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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와 기독교가 다른 36가지 이유

2010.03.04 22:32

blue 조회 수:6738

et357.jpg

다음의 내용은 흑암의 역사에서 옮겨 왔읍니다

천주교와 기독교가 다른 36가지 이유

이 글은 [천주교와 기독교가 다른 37가지 이유]-릭 존스, 말씀과 만남-를 중심으로 하였습니다.
저자는 카톨릭의 독실한 신자였지만 구원의 확신을 얻지 못해 기독교로 개종한 후
카톨릭을 비판하는 책을 썼습니다.
37가지 이유 중에 '자만의 죄'는 크게 잘못된 점이 없으므로 생략하고, 36가지 이유만 들겠습니다.
천주교의 가장 큰 문제점은 성경을 외면하고 인간이 만들어 낸 생각을 교리로 추가한다는 점입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딤후 3/16~1) 

성경은 사람이 썼지만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 썼으므로 하나님이 쓰신 것과 같습니다.
즉,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성경을 떠나서는 온전한 구원을 이룰 수 없습니다.
나라에 법이 있는데 자기 마음대로 법을 만들어 지키면 법정에서 인정을 해 줍니까?
이와 같이 하나님의 계명이 있는데 자기 마음대로 계명(교리)를 만들어 지키면 절대로 하나님이 인정하지 않습니다.

"누가 철학과 속임수로 노략할까 조심하라" (골로새서 2:8).
이것은 사람들의 전통과 세상의 유치한 원리들을 따르는 것이요,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 아니니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선포한 복음 이외에 다른 복음을
선포하면 저주를 받을 지어다" (갈라디아서 1:8) .
 
사도 바울은 누군가 철학과 거짓교리로 미혹한다면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원리를 따르는 것이지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 아니니 조심하라고 충고했습니다. (예를 들어 니체의 철학이나 다윈의 진화론)
또한 하늘나라에서 온 천사라도 사도들이 선포한 복음 이외에 다른 복음을 선포한다면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천주교의 교리는 성경에 바탕을 두고 있지 않고 필요에 따라 마음대로 추가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마리아의 원죄 없이 잉태했다는 교리와 승천 했다는 교리는
역사적으로도 성경적으로도 전혀 근거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우선인지, 사람의 말인 교리가 우선인지 따져 봐야 합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고 부르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나의 아버지 뜻을 행하는 자라야 되느니라 .
그 날에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예언하지 아니하였으며, 주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지 아니하였으며, 또 주의 이름으로 많은 경이로운 일들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라고 말하리니
그 때 내가 그들에게 분명히 말하되 "나는 너희를 전혀 알지 못하니, 너희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거라!"고
하리라"  (마태복음 7:21~23)

예수님은 분명히 예수님을 믿는 자마다 전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라야 천국에 갈 수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어디에 있습니까?
당연히 하나님이 지으신 성경에 있으며, 성경을 기반하지 않는 신앙은 예수님이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설령 예수님의 이름으로 예언하고, 귀신 쫓고, 놀라운 일을 행했다 할지라도
진리 위의 신앙을 하지 않았다면 예수님께 꾸지람만 듣고 지옥으로 쫓겨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믿지 않는 자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성경의 말씀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면 뭐하러 하나님과 예수님이 그 많은 말씀을 하셨겠습니까?

이 글에서 천주교의 교리는 1994년 출판된 "카톨릭 교회의 교리 문답서" 를 기반으로 하였습니다.
이 문답서는 로마 교황청이 공인한 천주교의 공식 교리이고,
천주교에서 교인들에게 실제 가르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럼 천주교와 기독교가 도저히 합칠 수 없는 36가지 이유를 들어 보겠습니다.

1. 교회를 통해서 얻는 구원 (Salvation Through the Church)

제 2차 바티칸 공의회 일치운동에 관한 교령은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습니다.

구원의 보편적 보조 수단인 그리스도의 카톨릭 교회를 통해서만 구원방법의 모든 충족에 도달할 수 있다.(일치교령 3항)

또한 교리문답서도 다음과 같이 가르칩니다.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모든 구원이 당신의 몸인 교회를 통해 주어진다는 의미이다.
공의회는 성서와 성전에 의거하여 나그네 길에 있는 이 교회가 구원에 필요한 것이라고 가르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카톨릭 교회를 필요한 것으로 세우신 사실을 알면서도
이 교회에 들어오기를 거부하거나 끝까지 그 안에 머물러 있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은 구원될 수 없을 것이다. (교회헌장 14항)

카톨릭은 카톨릭 교회를 통해서만 구원 받을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성경 어디에도 교회를 통해야 구원 받는다는 구절은 없습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에베소서 2 :8) .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요 선물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을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게 되었느니라" (로마서 3:24) .
우리가 의롭게 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죄인된 우리를 대신해 저주를 받으사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켰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이십니다" (딤전 2:5 ).

또한 하나님과 나 사이에는 구원의 유일한 길인 예수 그리스도만이 존재할 수 있습니다.
어떤 교회나 신부나 목사도 내 앞에서 하나님을 가릴 수 없으며, 예수님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구원은 하나님과 나의 1:1 관계이며, 성령님과 예수님이 내 안팍에서 도움을 주십니다.
신약시대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는 성전은 바로 나 자신입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영께서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고전 3:16).

2. 선행을 통해서 얻는 구원 (Salvation through Good Works)

카톨릭은 구원 받기 위해서는 끊임 없이 선행을 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아무리 테레사 수녀처럼 선행을 한다 할지라도, 그 어떤 행위도 우리의 구원을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딤후 1:9 )
구원은 우리의 행위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한 은혜로 주어집니다.
물론 선행이 하나님이 인정하는 의가 되기는 하지만, 온전한 믿음을 바탕으로 하지 않은 선행은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떤 선한 일을 할 때에는 구원 받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서 마땅히 할 도리를 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에 따라
다시 태어남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디도서 3/:)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실 때 우리가 행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우리가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사함 받고, 성령으로 새롭게 거듭난 것을 보시고,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어 구원해 주십니다.

3. 교회가 죄를 용서함 (The Church Forgives Sins)

카톨릭은 교회가 사람의 죄를 용서하는 권세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아무리 중대한 잘못이라도 거룩한 교회가 사해 줄 수 없는 잘못은 없다. (제 1편 p.372 #9821)

그리스도의 뜻에 따라 교회는 세례 받은 사람들의 죄를 용서할 권한을 가지고 있으며 (제 1편 p.373 #986)

그러나 하나님은 신약시대 이 후 이 땅에 죄 사하는 권세를 예수님에게만 주셨습니다.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마가 2:10 )

"이스라엘로 회개케 하사 죄 사함을 얻게 하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를 삼으셨느니라" (사도행전 5:31 ).

