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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May

실크로드의 영웅 고선지 장군의 족적을 따라서

작성자: blue IP ADRESS: *.168.72.118 조회 수: 5721

출처 ; 월간 山 -- 2006.11. 445호

실크로드의 영웅 고선지 장군의 족적을 따라서



텔레비전을 보아도 온통 고구려에 관한 이야기 일색이다. MBC의 주몽은 고구려 건국이야기고, SBS의 연개소문은 고구려가 가장 번성했던 시대를 그리고 있다. KBS의 대조영은 고구려 멸망 후 고구려를 이어받은 발해 건국 이야기를 다룬다. 거기에 더해 중국은 동북공정이다 뭐다 해서 고구려사를 왜곡하며 우리의 심기를 거슬리니 고구려가 올해의 최고 이슈가 되었다.

자연스럽게 고구려의 유민으로 가장 성공한 인물은 누구일까? 을지문덕? 연개소문? 고선지? 지난 일요일에 본 드라마 대조영에서 당 이세민의 대사가 문득 떠오른다. “하늘이 내린 인재를 고구려엔 둘이나 주면서 왜 나에겐 하나도 주지 않는단 말이냐?” 분명 신이 내린 재주를 가진 명장임에는 틀림없다. 그런데 을지문덕이나 연개소문은 만주와 한반도를 벋어나지는 못했다.

지금으로부터 1,200년 전 어떤 장군이 있었다. 아버지의 고향과는 거의 관계가 없고, 아버지의 고향에서 무지무지 멀리 떨어진 서역 총관 고선지라는 장군이다. 그는 전쟁에서 단 한 번 패했을 뿐 불가능하게 생각되던 모든 전투에서 승리한 신화적인 장군이다.

기업이 스타 CEO에 따라 주가가 오르고 내리듯 당시 전쟁은 어느 장군이 전투지휘관이냐에 따라 승패가 결정나곤 했다. 그런 전투에서 고선지는 최고의 CEO이며 패배를 모르는 당대 최고의 명장이었다. 고선지의 장군으로서의 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중국 역사에서 꼽는 10대 명장 중 한 명이며 더욱이 한족이 아닌 유일한 인물이다.

고선지의 대담하고 치밀한 전술은 오늘날 전술로도 획기적인 것으로, 이를 두고 영국 사학자 스타인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고선지가 파미르를 넘어 토번을 기습한 것은 세계 전쟁사에 길이 빛나는 전술로서 나폴레옹이나 카르타고의 하니발이 알프스를 넘은 일보다 더 위대한 일이다.”

▲ 빙하가 두 봉우리를 나누어 놓은 모습은 고봉에서는 특이하다. 빙하는 두 봉우리 사이의 암부에서 흘러내린 게 아니라 무즈타그아타를 두동강 낸다. 빙하에 짤려나간 모습이 그냥 동네 뒷산 같다.

고선지 장군은 뛰어난 산악인?


그러나 장군 고선지는 최고의 자리에 올랐지만 정치의 희생양이 된다. 정치의 세계는 힘의 균형을 추구하는 비열하고 비정한 세계다.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끌며 조선을 전쟁의 구렁텅이에서 구한 이순신 장군이 정말 죽었는지 아니면 죽음을 가장하여 현실세계에서 사라졌는지 알 수 없다고 한다. 확실한 건 마지막 전투까지 최선을 다했으며 승리가 확인되는 순간 사라졌다는 것이다.

당나라 왕조는 고선지가 동관에서 안록산의 공격을 막아 겨우 위기를 모면하고 숨을 쉴 만하자 고선지를 음해하여 참살한다. 권력은 경쟁자를 원하지 않는다. 진실성과 가치는 이미 고려 대상이 아니다. 이순신도 그렇고 고선지도 그렇고 현실정치의 희생양이 되었지만, 전혀 저항하지 않는다. 어쩜 정치와 싸워 이길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의(義)와 충(忠)을 중시하는 무인기질이 아닐까? 그리고 후대의 사학자가 평가하기를 바라지 않았을까?

실크로드를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너무나 다양한 사람과 종족이 소통했던 통로임을 알 수 있다. 동서로 길게 난 3개의 간선 외에도 남북으로 난 많은 지선들이 모여 실크로드를 더욱 활성화시킨 것을 알 수 있다. 동서로 난 간선을 교역의 길이라고 하면 남북으로 난 길은 교역과 전쟁을 같이 한 길이다. 그래서 동서 간선은 낙타의 길이라고 하고, 남북 지선을 말의 길이라고 정수일 교수는 <실크로드학>에서 지적한다.

