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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교파와 교단

2010.03.05 02:21

blue 조회 수:7250

et358.jpg 흑암의 역사에서 발췌

기독교 교파와 교단

기독교에 많은 교파가 있지만 이단이 아닌 이상 기독교로서의 공통된 교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근간이 되는 교리는 삼위일체론, 처녀잉태, 구속, 부활, 재림 등 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 교파들 간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는데 예배의 형식이나, 성만찬에 대한 견해,
교권체제, 신조,신학적 바탕 등에서 조금씩 다릅니다.

a) 장로교 (長老敎 Presbyterian)

칼뱅의 신학(神學)과 신앙고백을 중심으로 성립한 그리스도교의 개신교 교파.

장로란 신약성서에 나타나는 감독(bishop)·장로(elder) 등과 같은 의미로,
장로교는 이러한 장로들에 의해 치리(治理)되는 교회를 말한다.
창시자는 프랑스의 신학자이자 종교개혁가인 칼뱅(Jean Calvin)으로,
그는 16세기 중엽 성경에서 말하는 장로회제도를 확립하였다.
이후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기 시작해 1559년에는 프랑스에서만 2,000여 교회가 장로제도를 채택하였고,
이어 네덜란드·스코틀랜드에서도 많은 장로교회가 생겨났다.

특히 스코틀랜드는 1560년 이후 장로교회를 국교회로 지정해 이후 잉글랜드와 미국으로 전파하는 데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
1660년 청교도혁명이 끝나고 왕정 복고가 이루어진 뒤 잉글랜드에서는 세력이 약화되기는 했지만,
세계 장로교의 규범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과 웨스트민스터 요리문답, 헌법·예배지침 등을
청교도혁명 기간에 마련했다는 점에서 장로교 역사상 중요한 시기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미국에서는 1706년 필라델피아에서 처음으로 노회가 조직되고,
1789년에는 최초의 장로교 총회가 개최되었다.
그러나 노예문제·신학·전도방법 등의 이견으로 여러 교단이 출현하였는데, 신학·교리 등에는 차이가 없었다.
18세기 이후 미국 장로교회는 아시아·아프리카 등 해외선교에 앞장서 많은 선교사들을 파송함으로써
장로교의 세계화에 이바지하였다.

한국에서는 19세기 말부터 선교가 이루어지기 시작해,
1882년(고종 19) 《누가복음》《요한복음》이 번역 출간되고,
1907년에 대한예수교장로회 독노회가, 1912년에 총회가 창설되었다.
그러나 하나의 행정조직으로 운영되던 한국 장로교회는 광복 이후 신앙과 신학노선 등
여러 갈등 요인으로 인해 분열되기 시작해 2002년 현재 40개가 넘는 교단이 활동하고 있다.
세계적인 장로교 연합단체로는 세계개혁교회연맹(WARC)이 있고,
세계 장로교 총 교인수는 약 5000만 명 정도로 추정된다.

한국의 장로교회는
대한 예수교 장로회(합동측 http://www.yejang.or.kr/,
개혁측 http://www.reformed.or.kr,
통합측 http://www.pck.or.kr/,
고신측 http://kpm.org/,
대신측, 고려http://www.coramdeo.net,
재건 http://www.jaegun.or.kr/  등 270여개의 파)와
한국 기독교 장로회(기장 http://knp.or.kr/)가 있습니다.

1953년 김재준 목사 등의 신학적 입장을 이유로 예수교 장로회와 기독교 장로회로 나뉘었고,
1959년 에큐메니컬 운동에 관한 이념 갈등 때문에 통합과 합동으로 분리되었습니다.

교권체제 : 총회-노회-교회

학교: 총신대학교(합동), 총회신학교(개혁), 장로회신학대학(통합), 고려신학대학(고신)
안양대학교(대신) 고려신학교(고려) 한신대학교(기장)


b) 감리회 (監理會 Methodist Church)

1729년 영국에서 존 웨슬리(John Wesley)에 의하여 시작된 그리스도교 교파.

옥스퍼드대학교를 중심으로 존 웨슬리(John Wesley)와 그의 동생 찰스 웨슬리(Charles Wesley),
그리고 G.휘필드 등의 대학생 그룹을 중심으로 일어났다.
그들은 신성클럽(Holy Club)을 조직하고 종교적 의무를 다하는 데 규칙적이면서도
조직적으로 행동하여 메서디스트(Methodist:格式主義者)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그들은 성경 및 신학 연구 등에 힘쓰고, 빈민과 병자, 감옥의 죄수들의 전도에 힘썼다.

