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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조회 수 15262 추천 수 0 2007.09.30 08:5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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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영웅시대의 신비

1.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의 왕권의 차이는 어디에 있는가

왕은 신으로서 통치하는 신왕 God king이라고 본 이집트에서는 왕의 재판은 신의 재판이었기 때문에 법률은 없다. 이에 비해서, 왕은 신을 위해서 통치하는 제사 왕 Priest King이라고 생각했던 메소포타미아의 제 민족 사이에서는 법은 신에게서 받는 신의 법칙이라는 생각이 있었다.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는 <신왕>과 <제사 왕>이라는 성격의 차이는 있었으나 고대 오리엔트 제국의 지배자들은 어떤 의미에서 신적인 기원을 찾으려고 했다.
이스라엘 지배자는 항상 초월적인 절대 영원한 신이었다. 왕국 형성 이전의 이스라엘 제 부족은 유일 절대 영원의 하나님 야훼와 그 하나님과의 계약을 믿고, 그 계약을 실천하는 12부족의 동맹체였다. 이스라엘의 이 부족 동맹체는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 연합체와 같이 학문적으로<안픽티오니>라고 부른다. 안픽티오니라는 그리스 말은 <주위에 산다>는 뜻이며, 일정한 성소를 중심으로 해서 그 주위의 도시 국가가 동맹을 맺었다. 이것은 고대 로마에도 있었다.
이 제도는 이스라엘의 12부족의 조직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열쇠가 된다. 안픽티오니의 특색은 반드시 12내지 6개의 도시나 부족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이다. 6내지 12라는 수는 1년의 12개월과 관계가 있다. 이들 도시나 부족은 1년에 1개월 내지 2개월 씩 번갈아서 중앙 성소의 관리나 보호를 맡고 동맹의 구성원은 정기적으로 중앙 성소에 모여 공통 문제를 협의하고 처리한다.
구약성서의 전승은 판관시대에 이스라엘 제 부족의 동맹체가 있었다는 것을 전하고 있다. 이것을 최초로 지적한 것은 19세기의 구약학자 E.에발트이며,그는 구약성서에 이스라엘 뿐아니라 아람(창세기 22장 20-24절).이스마엘(동25장13-16절),에돔(동36장10-14절)의 12부족과 호리인의 6족 (동36장20-28절)의 표가 있음을 지적하고.이것들도 부족 연맹과 같은 것이라고 보았다.
그후 도이치의 구약학자 A.알트나 그 제자 M.노트 등의 연구로 부족 연맹의 존재가 알려졌고 특히 노트의 상세한 연구(1930년)는 많은 사람들의 인정을 받고 학계의 통설이 되었다.

그러나 <안픽티오니 설>에 대해서 새로운 검토가 일어나고 이론을 제창하는 학자도 있다. 전승에는 모순도 보이나 12부족 중의 야곱의 아내 레아의 아들이라고 하는 6족은 항상 한 나라를 이루고 있으며, 레아족이 세겜에 있던 옛부터의 성소를 중심으로 해서 부족 동맹체를 형성하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은 원래 부족 연맹의 명칭이었고,
<엘이 지배한다>는 뜻이며,그 종교는 그 명칭이 가리키는 것처럼 엘 종교였다. 거기에 뒤에 이집트 탈출을 감행한 요셉족 즉 므나쎄와 에브라임이 새로 침입하여 그 새로운 하나님 야훼를 중심으로 레아족의 부족 연맹은 12부족의 동맹체로 확대되어 여기서 이스라엘 12부족이 새로운 하나님 야훼 신앙을 중심으로 통일체가 탄생된 것이라고 생각된다.

