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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2007-Oct

에베소서

작성자: blue IP ADRESS: *.91.195.194 조회 수: 10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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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기본적인 배경

1) 저자
 에베소서에 있어서 가장 문제시 되는 것은 저작권에 관한 문제이다. 에베소서는 인간 최고의 신적 문장,기독교신앙의 정수를 뽑아 낸 본질, 기독교 신앙의 가장 권위 있고 완전한 개요,고상하고 중요한 교리로 가득찬 서신등으로 불리워 왔다. 교회의 역사를 통하여 모든 국적을 가진 전문적 학자들과 평신도들 그리고성도들에게 그와 같은 인상을 주어왔다. 따라서 에베소서의 저작자가 주님에게서 풍부한 재능을 부여받은 바울이라는 초대교회의 보편적 증언을 부인하는 어떠한 이들에게는 무모한 짓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베소 저작에 대한 부인이 바우어에 의해 마구 성행하게 되었고,그러한 제의가 계속되어 왔다. 바울의 저작권에 대한 부인은 크게 둘로 나눌수 있다.
 [1] 너무 많은 유사점을 가진다.
 ① 에베소서는 골로새서와 유사하다. 그래서 바울이 골로새서를 썼다면,에베소서를 쓸수 없었다는 것이다.
 ② 에베소서가 바울의 다른 서신들과 너무도 유사점이 많다. 이것은 무슨 말인가하면, 바울의 제자중,바울의 여러 서신이나 심지어 단어 ,어귀 등에 밝은 한 유능한 사람이 선생을 모방하여 에베소서를 썼다는 것이다. 여기에 대하여 답변한다면,학자들 가운데는 이 유사성의 실재적 범위에 대하여 많은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에베소서의 저자는 그의 주제로서 영광스러운 교회,즉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유대인과 이방인들에게 다같이 주시는 구원의 축복으로 충만해진 교회가 그의 영광을 찬양하는 주제를 가진고로 이 옥중서신 가운데 많은 귀절들이 유사한 주제로 쓰여진 다른 서신과 내용의 유사성을 갖는다는 것은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다. 그리고 에베소서는 변증적 자료가 별로 없다. 또한 에베소서는 대부분의 바울서신보다 늦게 쓰여진 서신이다.
 ③ 에베소서는 베드로 전서와 유사하다. 바울서신이 아닌 다른 신약의 문서들과 유사하다는 점을 들고 있다.
 ④ 에베소서는 누가복음 및 사도행전과 유사점을 가진다.
 ⑤ 에베소서는 요한의 저작과 유사점을 가진다.
 ⑥ 에베소서는 히브리서와 유사점을 가진다.
 ⑦ 에베소서는 야고보서와 유사점을 가진다.고 주장하고 있다.
 [2] 차이점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① 단어의 차이이다.
 에베소서가 너무나 많은 예외적 단어, 즉 새로운 단어들을 쓰고 있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서 의심없이 받아들이는 소위 바울 서신은 물론 신약성경 다른 어느 곳에서도 발견되지 않는 단어가 에베소서에서 발견되므로 바울의 저작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여기에 대하여 답변 한다면,만약 이 주장이 의심없이 바울의 저작임을 드러내는 다른 서신에도 적용이 된다면,이 서신들에서도 다른 서신에서 발견하지 않는 새 단어들이 발견되므로 바울의 서신에서 제외 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주제가 다를때 다른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그리고 흔히 바울의 다른 서신에서 없는 말이 에베소에서 발견된다는 주장은 일반적으로 말해 목회서신과 골로새서가 바울의 서신이 아니라는 무언의 가정에서 나온 것이다. 하지만 이 가정은 근거없는 것이다. 목회서신을 쓴것은 바울이었다. 그리고 에베소서에서만 발견되는 소위 예외적 단어들 중에서 돌로새서와 목회서신에서 발견되는 것들을 제외하고 나면 남은 것은 불과 얼마되지 않는다. 그렇다면,바울같이 유능한 저작자가 그 정도의 새로운 말이나 용어들의 어휘력을 가졌다는 것은 바울 저작권을 부인할 하등의 이유가 성립되지 못한다.
