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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Oct

목회서신(디모데전후서 및 디도서)

작성자: blue IP ADRESS: *.91.195.194 조회 수: 1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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딤모데전후서와 디도서는 오랫동안 목회서신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이용어가 정확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우리가 이 서신들을 목회신학의 교과서라고 부를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목회서신이라는 용어는 이 서신들을 다른 책들로부터 구별해 주는 표현으로서는 편리한 것이라 할수 있다. 따라서 이 서신들을 다룸에 있어서 단일 서신으로 서론을 다루는 것이 좋을 것이다.

   1. 기본적인 배경

    1) 저자 및 수신자
 본 서신들은 바울의 어떤 서신들 보다도 그 잔정성에 대한 도전이 강하게 있었다. 따라서 이 문제가 목회서신에서 가장 크게 대두 된다고 말할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먼저 이 저자의 문제에 대하여 제기 되는 반론을 소개하고나서, 목회서신은 바울의 저자임을 논증하고자 한다.
 바울 저작권에 대한 반론에는 크게 네가지 분야 즉 역사적, 교회적, 교리적,언어적 분야가 있다. 차례로 소개 하고자 한다.
 [1] 역사적 문제
 세권의 목회서신 모두에는 바울과 그의 동료들의 삶에 관한 역사적 언급이 포함되어 있으며, 또한 다음과 같은 자료들이 포함되어 있다.
 ① 바울은 마게도냐로 이동중인 반면, 디모데는 에베소 교회를 맡기 위해 그곳으로 떠났다.(딤전1:3)
 ② 마찬가지로 어느때인가 디도도 그레데 교회를 맡기 위해 그곳에 남겨 졌다(딛1:5) 이 경우 바울 자신이 그레데를 방문한 적이 있다는 사실이 요구된다.
 ③ 바울은 로마에 있을때 자신을 부지런히 찾아 만난 오네시보로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데(딤후1:16,17) 이는 편지를 쓸 당시 바울이 로마에 있었음을 암시하고 있다. 바울이 로마에 있었다는 것은 결정적이다. 그는 당시 분면 죄수의 몸이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그가 드로아에 두고 온 겉옷을 가지고 오라고 부탁하면서 에라스도는 고린도에 머물러 있고 드로 미보는 병들어 밀레도에 있다는 등의 최근 발생한 사건들을 알려주고 있다.(4:13,20)
 위와 같은 자료들에 비추어 볼때 본서들은 사도행전에 나타난 역사의 틀에 맞추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사도행전의 줄거리 속에 본서들을 끼워놓으려는 시도가 여러차례 있어 왔으나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와같은 시도를 불가능한 것으로서 거부하고 있다 그렇다면,우리에게 남아 있는 가능성은 다음의 세가지이다.
첫째로,우리는 본서들의 진정성을 인정하기는 하지만 그것들이 사도행전 역사 밨의 어떤 시기에 속한 것이라고 생각할수 있다.이 경우 두번째 로마 투옥이 있었으며,첫번째 투옥과 두번째 투옥사이에 바울이 풀려난 몸으로 계속 전도여행을 하였다는 가정을 필요로 하게 된다.
 둘째로,우리는 완전히 다른쪽 극단으로 가서 목회서신 전ㅊ히 허구로 꾸며낸 작품이라고 말할수 있을 것이다.
 세째는 적어도 역사적 암시에 나타난 몇 명의 인물들은 실제 인물임이 확실하기 때문에 제3의 설명이 요구 되었다. 즉 작품 속에는 일부 바울 자신의 글도 포함되어 있으나, 서신의 대부분은 훗날 바울 추종자가 거짓으로 꾸민 것이라는 것이다.
 [2] 교회적 문제
 목회서신속에 어떤 교회 질서에 관한 언급이 있는데 이는 바울 시대의 것으로 보기에는 너무나 발전된 것이며, 따라서 목회서신은 바울 시대의 것으로 볼수 없다는 이론이 있다. 이 계통의 비평들은 다음 네가지 생각에 근거를 두고 있다.
 첫째, 바울은 교회를 조직하는데 대하여 관심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의 이전 서신들에 비추어 볼때 그의 교회안에 어떤 획일적 정형이 있었던것 같지는 않으며,오히려 바울은 공식적 조직체계를 좋아하지 않았다는 증거가 있다. 그들은 목회서신은 각 교회가 공식적 직분자들을 가지고 있었으며,전체적인 과정이 조심스럽게 통제 되었던 후기 시대에 속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둘째, 이 이론을 주장하는 자들은 목회서신이 보여주는 교회 구조속에 반영된 장로의 역활은 주로 전승을 계승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다른 말로 장로들이 수행하는 역활이 목회서신을 바울 시대의 것으로 보기에는 너무 발전되어 있다는 것이다.