1738년 5월 24일 존 웨슬리는 모라비아 교도들이 모인 올더스케이트 거리의 집회소에 참석하여
오후 8시 45분경 인도자가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의 로마서(書) 서문을 읽을 때
갑자기 마음이 뜨거워짐을 느꼈다고 한다.
이 회심의 사건은 존 웨슬리의 생애에서 일대 전환점이 되었고,
감리회의 구원·신앙·성결의 교리를 설명해 주는 산 증거가 되었다.
원래 존 웨슬리는 고교회파(高敎會派)로서 영국교회에 속해 있으면서 독자적인 운동을 하였는데,
영국교회에서는 그의 교회 내 설교를 금하였으므로 야외설교의 방법을 택하여 그 운동은 점차 확대되었다.

1744년 존 웨슬리는 메서디스트파 신자들을 런던에 모아놓고 전도사업 방침에 대하여 협의하였는데,
이것이 곧 감리회의 최초의 연회(年會)이다.
이때까지도 존 웨슬리는 영국교회와 분리하려는 뜻은 없었고 교회에 속한 채 전도하려 했지만,
1784년 런던 감독에게 미국으로 파견할 선교사를 안수하여 주도록 청하자 감독이 거절하므로
그 자신이 안수를 베풀어 T.코크 박사를 미국의 총감독으로 삼고 그 밖에도 몇 사람에게 안수를 주어
목사로 세우니 이때부터 감리교회는 실제적인 한 교파를 이루게 되었다.

감리회의 발전은 교구제도와 경건한 신앙을 고수하는 데 있었다.
존 웨슬리의 인격 ·조직력 ·지도력, 그리고 야외설교 ·평신도설교 등 꾸준한 복음활동 및
엄격하고 규율적인 생활에 의하여 발전되었다.
1791년 존 웨슬리가 서거하였을 때의 교세는 영국 전역에 확장,
잉글랜드를 본거지로 하였던 감리회 부흥운동은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에 이르렀고
미국에서는 휘필드의 주도로 큰 성과를 거두었다.

조직의 기본단위는 구역이며, 그것은 하나 또는 그 이상의 교회로 조직된다.
구역들은 지역적으로 지방회를 조직, 감리사가 피차 협동하여 교회조직과 사업발전에 힘을 기울이고
지방회는 다시 더 큰 집단을 형성하여 연회를 조직하며, 연회는 감독이 관할한다.
그리고 최고기관인 총회가 있다.

감리회 교리는 사도신경 속에 제시된 전통적 그리스도교 신앙에 근거한다.
감리회의 특색은 교리보다도 실제적인 생활과 성경의 진리를 실천하는 데 중점을 두는 것이라 하겠다.
사랑에 의하여 구현되는 신앙과 종교적 경험을 강조하며 이성의 역할을 높이 평가하고 신학적 이론을
비교적 자유롭게 전개할 수 있는 것도 특색의 하나이다.

감리회에는 모든 신도가 각기 행하지 않으면 안될 규율, 곧 규범이 있고, 25개조의 종교강령이 있으며,
이것은 감리회의 헌법정신이기도 하다.
감리회 전도방법의 특색은 부흥설교를 통한 전도와 평신도를 통한 개인전도 및 심방전도이다.
감리회의 신앙과 교리는 존 웨슬리가 발표한 25개조의 종교강령과 그의 53개의 ‘표준설교’,
그리고 그가 지은 신약성서 주석에 잘 나타나 있다.

감리교도 몇개의 교파가 있는데
기독교 대한 감리회(http://kmcweb.or.kr/),
예수교 대한 감리회,
기독교 대한 자유감리교회 등이 있는데 이들의 신학적입장은 같습니다.

교권체제 : 감독회장-연회감독-감리사-목사

학교: 감리교신학대학


c) 침례교 (浸禮敎 Baptists)

자각적인 신앙고백에 기초한 침례를 시행하는 그리스도교 프로테스탄트의 한 교파.

특히 유아세례를 인정하지 않으며, 성서원리(聖書原理) ·침례 ·만인사제(萬人司祭), 각 교회의 독립,
교회와 국가의 분리 등을 강조한다.
영국의 청교도(퓨리턴)의 여러 파 가운데 하나로 생겨났으며, 창시자는 J.스미스(1554?∼1612)로 알려져 있다.
그는 교직자로 1608년 국교회의 압박을 피하여 동지들과 함께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으로 망명했는데,
그 중 T.헬위스와 몇몇 동지들이 영국으로 돌아가 1612년 침례교회를 창설하였다.