예수님 이외에는 그 누구도, 어떤 단체도 인간의 죄를 사할 수 없습니다.
교회가 죄를 용서해도 하나님께서 인정하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 없는 일입니다.

4. 단 하나의 참된 교회 (The One True Church)

카톨릭은 자신들이 예수님이 세운 단 하나의 참된 교회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유일한 교회를 우리는 거룩하고 보편적이고 사도로부터 이어 오는 교회라고 고백한다.(제 1편 p.314)
실제로 이 단일 유일한 하나님의 교회 안에서 (제 1편 p. 317)

그러나 카톨릭은 초대교회가 아니고, 초대교회의 전통을 이어 받은 곳은 더더욱 아닙니다.
카톨릭(로마 교회)은 4세기 당시 수 많은 교회 중 하나였는데, 콘스탄틴 황제의 도움으로 성장했고,
세력이 커지자 정통교회를 핍박하고 힘으로 굴복시켰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교도의 신앙과 우상을 흡수했고, 교황은 막시무스라는 로마 황제의 칭호를 사용했습니다.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마태 16:18) 


카톨릭은 베드로가 교회의 반석이고, 자신들이 베드로의 후예이니 정통성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반석은 예수님을 상징하고, 베드로처럼 신앙이 올바른 사람이 교회를 이어갈 것이라는 뜻입니다.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고전 10:4 )


사도바울은 반석이 예수 그리스도라 명백히 말하였습니다.
오직 예수그리스도를 중심한 교회만이 무너지지 않고 어떤 환난에도 끝까지 버틸 것입니다.
오히려 카톨릭은 예수님보다도 마리아를 중심하니 반석 위에 있지 못한 교회라 할 수 있습니다.

5. 세례를 통해 얻는 구원

카톨릭은 구원을 받기 위해선 세례가 필수적이라고 주장합니다.

주께서 친히 세례가 구원을 위해 필요하다고 말씀하시고 (제 2편 p.467)
세례성사를 통해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난 신자들은 과연 견진성사로 굳건하게 되며 (제2편 p.455)

그러나 머리에 물 뿌리는 세례나 유아세례는 성경에 근거 없는 로마 카톨릭 의식일 뿐입니다.
침례는 "잠기다" 또는 "가라 안치다" 라는 의미인 희랍어의 밥티스마-또는 밥티조 입니다.
성경에 따라 초대교회의 모든 사도들과 침례 요한이 행하였던 침례(밥티스마)의 양식은
몸 전체를 물 속에 완전히 잠긴 후 물 속에서 다시 끌어올리는 것입니다.

"요한도 살렘 가까운 애논에서 세례를 주니 거기 물들이 많음이라 사람들이 와서 세례를 받더라" (요한 3:23 )

"그때에 예수님께서 갈릴리의 나사렛으로부터 오사 요르단 강 속에서 요한에게 침례를 받으시고 곧 물 속에서
올라오시는데 하늘들이 열리고 성령께서 비둘기같이 자기 위에 내려오시는 것을 보시더니" (마가 1:9~10)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사도행전 2:41 ).

"이에 명하여 병거를 머물고 빌립과 내시가 둘 다 물에 내려가 빌립이 세례를 주고 둘이 물에서 올라갈새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 간지라 내시는 혼연히 길을 가므로 그를 다시 보지 못하니라" (사도행전 8:38~39 )

"회당의 우두머리 치리자 그리스보가 자기의 온 집과 함께 주를 믿으며 많은 고린도 사람들도 듣고 믿어 침례를 받더라" (사도행전 18:8) .

"그들이 이 말을 듣고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으니" (사도행전 19:5)

침례인 요한은 물들이 많은 곳에서 침례를 주었고,
예수님은 요한으로부터 침례를 받으시고 물 속에서 올라 오셨습니다.
오순절에 성령을 받은 베드로로부터 복음을 전해 들은 삼천명의 유대인들은
모두 물 속에 잠기는 침례를 받았습니다.
빌립이 이디오피아 내시에게 침례를 줄 때에도 물 속으로 들어가 침례를 주고,
물 속에서 나와 올라왔습니다.
이 밖에도 초대교회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주로 믿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로마서 6:4 ).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 바 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골로새서 2:12 ).

초대교회 때에는 몸을 물에 완전히 담갔다가 꺼내는 침례였는데,
카톨릭이 유아에게 물을 뿌리는 유아세례나 성인에게 물을 뿌리는 세례로 형식을 바꾸었고,
침례교를 제외한 대부분의 기독교회도 이를 답습하고 있습니다.
몸이 물에 잠기는 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었듯이 내 몸도 예수님과 함께 죽는 것을 의미하며,
물에서 꺼냄을 받는 것은 예수께서 무덤 속에서 부활하셨듯이
나 역시 예수님과 함께 부활해 새생명으로 태어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주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케 하려 하심이니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 (고전 1:17 ).

"길 가다가 물 있는 곳에 이르러 내시가 말하되 보라 물이 있으니
내가 세례를 받음에 무슨 거리낌이 있느뇨" (사도행전 8:36 )

사도 바울의 가장 큰 사명은 구원을 위해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지, 침례를 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직접 침례를 준 적이 거의 없는데 이는 형식적 침례가 구원의 필수요소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침례의 영적인 의미를 모르고 단지 물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것만으로는 내 근본적인 심성은 변화되지 않습니다.
이디오피아 내시는 빌립으로부터 복음을 전해 듣고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한 후에 침례를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태 28:19~20)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사도행전 2:38).

그러나 침례는 예수님이 신약시대 성도들에게 주신 명령이므로 되도록 받는 것이 좋습니다.
베드로의 연설에는 구원의 과정인 회개, 죄들의 사함, 침례(죽음과 부활), 성령 받음(거듭남)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꼭 침례교회가 아니더라도 물이 많은 곳에서 인도자에 의해 물 속에 잠기면서
내 옛사람이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장사되었고, 인도자에 의해 물 속에서 꺼내지면서
예수님과 함께 죽음에서 부활하고 하늘로 승천해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된
새사람(새생명)이 되었다고 믿으시면 됩니다.

6. 그리스도의 대리자 교황 (The Pope: Vicar of Christ)

천주교에서는 교황이 우주적인 권력을 행사하는 그리스도의 대리자라고 합니다.

사실 로마 교황은 그리스도의 대리자요,
전 교회의 목자로서 교회에 대하여 직책상으로 완전한 최상 전권을 가지며,
언제나 자유로이 이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 (제 1편 p.342)

하지만 그 누구도 감히 그리스도의 대리자가 될 수 없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교황처럼 정치권력을 휘두르거나, 부를 축적하거나, 화려한 옷을 입고 다니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며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았느니라" (고린도전서 8:6 ).