 세째로,목회서신에 반영된 상황은 어느정도 시간이 경과 했을 것을 요구 한다는 것이다. 특히 디모데전서 3:6절에서 바울이 새로 입교한 자에게 감독의 직분을 주지 말라고 권면한 것을 보면 그것이 잘 나타난다. 이 구절은 조직이 정비된 교회를 암시해 주고 있으며, 따라서 바울 시대 보다는 더 후대의 교회에 훨씬 잘 어울린다는 것이다.
 네째로,디모데와 디도의 지위가 대개 2세기 초의 군주적 감독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그들이 장로를 임명하고 있는데 이는 그들이 장로보다 훨씬 높은 권위를 지니고 있음을 뜻한다. 그들은 일반적으로 교회내의 문제들에 관하여 재판권을 행사 하였는데 이는 오직 그들만이 지녔던 특권이다. 바울 자작권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자들은 또한 이것을 목회서신이 바울시대보다  더 후대의 것이라는 것을 지지하는 근거로 삼는다.
 또 다른 반대는 목회서신에 반영되어 있는 이단들을 근거로 한것이다. 그 이단들은 바울 시대라기 보다는 영지주의이단들이 발전했던 시대에 속한 이단들이라는 것이다.영지주의는 2세기에 그 절정에 달했다.
 [3] 교리적 문제
 여기서 실제로 문제가 되는 것은 바울의 교리라고 주장되는 것들과 그렇지 않는 것들이 서로 섞여 있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목회서신들 속에 바울 신학의 여러 특징적인 것들이 담겨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들은 이것이 다만 바울의 진정한 글로부터 발췌한 어구들을 그대로 옮겨서 사용했기 때문에 생긴 현상이라고 본다. 주된 반대가 발생하고 있는 것은 목회서신속에 바울의 특징적 교리들이 결여되어 있다는 사실과 기독교 교리에 대하여 더 상투적인 접근 방법을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로부터이다. 전자의 예로서는 하나님의 아버지 되심,신자와 그리스도와의 신비적 연합,성령의 사역등의 위대한 교리들이 있다. 그런데 이와같은 것들이 바울의 초기 서신들에 비해 목회서신속에서는 그렇게 탁월하게 부각되고 있지 않다. 그러므로 이와같은 근본적인 교리들에 대해 논함이 없이 바울이 이 세 서신들을 쓸수는 없었을 것이라는 가정이 성립된다.
 목회서신속에 "믿음' 맡김, '선한교훈' 등의 용어들이 반복해서 등장하고 있다는 사실에 더욱 큰 비중이 부여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기독교 교리의 전승이 이제 확장 되었다는 것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참으로 기독교 교리는 이제 미쁜 말씀 혹은 수납된 교리를 함축적으로 표현한 찬양시로서 정형화 되었다. 그러나 학자들은 바울이 놀랍도록 창조적인 정신을 가졌기 때문에 일부러 그와같은 상투적 수준으로 내려와서 말했을 가능성에 대해서는 이를 거부하고 있다.바울 저작권을 비판하는 자들에 따르면, 위와 같은 상황들은 사도들의 교리의 전수가 가장 중요한 일로 여겨졌던 1세기 말이 교회 상황과 좀더 조화를 이룬다고 한다.
 [4] 언어적 문제
 다른 바울서신들 속에서는 발견되지 않으면서 오히려 바울서신을 제외한 다른 신약성경 속에서는 자주 발견되는 용어들이 목회서신에서 다량으로 발견된다는 사실을 주된 근거로 삼고 많은 학자들은 목회서신의 진정성을 거부하고 있다.그리고 이것은 단어에서 뿐만 아니라 문체에서도 그런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비판을 받아야 하며, 여기서는 비판에 대한 부분은 생략하고, 옥중 서신 자체에 의해 제공된 자료에 따라서 바울의 저작권을 증명하도록 하겠다.
 ①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된 바울 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딤전1:1;딤후1:1) 또는 하나님의 종이요,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인 바울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딛1:1)이었다.이로서 우리는 이 세 서신들의 경우 저자의 이름을 밝히지 않고 있는 히브리서와는 대조적으로 스스로 증거를 대고 있음을 알수 있다.