 ② 의미의 차이를 들고 있다.
 ③ 문체의 차이를 들고 있다.
 ④ 교리의 차이를 들고 있다.
 먼저 신론에 있어서는 에베소서는 인간의 구원의 근거를 하나님의 영원한 섭리에 두고 있으나 다른 서신에서는 바울은 십자가를 강조한다는 것이다.
 인간론의 차이에서는 에베소서는 은혜를 떠난 인간의 죄의 상태를 골로새서나 다른 서신에 비해 훨씬 부드러운 투로 서술하고 있다.
 기독론의 차이에서는 에베소서는 그리스도를 교회의 머리라고 했으나 다른데서는 머리를 다만 지체중의 하나로만 서술하고 있다. 그리고 엡2:16절에서는 화해를 이루신 분은 그리스도라고 하였으나 골1:20,2:13-14에서는 하나님이라고 하였다. 또한 에베소서는 그리스도의 죽음이 근본적 문제를 다루어지고 있지 않고 모든 것이 승귀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서신에서는 죄인들이 십자가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해된 것을 말하고 있느나 에베소서에서는 십자가로 인하여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화해가 이루어졌음을 가르치고 있다. 또한 에베소서는 그리스도의 승천을 가르치고 있는데 다른데는 이 승천 교리가 없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이유를 든다면,에베소서는 그리스도께서 지옥에 내려가신것을 가르치고 있는데 그것은 바울 후기의 요소라는 것이다.
 구원론의 차이를 들고 있는데 에베소서에서는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을 통한 구원을 말하고 있느나 바울은 믿음으로 말미암은 칭의를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에베소서의 율법관이 비바울적이라는 것이다.
 교회론의 차이를 들고 있는데  그것은 에베소서에서는 교회란 단어는 언제나 보편교회를 말하고 있는데 바울의 다른 서신들에서는 지교회를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에베소서가 교회의 통일성에 대하여 강조하고 있는 것은 이 서신이 바울의 사후에 즉 많은 파당이 생겨나 중앙집권적 교권의 강조가 요구되는때에 기록되었다는 것이다. 또 사도들과 선지자에 대하ㅕ 마치 그들이 거룩하고 또 그들이 교회의 기초인양 지나치게 강조함으로서 바울 후기시대의 세대들을 위하여 기록된 인상을 짙게 하려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바울이 엡2:11절을 쓸수 없다는 것이다,. 참 유대인은 아무래도 할례를 그런 경멸조의 언어로 볼수 없다는 것이다.
 종말론의 차이를 들고 있는데 바울의 저작권을 부인하는 이들은 바울이 에베소서를 쓸수 없는 또 하나의 이유는 여기엔 재림이나 이에 관련된 아무런 교리도 발견할수 없다는 것이다.
 [3] 결론
  ① 너무 많은 유사점이 있다는 것에 대하여
 골로새서와 에베소서의 유사점은 주로 저자가 같다는데  그리고 시간,장소,일반적 상황이 같다는데 있다. 또한 동일 저자라는 사실은 표현과 강조에 있어서 많은 변화가 있고 이유도 설명해 준다. 그리고 바울의 저작이라고 전통적으로 믿어온 다른 서신들은 발신인과 주소에 대한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에베소서와의 유사점이란 큰것이 못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사이에는 많은 비교점이 있고 이 또같은 사상은 새로운 방향을 지시해 주고 있다. 저자의 동일성과 함께 제2의 요소인 교리의 동일성은 고려되어져야 한다. 그리고 일률적 교회의 문답식 교훈의 필료성과 새 개종자들의 증가는 표현의 일치를 가져오게 된다. 또한 신약성경 저자들의 형태와 내용의 유사성은 결국 그리스도에게까지 즉 그의 인격과 업적, 가르침까지 추적 될수 있다. 바울과 다른 저자들은 똑같이 구약의 배경에 조예가 깊었다. 이 모든 요소들은 에베소서가 바울의 저작으로서 잘못 취급되어 왔으며, 그 저자는 어ㄸ넌 모방자였으리라는 가정 보다는 바울의 저작으로 보는 것이 이 유사성들을 설명하느데 더 만족할 답을 줄 것이다.
