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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에서 광야로

2011.02.01 08:54

blue 조회 수:9461

 174.jpg

다음의 글은 중앙시평에 "성전에서 광야로" 라는 타이틀로 게재된
법무법인 충정 대표이신 이우근님의 오피니언입니다.


충격의 다큐멘터리 ‘울지마, 톤즈’를 눈물 너머로 보았다.
세상의 모든 빛이 꺼진 듯한 절망의 땅 남부 수단,
가난과 전쟁과 질병의 그늘 아래 내던져진 톤즈의 황무지에 소망의 씨앗을 한 톨 한 톨 심어가다가,
1년 전 마흔여덟 한창 나이에 선종(善終)한 고(故) 이태석 신부의 삶을 영상으로 대하면서,
마음속 깊은 곳으로부터 격한 분노가 솟구쳐 오르는 것을 억누를 길이 없었다.

 

오랜 내전과 극심한 부정부패로 민중의 고통을 외면해버린 수단 권력층에 대한 분노가 아니었다.
이 신부의 고독한 헌신에 동참하지 못한 종교인들의 ‘입에 발린 사랑’ 때문도 아니었다.
그 분노는 나 자신에 대한 것이었다.
고인의 짧았던, 그러나 더할 수 없이 치열했던 삶 앞에서 이제껏 내가 살아온 시간들,
내가 지녀온 믿음이 너무도 부끄럽고 죄스러워 나 자신을 용서하기가 어려웠다.

 

“가장 보잘것없는 이에게 베푼 것이 곧 나에게 베푼 것”이라는 예수의 말씀 (마태 25)에 이끌려
톤즈의 거친 땅에 사목(司牧)의 발을 디딘 이 신부는 그 어둡고 그늘진 자리에서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예수의 사랑을 실천했다.
손수 벽돌을 찍어 병원과 학교를 짓고 비참한 환경 속의 환자들을 치료하며 청소년들을 가르치는 한편,
브라스밴드를 조직하여 음악의 감성(感性)으로 저들의 고단한 영혼을 위로했다.
그는 사제이자 의사였고, 교사이자 음악가였다.

 

그는 입으로 강론하기보다 삶으로 강론했다. 그의 사제직은 성당의 강단에 있지 않았다.
그의 성직은 아프리카의 흙바닥에 있었다.
예수의 자리가 예루살렘 대성전이 아니라 갈릴리 호숫가, 사마리아의 이방인 마을,
그리고 골고다 언덕이었던 것처럼… 그는 ‘성전의 제사장’이 아니라 ‘광야의 예언자’였다.
아니, 한센인들의 몸에서 손수 고름을 짜내고 그들의 뭉그러진 발에다 신발을 맞춰 신긴 고인은
그네들에게 예수님, 바로 그분이었을 것이다.

 

고인이 존경했던 벨기에의 다미안 신부도 하와이 몰로카 섬에서 한센인들을 돌보다가
마흔아홉 살에 한센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신은 왜 이처럼 고결한 성인(聖人)들을 남보다 일찍 데려가시는 것일까?
이 신부의 동료였던 70세의 외국인 사제는 그저 ‘신비’라고 짧게 자문자답했지만,
톤즈의 땅에서 빛이요 소금이었던 이 신부를 뺏어가버린 그 신비는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강단을 대물림하는 세습 목회자들,
편을 갈라 주먹다짐을 벌이는 목사들,
신도들을 육욕(肉慾)의 노리개로 삼는 성직자,
청년실업자가 넘치는 불황에도 수천억원을 쏟아 호화 예배당을 지어 올리는 대형 교회,
기복(祈福)과 율법의 굴레로 신도들의 영혼을 옥죄며 실존의 자유를 속박하는 종교권력자들,
자기 신앙에도 투철하지 못하면서 다른 종교와 남의 믿음을 업신여기는 근본주의자들,
신앙을 이념으로 변질시킨 정치종교인들…
 
한국 기독교계의 슬픈 현실을 대하노라면,
이 신부를 가난한 병상에서 다시 일으키지 않고 그의 어머니보다도 먼저 데려간 신의 손길이 못내 야속하기만 하다.
내 믿음이 초라한 탓이겠지만.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종교재판장인 추기경은 재림한 예수를 이렇게 꾸짖는다.
“당신은 기독교를 교황에게 넘겨주었다.
기독교는 이제 당신의 것이 아니라 교황과 사제들의 것이다.
왜 우리의 일을 방해하는가? 가라. 다시는 오지 말라.” 이것이 정녕 저 종교재판장 혼자만의 목소리일까?

 

“곧추서 있는 모든 것은 하나의 불꽃이다.”(가스통 바슐라르, ‘촛불의 미학’)
한 사람의 참된 신앙인으로 곧추서기 위하여 화려한 성전을 떠나 적막한 광야로 나아간 사제,
거기서 자신의 모든 것을 태워버린 이 신부는 한 줄기 맹렬한 불꽃이었다.
그는 ‘촛불 든 사제’가 아니었다. 스스로 타오르는 촛불이었다.

 

“사랑해 당신을, 정말로 사랑해 / 당신이 내 곁을 떠나간 뒤에 / 얼마나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오.”
이 신부를 떠나보낸 톤즈의 아이들이
서툰 한국말로 흐느끼며 부르던 대중가요의 노랫가락이 엄숙한 진혼곡(鎭魂曲)의 울림처럼,
광야를 뒤흔드는 예언자의 음성처럼 내 안을 깊이 파고든다.

 

십여만 명에 이른다는 교회와 성당의 제사장들에게도 그 신성한 울림이 가슴 가득 전해졌으면….

 

이우근 법무법인 충정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