 ② 저자는 자신의 이름을 말할 뿐만 아니라 자신에 대하여 묘사하고 있다. 이 묘사는 바울에 관한 사도행전과 열 서신에 있는 것과 일치한다. 그 묘사는 양편의 바울은 훼방자요 핍박자 였다. 그리고 회심하매, 그는 반포자와 사도로 하나님에 의해 택정 되었다. 그는 진리를 수호하다가 많은 고난을 당했다.
 ③ 이 사람은 바울의 열 서신과 구조상 비슷한 세 서신을 썼다.
 ④ 이 세 서신들은 일반적으로 바울의 저작으로 인정된 서신들과 사도행전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저자의 수신자(디모데와 디도)간의 경우와 같은 관계를 보여 주고 있다. 그것은 권위를 가지고 서신을 쓰는 자와 그 권위를 인정하는 수신자간의 관계요 영적인 아들과 영적인 아버지의 관계이며,친구와 친구의 관계 이었던 것이다.
 ⑤ 이 세 서신들은 다른 자료들에서 바울의 동료들이요,동역자들로 알려져 있었던 어떤 사람들의 이름을 들어서 언급하고 있다.
 ⑥ 이 서신들은 자기가 세웠던 교회들에 뜨거운 관심을 갖고 있고 그의 문체와 신학이 앞에서 밝힌 데로 분명히바울임을 보여주는 한 저자를 나타내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초대교회의 증거는 세 목회 서신들 자체에서 얻어낸 결론과 일치하고 있다. 유세비우스는 일반적으로 로마서에서 히브리서까지 바울의 저서로 알려졌던 14권의 책 중에서 히브리서를 제외하고는 모두 사도 바울의 편지라고 확언 했으며, A.D170년 경 무라토리 단편에도 본 서신을 포함한 목회서신이 바울의 저서로 인정되어 있다. 더욱이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는 디모데 전후서가 이단자들의 오류를 반박하고 있기 때문에 이단자들은 이 서신들을 거부한다고 말하면서 본 서신의 정경성을 옹호하였다.
 그리고 본 서신의 수신자는 디모데 이다. 사도바울이 본 서신을 써 보낼때 디모데는 에베소에 있었다(1:3) 바울이 두번째 서신을 써 보낼 때에도 디모데는 여전히 그곳에 있었던 것 같다.
 덧붙여서 설명한다면, 서신자체의 주장을 인정한다면 디모데 전서와 디도서의 수신인을 결정하기란 쉬운 일이다. 딤전1:3절에서 바울은 내가 마게도냐로 갈때에 너를 권하여 에베소에 머물게 한것은-- 이라고 말했다. 이것은 본 서신이 디모데에게 보내졌으며, 그때 디모데는 에베소에 있었음을 분명히 말해 준다. 그리고 디도서1:5절에 보면 디도도 여전히 그곳에 있었음을 볼수 있다. 그런데 디모데 후서는 언급하지 않고 있지만 그러나 디모데의 상황은 디모데 전서를 보냈던 때와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러한 장을 암시해주는 상은 디모데 후서 4장이다. 여기서 바울은 네가 올때에 내가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을 가지고 오라고 했다(13절) 드로아는 에베소에서 유럽으로 가는 도로상에 있었다. 만약 직접 바다를 건너 유럽으로 갈수 없을 경우 사람들은 이 도로를 이용하였다. 또한 12절에서는 두기고가 에베소에 파견되었다는 사실이 특별하게 언급되었다.
 디도서의 수신인은 "같은 믿음을 따라 된 나의 참 아들 디도"(1:4)이다 디도에 대해 부가된 묘사는 바울과 디도사이의 친밀하고  따뜻한 관계를 나타내주고 있다. 디도는 헬라 사람으로서 할례를 받지 않아지만 예루살렘 총회때 바울과 바나바와 함께 참석했던 사실을 보면 그 이전부터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음을 알수 있다(갈2:1-5). 또한 디도는 바울의 제2차 전도여행(행15:36-18:23) 이후 그와 계속 동행 하였으며, 고린도에 파송되기도 하고(고후7:6,8:6)  그레데 교회를 돌보기도 하였다(1:5). 이같이 오랫동안 바울과 동역한 디도는 바울에게 참아들(1:4), 동무, 동역자(고후8:23),라고 불릴 정도로 바울의 많은 사랑과 신임을 받은 신실한 주의 종이었다.