2. 이스라엘에는 어떤 민족적 흐름이 있었는가

구약성서의 기록은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에까지 소급되고, 이스라엘의 조상은 아브라함이며, 이 아브라함의 손자 야곱의 12 아들이 각각 <12부족>의 조상이 됐다고 전한다.
이 12부족이라는 것은 사료 비판에 관계없이 창세기 35장에 의하면,르우벤,시므온,레위,유다,이사갈,즈불룬,오셉,베냐민,단,납달리,가드,아셀이고,다른 기록에 의하면 레위를 제사로 별도 취급하고,그 대신 요셉족을 므나쎄와 에브라임으로 나누어 12부족을 만들고 있다(민수기 26장)
이처럼 이스라엘 12부족에 관한 전승에는 차이가 있다.

이스라엘 민족의 탄생 경위는 전 항에서 설명한 것처럼 그들은 처음부터 12부족이 아니었고 각 부족은 각각 독자적인 가나안 이주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각 부족은 이주, 정착,화합,증대,분열 등의 복잡한 과정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드보라의 시대까지 친근감을 가진 10부족의 동맹체가 성립된다.
이러한 부족 연맹의 조직이 현실적으로 기능을 가진 것은 기원전 12세기에서 약 1세기 동안이고 블레셋인과의 싸움으로 남쪽 유다와 북쪽 이스라엘의 동맹이 성립되고, 그것이 다윗왕에 의한 통일 왕국으로 성장하고 다윗 왕조의 출현으로 그 기능이 정지된다. 이스라엘 12부족의 구조는 바로 이 다윗에 의한 유다.이스라엘의 복합 왕국에서 생긴 정치 이념에서 성립된 것이라고 생각된다.

 12부족의 계보
아 담 + 하 와 = 가인 + 아벨 + 셋 =셋 = 에녹 = 노아 = 셈 + 함 + 야벳 =
셈 = 데라 = 아브라함 + 나홀 + 하란 + 사라 +아브라함 = 이삭 = 에서 + 야곱 =
야곱 = 유다 = 이새 = 다윗 = 솔로몬 = 요시야 = 요셉 =요셉 = 예수 + 제매들

3. 해양족 블레셋인의 침입

기원전 12세기 초두,동부 지중해 연안에 해양족 블레셋인이 침입하여 이스라엘 제 부족은 심각한 위기에 빠졌다.
고고학적 사료에 의하면, 블레셋인은 작고 둥근 방패와 길고 곧은 칼을 쓰며 머리에 반원형 뿔 장식을 단 투구를 쓰고, 두 필 말이 끄는 3인승 병차를 몰고, 행군 후방의 이륜 마차에 처자를 태우고 있다. 그들은 이집트 제에 이집트에서 추방되어 북상하고 가나안 남부 두로에서 가자에 이르는 동부 지중해 연안에 정착하였다.
<해양족>이란 이집트의 비문과 벽화에 의하여 그 존재와 활동이 입증된 소수의 혼성 민족들이다.
이집트 측의 사료에 의하면 해양족은 기원전 13세기 후반과 기원전 12세기 초경의 두 번에 걸쳐서 해상으로부터 이집트 왕국을 공격하였다. 첫 번째는 리비아 왕의 동맹군으로서 서쪽으로부터,두번째는 해양족이 주체가 되어 우선 힛타이트 제국을 습격하고 다시 키프로스와 시리아를 거쳐 남하하여 북쪽으로부터 이집트를 공격하였다. 이집트는 그때 상황에 따라서 파라오의 지휘로 전력을 쏟아 그들을 격퇴시켰다. 그들의 활동은 전승비문에 의하여 확인되었다. 해양족의 해상에서의 활동은 기원전 13세기,발칸 반도 북부의 다뉴브강 유역을 근거로 한 민족 이동의 일환이라고 한다.