  ② 차이점이 너무 많다는 이의에 대하여
 단어나 문체드의 차이는 이 편지를 쓸 당시 바울의 감사에 대한 감정이 폭발된데 있으며,소위 교리의 차이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릴수 있다. 즉 에베소서에 여러가지 교리들이 다른 서신들보다 더 강조되고 확대되고 있는게 사실이지만 다른 서신들에서 발견되는 교리들과 서로 모순이 되는 것은 없다는 것이다.
  ③ 에베소서가 바울의 저작이라는 이유
 먼저 내증을 보면 에베소서의 저자는 자신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된 바울 또는 그리스도 예수의 일로 너희 이방을 위하여 갖힌자된 나 바울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리고 에베소서의 저자는 마지막 축도에 앞서 나의 사정, 곧 내가 무엇을 하는지 너희에게도 알게 하려 하노니 사랑을 받은 현제요,주 안에서 신실한 일군인 두기고가 모든 일을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우리 사정을 알게 하고, 또 너희 마음을 위로하게 하여 내가 특별히 저를 너희에게 보내었노라 고 말하였다.
 바울의 제자요 그의 가르침에 밝은 서신의 수집자가 감히 자신을 바울과 동일시 할수 있었을까?  그리고 에베소서는 보편적으로 바울 서신이라고 인정된 로마서,고린도전후서, 갈라디아서 빌립보서의 모든 특징을 가지고 있다. 또한 초대 교회의 바울의 진짜 저작을 그처럼 훌륭한 문체와 논리적 전개와 고상한 내용을 가진 귀절들로 합성할수 있는 위조의 천재가 있었다는 것은 믿기 어려운 일이다. 그것도 바울의 지적능력과 영적 통찰력을 가지고 바울의 사상을 발전시키면서 아무도 구별할수 없도록 했다는 것은 더욱 믿을수 없는 일이다.
 또한 외증에 있어서도 증명이 된다. 초대교회의 증언은 이미 내린 결론과 조화를 이룬다. 유세비우스는 에베소서를 바울의 진정한 서신으로 인정한다. 터툴리안도 마찬가지로 바울의 저작을 인정하고 이보다 약간 일찍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와 이레니우스는 바울의 자작을 그대로 인정하고 있다.
 그리고 가장 오래된 공식적인 정경인 마르키온 정경속에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당시에는 이 서신을 바울이 기록했다는 점에 아무런 이의가 없었다. 그 이유는 마르키온은 오직 사도바울만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또한 가장 오래도니 라틴 역본 및 수리아 역본에서도 에베소서를 바울의 서신들 가운데 포함시키고 있다. 본서신은 오파이트라,발렌티누스파에 의하여 사용되었으며,폴리갑의 저작들에서와 헤르마스와 디다케 속에서도 본 서신의 언어들이 발견되고 있다.
 2세기 후반기를 지나면서 헬마스의 목자,사도들의 가르침,바나바의 서신,등등에 나타난 에베소서의 암시는 제쳐두고라도  100-170년경에 살았던 저술가들에 이르면,당시에 에베소서의 저자가 이미 바울로 인정되고 있음을 발견한다.
 이 외에도 본 서신의 바울적 구조와 본 서신의 언어 및 문학적 유사성, 그리고 본 서신의 신학적 유사성, 또한 본 서신의 역사적 자료들을 통하여 우리는 바울의 저작임을 결론적으로 내릴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교회는 신약의 저작들을 규정할때에 이의 없이 바울을 에베소서의 저자로 지목한 것이다. 2세기 말에 에베소서의 저자에 대하여 극소수의 이의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 서신의 가치와 영감성에 대하여는 일찍부터 각처에서 인정되어 온게 사실이다. 그러므로 이 전통적 확신을 저버릴 아무런 이유가 없다.