  2) 연대 및 장소
  바울의 첫번째 로마 투옥 연대는 아마 A.D 59-61년 이었던 것 같다.(어떤 학자들은 그 연대를 60-62년,다른 학자들은 61-63년 또는 62-64년으로 보고 있다) 초대교회는 바울이 A.D68년 6월에 자살한 네로 황제에 의해 처형당한 것을 이의없이 증언하고 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겨울전에(딤후4:21) 자기에게 오라고 편지한 점으로 보아 디모데 후서는 A.D67년 이전에 씌여진 것이 분명하다. 더 이르다면,65년 이었을지도 모른다. 이것은 디모데전서와 디도서가 A.D 62년과 66년 사이에 씌여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일 우리가 사도행전 기사에서 자세한 일에 대한 기록이 생략되었다는 것을 감안 한다면 더 앞선 연대도 가능하다.
 그리고 사도바울이 A.D 64년 경에 순교했다면, 목회서신의 저작연대는 A.D 64년 경 직전이었을 것이다. 즉 디모데 전서와 디도서는 바울의 로마 재억류 직전에 쓰여졌을 것이며, 디모데후서는 바울의 마지막 옥살이 기간에 씌여졌을 것이다.이러한 연대결정은 물론 바울의 저작을 가정한 것이다.
 집필 장소를 살펴본다면, 서실들의 역사적 자료들과 서로 비교해 볼수 있는 독립적인 자료가 없기 때문에 우리는 단지 서신들내의 자료들을 목록으로 만들고 이 서신들이 쓰여졌을 기간에 사도 바울이 어떠한 활동을 하였을 것인가를 재구성해 볼수 있을 것이다.
 ① 바울은 에베소와 마케도냐를 방문했었던 것 같다(딤전1:3)
 ② 그는 또한 그레데를 잠깐동안 방문하였다(딛1:5)
 ③ 그는 디도에게 편지를 쓴후 그 다음 겨울을 에비로 서해안에 있는 니고볼리에서 보내고자 했다( 딛3:12)
 ④ 디모데후서를 쓴 다음 바울은 로마에(?) 다시 수감 되었다.
 그는 로마에 있었다. 왜냐하면, 그 자신이 말하기를 로마에 있을때 오네시보로가 그를 찾아왔었다고 했기 때문이다. 전승에 의하면 바울은 로마에서 순교했다. 이런 사정을 고려 해 볼때 디모데 후서는 로마에서 부쳐졌음을 알수 있다.
 그러나 나머지 두 서신의 저작 장소는 더 분명하지 않다. 디모데 전서를 썼을때 바울은 마케도냐에 있었다. 이것은 이치에 맞는다. 왜냐하면, 서신에서 그는 이 장소를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디도는 에비로에 있었거나 에비로에 가는 도중 이었을 것이다. 만약 이러한 추측이 올바르다면,서신들의 저작 순서는 디모데전서,디도서, 디모데 후서알 것이다.그리고 디모데 전서와 디도서는 서로 비슷한 시기에 쓰여졌을 것이다.

  3) 목회서신에 나타난 이단사상

 본 서신을 포함하는 목회서신이 쓰여지지 않으면 안될 상황의 저변에는 교회 발전을 위협하는 이단들이 있었다. 그 이단들의 성격과 부류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성격
 목회서신에 나타난 이단들의 성격은 사변적이며,이지적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가진 지식을 절대시 하며,교회안에 헛된 변론을 야기 시켰는데 그것에 휩쓸린 자들의 가르침은 어리석은 말다툼에 빠지게 하는 것이었으며, 진리와는 무관한 탁상 공로네 불과 했다. 그런데 이러한 이단자들은 교회내의 거짓되고 교만한 지식인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으며,실제적으로는 아무것도알지 못하면서 자신들이 소유한 편협한 지식만이 참다운 구원과 행복을 제공한다고 하는 교만에 빠져 있었다. 그런자들 가운데는 족보를 가지고 헛된 교훈이나 쓸모없는 논쟁을 하고 현실적이지 못한 신화들을 지어내는 사람들이 있었다.
 [2] 부류
 목회서신에 나타난 부류들은 세가지 부류로 구분할수 있다.
 ① 금욕주의자들
 이들은 음식에 관한 특별한 규정을 만들었으며,성을 부정한 것으로 간주하여 결혼을 포기 하도록 강요하였다.