블레셋인은 해양족을 구성하는 한 민족이었다. 블레셋인은 특히 가자.아스클론,아스돗,에글론,갓의 5개 연안 도시를 중심으로 해서 북방의 페니키아 도시들과 지중해 무역을 경쟁하여 강력한 도시 문화를 건설하고 그 땅의 선주민 가나안인에 대한 군사적 지배층을 형성하고 가나안인은 군주의 지배 아래 있었다.
블레셋인은 구약성서에서는 <크레테에서 온 할례 받지 아니한 자>로 불리고 그들은 단일 인종이 아니라 소아시아나 지중해를 거쳐 크레테 섬 쪽에서 셈족세계로 침입해 와서 정착한 인도.유럽어계의 이민이었다고 본다.
블레셋인의 종교는 이스라엘의 종교와 달라 가나안인의 종교를 혼합하고 셈족의 신 다곤을 숭배하고(판관기 16장 23절,사무엘기상 5장1-7절),마르나(고기의 신)이나 아스타롯 등을 숭배하고 있었다. 즉 다곤을 아스돗과 가자에 모시고(헤로도토스<역사>I 105),아스글론에서는 아스타롯을 모시고 에글론에서는 바알,세붑의 신전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알 수 있다.
블레셋인의 신들은 셈족의 신들이며,그들은 에게 세계와 깊은 교역 관계를 가지고 있었던 우가리트 왕국의 신들과 별로 다르지 않은 신들을 섬기고 있었다.

4. 무엇이 <영웅시대>를 오게 했는가

가나안 정착에 이은 판관 시대(BC 1200년경-1020년경)는 왕국 형성과 직결되는 시대이기도 하고,판관 시대의 사회는 이미 도이치의 사회 경제학자 막스 웨버(1864-1920)가 지적한 것처럼, 원래 반유목민적 소가축 사육자로서 출발한 소가축 사육자 층,농민층 및 도시 정주 문벌 층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들 제 사회층은 유동적 발전적으로 가나안에 정착한 것으로 생각된다. 전체적으로 판관 시대는 이스라엘 제 부족에 대한 블레셋인을 포함한 인근 제 부족의 군사적 침략으로 특징지어진다. 이스라엘 제 부족이 예기치 못하게 부닥친 가장 위험한 위협은 인근 제 부족에 의한 것도 아니고 유목민에 의한 것도 아니고 해양족 블레셋인에 의한 것이었다. 따라서 이 시대의 이스라엘 제 부족은 선주민 가나안인 사이에서 그 생존을 확립하려고 전력을 다했다. 즉 판관 시대는 이스라엘 제 부족이 인근 부족들의 군사적 압박을 이기고 가나안에 살아남기 위한 싸움의 연속이었다. 판관기에 의하면 이 싸움은 부족 집단의 공통의 하나님 야훼의 싸움이며,그것은 하나님에게 속한 자의 싸움,즉 성전이고 그 싸움의 지도자들은 쇼페팀(구원자)의 뜻이라 부르면 판관 또는 사사라고도 번역할 수 있다.
그들은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에 침입하여 왕국을 세우기 까지의 사이에 이스라엘을 외적으로부터 지키기 위하여 하나님 야훼에 의하여 세워진 지도자였으며, 그 일은 동포를 외적의 위험으로부터 구원하는 군사적 활동과 중재와 조정의 재판 행정적 사법 활동이 있었다.
우리가 보는 현재의 판관기는 사료 비판에 관계없이 그 내용을 개관하며, 모세의 후계자이며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인 여호수아의 사망 후부터 사무엘의 탄생 전까지의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를 기록한 것이다. 즉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에 침입한 후의 가나안의 부분적 점령의 서문적 개관(1장-2장5절),판관의 이야기(2장6절-16장),단 부족의 이주(17장-18장),베냐민 부족에 대한 싸움(19장-21장)의 이야기를 포함한 부기의 3부로 돼 있다.
그러나 판관기는 다른 예언서와 마찬가지로 그 소재와 편찬이 대단히 복잡한 구조로 돼 있으며,학계에서 그 사료비판에 관한 연구가 확립되어 있지 못하다. 판관기는 그 사상, 문체,용어, 그 밖의 여러가지 차이가 시사하는 것처럼 한 저자가 동일 소재에 의하여 일관하게 기록한 것이 아니고, 다른 구약성서의 역사서와 마찬가지로 많은 사료로 됐고 많은 사람의 손을 거쳐서 바빌로니아 포로시대 이후인 기원전 500년경부터 기원전 200년경의 3세기 사이에 편찬된 것이라고 생각된다.