하나님 아버지가 한 분이듯이 독생자 그리스도이신 예수님도 한 분이시며
만물이 예수님을 통하여 창조되었고,인간 또한 예수님으로부터 창조되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성령님과 예수님이 함께 이 우주와 인간을 창조하셨고,
이 분들은 함께 생각하시고 행동하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그 어떤 누구도 예수님을 대신할 수 없고, 그 보좌를 탐내서도 안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사 엄청난 고초를 감수하시면서 우리의 죄에 대한 저주를 대신 받으셨습니다.
그 누구도 예수님의 사랑과 능력을 따라갈 수 없고,
예수님에 비하면 인간은 보잘 것 없는 한낱 미물에 불과합니다.

교황은 또한 자신이 교회의 머리라고 주장합니다.

교황은 하나님께서 제정해 주신 대로 직접적이며 보편적인 최고 전권을 가지고
영혼들을 보살피는 것이다. (제 1편 p.358)

그러나 오직 그리스도만이 교회의 머리 되십니다.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라 그가 근본이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자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골로새서 1:18 ).

교회는 몸이고 예수님은 교회의 머리이므로, 모든 교회는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수족처럼 움직여야 합니다.
예수님은 포도나무이고, 우리는 가지이니 예수님을 떠나서는 살 수 없고, 모든 행동이 무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죽은 자들로부터 첫 번째로 부활하셔서 구원의 표적이 되셨고,
성도들도 주님의 뒤를 따라 부활할 것입니다.

교황은 그리스도의 자리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자리까지 넘봅니다.
교황은 하나님에게만 쓸 수 있는 '거룩한 아버지'(Holy Father)라는 칭호를 쓰고 있습니다.

"땅에 있는 자를 아비라 하지 말라 너희 아버지는 하나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자시니라" (마태 23:9 ).

예수님은 이런 일을 미리 아시고 우리에게 경고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는 아버지는 오직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 한 분이기 때문에
땅에 있는 자를 절대 아버지라 부를 수 없습니다. (종교적 측면에서)
에큐메니칼 운동에 동참하는 것은 하나님과 예수님 대신에 교황을 믿겠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7. 오류가 없는 교황 (The Pope: Infallible)

카톨릭 교리에 의하면 교황은 믿음과 도덕, 교리문제에 대해 결코 오류가 없는 무오한 존재입니다.

로마 교황이 모든 그리스도 신자들의 최고 목자와 스승으로서 형제들의 신앙을 견고케 하기 위하여
신앙과 도덕에 관한 교리를 정의하여 선포할 때에, 교황은 직무상의 무류성을 향유한다.
이러한 무류성은 하나님 계시 유산의 범위와 동등하게 광범위하게 미친다.(제 1편 p.344)

교리에 따르면 교황이 신앙과 도덕에 관한 교시를 선포할 때는
절대로 잘못이나 오류가 있을 수 없는 절대적인권한이 있다고 합니다.
또한 이러한 교황의 무오성은 하나님이 계시한 것과 동등하며 전세계에 영향을 미친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모든 인간은 죄인이며 하나님과 같이 온전하지 못하다고 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로마서 3:23 )
"기록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로마서 3:10)

역사적으로 수 많은 교황이 불륜, 치부, 정치적인 실수, 학살 등에 연관되어 있습니다.
2차대전 당시 교황청은 나찌와 협력했고, 유대인 학살 등을 묵인했습니다.
로마 카톨릭은 산하 단체인 예수회를 통해 세계정복을 위한 정치적인 음모를 꾸며 왔습니다.
교황은 보통 사람보다 실수와 오류와 죄악이 더욱 많은 구원받아야 할 죄인일 뿐입니다.

교황은 절대 무오하며 교황이 내린 결정은 번복할 수 없다는 것은 1870년 바티칸 공회에서 결정되었습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교황은 수 많은 실책과 죄악을 저질렀으며, 교황끼리 서로 정죄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교황 스테파노 6세(A.D. 896~897)는 죽은 전임 교황 포르모수스(A.D. 891~896)의 썩은 시신을
무덤에서 끌어내 교황의 의복과 왕관을 씌우고 고소해 심판이 내려 마차에 시신을 매달아
로마 시내를 끌고 다니다 강에 버렸습니다.

교황 호노리우스 1세는 사 후 A.D. 680년에 개최된 제6차 공회에서 이단자로 규정되었습니다.
교황 비질리우스는 어떤 책들을 정죄하였다가 무효화하였고,
다시 정죄하였다가 철회했다가 다시 정죄하였습니다.
교황 유진 3세(A.D. 1145~1153)는 결투를 정당한 것으로 인정하였지만,
교황 율리우스 2세(A.D. 1503~1513)는 결투를 금지시켰습니다.

11세기에는 서로 라이벌인 3명의 교황이 존재하였는데 헨리 3세가 소집한 공회에서
이 세 사람은 서로를 정죄하였습니다.
14 세기에는 이탈리아 사람들은 교황 우리반 6세를 선출하였고,
프랑스 추기경들은 교황 클레멘스 7세를 선출했으며, 공회에서 두 교황은 서로를 정죄하였고,
매년 서로 저주하였습니다.

교황 하드리안 2세(A.D. 867~872)는 교회가 주관하지 않은 시민결혼이 유효하다고 선포했지만,
교황 비오 7세 (A.D. 1800~1823)는 그 결정을 무효화시키고, 교회 허가 없이 결혼한 자들을 정죄했습니다.
교황 유진 4세(A.D. 1431~1447)는 잔 다르크를 마녀로 정죄해 화형했지만,
교황 베네딕트 4세는 1919년에 그녀를 성인으로 추대했습니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딤전 1:15 )

사도들 중 가장 우두머리였던 사도 바울조차 자신이 죄인들 중 우두머리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을 핍박하던 자였으나 예수님을 만나 회개하고
담대히 주를 증거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구원 받은 것은 자신의 의가 아니라 오로지 주님의 은혜로 인함이며,
이는 하나님이 자신의 의로써 구원받았다고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입니다.

8. 성사를 통해서 얻는 구원 (The Sacraments Save)

카톨릭은 성사가 구원 받는데 필수적인 요소라고 가르칩니다.