아르미니우스파(派)의 입장을 취한 일반침례파와 칼뱅적 입장에 선 특수침례파의 구별이 있다.
영국에 이어 미국에서도 크게 퍼져서, 현재 미국 최대의 교파를 이루고, 대소 27개의 그룹으로 형성되어 있다.
한국에는 1890년 캐나다의 M.위크 선교사가 입국하여 함남 원산(元山)에서 선교사업을 시작한 것을 효시로 하여,
1905년 제1회 총회를 가지면서 보급되어
'대한기독교침례회연맹총회'와
'기독교대한침례회연맹총회'의 두 그룹이 있었다.

두 그룹은 1959년 '한국침례회연맹'으로 통합하였고,
1969년 재단법인 기독교대한침례회연맹 유지재단을 형성하기에 이르렀다.
1976년 '기독교한국침례회' (http://www.koreabaptist.org/)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침례교는 미국에서 카톨릭 다음으로 큰 교단입니다.
교회의 직분은 목사, 안수집사, 교사로 되어 있습니다.
또한 침례교회는  독립적, 자율적인 면을 중요시 하여 총회나, 연회 등을 두지 않고
'친교회'라는 이름으로 모이고 있습니다.

학교: 침례신학대학교


d) 성결교 (聖潔敎 Holiness Church)

1901년(광무 5) 2월, 동양선교회(Oriental Missionary Society:OMS) 소속 선교사인 C.E.카우만과
E.A.킬보른(한국명 吉寶倫)에 의해 세워진 프로테스탄트의 교파.

장로교·감리교와 함께 한국에서는 3대 프로테스탄트 교단의 하나이다.
감리교 목사인 이들 선교사는 일본의 도쿄[東京] 간다구[神田區]에 동양선교회 전도관을 세우고
일본인 목사 나카다[中田]의 후원 아래 동양일원의 선교를 시작하였다.
교육에 힘쓰라는 선교회 본부의 지시도 있었으므로 전도관 1층에 성서학원을 개설, 성경 ·신학 등을 가르쳤다.

한국인 유학생 김상준(金相濬) ·정빈(鄭斌) 등이 이 학원에서 공부를 끝내고 귀국하자
1907년 염곡(鹽谷:현 무교동)에 동양선교회 복음전도관을 마련한 것이 한국성결교의 효시이다.
1911년 이명직(李明稙)·이명헌(李明憲) 등 5명이 동경성서학원을 마치고 귀국, 안수를 받고
장로사(長老師:순회목사)가 되어 선교사들의 후원 아래 아현동 고개 위에 새로이
성서학원(현 서울신학대학의 전신)을 열면서 본격적인 목회자 양성과 노방전도(路傍傳道) 등 선교를 시작하였다.

이리하여 21년 9월 중생(重生)·성결(聖潔)·신유(神愈)·재림(再臨)의 사중교리를 내세운
‘기독교동양선교회-성결교회’가 탄생하였다.
일제강점기에 신사참배 문제로 수백 명의 성직자 ·신도들이 수난을 겪고, 교단이 강제 해체되기도 하였다.
1950년대 한국 교계를 휩쓴 WCC(세계교회협의회) 가입문제를 둘러싸고 교단이 분열되기 시작,
현재는 기독교대한성결교회(http://www.kehc.org/)
·예수교대한성결교회 및 중도파 등 몇 개파로 나뉘어져 있다.

교권체제: 총회-지역총회-지방회-개 교회

학교: 서울신학대학교, 성결대학교


e) 루터교

마르틴 루터에 의해 창립된 가장 오래된 기독 교회

16세기 카톨릭에 반대하여 마틴 루터의 신앙적, 신학적 입장을 따르는 사람들이 루터의 대소교리 문담(1529),
아욱스부르크 신앙고백(1530), 슈말칼트 신앙개조(1580), 콘코드의 신조(1580)를 신조로 삼았습니다.
루터교는 이들 신조들 외에 사도신경, 니케아 신조, 아타나시안 신조를 고백합니다.

교리적 특징은
1) 이신득의 강조
2) 성찬은 은혜의 방도가 된다.
3) 세례에 의한 중생
4)유아세례는 정당하며 합당하다
5) 그리스도의 신성은 인성에 부여된 것
6) 하나님의 은총에서 타락할 수 있지만 구원은 만민에게 보편적
  
한국에서 루터 교회는 문서선교를 통해 확산 되었습니다.
미국에서 수학하고 들어온 지원상 목사를 중심으로 컨콜디아사를 통해 문서선교를 하고
방송(루터란 아워)을 통해 선교했습니다.
한국에서의 루터교회는 그리 큰 교단은 아니지만 베델성서교육을 통해 한국교회에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정식 명칭은 기독교 한국 루터회(http://www.lck.or.kr/) 입니다.
오늘날 독일과 북유럽의 거의 모든 국가는 루터교를 국교로 하고 있습니다.