5. 어떤 영웅이 판관시대에 활약했는가

판관기의 중심주(2장-16장)에 기록돼 있는 판관들은 보통 학문적으로는 <대판관>(오드니엘,에훗,드보라와 바락,입다,삼혼 등)과<소판관>(삼갈,돌라,양이르,입산,엘론,압돈 등)의 두가지로 나뉜다.전자는 판관시대에 1부족 내지 여러 부족의 집단에서 나온 전형적인 카리스마(신으로부터 주어진 영적 통치적 지배)적이고 일회적인 행위로 부름받은 군사적 지도자이며, 막스.웨버의 말과 같이, 이 부족의 구성원은 판관의 신성성, 영웅적 힘에 자발적으로 복종했고, 그 지배 관계는 비일상적인 성격을 가졌고,다른 사람에의해서는 계승할 수 없는 것이었다.즉 그들은 왕국이 세워지기 전의 변혁기에 이민족에 의한 압박과 군사적 정치적 위기에 직면해서 하나님의 카리스마를 받고 서서 그 위기를 구원한 대부분은 지방의 유력자이며 호족이었다. 그리고 그 위기가 지나가면 그들은 공적인 무대에서 물러나고 다시 새로운 위기가 닥치면 다른 판관이 서서 지도자가 되는 것이다. 지도자로서의 그들의 활동은 일시적인 것이며 그때그때의 하나님의 카리스마의 도래에 따르고 있었다. 따라서 그 활동 범위도 전 이스라엘이 아니라 대개는 좁은 범위에 그쳤다. 후자는 판관기 10장과 12장에 그 재임 연수만이 기록되어 있는 몇사람의 지도자들이 그것이며, 그들은 아마 이스라엘 여러 부족에 대한 문관적 지도자로서 가나안 법을 이스라엘 여러 부족에게 도입하고 부족 같의 이해나 분쟁을 조정한 것같다.
이상과 같은 의미에서,전자는 군사적 영웅 즉 <카리스마적 지도자>로 후자는 판관이라고 부른다.
판관시대의 지역적인 일련의 사건은 신명기 사가의 독특한 이데올로기적인 틀에 의하여, 계기적 국가적 규모의 사건으로 보고 현존의 판관기 속에 순차적으로 배열되어 있다. 그 틀은 어느 판관에 관해서도 하나님에 대한 불의, 하나님의 분노, 외적의 침입의 형태로 나타나는 하나님의 책벌로 이스라엘의 회개와 해방자(판관)의 출현 해방, 평화의 도래의 정식으로 기록되어 있다. 판관 설화도 계기적인 것은 아니었다. 그 사건은 국가적인 규모의 사건이라기 보다는 지방적인 규모의 사건이었다. 단,판관기 4장과 5장에 산문과 시문의 형태로 전해지고 있는 이른바<드보라의 노래>는 이즈로엘 평야의 가나안 도시들과 이스라엘의 북방 부족들의 싸움이며, 이 싸움은 시스라에 대한 드보라와 바락의 싸움이며, 에브라임, 베냐민,므나쎄,즈불룬,이사갈,납달리의 북방 6부족이 참가한 국가적 규모의 싸움이었다. 이 싸움은 판관시대에 일어난 전투 중 가장 중요한 전쟁이었다. 판관기 5장에 기록돼 있는 가나안 도시들 연합군에 대한 전승가<드보라의 노래>는 구약성서 중의 수많은 사료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다. 여기에 그 전문을 소개하자.