교회는 신약의 성사들이 신자들의 구원을 위해 필요하다고 말한다.(제 2편 p.426)

천주교회에는 7가지 성사가 있습니다.
세례성사, 견진성사, 성체성사, 고해성사, 병자성사, 신품성사, 혼인성사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형식적인 의식은 구원 받는데 아무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갈라디아서 2:16 )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제사의식이나 여러 형식적인 의식 때문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습니다.
예를 들어 남녀가 결혼해서 사는데 중요한 것이 결혼식입니까? 서로에 대한 사랑과 믿음입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진정으로 믿고 의지하는 것을 원하시지
의미 없는 형식에 얽매이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로마서 12:1 )

하나님은 인간이 자신의 영과 혼과 몸을 하나님께 산 제사로 바치기를 원하십니다.
내 고집과 자만과 욕심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만 사랑하고,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면
하나님께서는 그를 영화롭게 하시고, 지혜롭게 하시며, 강건하게 하셔서 하나님의 기뻐하는
대상체로 삼으실 것입니다. 이 우주 만물이 하나님 소유인데
우리가 물질적으로 하나님께 드려서 하나님을 기쁘게 할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예수께서 가르치실 때에 가라사대 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과 시장에서 문안받는 것과
회당의 상좌와 잔치의 상석을 원하는 서기관들을 삼가라 저희는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는 자니 그 받는 판결이 더욱 중하리라 하시니라" (마가 12:38~40 )

예수님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 없이 형식주의에 치우친 율법학자들에 대해 경고했습니다.
그들은 화려한 예복을 입고, 높힘 받는 것을 좋아하고, 가난한 자들의 재산을 삼키고,
스스로 경건한 채 하지만오히려 하나님께 보통 사람보다 더 큰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합니다.
성경에 근거 없이 인간이 만들어 낸 전통과 유전은 하나님께 인정을 받지 못하며,
오직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께 예배드려야 합니다.

9. 유아세례 (Infant Baptism)

카톨릭에서는 유아세례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구원의 은총이 완전히 무상으로 주어진다는 것은 특히 어린이 세례에서 드러난다.
그러므로 출생 후 가까운 시일에 아이에게 세례를 베풀지 않는다면 교회와 부모는
그 아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무한한 은총을 받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제 2편 p.465)
그러면서 유아세례는 교회의 전통에서 유래한다고 합니다.

어린아이들에게 세례를 주는 것은 오랜 옛날부터 내려오는 교회의 전통이다.
이것은 2세기부터 분명히 확인된다. (제 2편 p. 466)
교리문답서는 유아세례가 성경에 기초한 것이 아님을 스스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 이것이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 학문을 좇음이요
그리스도를 좇음이 아니니라" (골로새서 2:8 )

사도바울은 사람이 세운 전통이나 원리를 따르는 것은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아니니 조심하라고 경고했습니다.
예수님은 성인이 되어서, 광야에서 40일 시험을 마치신 다음에 요한에게 침례를 받으셨습니다.
이디오피아 내시 또한 믿음을 확인 받은 다음에 빌립에게 침례를 받았습니다.

"또 회당장 그리스보가 온 집으로 더불어 주를 믿으며 수다한 고린도 사람도
듣고 믿어 세례를 받더라" (사도행전 18:8 )

고린도 사람들도 사도들로부터 복음을 듣고 믿은 다음에 침례를 받았습니다.
어떠한 전통과 의식도 내 심성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못합니다.
오직 주를 시인하고 죄사함을 받을 때 성령이 내 마음에 오셔서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십니다.

10. 죄의 경중 (Degrees of Sin)

카톨릭은 큰 죄와 작은 죄가 있다고 가르칩니다.

죄는 그 경중에 따라 평가해야 한다. (제 3편 p. 657)
작은 죄는 용서 받을 수 있는 가벼운 죄로 소죄라고 합니다.

가벼운 문제에 대해 윤리법이 정한 기준을 지키지 않거나 중대한 문제에 대해 윤리법을 어겼지만
완전히 인식하지 않거나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는 경우에는 소죄가 된다. (제 3편 p.659)

큰 죄는 구원의 자격을 박탈 당하는 죄로 지옥의 형벌을 맞게 하는 '죽을 죄'입니다.

죽을 죄는 사랑의 상실과 성화 은총의 박탈 곧 은총지위의 박탈을 초래한다. 
만일 죽을 죄가 뉘우침과 하나님 자비로 속죄되지 않는다면 그리스도의 나라에서 추방되고
지옥의 영원한 죽음을 당한다. (제 3편 p.659)

그러나 이렇게 죄의 경중을 나누는 것은 전혀 성경에 근거가 없습니다.
일단 죄가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국가에 법이 있는데 개인이 법을 어기면 범법행위로 간주되 처벌을 받습니다.
이와 같이 성경에 하나님의 계명이 있는데 이를 어겼다면 죄를 지은 것입니다.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 (요일 3:4 )
죄를 지으면 하나님의 계명을 범한 것이고, 누구든 죄를 지으면 그에 대한 처벌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로마서 6:23 ).
죄의 경중에 관계 없이 죄를 지으면 그로 인해 흑암의 권세에 갖히게 되고,
지옥의 형벌을 피할 수 없습니다.
구약시대에는 어린양에게 내 죄를 안수하여 전해준 다음 속죄제사를 드려 죄를 사함받았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에베소서 1:7 )

신약시대에는 내 죄를 대신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고,
십자가 보혈로 내 죄가 눈보다 더 희게 씻어진다는 것을 믿음으로써 죄사함을 받습니다.

11. 화체설: 실체 변화 (Transubstantiation)

카톨릭에서는 미사 중에 사제가 초자연적인 힘을 이용하여 성찬에 쓰이는 빵과 포도주를
실제 예수님의 살과 피로 바꿀 수 있다고 합니다.
이는 성경에 근거 없이 A.D. 1215 에 트렌트 공의회에서 결정된 내용입니다.

성찬례 거행의 중심인 빵과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말씀과 성령 청원 기도를 통해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환된다. (제2편 p.490)

그럼 우리가 식인종 같이 예수님의 살과 피를 실제로 먹어야 한다는 것인데,
이는 성경의 내용을 오해했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요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요한 6:35 )

예수님께서 본인이 생명의 빵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 빵을 먹으면 영원히 배고프지 않다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생명의 빵이란 무엇일까요?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마태 4:4 )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한 1:14)

생명의 빵은 영혼의 양식 되는 말씀을 의미합니다.(상징합니다.)
또한 예수님은 태초부터 계셨던 말씀의 신이신데,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내가 생명의 빵이니 나를 먹으라."고 한 것의 의미는
"내가 말씀(진리) 그 자체이니, 내 말을 믿고 따르라."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피는 무엇을 말합니까?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레위기 17:11 )

피를 생명을 상징하며, 속죄제 때 양의 피를 뿌리는 것은 생명으로써 죄에 대한 보응을 하는 것입니다.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마태 26:27~28 )

