에게 선한 점도 있었다. 그것은 그가 니골라당의 행위를 미워한 것이었다. 니골라당은 14, 15절에 있는 대로 우상숭배와 음행을 허용하였다. 그들은 복음의 자유를 왜곡하고 남용하였던 것 같다. 주의 참된 종들은 이단들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
주 예수님의 말씀은 곧 성령의 말씀이다. 그리고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하신 말씀은 다른 교회들에게, 즉 지상의 모든 교회들의 사자들과 성도들에게, 그리고 오늘 우리 모두들에게 적용되는 말씀이다.
주께서는 우리가 이기는 자가 되어야 할 것을 강조하신다. 이긴다는 말은 죄와 사탄과 세상을 이긴다는 말이다. 이기는 자는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먹게 된다.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 과실을 먹는 것은 영생을 누리는 것을 의미한다. 지는 자, 곧 죄에 지고 사탄과 세상에 지는 자는 영생을 누리지 못할 것이다. 요한일서 5:4,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영원 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자는 영생을 얻고 이기는 자가 된다. 그러나 그것은 자동적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인간편에서 성실히 노력하는 것을 통해 된다. 진실히 믿는 자는 이긴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 이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1절부터 7절까지에서 우리는 몇 가지 교훈을 찾는다.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오래 참으면서 선행과 수고를 힘쓰자. 사람들은 우리의 중심을 몰라주어도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신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다 세고 계신다. 그러므로 낙심하거나 피곤해지지 말고 선을 행하고 진리를 위해 수고하자.
둘째로, 우리는 우리의 처음 사랑이 식어지지 않도록 늘 말씀과 기도로 깨어 있어야 한다. 신앙 생활에는 과거가 크게 중요하지 않다. 신앙 생활에는 현재가 중요하다. 현재 뒤로 물러나 있으면 책망을 피할 수 없다.
셋째로, 우리는 범죄한 일이 있으면 즉시 깨닫고 회개하기를 힘써야 한다.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렇지 않으면 주께서 우리를 버리실지도 모른다.

8-11절, 서머나 교회의 목사에게 주신 교훈
[8]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처음이요 나중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가라사대.
서머나 교회의 목사에게 말씀하시는 주님에 대한 묘사는 그 목사에게 큰 힘과 위로가 된다. '처음이요 나중이신' 그는 영원하신 하나님이시다. 그 영원하신 하나님만이 온 세상과 인간을 주관하신다. 그는 살아계시고 참되신 유일하신 하나님이시다. 또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인 그는 부활이요 생명이시다. 그는 죽음을 주관하신다. 비록 우리가 그를 위하여 죽는다 할지라도 그는 우리를 영광의 부활체로 다시 살리실 수 있고 참으로 다시 살리실 것이다. 그러므로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자는 세상과 죽음도 두렵지 않게 될 것이다. 그는 참된 성도들에게 큰 힘과 위로가 되신다.

[9]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훼방도 아노니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단의 회(會)라.

주께서는 서머나 교회의 목사의 환난과 궁핍을 아셨다. 주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이 세상에서 환난과 궁핍을 경험할 것이다. 사도행전 14:22,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거하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고." 히브리서 10:34, "너희가 갇힌 자를 동정하고 너희 산업을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한 것은 더 낫고 영구한 산업이 있는 줄 앎이라."
비록 서머나 교회의 목사가 환난과 궁핍 가운데 있었지만, 예수께서는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라고 평가하셨다. 인생의 참된 부요는 물질적인 데 있지 않고 영적인 데 있다. 물질적인 가치는 일시적이지만, 영적인 가치는 영원하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과 교통하며 하나님만 소망하며 유일한 위로로 삼고 하나님의 뜻만 행하며 사는 자는 이 세상에서 가장 부요한 자이다. 주께서는 우리가 하나님께 대해 부요한 자가 되라고 교훈하셨다(눅 12:21). 또 물질적으로 가난한 성도들이 신앙적으로 부요한 경우가 많다. 야고보서 2:5,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 하나님이 세상에 대하여는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아니하셨느냐?"