 ② 방종자들
 또 다른 이단자들은 오히려 부도덕한 생활에 젖어 있었다.그들은 성적으로 문란하여 어리석은 여자들을 유혹하였으며,스스로를 쾌락에 내 던졌다.
 ③ 율법주의자들
 이들은 할례를 행하였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 할례의 시행을 강요하였다. 사실 이들의 진정한 목적은 그리스도 안에서 성숙한 신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유대교의 전통과 율법을 가르치는 교사가 되는 것이다. 또한 그들은 유대인의 허탄한 이야기와 사람들이 만들어 낸 명령을 좇도록 연약한 자들을 유혹하였다. 더욱이 그들은 그리스도인들이 경험하는 부활은 단지 세례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더불어 죽고 더불어산다는 영적 의미라고 주장하여 육신의 부활을 부정하였을뿐 아니라 인간이 경험 하고자 했던 전인격적인 부활은 이미 지나갔다고 주장 하였다.

  2. 역사적 배경

 모든 역사적 증거로 보아 바울이 그의 1차 로마투옥에서 석방된것이 분명하다. 그러면 바울은 그가 석방된후 어디로 갔을까? 우리는 확실하게 알지 못한다. 그런데 목회서신에는 분명히 여러 차례의 여행을 한것으로 나타나 있다. 그러면 많은 것들중에서 가장 이상적인 것으로 생각되는 것을 소개하기로 하자.
 1) 바울은 석방되자마자 곧 디모데를 빌립보로 보내어 이 소식을 전하도록 했다. 아마도 주후 63년 안팍이었을 것이다. 주후 64년 7월19일에서 24일이후로는 석방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2) 바울은 소아시아를 향하여 여행길에 올랐다. 그리고 그곳으로 가는 도중에 디도를 그레데 섬에 떨어뜨려두어 거기에 세워졌던 교회의 조직을 완료시키도록 하였다.
 3) 사도는 에베소에 도착하고 그가 계획했던 대로 골로새에 이르기 까지 계속여행을 한후에 다시 에베소로 돌아왔다.
 4) 여기서 그는 빌립보 교인들에게서 좋은 소식을 가지고 온 디모데와 합류했다. 그리고 떠나려 할때 바울이 디모데에게 권하여 에베소에 남도록 하였는바 그곳은 디모데를 필요로 하였던 것이다.
 5) 바울은 그가 계획했던 대로 마케도냐로 갔다.그는 에베소로 돌아오기를 희망했다.마케도냐에서 그는 서로 내용이 아주 비슷한 두통의 편지,디모데전서와 디도서를 썼다. 그는 디도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 사랑하는 형제에게 청하여 니고볼리에서 그를 만날수 있도록 해달라고 했다.
 6) 사도는 이고니아 바다 동쪽 해안에 위치한 니고볼리로 여행했다. 여기서 그는 겨울을 지냈으며,디도와 합류했다.
 7) 바울은 서반아로 여행했다.
 8) 서반아에서 돌아온후 바울은 소아시아로 가서 드로비모가 병듦으로 그를 에베소남쪽,밀레도에 남겨 두었다.
 9) 드로아에서 그는 가보를 방문했다가 자기 외투를 그의 집에 놓아 두었다. 에라스도가 머물러 있었던 고린도를 경유하여 그는 로마로 되돌아 왔다. 그리고 다시 체포되었다.
 10) 따라서 바울은 서반아에서 돌아온 후로는 더이상 정치적인 보호를 받지 못했다. 그의 2차 로마 투옥은 가혹하였다. 그리고 그의 투옥은 오래가지 않았다. 2차 투옥 기간중 누가만이 그와 함께 있었다. 데마는 이세상을 사랑하여 그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가 버렸다.그레스게는 갈라디아 또는 갈리아로 갔고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빨리 자기한테 오라고 명하면서 마가를 데리고 오라고 부탁했다. 이와같은 세세한 것들은 디모데후서에 기록되어 있는바 그 서신은 죽음의 그늘이 이미 사도에게 정면으로 드리워진 때에 기록 되었던 것이다. 그는 사형이 확정되어 수도에서 3마일즘 떨어진 오스티안가에서 참수 되었다. 사도가 사형당하기 전에 디모데와 마가가 로마에 도착했는지의 여부는 우리는 알지 못한다.