  2) 수신자 및 기록연대

 에베소서에 있어서 하나의 큰 문제는 엡1:1절에 언급된 수신인에 대한 기록이 희랍어 사본에는 차이가 있다는데 있다. 초두의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된 바울은 성도들과 그리스도 예수안의 신실한 자들에게 편지 하노니"에는 아무런 본문의 문제가 제기되지 않는다. 그러나 에베소에 있는 의 첨가된 낱말이 난점이 있다. 가장 오래된 사본들에는 이 귀절이 없다. 그래서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초기의 사본들에 "에베소에 있는"이란 귀절이 없는 이유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그리고 에베소서의 참 목적지가 어디인가? 하는 점이다. 여기에 대하여 몇가지 해결책들이 제시되고 있는 것을 볼수 있다.
 첬째로, 에베소서는 에베소에 있는 교인들에게 보내진 서신이 아니라 모든 성도들에게 보내진 서신이라는 것이다.
 이 견해에 의하면, 서신의 제목이 무엇이든지 간에 에베소서에 있는 이란 말은 바울이 삽입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학설에는 두가지의 형태가 있는데 먼저는 바울이 그의 메세지를 참 존재를 가진 성도들에게 보냈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바울이 단순히 그리스도 예수안의  신실한 자들에게 썼다는 것이다.
 두번째 제시는 에베소서가 어떤 제한된 지역에 살고 있는 성도들에게 보내진 서신이기는 하지만 에베소는 아니라는 견해이다.
 이 이론은 특별히 애보트가 변호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에베소서는 라오디게아,히에라볼리,골로새서등의 이방 개종자들에게 썼다는 것이다.
 세번째 제시는 본 서신은 에베소가 도청 소재지인 그 지방에 거주하는 신자들에게 보내졌으며, 그것은 에베소 교회뿐 아니라 주변의 여러 교회들을 위하여 쓰여졌다는 것이다. 오늘날 이 견해는 널리 지지되고 있다.
 네번째 견해에 의하면, 본 서신은 한 특수 지역, 즉 빌립보서가 빌립보에 있는 교회들을 위하여 고린도잔후가 고린도 교회를 위하여 쓰여짐 같이 에베소에 있는 한 교회를 위하여 쓰여 졌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순회 서신 이론을 지지하는 이들은 다음과 같은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에베소서에 있는"이란 말은 가장 오래된 사본들 속에 없다. 따라서 에베소서가 수도인 어떤 지방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한 이 에베소를 목적지로 주장할 이유가 없다. 그리고 1:15; 3:2과4:21,22등을 비교해 보면 분명히 독자들 가운데는 바울이 모르는 자들과 그가 개인적으로 가까운 관계를 갖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또한 바울이 세운 교회와 그가 개인적으로 잘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보낸 모든 서신에는 그가 교회의 영적 아버지이며,그들 중에서 해산의 고통을 한것을 기록한 귀절들이 나온다. 그런데 이런 귀절이 에베소에는 없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이유는 에베소서에는 개인적인 인사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반대하여 이 서신이 순회 서신이 아니라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주장한다.
 말시온의 사본을 제외한 모든 고대 사본에는  본 서신은 "에베소인들에게"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그리고 엡1:15,3:2 과 4:21,22은 해석상의 문제이다.
 또한 사도행전에 있는 바울의 활동에 대한 기록과 본 서신의 내용에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단정할 근거는 없다.
 고린도후서,갈라디아서,데살로니가 전후서 역시 바울에 의하여 세워진 교회이나 인사에 대한 언급이 없다. 반대로 로마서는 바울에 의하여 세워진 교회가 아니지만 많은 인사가 나온다.
 다섯번째 견해는 본서신은 라오디게아로 보내졌다.
 이 가설은 마르키온 정경의 증거를 근거로 한 것이다. 그러나 여러방면으로 비판을 받고 있다.
 여섯번째 견해는 본 서신은 바울의 영적 유언장이었다는 것이다.
 이 견해를 주장하는 학자들은 일반적으로 본 서신이 로마 투옥 말기에 쓰여진 것으로 보며 제 2차 투옥 가설을 부인한다. 따라서 이 서신은 전체 교회에 보낸 바울 사도의 고별 메세지로 생각되고 있다.
 일곱번째 견해는 본 서신은 바울 전집에 대한 서론이라는 것이다.
 굳스피드와 존 낙스에 의해 제안된 이 이론은 약간의 수정과 함께 미턴에 의해 주장 되었다. 에베소서를 기록했다고 말하는 헌신적인 바울 주의자는 바울 서신들을 모르고 있을 독자들을 위해 서신들 안에 포한된 가르침에 대한 요약을 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이 서론적인 기록은 수집된 편지들이 에베소 교회에 처음 알려졌기에  "에베소인들에게"라는 명칭을 갖게 된 것이다. 이 이론은 비판을 받고 있는데 그덧은 에베소서가 바울 전집의 서두에 있었다는 증거가 없다. 그리고 에베소서6:21,22에 있는 두기고에 관한 언급은 굳스피드의 이론에서 큰 난제이다. 그리고 이 이론은 바울 서신들이 한동안 무관심의 대상이었으나 사도행전의 출판으로 관심이 되살아났다는 가정에 의존한다. 또 하나의 난점은 문헌적인 문제로서 바울 전집에 대한 서론으로 쓰여진 본 서신이 그처럼 골로새서에 의존했을 것으로 생각하기는 어렵다.
 여덟번째 견해는 본 서신은 모든 기독교 세계를 위한 종교 철학을 기록한 것이다.
 아홉번째 견해는 본 서신은 골로새 이단의 확장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결론적으로 이야기 한다면 본 서신의 목적지는 "에베소"였다. 즉 에베소와 그 주변의 교회들 이었다. 서신을 기록한 장소는 로마였으며,시기는 A.D 61-63의 어느 시기이었을 것이다.