서머나 교회의 목사는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훼방도 받았다. 구약교회는 매우 타락하였다.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았고 또 주의 제자들과 성도들을 핍박하였다. 데살로니가전서 2:15, "유대인은 주 예수와 선지자들을 죽이고 우리를 쫓아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아니하고 모든 사람에게 대적이 되어." 그러나 실상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교회가 아니고 사탄의 회이었다. 하나님의 아들을 핍박하고 하나님의 종들과 성도들을 핍박하는 자들이 어떻게 참된 교회에 속하겠는가? 그들은 분명히 사탄의 회에 속한 자들이다.

[10]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서머나 교회의 목사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아야 했다. 고난은 기껏해야 우리의 육신의 목숨을 빼앗아가는 것뿐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영원한 생명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죽음의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마태복음 10:28,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고린도후서 5:1,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

서머나 교회에는 장차 10일 동안의 환난이 있을 것이며 마귀가 그들 가운데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할 것이었다. 그 교회의 목사가 견고히 섰음에도 불구하고 그 교회에 시험과 환난이 있을 것이었다. 10일 동안의 환난은 서머나 교회에게 닥칠 문자적으로 10일 간의 박해이든지 혹은 상징적으로 어떤 제한된 기간을 가리킬 것이다. 성도들이 당하는 핍박과 고난은 영속적이지 않고 지나가는 한 과정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핍박과 고난 가운데서도 믿음과 인내와 충성을 가져야 한다.

예수께서는 서머나 교회의 목사에게 죽도록 충성하라고 말씀하셨다. 충성은 끝까지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참된 충성은 죽음을 통해 증명될 것이다. 아니, 참 충성은 죽기 전까지는 증명될 수 없을 것이다. 요한계시록 12:11, "또 여러 형제가 어린양의 피와 자기의 증거하는 말을 인하여 저를 이기었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순교는 하나님께 대한 충성의 확실한 표이다. 그러나 참 하나님, 곧 신구약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을 위한 순교와 충성만이 의미가 있다.
주께서는 죽도록 충성하는 종에게 생명의 면류관을 주겠다고 약속하신다. 생명의 면류관은 면류관의 종류라기보다 생명의 영광 혹은 영광스러운 생명이라는 뜻일 것이다. 죽기까지 참된 믿음을 지키고 충성하는 자는 영생을 누릴 것이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 충성치 않는 자에게는 영생이 보장되지 않는다. 주님을 배반하고 떠난 자에게는 영생의 영광이 약속되지 않는다.

[11]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하나님 우편에 계신 주께서는 성령을 통해 서머나 교회의 목사에게 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교회들에게 말씀하신다. 주의 참된 종들과 성도들은 그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것은 오늘날 성경책을 읽고 듣고 묵상하는 것을 의미한다. 성경을 읽지 않는 자는 하나님을 거역하고 배반하는 자이다. 우리가 정말 하나님을 믿는 자라면 성경을 읽고 그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주께서는 또한 우리가 이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신다. 이기는 자는 환난과 핍박 가운데서도 믿음을 지키고 충성하며 순종하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않을 것이다. 둘째 사망의 해는 지옥 형벌을 말한다. 요한계시록 20:14,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21:8,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여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믿음을 잃어버리고 하나님께 대해 충성치 않고 순종치 않는 자는 지옥의 형벌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우리는 행위로 구원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참된 구원은 반드시 믿음과 인내와 충성과 순종의 삶을 수반한다.

결론적으로, 8절부터 11절까지에서 우리는 두 가지 교훈을 찾는다. 첫째로, 우리는 물질적으로 부요한 자가 되기를 구하지 말고 영적으로 부요한 자가 되기를 구하자. 사람들은 예수를 믿어도 물질적으로 부요한 자가 되기를 소원한다. 그러나 물질적 부요는 일시적 가치를 가질 뿐이지만, 영적 부요는 영원한 가치를 가진다. 영생은 백년 동안의 세상 생활과 비교할 수 없이 영광스럽다. 하나님은 온 세상을 가지고도 바꿀 수 없는 보화이시다. 성도의 참 믿음은 세상의 그 무엇과 비교할 수 없이 가치 있는 것이다. 우리는 믿음에 부요한 자가 되자.
둘째로, 우리는 환난과 순교를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서 죽도록 충성하자. 충성은 참 믿음의 증거이다. 그것은 이기는 자가 되는 길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충성하다가 죽으면 우리는 영광의 천국에 들어갈 것이다. 세상은 단지 우리의 육신적 목숨만을 위협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영생을 얻은 자들은 육신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세상을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서 죽도록 충성하자.