포도주는 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을 상징합니다.
우리는 십자가 보혈로 죄사함 받지, 포도주를 마신다고 죄사함 받지는 않습니다.
성찬은 예수님의 우리를 위한 희생을 기념하는 의식이지,
구원의 요소가 되거나 특별한 의미를 갖지는 않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기를 너희 중에 아무도 피를 먹지 말며
너희 중에 우거하는 타국인이라도 피를 먹지 말라 하였나니" (레위기 17:12 )

성경은 분명히 피를 먹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그러므로 화체설을 통해 실제 피를 먹는다면 이는 오히려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는 일이 됩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요한 6:63 )

예수님은 영에 관한 말씀을 전하셔서 우리를 구원하려고 오셨습니다.
따라서 어차피 썩어 없어질 육신에 관한 말씀은 하지 않으셨습니다.
사후에 구원 받는 것은 내 영이지, 육이 아닙니다.
따라서 빵과 포도주는 영혼에 관한 말씀과 생명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카톨릭에서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직접 먹어야 한다고 주당하는 것은
이교도들의 식인 제사 풍습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바알의 제사장들은 인신제사로 바친 사람의 살을 먹어야만 했습니다.
바알의 제사장이란 뜻의 '칸나-발'(Cahna-Bal)은 식인종을 의미하는 캐너벌(Cannibal)이란 단어의 어원입니다.

12. 죄로부터 신자를 보호해 주는 성체성사 (Eucharist: Preserves from sin)

카톨릭은 성체성사에 참여하면 과거의 죄를 씻음 받고, 미래의 죄로부터도 보호 받는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성체성사는 우리를 그리스도와 결합시키는 동시에 우리가 전에 지은 죄를 정화하고,
앞으로 죄를 짓지 않도록 우리를 지켜준다 (제 2편, p.513)

성체성사는 우리 안에서 불러 일으키는 그 사랑으로 우리를 미래의 죽을 죄에서 보호한다. (제 2편 p.514)

그러나 성경은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죄를 씻을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에베소서 1:7 )

예수님은 어린 양으로 오셔서 인류의 모든 죄를 가져가시고,
그 죄에 대한 벌로 대신 저주 받으시고, 피 흘리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신해 돌아가셨고, 그 피로써 죄인된 우리를 사셨으니, 우리 모두 예수님께 빚진 자입니다.
이런 역사가 있는데 아무 의미 없는 얇은 과자 한 조각 먹는다고 우리 죄가 사해지겠습니까?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 (고전 6:11 )

죄사함 받으면, 내 모든 죄가 사해져 하나님 앞에 의롭다 칭함을 받을 것입니다.
죄사함은 온전한 하나님의 은혜로 그 어떤 행위로도 우리의 죄를 스스로 사할 수 없습니다.

"축사하시고 떼어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고전 11:24)

성찬은 예수님의 희생을 기억하기 위해서 하는 기념 의식일 뿐입니다.
우리가 광복절 때 8·15 기념 행사를 치루지 않아도 마음으로 그 날의 의미를 되 새기면 되는 것입니다.

13. 죽은 자들에게도 유익한 성체성사 (Eucharist: Helps the Dead)

카톨릭은 또한 성체성사를 통해 죽은 자를 도와줄 수 있다고 선전합니다.

성찬례의 제사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죽었지만 아직 완전히 정화되지는 못한'(트리엔트 공의회) 죽은 신자들을
위해서 그들이 그리스도의 빛과 평화를 얻을 수 있도록 바치는 것이기도 하다. (제 2편 p.504)

카톨릭은 정말 성경에 근거 없는 교리를 잘도 만들어 냅니다.
성체성사를 통해 아직 구원 받지 못한 영혼을 천국으로 보내준다는 것인데,
흡사 불교의 천도제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카톨릭이 이러한 의식을 많이 만들어 내는 이유는 죽은 자의 구원을 핑계로 더 많은 기부금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히브리서 9:27 )

인간이 죽으면 그 사람의 살아온 믿음과 행위에 대해 하나님의 심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때 남은 가족이 아무리 성체성사를 하고, 굿을 하고, 천도제를 지내도 하나님의 심판에는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전지전능하시고 공의로운 하나님이 부족하고 결점투성이인 사람의 말을 들으시겠습니까?
우리가 살면서 행한 모든 일은 하늘 생명책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판결은 배심원도 필요 없고, 3심제도 필요 없는 즉결심판입니다.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살아난 사람들의 증언에 의하면 영혼이 분리되면 불과 2~3초만에
자신이 살아온 모든 과거가 스쳐 지나 가면서 선악이 구분된다고 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어떤 판결을 내리시던 그에 순응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살았을 때 예수를 주로 시인하고, 주님의 뜻 안에서 사는 것이 중요하지,
죽고 나면 아무 소용 없습니다.

14. 마리아: 또 다른 구원자 (Mary Save)

카톨릭에서는 마리아가 구원에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다고 합니다.

성 이레네오의 말씀대로
동정녀 마리아는 순명함으로써 자신과 인류전체를 위한 구원의 원인이 되신 것이다. (제1편 p.185)

마리아는 순명과 믿음과 희망과 불타는 사랑으로써 영혼들의 초자연적인 생명을 회복시키기 위하여
구세주의 구세 사업과 비길데 없는 협력을 해 드렸다.
이 때문에 은총의 세계에서 우리의 어머니가 되었다. (제1편 p.367)

카톨릭은 마리아가 구원의 원인이고,
마리아가 예수님과 버금 가는 구원의 업적을 남겼기 때문에 은총의 어머니가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오직 예수님만이 구원의 주체가 된다고 가르칩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한 14:6 )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사도행전 4:12 )

예수님만이 하나님께로 가는 유일한 길이요, 문입니다.
또한 예수님 자체가 진리요 생명이기 때문에 누구도 예수님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 이외에 다른 이에게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다고 잘라 말하며,
하나님은 예수님 이외에 다른 구원자를 주신적이 없다고 강변하였습니다.

"때에 예수의 모친과 동생들이 와서 밖에 서서 사람을 보내어 예수를 부르니
무리가 예수를 둘러앉았다가 여짜오되 보소서 당신의 모친과 동생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찾나이다
대답하시되 누가 내 모친이며 동생들이냐 하시고 
둘러앉은 자들을 둘러보시며 가라사대 내 모친과 내 동생들을 보라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자는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 (마가 3:31~35 )

예수님 가족은 예수님이 메시야인지 잘 믿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가족이 찾아 왔을 때 그들을 외면하고,
하나님 뜻을 행하는 사람이 예수님의 가족이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마리아의 몸을 빌어서 태어났을 뿐 영적으로 마리아와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하나님과 예수님 이외에 인간 좋은대로 만들고 섬기는 것은 명백한 우상이며,
마리아 숭배는 이교의 여신숭배사상에서 따 왔을 뿐입니다.