실크로드를 다시 프리즘으로 비추어 보면 유난히 화려하고 밝은 색채를 띤 세 사람이 보인다. 바로 실크로드를 처음 개척한 한나라의 장건, 실크로드를 확장한 당나라의 고선지, 그리고 실크로드를 따라 세계제국을 건설한 칭기즈칸이다. 어느 날 평소에 알고 지내던 KBS 피디로부터 연락이 왔다. “남북 청소년을 모아 고선지 장군의 원정로를 따라 탐험원정대를 꾸리려고 한다. 이는 분단된 조국의 현실을 넘어 우리 사회에 미래의 꿈과 희망을 줄 수 있는 일이 될 것이다. 분명 50년 전 분단의 유산은 우리 세대에 해결되어야 하고, 미래 남북의 청소년은 좁은 한반도가 아닌 1,200년 전 고선지 장군이 그랬듯이 미지의 세계, 더 넓은 세계로 뻗어가야만 한다. 그것이 우리 민족의 살길이다. 이런 메시지를 던지는 원정대를 꾸리자.”

간단명료한 설명에 그 날 밤을 새워 고선지가 떠났던 원정로를 더듬어 나갔다. 그리고는 한 가지 더 알게 되었다. 재미난 가설일지 몰라도 그는 뛰어난 산악인이었다. 그는 인류 최초로 파미르를 넘고 힌두쿠시 산맥의 탄구령을 넘어 지금의 파키스탄인 소발륙국을 정벌하고 토번세력을 제압했다. 그가 탄구령을 넘은 것은 일종의 알피니즘은 아닐지라도 당대 가장 첨예한 등산이다. 유럽의 현대 알피니즘의 역사도 그렇게 길지 않다. 몽블랑을 오른 소쉬르를 시작으로 본다면 높이나 시기에서 고선지 장군은 1,000m를 더 올랐고 몇 백 년을 앞선 창시자가 된다.  

파미르의 수문장 무즈타그아타

파미르고원은 유라시아 대륙의 중심지로 천산산맥, 곤륜산맥, 카라코람, 히말라야, 힌두쿠시, 알라이산맥 등 대산맥들이 한 곳에 집중되어 이룬 산악고원 지역이다. 따라서 대륙의 중심, 대륙의 배꼽이라고 불린다. 이런 연유로 여러 건국신화에서 이야기하는 최초의 인류와 신국(神國)인 마고성(麻姑城)이 위치한 곳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에덴동산 같은 이미지라고 할 수 있다.

파미르는 지역적으로 중국의 신강성 서부와 타지키스탄과 키르기즈스탄 일부에 한정되며, 형세는 중앙지역은 평탄한 고원을 이루나 변두리로 가면서 지각운동으로 밀려서 고산이 만들어지고 빙하에 깎여 깊은 계곡이 형성된다.

▲ 타시쿠르간의 석두성에서 바라본 파미르. 타시쿠르간에 오면 이젠 파미르 영역에서 곤륜의 영역으로 들어온 것이다. 그래도 멀리 파미르의 산들이 보인다. 바로 콩구르산군이다. 무즈타그아타는 산자락에 가려 숨겨져 있다.

파미르는 보통 동·중·서 세 산괴로 구분된다. 동파미르는 카시가르 파미르라고 하며 중국령에 속해 있고, 이 지대는 기후가 한랭하고 건조하기 때문에 관목들을 제외하면 식물이 거의 자라지 못하는 삭막한 사막기후다. 그러나 파미르 최고봉인 콩구르(7,719m)과 제2위봉인 무즈타그아타(7,546m)가  카라콜 호수(3,600m)를 사이에 두고 마주 서 있다. 

중부 파미르는 엄격한 의미의 파미르 고원이라 할 수 있다. 평평한 고원이 아직 잔존하기 때문이다. 서 파미르는 주로 타지키스탄에 위치하며 레닌봉(7,134m), 코뮤니즘봉(7,495m) 등 여러 산들이 총립하여 웅대한 장관을 보여준다.