6.전승가<드보라의 노래>란 무엇인가
이스라엘의 용사들이 머리를 풀고
백성들은 스스로 전진하니,
야훼를 찬양하여라!
너희 왕들아 들어라!
너희 왕족들아 귀를 기울여라!
나는 야훼를 노래하리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야훼의 영광을 돌리리라.

 야훼여, 임께서 세일에서 나오실 때,
임께서 에돔 땅에서 진군하실 때.
땅은 흔들리고,하늘은 진동하여
구름이 비를 쏟았습니다.
신들이 야훼 앞에서 녹아니고
저 시나이산도, 이스라엘의 하나님
야훼 앞에서 녹아 내렸습니다.

아낫의 아들 삼갈의 시대에도
야엘의 시대에도
사람들은 큰 길을 버리고
오솔길로 다녔네.
오,드보라,당신이 일어서기까지
이스라엘의 어머니 당신이 일어서기까지,
이스라엘의 촌읍들은 죽어 있었네.
새 신들을 저희 신으로 삼았다가
전쟁이 성문에 들어닥쳤는데
도시 다섯에 방패 하나 없었고
사만 명 이스라엘 군인 가운데 창 하나 없었네

이스라엘의 사령관들은 생각하니
자원해서 나선 백성을 생각하니
나의 심장이 뛰는 구나.
너희는 야훼를 찬양하여라.
흰 암나귀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아.
비싼 양탄자를 깔고 사는 사람들아.
대로를 활보하는 사람들아. 노래하여라.
우물 가에 모여 기뻐하는 사람들아.
야훼의 승리를 노래하여라.
이스라엘을 거느리시고 거두신 승리를 노래하여라.
그때 야훼의 백성은 성문께로 내려 갔다.

드보라야, 떨쳐 일어나라. 일어나라.
떨쳐 일어나라, 일어나 노래를 불러라.
바락아, 일어나라.
아비노암의 아들아,그대의 포로들을 끌고 가거라.

그때에 이스라엘은 성문께까지 내려갔다.
야훼의 백성은 영웅처럼 야훼를 편들어 싸우러 내려 갔다.
에브라임의 왕자들은 골짜기에 있고
네 형제 베냐민이 귀족들과 합세하였다.
마길에서 사령관들이 내려왔고
즈불룬에서는 지휘봉을 잡은 자들이 내려 왔다.
이사갈의 왕자들이 드보라와 함께하며,
이사갈도 바락에게 충성을 바쳐
그 뒤를 따라 골짜기로 달려갔다.

르우벤은 냇물가에들 모여서
끝도 없이 토론이나 벌이는구나
어찌하여 양떼 틈에 끼어 피리부는 소리나 들으며
양 우리에서 서성거리는가?
(르우벤은 냇물 가에들 모여서
끝동 없이 토론이나 벌이는구나)
어찌하여 길르앗은 요르단 건너편에 머물러 있고
단은 남의 나라 배나 타고 있는가?
아셀은 바닷가에 자리잡은 채
항구에서 편히 쉬고 있는데,
즈불룬 지파도 납달리도 언덕 위에서
목숨을 내걸고 싸웠다.
왕들이 몰려 와 전투 대열을 벌였다.
가나안 왕들이 므기또 물가 다아낙에서 싸웠으나,
수지가 맞지 않는 싸움이었다.
위로 하늘에선 별들이 싸웠다.
궤도를 돌며 시스라를 쳤다.
키손의 물결이 앞을 막았다가
저들을 쓸어 갔다. 키손의 물결이,
나는 있는 다해서 짓밟았다.
굽을 안고 뛰어 가는 말.
그 발굽에 땅은 진동하였다.
"메로즈는 저주를 받아라"고 야훼의 천사가 선언하였다.
"저주,저주를 받아라, 그 안에 사는 것들,
저들은 야훼를 도우러 나오지 않았다.
야훼를 도우러 용사들과 어울려 나오지 않았다."