12-17절, 버가모 교회의 목사에게 주신 교훈
[12] 버가모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진 이가 가라사대.
버가모 교회의 목사에게 말씀하시는 주님은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진 이'로 묘사되었다.'좌우에 날선 검'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키든지 혹은 심판의 칼을 가리킬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좌우에 날선 예리한 칼과 같다. 히브리서 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예수께서 자신을 좌우에 날선 예리한 칼을 갖고 계신 자로 묘사하신 것은 버가모 교회의 목사에게 영적 전쟁이 필요함을 암시한다. 개인의 신앙 생활과 교회의 진리 운동은 영적 전쟁과 같다. 마귀와 불신앙과 비진리를 대항하여 싸울 이 전쟁에서 우리의 무기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뿐이다. 주께서 마귀의 시험을 물리치실 때 사용하셨듯이 오늘날 우리도 "기록되었으되"라는 말을 사용해야 한다.

[13] 네가 어디 사는 것을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단의 위가 있는 데라.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단의 거하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

버가모는 사탄의 위가 있는 곳이었다. 버가모는 우상숭배의 총본부와 같았다. 거기에는 제우스 신의 신전과 아테네 여신의 신전과 디오니소스 신의 신전 외에, 특히 뱀 모양의 의술의 신 에스큘라피우스 신의 신전이 있었고, 또한 로마 황제 아구스도를 숭배하는 신전도 있었다. 황제 숭배는 초대 교회 시대에 보편적인 한 풍조이었다. 사탄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교회를 혼란시켰고 성도들을 미혹하고 위협하였다.

그러나 버가모 교회의 목사는 행함이 있는 믿음의 사람이었고 죽음의 위협 속에서도 믿음에 굳게 선 자이었다. 전통사본에는 "내가 네 행위와 네가 어디 사는 것을 아노니"라고 되어 있다. 주 예수께서는 우리의 믿음과 우리의 행위가 어떠한 지 다 아신다. 버가모 교회의 목사는 주의 이름을 굳게 잡았고 주의 충성된 증인 혹은 순교자 안디바가 죽임을 당했을 때에도 주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다. 죽음의 위협 속에서 믿음을 지키는 자는 순교자 못지 않게 충성된 믿음의 사람이다. 버가모 교회의 목사는 그러한 사람이었고 주께서는 그 사실을 인정하고 칭찬하셨다.

[14, 15] 그러나 네게 두어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앞에 올무를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버가모 교회의 목사에게 책망도 하셨다. 우리에게 칭찬거리가 있으면 예수께서 우리에게 칭찬도 하실 것이지만, 우리에게 책망거리가 있으면 그가 우리에게 책망도 하실 것이다. 예수께서 그에게 하신 책망은 그 교회에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다는 것이었다. 발람의 교훈은 발람이 발락에게 이스라엘을 미혹하는 한 방책을 일러준 것을 말한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모압 여자들과 행음하게 하고 그 신들에게 제사한 제물을 함께 먹었으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진노하셨다(민 25:1-3). 그것은 발람의 간교한 조언에 의한 것이었다(민 31:16). 이와 비슷한 교훈이 버가모 교회 안에 들어온 니골라 당의 교훈이었다. 그것은 우상숭배와 음행을 용납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버가모 교회의 목사는 그런 자들을 용납하고 있었다.

오늘날도 교회는 우상숭배와 음행을 용납해서는 안된다. 오늘날 교회가 경계해야 할 우상숭배는 천주교회의 마리아 숭배와, 자유주의 신학의 인간 숭배와, 종교다원주의의 이방 종교 관용이다. 우상숭배의 용납은 하나님께 책망 받을 큰 잘못이다. 오늘날 교회는 또한 음행을 경계해야 한다. 현대 사회는 심히 음란한 사회이다. 현대 문화는 심히 음란하다. 오늘날 교회에는 심지어 동성애를 용납하는 경향까지도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교인들을 바로 가르치고 바로 훈련시키지 않는다면 우리는 주님께 큰 책망을 받을 수밖에 없다. 목사는 바른 교훈을 전하고 가르치며 교인들을 그 교훈대로 살도록 지도하고 관리해야 한다.