고선지 장군이 1만의 고구려 유민 군대를 거느리고 넘은 파미르는 동파미르로 지금의 카시가르 파미르다. 가장 인상적인 실크로드의 간선인 실크로드 남로가 지나는 길목이기도 하다.  이 지역의 가장 인상적인 산은 콩구르와 눈산의 아버지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는 무즈타그아타다. 이 두 산 사이에는 카라콜(검은 호수라는 뜻·3,600m)이라는 인상적인 호수가 있으며, 이 호수에 비친 무즈타그아타의 모습은 자연의 아름다움이 어느 정도인지 알려주려는 듯하다.

검은 호수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호수는 중앙아시아와 몽골 고원에서 자주 볼 수 있다. 몽골의 알타이산맥으로 가면 하르누르(검은 호수)라는 호수가 있고,  키르기즈스탄의 어느 빙하호수도 카라콜이라 불린다.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나 중앙아시아 유목민들에게 검은 호수가 어떤 상징적인 의미를 갖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마저 든다.

카라콜 호수에 닿으니 모두들 구름에 올라앉은 기분이다. 차로 6시간을 달려 고도 3,600m대에 내려놓으니 당연한 일일 것이다.  점심을 먹기 위해 요르트 식당에 앉았으나 누구도 나오는 음식에 관심이 없다. 약간 울렁거리는 속은 거북하고 몸은 구름을 걷는 듯 흔들거리고  더욱이 숨까지 가빠오는 게 첫 경험으로는 기분이 좋지 않다. 일부는 첫경험의 신비로움에 애써 여유를 보이지만 모두는 분명 두려워하고 있다. 뭐 이런 게 다 있나 싶다.

탈수를 방지하기 위해 의무적으로 차를 5잔이나 마시라는 대장님의 강압에 먹히지 않는 차를 마시면서 앉아서 휴식을 취하니 조금 몸이 나아진다. 오늘 일정은 카라콜 호수를 산쪽 방향 즉 호수 안쪽으로 돌아 무즈타그아타 아래에 자리 잡은 마을인 시바시까지 트레킹이다. 차량으로 캠프지에 가면 혹 잠자는 동안 고소증에 시달릴 것 같아 일단 고소적응을 위해 잠시나마 걷고자 잡은 코스다.

카라콜 호수에서 시바시 마을까지 약 3시간 소요되며 거리는 10km 정도다. 그러나 평지고 아름다운 산과 호수를 보며 걷는 한가로운 트레킹이므로 부담이 없다. 고소적응을 위해 몸 푸는 기분으로 가볍게 걷는다. 카라콜 호수를 돌아 키르기즈족 마을인 시바시에 닿으려는데 갑자기 굵은 빗방울이 쏟아진다. 어느새 하늘은 검게 변해 어슴푸레한 저녁나절 같다. 급하게 가이드가 권하는 민가를 찾아 들어갔다.

▲ 카라콜 호수를 돌아 204캠프로 가는 길. 멀리 보이는 사각형의 흑집들은 키르기즈족 마을인 아이다라(Idara) 마을이다. 바람과 먼지와 추위에 강한 형태로 지어져있다.

일행 20명이 한 집으로 비를 피해 몰려들자 주인이 당황하여 우리나라로 치면 안방인 가장 큰 방을 비워준다. 신을 신고 들어가 걸터앉을 수 있는 안방은 20여 명이 젖은 몸으로 쉬기에는 안성마춤이다. 주인이 따뜻한 물에 차를 타서 들고 들어와 한 사발씩 따라주니 찬 빗방울에 움츠러든 몸이 개운해지며 풀어진다. 그때 누군가 외쳤다. “무지개다!”  어느새 비가 그치고 마을을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포개며 내려앉은 무지개. 한눈에 너무 커서 다들 내 생애에 처음이란 감탄사를 붙이며 넋 놓고 바라본다.

마을을 떠나 대기하고 있는 버스를 타고 오늘 목적지인 204캠프로 이동한다. 호수에서 1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 204캠프는 카시카르에서 204km 떨어졌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인데, 키르기즈족 마을인 아이다라 앞의 넓은 초지다. 너무 넓고 아름다워 며칠을 쉬어도 포근한 그런 캠프지다. 좌우로 콩구르와 무즈타그아타가 내려다보고 눈가림 하나 없이 넓은 초원의 싱그러움이 태양과 조우하며 피어나는 곳, 태양이 근무교대하는 시간이면 싱그러운 바람이 설산을 떠나 귀밑을 살살 보듬는 곳, 밤새 이야기가 끊이지 않도록 추억에 추억을 쌓아간다.