  3) 기록 장소

 이 부분은 본 보고서의 빌립보서의 기록연대와 장소부분을 참고하기 바란다.

  2. 역사적 배경

 에베소 교회는 사도 바울에 의해 그의 제 2차 전도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에 그 기초가 세워졌다. 그리이스로 부터 시리아로 향해 가는 길에 사도바울은 브리스 길라와 아굴라를 동반하고,에베소를 방문 하였다. 거기에서 그는 이들을 이 도시에 남겨 두고 떠났다.방문은 그가 예루살렘으로 급히 서둘러 가는 도중에 잠시 머물렀던 것에 불과 하다 그러나 그는 그 지역 회당의 유대 지도자둘과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그는 그들에게 감동을 주었고 따라서 그들은 바울에게 그곳에 머물러 달라고 간청하기에 이르렀다.그러나 그는 그의 계획을 바꿀수가 없었다.그래서 그는 자신이 돌라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돌아오겠노라고 그들에게 약속 했다. 이러한 사실은 확실히 이루어졌다 왜냐하면,그는 그 다음 전도 여행 일정에 에베소를 포함 시켰고,실제로 에베소에서 3년 이상을 머물렀기 때문이다. 바울은 이곳이 전도 전략상 상당히 유력한 지역임을 깨달았다 왜냐하면, 그곳은 그 지역의 중심 도시였으며, 동서를 잇는 대로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곳에 위치했기 때문이다 에베소의 주위에는 230개의 독립된 공동체 사회가 아시아의 로마 지경내에 산재해 있었다. 만약 기독교의 신앙이 이와 같은 수도에 확고히 세워진다면,그것은 마치 바퀴의 중심에서 테두리로 힘을 옮겨지는 것과 같이 확산 될수 있을 것이다.
 바울이 에베소로 돌아 왔을때 그는 자신이 없는 동안에 아볼로가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는 것을 알았다. 그때는 아볼로가 고린도로 옮겨가고 있었으며,따라서 바울은 그곳에서 자신의 사업을 자유로이 강화할수 있었다,. 석달 동안 그는 유대인들과의 대결을 겪어야 했으며, 곧 반대에 직면하게 되었다. 그는 개종자들을 두란노 서원에 모아 2년동안 날마다 강론했다.
 바울의 전도의 여파는 에베소지역 너머에 까지 미쳤다. 그 전지역이 영향을 받았으며,이로 인하여 도처에 개종자들이 있었다. 사업차 수도로 왔던 사람들이나 유람차 왔던 사람들을 막론하고 그들은 복음을 들었다.그래서 그들은 각기 고향에 가서 복음을 전하게 되었다.
 이렇게 획기적인 전도의 확장은 사도행전19:23-41에서 묘사된 소동으로 인해 잠시 주춤하게 되었다. 이 소동이란 더메드리오라고 하는 어느 은장색이 자기의 동료들과 동맹을 결성한 사건이었다. 바울은 이미 그곳을 떠나려던 차였으며,이것은 바울이 에베소에서의 사역을 그만 두고 로마로 향하게 된 신호가 되었다. 수리아로 가는 마지막 항해중에 그는 밀레도에 도착해서 에베소의 장로들과 작별을 하면서 그들에게 엄숙하고도 감동적으로 무리의 실수에 대해 훈계하고 부탁한다. 그후로 바울은 에베소를 다시 방문할수 없었다.