  3. 저술 목적
 만약 바울 저작권을 인정한다면 세 서신들의 목적은 자명하다.디모데전서와 디도서에서 사도는 자신의 절친한 두 동역자들에게 그들이 당시 책임지고 있던 각 교회의 문제 처리 방법을 문서를 통해 교훈해 주려하고 있다. 이 교훈들중 많은 것들이 이전에 말로 전해 졌으며,따라서 이 서신들은 성격상 확증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고 보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다. 디도서의 경우에 바울은 편지를 써야할 특별한 용건,즉 니고볼리에서 동역자를 만나기 위해 그를 불러 와야 한다는 용건을 가지고 있다. 이 요구에 대한 이유는 제시되어 있지 않다. 디도에게는 세나와 아볼로의 여행을 도울것을 요구하고 있다. 디모데전서에는 재구성이 필요한 특별한 목적을 시사해 주는 자료가 거의 없다. 그러나 비록 너무 불쑥 언급했기 때문에 이것을 서신의 목적이라고 생각하기는 대단히 곤란하지만 바울은 언젠가 장래에 디모데가 에베소를 방문해줄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바울은 교회안에 질서있는 조직을 세워나가야 하는 디모데의 임무에 대하여 문서를 통하여 자세히 교훈하고자 했을 뿐만 아니라 손을 굳게 하고 복음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 격려와 심지어 도덕전 도전까지도 줄 필요를 느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으로 보인다.
 디모데후서에서는 매우 다른 상황이 발견된다. 왜냐하면, 바울은 이제 감옥안에 있으며, 그의 생의 마지막에 직면해 있는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성취해온 일들을 뒤돌아보고 있고 자신이 고대하고 있는 면류관을 바라보고 있다. 서신은 교회 조직에 관해 서는 거의 관심이 없다. 오히려 디모데와 그에게 맡겨진 임무에 대해 관심이 집중되어 있다. 사도는 회상의 분위기에 젖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디모데후서의 결론 부분은 목회서신중에서 가장 개인적 당부가 두드러진다. 디모데에게 되도록 빨리 자신에게 오도록 당부하고 있지만 사도는 오히려 그를 다시 볼수 있을 것에 대하여 확신하지 못하고 있는것 같다. 앞서 디모데전서에서도 말한바 있지만 사도는 후서를 써 내려가면서 디모데에게 다시 한번 거짓 교사들에 대한 경고를 할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
 이상의 것들을 요약하여 세서신의 기록 목적을 정리한다면 다음과 같이 말할수 있을 것이다.
 1) 디모데 전서
 ① 그가 받은 은사(4:14)와 그의 선한증거(6:12)와 그에게 부탁한 것을 디모데에게 일깨워 줌으로서 그의 기운을 북돋아 주려고 하는데 있다.
 ② 에베소 교회에 퍼져 있었던 영혼을 멸망시키는 거짓된 교훈들과 맞부딪칠수 있는 지침을 주고 디모데로 하여금 바른 교훈에 계속 거하도록 권면해 주려는데 있다.
 ③ 공중예배시의 바른 행실에 대한 지침을 두려는데 있다(2장)
 2) 디도서
 ① 그레데에서 일을 대신 맡아 볼 사람이 거기에 도착하여 인계를 맡게 되는 대로 바울에게 디도를 니고볼리로 오도록 명하기 위해서다(3:12)
 ② 교법사 세나와 말에 능한 전도자 아볼로가 급히 그들의 여행을 계속할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다(3:13)
 ③ 회중,개인,가정, 그리고,사회관계에서의 성결된 마음을 불러 일으키는데 필요한 지침들을 주려고이다. 이처럼 디도서는 삼중의 목적을 가지고 기록 되었으며, 이중에서 마지막것이 디도서의 대부분에 걸쳐 언급되어 있다.
 3) 디모데 후서
 ① 사도가 이 세상을 떠날 기약이 임박한 것을 알고서 될수 있는 대로 빨리 디모데로 하여금 로마로 올수 있도록 재촉하려고(4:9,21,참조 4:6-8)
 ② 그를 권하여 바른 교리를 굳게 지키며, 모든 거짓 교훈으로 부터 그것을 변명하며, 선한 군사로서 고난을 인내하도록 하려고 기록 하였다. 이 두번째 목적이 전체 서신의 특징을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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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디모데전서 blue 2008-02-29 8166
» 목회서신(디모데전후서 및 디도서) file blue 2007-10-02 10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