잠자리로 돌아가는 시간이 아쉬워 누군가는 몇 번을 다짐했다. 이곳으로 신혼여행 오겠다고. 그런데 짝을 잘 찾아야 할텐데. 그 짝도 이런 오지를 좋아할지 그게 궁금하다.  

 

204캠프는 카시가르에서 204km 떨어진 곳

204캠프는 무즈타그아타 베이스캠프로 가는 길목이다. 무즈타그아타는 카라콜 호수 방향으로 봉우리가 하나 있고 그 뒤로 더 높은 봉우리가 서 있는데 뒷봉우리가 주봉이다. 두 봉우리 사이를 특이하게도 빙하가 흘러내리며 갈라놓는다. 그 빙하를 크마톨카(Kmatolka) 빙하라 부른다. 아마 8만 년 전에 형성된 마지막 빙하기 때의 유산일 것이다.

무즈타그아타의 트레킹은 두 곳을 목표로 한다. 하나는 베이스캠프(4,450m)이며 다른 한 곳은 무즈타그아타와 전면에 마주 보고 있는 양불락봉(4,100m)이다. 두 곳을 하루에 갔다오는 일은 쉽지 않다. 10시간 정도 걸어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베이스캠프에서 일박하는 것보다 204캠프가 편안하고 아늑하니 하루의 고소적응 시간을 가졌다면 하루에 트레킹을 하는 게 좋다.

▲ 204캠프. 카시카르에서 204km 떨어져있다 하여 붙여진 아름이다. 넓은 초원에 멀리 파미르의 최고봉 콩구르산과 가까이 파미르의 제2위봉 무즈타그아타가 지켜준다.

아이다라 마을을 지나 파미르와 곤륜산맥이 만들어 놓은 거대한 분지 안으로 들어간다. 높은 산 아래 널찍하고 평평한 분지는 아주 독특하다. 오랜 침식과 풍화에 의해 만들어진 분지일 것이다. 분지로 들어서는 입구에서 보면 왼편에 계곡이 있다. 이 계곡 안에 자리 잡은 마을이 양불락(Yanhbulak)이다. 이 계곡의 왼쪽 능선을 따라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양불락이라는 봉우리가 마땅히 있는 것은 아니다. 이 마을을 말굽형을 감싸고 있는 능선의 봉우리들이 다 양블락이다.

▲ 양불락 마을. 어렴풋하나만 왼편의 부드러운 능선을 타고 올라가면 양불랑봉이다. 너무 무즈타그아타에 가까이 있어 한몸같이 느껴진다.

따라서 트레킹도 어디까지 길게 갈지도 선택하면 된다. 하나의 작은 봉우리를 오르면 또 작은 봉우리가 멀지 않은 곳에 나타나기 때문이다. 양불락은 날씨가 좋은 날이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전망대다. 쿡사이(Kuksay·7,184m·무즈타그아타 전위봉)와 무즈타그아타를 배경으로 같은 높이에서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산을 배경으로 놓으면 마치 어릴 때 사진관에서 높은 설산 위에 앉은 모습으로 남겨진 사진처럼 무즈타그아타를 위협하는 나 자신을 그려낼 수 있다. 그만큼 가깝고 전망이 너무 너무 좋다.

또한 봉우리에 올라 내려다보면 저 아래 펼쳐진 파미르의 독특한 분지도 아주 인상적이다. 걸으면 그냥 너덜지대지만 오랜 풍화로 산이 구릉이 되고 다시 흙으로 변하여 다시 먼지로 되어가는 수천년의 과정을 샘플처럼 보여주는 지질적 구조가 한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물론 저 멀리 곤륜산맥과 파미르 산괴가 만나며 급하게 갈라놓은 계곡의 심오한 어지러움도 보인다. 저 계곡을 따라 고선지 장군이 고산준령을 넘었을 거라고 상상하면 산악인 고선지의 진가는 역사를 뛰어넘어 오늘날도 그 혜안에 놀랄 뿐이다.

양불락봉에서 계곡으로 내려가면 양불락 마을이 나온다.  몇 가구 되지 않지만 먼지가 얼마나 불어오면 창이 조만할까 싶다. 진흙으로 발라 놓은 벽에는 추위와 더위를 조금이라도 차단하려는 의지가 곳곳에 묻어있다. 구경나온 아이와는 중국말이 안 통한다. 중국말이 통하지 않는 중국이 바로 서역이란 생각이 든다.