15. 마리아: 무염시태 (Mary: Saved from Birth)

어릴 때 성당 다닐 때 주보 위에 '원죄 없이 잉태되신 마리아'란 어구가 있었는데 그 땐 그 뜻을 잘 몰랐습니다.
카톨릭은 마리아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구원 받았고, 전혀 죄를 짓지 않았다고 주장합니다.
이것이 1854년 교황 피오 9세가 선언한 마리아의 무염시태 교리입니다.
천주교는 성경에 근거 없이 소설 쓰듯이 교리를 잘도 만들어 냅니다.

은총이 가득한 마리아는 구속의 가장 빼어난 열매이다.
그녀는 잉태되는 순간부터 원죄에서 완전히 보호되고,일생동안 죄에 물들지 않았다. (제1편 p.184)

마리아가 원죄 없이 태어났고, 일생동안 죄 짓지 않았다고 주장합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고전 15:22 )

아담의 육적 후손인 인류는 아담의 원죄를 상속 받아 근본적으로 죄 아래 있고,
죄로 인해 하나님과의 관계성이 끊어지고, 대신 마귀 사탄의 지배하에 있습니다.
이로 인해 모든 사람은 사망 아래 있지만 예수님 안에서 죄사함 받음으로써 흑암의 주관권 안에서 벗어나고,
하나님과의 관계성이 회복됨으로써 영생에 이를 수 있습니다.

또한 성경은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 죄인임을 명시합니다.

"기록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로마서 3:10~11 )

하나님 앞에 죄 없이 의로운 사람은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죄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못한 것입니다.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요일 3:15 )

"이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니라" (야고보서 4:17 )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마태 22:37 )

살아 오면서 아무리 죄 짓지 않으려고 몸부림 친 사람이라 할지라도 형제를 미워한 적이 있거나,
선을 알고도 행치 않았거나,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았다면 죄를 지은 것입니다.
그런 즉, 어느 누가 죄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겠습니까?
인간인 마리아 역시 절대로 예외일 수 없습니다.

역사 안에서 교회는 하나님의 은총을 입은 마리아가 잉태되는 순간부터
구속된 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제 1편 p.184)

천주교도 무염시태 교리는 좀 무리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이 교리가 새롭게 깨달은 교리라고 합니다.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계시록 22:18 )

예수님은 요한에게 성경 이외에 말씀이나 교리를 더하면
그에게 성경에 기록된 모든 재앙을 받게 하실 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근거 없이 추가한 교리는 하나님의 저주를 받을 일입니다.

"이 말씀 하실 때에 무리 중에서 한 여자가 음성을 높여 가로되
당신을 밴 태와 당신을 먹인 젖이 복이 있도소이다 하니 예수께서 가라사대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하시니라" (누가 11:27~28 )

이런 일을 아셨는지 예수님께서는 미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 한 여인이
"예수님을 낳은 모친이 복이 있다."고 소리 높혀 말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예수님의 혈통적 가족이 복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들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 때문에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16. 마리아: 평생 동정녀 (Mary: Perpetual Virgin)

카톨릭은 마리아가 평생 동정녀로 지냈다고 주장합니다.

마리아는 동정으로 당신의 아드님을 잉태하고, 동정으로 그 분을 낳고, 동정으로 그 분을 길렀으며,
동정으로 당신의 젖을 먹였고, 항상 동정이었다. (제1편 p.191)

교회 전례는 마리아를 '평생 동정녀'로 찬미한다. (제1편 p.188)

마리아가 예수님을 처녀 잉태한 것은 사실이나, 예수님 형제는 자연적으로 잉태했습니다.

"이는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 모친은 마리아,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라 하지 않느냐" (마태 13/55 )

성경은 분명히 예수님의 형제 자매가 있다고 알려줍니다.
그렇다면 카톨릭은 성경에 명백하게 모순된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인데,
카톨릭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변명합니다.

종종 성서가 예수님의 형제 자매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는 사실을 들어 이를 반박하는 사람이 있다.
교회는 항상 이 대목들이 동정녀 마리아의 다른 자녀들을 가르키는 것이 아니라고 이해해 왔다.
사실 예수님의 형제들 야고보와 요세는 다른 마리아라고 명시된
예수님의 제자 마리아의 아들들이다. (제1편 p.188)

예수님의 형제가 예수님의 어머니와 이름이 같은 다른 마리아의 자녀라고 합니다.
성경은 분명히 예수님의 동생들이 있다고 하는데, 명백한 사실을 왜곡하려 하고 있습니다.
이는 무리를 해서라도 마리아의 신성을 부각시켜, 숭배 받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또한 독신 생활을 하는 사제나 수녀에게 모범을 보여 주고,
이방의 처녀 여신과도 비슷하게 만들려 하기 때문입니다.

17. 마리아: 성덕의 근원 (Mary: Source of Holiness)

카톨릭은 동정녀 마리아가 성덕 즉 거룩함의 본보기요, 근원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리스도인은 교회에서 성덕(Holiness)의 모범을 배우며,
지극히 거룩하신 동정녀 마리아 안에서 성덕의 본보기와 근원을 알아보고 (제1편 p.706)

거룩함의 근원이라고 칭함을 받을 수 있는 분은 하나님 아버지밖에 없습니다.
그런데도 구원 받아야 할 인간을 거룩함의 근원이라고 합니다.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그 계집종의 비천함을 돌아보셨음이라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 (누가 1/47~48)

마리아는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을 잉태하고 기뻐하며,
자신이 여종과 같은 낮은 처지라고 하였습니다.

"네 생물이 각각 여섯 날개가 있고 그 안과 주위에 눈이 가득하더라
그들이 밤낮 쉬지 않고 이르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자라 하고" (계시록 4:8 )

"이 사람들은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 자라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계시록 15:4 )

하나님 주위의 그룹천사(케루빔)는 끊임 없이 영원한 하나님을 거룩하다고 찬양합니다.
하늘나라에서 의로운 성도들도 오직 주 하나님만이 거룩하시다고 합니다.
성경에 '거룩함'이란 단어가 600번 이상 사용되지만
마리아 보고 거룩하다고 한 구절은 한 구절도 없습니다.
카톨릭은 교황에 이어 마리아마저도 하나님의 위치에 올려 놓음으로써
우상숭배 종교란 오명을 피할 수 없습니다.

18. 마리아: 또 다른 중재자 (Mary: The Intercessor)

카톨릭 교인들은 마리아가 신자들을 위해 하나님께 대신 기도해 주는 중보자라고 믿으며
마리아에게 열렬히 기도합니다.