[16]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임하여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주께서는 버가모 교회의 목사에게 회개를 촉구하셨다. 교회 안에 우상숭배와 음행을 하는 자들을 용납하는 것은 교회의 목사가 회개할 죄이었다. 만일 목사가 회개하지 않는다면, 주께서 그 교회에 직접 개입하실 것이다. 교회가 권징을 회피하면 주께서 직접 개입하실 것이다. 주께서는 교인들 중 죄 가운데 있는 자들에게 직접 징벌을 내리실 것이다. 주께서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신다는 말씀을 보면 주의 입의 칼은 심판의 칼인 것처럼 보인다. 주님의 직접적 개입은 목사에게 큰 수치가 될 것이다. 그의 목회는 금과 은과 보석으로 건물을 짓는 것과 같은 목회가 되지 못할 것이다. 그의 상급은 크게 감소될 것이다. 그러므로 주께서 직접 개입하시기 전에 그는 교인들을 바르게 관리하고 필요할 때 적절히 권징을 시행해야 할 것이다.

[1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만나는 하늘 나라의 양식을 상징하는 것 같다. 시편 78:24, 25, "저희에게 만나를 비같이 내려 먹이시며 하늘 양식으로 주셨나니 사람이 권세 있는 자의 떡을 먹음이여 하나님이 식물을 충족히 주셨도다." 만나를 주셔서 먹게 하시는 것은 우리가 장차 주님과 누릴 사랑의 식탁 교제를 가리킬 것이다.
또 흰 돌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어 보인다. 옛 시대에 흰 돌은 운동 경기에서 이길 때에나, 재판에서 무죄 판결시에나, 큰 잔치에 입장할 때에 사용되었다고 한다. 과연 장차 우리가 받을 흰 돌은 그런 의미들을 다 포함하는 것 같다. 그 흰 돌은 세상에서의 영적 싸움에 승리한 자들에게 주어질 것이며,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무죄(無罪) 혹은 의롭다 하심의 판결을 받을 자들에게 주어질 것이며, 영광의 천국 잔치에 참여할 자들에게 주어질 것이다.
그 흰 돌 위에는 새 이름이 기록될 것인데, 그것은 받는 자밖에는 알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 새 이름은 천국에서 사용될 우리의 이름일지도 모른다. 여하튼 그 새 이름은 천국 백성으로서 우리가 누릴 복된 신분과 영광을 나타낸다.
결론적으로, 12절부터 17절까지에서 우리는 두 가지 분명한 교훈을 받는다. 첫째로, 우리는 버가모 교회의 목사처럼 사탄의 위가 있는 곳, 죽음의 위협이 있는 곳에서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굳게 붙잡고 주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않는 자가 되어야 한다. 장차 임할 대환난 시대에 대비하여 우리는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믿음을 준비해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우상숭배와 음행의 악을 포용하지 않아야 한다. 오늘 시대는 배교와 타협과 혼돈의 시대이다. 우리는 이 어두운 시대에 교리적인 혹은 윤리적인 악을 분별하고 용납하지 않아야 한다. 만일 우리가 악을 정죄하면서 악을 용납한다면 우리는 스스로를 부정하는 어리석은 자가 될 것이며 주님의 책망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18-29절, 두아디라 교회의 목사에게 주신 교훈
[18] 두아디라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그 눈이 불꽃 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 가라사대.
주님의 눈이 불꽃 같다고 한 것은 그의 통찰력의 날카로움을 나타내며 그의 발이 빛난 주석과 같다고 한 것은 그의 심판의 엄위함을 나타낸다. 주께서 두아디라 교회의 목사에게 이런 모습으로 표현된 것은 주께서 그 목사의 문제점을 통찰하시고 그가 포용한 악에 대해 심판하실 것을 암시한다. 오늘날도 주께서는 불꽃 같은 눈으로 우리도 보시며 우리의 행위도 판단하실 것이다.
[19] 내가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것보다 많도다.

http://oldfaith.net/exposit/new/2-27요한계시록.htm
         김효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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