마을에서 배낭에 넣어온 음식으로 허기를 채우고 길을 따라 작고 완만한 지능선을 넘는다. 지능선은 작고 부드러워 힘들지 않다. 다시 지능선을 3개 넘자 신발을 벗어야 건널 수 있는 강이 나온다. 크마톨카 빙하가 녹아 흘려보내는 물일 것이다. 도저히 발이 시려 얼굴에 미소를 지을 수 없다. 반대편으로 건너자 물이 얼마나 찬지 한참 얻어맞은 기분이다. 그 때문인지 강을 건너고 나면 발의 피로가 쫙 풀리는 게 발마사지를 1시간쯤 받고 나온 기분이다. 

▲ 양불락(Yangbulak·4,090m)을 향해 걷는다. 뒤의 삭막한 분지와 봉우리를 돌아 길게 늘어선 길게 대원들의 모습이 한 폭의 그림같이 잘 어울린다

다시 지능선을 2개 넘으니 저 멀리 베이스캠프가 보인다. 베이스캠프보다는 베이스캠프로 들어가는 길목이 정말 전망이 좋다. 무즈타그아타와 크마톨카 빙하는 이곳이 최고의 전망대다. 사진을 찍으려는데 그만 카메라를 캠프에 두고 왔다. 한탄해도 늦은 시간을 돌릴 수는 없고 그냥 더불어 한 장 찍어본다.

베이스캠프에서 204캠프로 돌아오는 길은 전혀 다른 길을 택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베이스캠프로 가는 길은 두 가지라는 뜻이다. 만약 양불락을 거쳐 베이스캠프를 하루에 가려는 계획이 아니라면 분지의 바닥을 따라 끝도 없는 길을 3시간 정도 무즈타그아타를 왼편으로 두고 돌아간 다음 1시간 정도 오르막을 오르면 바로 베이스캠프에 닿을 수 있다. 휠씬 단조롭지만 편하고 쉬운 길이다. 시간적으로도 1시간 정도 절약할 수 있다. 베이스캠프에서 차를 한 잔 시켜 마셨다. 

생애 처음으로 4,000m대를 넘은 흥분은 가라앉고 산행이 길어지면서 피로감과 가벼운 두통을 느끼는 대원들이 늘어났다. 다리가 풀리기 전에 출발해야지. 돌아갈 길도 3시간은 걸어야 하기 때문이다. 채근해서 베이스캠프로 출발했다. 마침 구름이 다가와 산을 덮어 버리니 아쉬움 반 서운함 반이지만 미련두지 않게 정을 끊어주는 무즈타그아타의 심중을 읽을 수 있었다. 

빨리 길을 재촉해야 한다. 벌써 오후 4시가 넘었다. 산은 여지가 없다. 해가 떨어지면 바로 기온차에 의해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황량한 분지에서 부는 바람은 먼지가 가득하다. 길이 안 보일 수도 있다. 낮 동안 태양이 저질러 놓은 일은 태양의 퇴청하는 밤 시간엔 역으로 나타난다. 더운 기온이 상승하여 빙하의 찬 기운과 만나면 물방울이 만들어지고 곧 내리쏟을 태세다. 가야한다, 빨리, 캠프로.

*이 글은 KBS 제1라디오가 주최한 ‘남북청소년 고선지 장군 원정로를 따라 신서역로를 달린다’ 프로그램 중 파미르의 제2위봉 무즈타그아타를 트레킹한 것이다.


# 트레킹 길잡이

소요시간 :  양불락봉 등반 6~8시간 / 베이스캠프 6~8시간 / 양불락-베이스캠프 8~10시간.

# 여행 키포인트

1) 인천-우루무치간 대한항공 직항편이 5월부터 10월까지 운항한다. 이 항공노선을 이용하면 보다 저렴하고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다.
2) 무즈타그아타 트레킹 후 카라코람 하이웨이를 따라 쿤제랍패스를 거쳐 파키스탄으로 이어지는 실크로드 여행은 오지여행의 진수다.
3) 콩구르 트레킹은 당일 트레킹에서 2~3일 트레킹이 다양하며, 트레킹 기점은 무즈타그아타와 같이 카라코람 하이웨이에서 가깝게 있어 카시가르에서 차량으로 하루면 남면, 북면 트레킹 기점에 접근할 수 있다.

글·사진 채경석 한국외국어대 OB·TnC여행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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