그 때문에 교회에서는 복된 동정녀를 변호자, 보조자, 협조자,
중재자라는 명칭으로 부른다. (제1편 p.367)

천주교 신학자도 성경에 대해 연구를 많이 했는지
예수님의 직분을 죄다 마리아에게 갖다 붙혔습니다.
마리아에게 4가지 특별한 칭호가 붙었는데 하나씩 살펴 보겠습니다.

a) 변호자

카톨릭은 마리아가 하나님 앞에 자신을 변호하는 변호자라고 하나,
성경에 전혀 근거가 없습니다.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치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요일 2:1)

성경은 분명히 예수님이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계셔서 우리를 변호해 주신다고 합니다.

b) 보조자


카톨릭은 마리아가 하나님 곁에서 그의 일을 보조하는 위치에 있다고 하나,
죄 많은 인간이 하나님 옆에 서면 강한 빛에 타버립니다.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사도행전 7:55 )

스데반이 유대인에게 주 예수를 증거하며
영안으로 예수님이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심을 보았습니다.
스데반은 담대하게 주를 증거하다 순교하였습니다.

c) 협조자

카톨릭은 우리가 어려울 때 마리아가 도와줄 수 있는 협조자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가로되 주는 나를 돕는 자시니 내가 무서워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하노라" (히브리서 13:6 )

예수님을 내가 어려울 때 도와주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니,
예수님을 믿고 나아가면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d) 중재자

중재자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관계를 좋게 하고, 다리 역할을 하는 존재를 말합니다.
천주교회에 가면 예수님 십자가상보다 마리아상 앞에 훨씬 더 많은 사람이 모여 기도하고,
촛불을 키고, 헌화합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딤전 2:5)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로마서 8/27 )

성경은 분명히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재자가 한 명 계시는데,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고 합니다.
또한 부활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오른편에서 우리를 위하여 중보하신다고 합니다.
그 어떤 누구도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셔서 자기 목숨을 버리신 예수님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19. 마리아: 기도의 응답자 (Mary: Recipient of Prayer)

카톨릭에서는 마리아에게 기도하는 것을 권장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마리아께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시기를 청함으로써 우리가 불쌍한 죄인임을 깨달으며,
또한 지극히 거룩하신분 즉 '자비의 어머니'께 호소한다.
마리아는 우리가 죽을 때도 함께 계실 것이며,
우리가 저 세상으로 건너가는 시간에 우리의 어머니로서 우리를 맞아들여
천국에 계신 당신의 아드님 예수께 우리를 인도해 주시기를 비는 것이다. (제4편 p.912)

마리아가 우리를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고,
우리가 죽을 때 하나님께 인도한다는데 전혀 성경에 근거가 없습니다.
이러한 것은 카톨릭이 만든 전통으로 하나님은 절대 인정하지 않으십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예레미아 33:3 )

기본적으로 기도는 하나님께 직접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시므로 자식이 부모에게 간청하면 들어주듯이
하나님의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십니다.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마태 18/20)

신약시대 이후에는 예수님께 기도해도 동일한 효과를 얻습니다.
예수님은 능력이 많으시므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면 뜻 안에서 시행해 주십니다.

20. 마리아: 천지의 여왕 (Mary: Queen Over All Things)

카톨릭은 마리아가 죽을 때 예수님이 그녀를 하늘로 끌어 올려
만물의 여왕이란 칭호를 주었다고 주장합니다.

마침내 티 없이 깨끗하며, 조금도 원죄에 물들지 않았던 동정녀 마리아는 지상생활을 마친 후에
영혼과 육신이 천상 영광에로 부르심을 받아 주님께로부터
천지의 모후(Queen over all things)로 추대받았다. (제1편 p.366)

카톨릭은 드디어 마리아를 하늘의 여왕(Queen of heaven) 자리까지 앉히는데,
천국에는 여왕이란 직책 자체가 없습니다.

"너는 그들이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에서 행하는 일을 보지 못하느냐 자식들은 나무를 줍고
아비들은 불을 피우며 부녀들은 가루를 반죽하여 하늘 황후를 위하여 과자를 만들며
그들이 또 다른 신들에게 전제를 부음으로 나의 노를 격동하느니라" (예레미아 7:17~18)

구약시대 유대인들은 아스다롯 같은 이방여신을 숭배하며 그녀에게 과자를 만들어 바치다가,
하나님의 진노를 사 심판 받은 적이 많습니다.
카톨릭은 이교도의 우상숭배를 여신의 이름만 바꾸어 그대로 시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21. 미사 (The Mass)

천주교의 미사는 예배가 아니라 제사의식으로 십자가의 대속을 재현하는 것입니다.

십자가 제단 위에서 한 번 당신 자신을 피 흘려 바치신 바로 그 그리스도께서
미사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이 희생 제사에 피흘림 없이 계시고, 제헌되신다. (제2편 p.502)

그러나 성경은 예수님이 단 한번의 희생제사로 영원토록 효력 있는 속제제사를 드렸다고 합니다.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히브리서 9:12 )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히브리서 10:10 )

구약시대에는 염소나 송아지의 피로 속제제사를 드렸지만,
신약시대에는 예수님이 단 한 번 자신의 피로 속죄제사를 드려 죄인된 우리를 사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단 한 번 우리를 위해 희생하심으로써 죄인된 우리를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또 다시 희생제사를 드리는 것은 예수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는 일과 같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바치신 희생제사와 성찬례 즉 미사라는 희생제사는
유일하고 동일한 제사이다. (제2편 p.502)

천주교는 감히 미사 때 아무 의미 없는 과자 한 조각 먹는 것이
예수님의 거룩한 희생 제사와 같다고 합니다.
이는 신성모독적인 의식이며, 예수님의 행적을 평가절하 하는 일입니다.
카톨릭은 부와 명예를 거뭐 쥐기 위해 예수님의 영광과 권한을 뺏어 자신들이 차지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히브리서 9:28)

예수님은 인류의 죄를 한 몸에 받아 멸시와 천대를 받고, 조롱과 채찍질을 당하고,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려 죽으심으로써 우리 죄에 대한 벌을 대신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처음에는 누추한 인간의 모습으로 어린 속죄 양이 되기 위해 오셨지만,
다시 오실 때는 찬란한 본연의 위엄 있는 모습으로 예수님만 믿고 의지하는 자들을
환난에서 구원하시려고 오실 것입니다.

22. 연옥 (Purgatory)

카톨릭은 사람이 사 후에 영혼이 연옥이라는 곳에 가서 천국 가기 전에 정화된다고 가르칩니다.

하나님의 은총과 사랑 안에서 죽었으나 완전히 정화되지 않은 사람들은
영원한 구원이 보장되기는 하지만 하늘나라의 기쁨으로 들어가기에 필요한 거룩함을 얻기 위해
죽은 후에 정화를 거쳐야 한다. (제1편 p.389)

성경에 전혀 근거 없는 이러한 교리를 내 세우기 위해 카톨릭은 다음과 같이 변명합니다.