이 교회는 회중주의이며, 행정과 결의에 있어서는 대의정치를 추구합니다.

학교: 루터신학대학교


f) 성공회 (聖公會 The Anglican Domain)

영국의 국교회.

영국에서 출발한 성공회는 앵글리칸 처치, 성공회, 에피스코팔처치, 등으로도 불리웁니다.
1536년 로마감독의 교권을 폐지하고 1570년 교황 피오 5세가 영국왕 엘리자벳을 파문함으로써
로마교회와 완전히 분리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 교회는 신앙적 이유보다는 정치적 이유때문에 발생하였고 교회의 신학은 개혁파에 가깝지만
교회 및 예배의식은 카톨릭에 가깝습니다.

영국에서는 영국 왕이 교회의 정점이고  국회가 교회법을 제정합니다.
그렇지만 켄터베리 대교구, 요크 대교구, 웨일스 대교구 로 나눠져 있으며
한국 성공회는 켄터베리 대교구에 속해 있습니다.
영국교회의 교리의 표준은 39신앙개조와 기도문입니다.
한국에 성공회가 전래 된 것은 1890년 코프감독에 의해서였습니다.

정식 명칭은 대한 성공회(http://anck.peacenet.or.kr/)입니다.

조직은 주교, 신부, 부제라고 일컷는 종신직 신품이 있습니다.

학교: 성공회대학


g) 구세군 (救世軍 Salvation Army)

그리스도교 교파로 윌리엄 부스(William Booth)가 창설한 교파

구세군은 1858년 감리교 목사였던 윌리엄 부스에 의해 창설되었습니다.
구세군(salvation army)이란 명칭은 1878.5에 정식으로 명명되었고 1880년 처음 사관학교를 세웠습니다.
구세군의 특징은 사회봉사에 있습니다.
구세군의 정치는 개인의 자유와 기회균등의 인정하에 군대 조직을 차용합니다.

세계의 모든 구세군은 한 대장 아래 통솔을 받습니다.
구세군에서는 목사는 사관 평신도는 병사라고 지칭합니다.
구세군이 한국에 들어온 것은 1908년 10.8 명동에서 영국인 호가드 정령에 의해 옥외집회를 한데서 출발합니다.
구세군의 사회사업은 선교의 가장 중요한 방법이며 남녀평등을 중요시 여겨 사관학교는 반드시 부부가 함께
입교토록 하고 있습니다.

구세군(http://salvationarmy.or.kr/)


h) 기독교 하나님의 성회(기하성), 순복음

프로테스탄트 오순절계(五旬節系)의 한 교파.

보통 순복음교회(純福音敎會)라고도 한다.
성경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속죄와 부활, 삼위일체(三位一體)인 하나님을 믿으며,
중생(重生)·성령충만·신유(神癒)· 재림(再臨) 등을 주요교리로 삼고 있다.
1928년 개인 자격으로 M.C.럼시가 오순절적 신앙선교를 목적으로 내한하여 당시 구세군에 근무하던
청년 허홍(許弘)과 함께 정동(貞洞)에 선교본부를 둔 것이 이 교회의 효시가 된다.

1959년 미국의 아시아 선교부장 케참 목사가 내한하여 2만 달러를 투자, 신학교를 신축하고
서대문에 중앙회관을 설립하는 등 전국복음화운동을 강력히 추진하였다.
특히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순복음(Pure Gospel)' 운동의 주동이 되어 교회 명칭에도
순복음이 들어가게 되었고,1972년에는 분열되었던 교단이 다시 합쳐 선교부와 협력관계를 맺고
조직적인 발전을 이룩하였다.

2001년 현재 교회수 1,417개, 목사수 3,534명, 교인수 110만 6712명이며,
교육기관으로 한세대학교가 있다.
이 밖에 5개의 농아교회, 경기도 파주시의 오산리 기도원과 2곳의 수양관 등을 운영하고 있다.
본부 소재지는 한국 서울특별시 종로구 평동 222번지이다.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http://www.ag.or.kr/)

이 계열의 교회들은 성령운동을 강조합니다.
그래서 이들을 오순절파 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신학적 바탕은 뚜렷하게 어느 것이다 라고 할 수 없지만 대략 웨슬레안에 가깝습니니다.
한국의 오순절 계통의 교회는 오중복음과 삼박자 축복이란 것을 중시합니다.
학교는 순신대학교(순복음), 한영신학대학 등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