  3. 저술 목적

 수신지에 대해 다양한 견해들이 제기되고 있는 본 서신의 저작동기와 목적을 확실하게 결정하기란 어렵다. 만일 우리가 회람이론을 가정한다면,우리는 독자들의 상황보다는 저자의 상황으로부터 목적을 제시할수 있을 것이다. 바울은 감옥에 있었기 때문에 생각할수 있는 시간을 가졌을 것이다.이러한 사실은 그 서신이 훨씬 더 명상적인 분위기를 띠고 있음과 함께 그가 다루고 있는 특별한 상황에 관련된 긴장이 없음을 잘 설명해 준다. 바울은 그리스도와 교회를 깊이 생각하고 있었고 결국 영광 받는 기독론과 그리스도안에서의 그리스도인들의 특권을 높이 찬양하게 되었다.
 본 서신과 골로새서의 밀점한 관련은 에베소서의 저작 목적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이 두 서신은 다소 방법상의 차이는 있으나 동일한 주제들을 다루고 있다. 바울 사도는 골로새서의 교리를 여전히 마음속에 생각하면서 이단이 존재하는 특별한 배경없이 일반적인 방법으로 그것을 다시 썼다고 생각할수 있다.
 이제 바울이 이 서신을 쓴 목적을 간략하게 다음과 같이 말하수 있겠다.
 1) 바울은 에베소서를 그곳 성도들의 그리스도를 중심한 신앙과 모든 성도들에 대한 그들의 사랑에 대한 그의 만족을 표현하기 위하여 기록하였다.
 2) 또 하나의 연관된 목적은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속죄적 은혜를 알려주어 세상에 대하여는 축복이 되며, 몯굳게 서며,그리하여 구속주에게 영광을 돌리도록 하려는데 있었다.
 3) 본 서신에서 바울은 그가 죄수로 갖혀 있는 로마의 제국과 교회 사이에 대조를 하려 했는지도 모른다.이 가능성은 같은 옥중 생활중에 쓰여진 빌립보서신에도 암시되어 있다. 만약 그렇다면,로마의 마력은 그에게는 교회의 영광으로 암시 되었을 것이다.아직 제한된 영역만을 통치하는 로마의 횡포한 독재자와 온 세게를 다스리는 교회의 은혜로우신 주님과의 대조,로마의 물리적 힘에 대한 정치적 통합과 평화의 줄로 매어진 교회의 유기적 단일성의 대조,로마의 군사적 힘과 교회의 영적 갑옷과의 대조,뢈의 시간과 변화와 성쇠속의 기초와 교회의 영원하며,끊임없는 기초와의 대조등이 바울의 의도였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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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베소서 file blue 2007-10-01 102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