켄 사람 헤벨의 아내 야엘이여,
어느 여인보다 복을 받아라.
방구석에 묻혀 사는 어느 여인보다 복을 받아라.
시스라가 물얼 달라고 하였을 때 우유를 주고는,
귀한 그릇에 엉긴 우유를 떠 주고는,
왼손을 내밀어 말뚝을 잡고
오른손을 내밀어 대장장이의 망치를 쥐고
시스라를 쳐서 머리를 부수고
관자놀이를 뚫고 쪼개 버렸다.
시스라는 그의 발 앞에서 꿈틀하고 죽었다.
그의 발 앞에서 꿈틀하고 죽었다.
바로 그 자리에서 꿈틀하고 죽어 망하고 말았다.
시스라의 어미가 창문으로 내다보며
창살틈으로 소리쳤네.
"왜 그의 병기가 이렇게 늦느냐?
천리마가 왜 이처럼 더디냐?"
시녀들 가운데 가장 지혜로운 자의 대답을 따라
그도 환잣말로 지껄였네
"틀림없이 약탈한 것을 모아 나누겠지
용사 하나하나에 여자 하나씩 또는 둘씩,
시스라 몫으로 채색한 옷 한 벌, 또는 두 벌.
그리고 내 몫으로는 수놓은 목도리 하나 또는 둘."
야훼여,임의 원수들은 모두 이처럼 망하고
임을 사랑하는 이들은
해처럼 힘차게 떠오르게 하소서."

이 유명한 전승의 기쁨을 노래한 <드보라의 노래>는 전쟁 직후에 노래한 것이며, 이 노래에는 전쟁의 생생한 광경이 묘사되어 있다. 그리고 이 노래는 헤브라이 시가 중에서 최고 최대의 걸작이며, 문학사상 뛰어난 전승가의 하나이기도 하다.

7. 드보라의 전쟁 연대는 언제인가

드보라는 야빈과 시스라가 지휘하는 가나안군과의 싸움에서 바락을 독려하고 함께 싸워서 여선지자들로자적 기능을 견디지 못하게 됐을 때 드보라는 바락을 불러서 시스라가 참가하여 결전이 이즈르엘 평야에 벌여져 드보라의 참전 독려로 예상 밖의 대승리를 거두게 됐다.<드보라의 노래>에 의하면 이 전투는 겨울 우기에 <므기또 물가다아낙>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호우 때문에 물이 붙은 키손강의 격류가 가나안군의 전차를 휩쓸어 그 기동력을 잃었기 때문에 그들은 고지를 내려온 이스라엘의 북방 6부족의 군단에 의하여 격파되었다. 이렇게 해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드보라의 도움으로 운명의 위기를 모면하였다.
드보라는 여예언자로서 활약한 인물로 전해지고 있는데 그녀는 길가에 서 있는 거룩한 나무 곁에 앉아서 영웅 바락에게 신탁을 알리는 이른바 무녀였다. 이것은 당시의 원시적 공동체 부족 사회에서 계급 사회로 전환하는 이스라엘의 과도기 사회의 최고의 의지를 나타내는 것이 여성의 영매였던 것을 전하는 것이 나타내는 것이 여성의 영매였던 것을 전하는 것이 아닐까.
고대 이스라엘 뿐아니라 고대 오리엔트 여러 나라에서는 법은 신왕과 직접 관련을 가지며, 재판은 자주 제의와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었다. 특히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판결 방법이 특이했다. 특히 어려운 사건인 경우는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 인물에 의한 판결이 요구되었다. 드보라는 바로 이런 상황에서 여예언자인 동시에 판관으로서 활약한 인물이었다.

바락과 시스라가 싸운 연대는 <드보라의 노래>가 유일한 역사적 사건을 테마로 해서 지어졌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면, 고고학적 사료로는 기원전 13세기 중엽 이후가 된다. 기원전 12세기말이 가까와서 일어난 일이나고 생각하는 학자도 있다.

다까바시마오 저, 한영철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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