교회는 연옥에 관한 신앙 교리를 특히 피렌체 공의회와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확정하였다. (제1편 p.389)

인간이 모여서 회의로 결정한다고 없는 영계가 갑자기 생깁니까?
카톨릭이 이렇게 성경에 근거 없는 교리를 마구 추가하는 이유는 특정한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카톨릭 신자가 죽었을 때 신자 가족에게 접근해 연옥에서 정화되어 천국에 이르게 하려면
성당에 많은 기부금을 내 대신 기도하게 해야한다고 설득해 재산을 갈취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 (로마서 5:9 )

인간은 오직 예수의 보혈로 죄사함 받아 의롭게 됩니다.
아무리 죽은 자를 위해 기도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히브리서 9:27 )

인간은 누구나 죽음을 피할 수 없고,
죽음 뒤에는 그 사람의 믿음과 행위에 대해 하나님의 즉각적인 심판이 이루어 질 것입니다.

23. 성인들에게 드리는 기도 (Praying to Saints)

천주교는 천주교가 인정한 성인에게 기도하라고 가르칩니다.

우리보다 앞서 하늘나라에 간 증인들 특별히 교회가 '성인'으로 인정하는 이들은
그들의 모범적인 삶과 전해 오는그들의 글 그리고 그들의 기도를 통해서
오늘도 살아 있는 기도의 전통에 참여하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을 뵙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지상에 남아 있는 이들을 끊임 없이 돌보아 준다.
그들은 주님의 기쁨에 동참함으로써 많은 일을 맡게 되었다.
그들의 중보기도는 하나님 계획을 성취하기 위한 그들의 봉사 중 가장 고귀한 것이다.
우리는 우리와 온 세상을 위해 간구해 주도록 그들에게 기도할 수 있으며,
또 해야 한다. (제4편 p.914)
 
카톨릭은 살아 있을 때 선한 일을 한 사람에 대해 심사를 거쳐 성인(Saint)으로 봉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예수님을 믿고 거듭난 사람을 성도(Saint)라고 합니다.

"로마에 있어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입고 성도로 부르심을 입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로마서 1:7 )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에베소서 4:11~12 )

하나님 앞에는 구원 받은 성도와 구원 받지 못한 이방인이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 앞에 인간은 모두 미물이기 때문에, 인간이 정한 직분은 큰 의미가 없습니다.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 모두 귀한 자입니다.
구원 받은 성도는 자기 기질과 사명에 따라 다른 직분을 맡는데, 이를 통해 스스로 온전해지며,
서로 섬겨주고, 그리스도의 몸 되신 교회를 세우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나 사이에 중보자는 오직 예수님인데
카톨릭은 마리아에 이어 성인도 중보자가 된다고 합니다.
또한 마리아에게 하듯이 성인에게도 기도해야 한다고 가르침니다.
카톨릭은 여신숭배에 이어 다신숭배까지 함으로써
바빌론 종교의 전통을 이어 받았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습니다.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지 절대로 사람이 사람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24. 죽은 자들을 위한 기도 (Praying For The Dead)

카톨릭은 죽은 자를 위해 기도하면 더 좋은 곳으로 인도할 수 있다고 합니다.

죽은 이들과의 일치,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체 전체의 이 같은 교류를 명백히 인식한 지상 여정의 교회는
그리스도교의 초기부터 대단한 신심으로 죽은 이들을 기억하였다.
죽은 이들이 죄의 사함을 받도록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는 것은 장하고도 경건한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을 위한 우리의 기도는 그들을 도울 뿐 아니라 우리를 위한 그들의 중보기도를 효과 있게 할 수도 있다.
(제1편 p.364)

여기서 말하는 세가지 사항은 성경과 모순되는데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1. 죽은 자가 죄사함을 받도록 간구하는 것은 경건한 생각이다.

성경에 죽은 자를 위해 기도한 예는 한 번도 없습니다.
죽고 나면 바로 심판이 이루어 지고, 지옥에 간 영혼은 영원히 그 곳에서 나올 수 없는데,
지상에서 아무리 기도해도 소용 없는 일입니다.
기도는 살아 있는 형제의 평안과 구원을 위해 하는 것입니다.

2. 죽은 이들을 위해 기도하면 그들이 죄에서 해방되도록 도울 수 있다.

죄에서 해방되는 길은 오직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사함 받는 길 뿐입니다.
법정에서 판결이 내려진 후에는 아무리 애원해도 소용 없듯이,
심판 후에 아무리 기도해도 소용 없습니다.

3. 그들을 위한 기도는 우리를 위한 그들의 중보기도를 효과 있게 할 수 있다.

마리아, 성인에 이어 이제는 죽은 영혼까지 중보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해도 해도 정말 너무 하는 것 아닙니까?
여신숭배, 다신숭배에 이어 무당들이나 하는 귀신숭배까지 합니까?
지옥에서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며 자신도 구원하지 못하는 영혼이
나를 위해 하나님께 기도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마태 28:18)

하나님은 구원에 관한 모든 권세를 예수님에게 위임하셨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유일한 중보자이며, 예수님을 증거하고 예수님에게 충성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위하는 일입니다.
어느 누구도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시는 예수님의 역할을 대신 할 수는 없습니다.

25. 성상들 (Statues)

카톨릭은 신자들이 마리아나 성인들의 성상(조각)이나 성화(그림)를 공경하도록 명하고 있습니다.

성당과 집에 있는 성화상은 그리스도의 신비 안에서 우리의 신앙을 일깨우고 기리기 위한 것이다.
그리스도와 그 분의 구원사업에 관한 성화상을 우리가 소중히 하는 것은 바로 그리스도를 흠숭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어머니와 천사와 성인들의 성화상을 소중히 하면서
그 분들을 공경한다. (제2편 p.448)

성당이나 집에 있는 성상이나 성화를 소중히 하는 것이 그리스도를 공경하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그리고 성모 마리아가 하나님의 어머니라니!
그럼 창조주 하나님이 성모 마리아의 아들이란 말입니까?
여기서 카톨릭이 성모 마리아를 하나님이나 예수님보다 더 높히고 숭배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 사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출애굽기 20:4~5 )

하나님은 어떤 형상도 만들어 섬기지 말라고 명하셨고, 어떤 동식물이나 사람의 형상도 만들지 말고,
절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다 마귀나 귀신을 섬기는 일이고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 아니니,
사랑의 하나님은 이러한 배은망덕한 행위에 대해 질투하시고,
그 죄에 대한 형벌을 당대는 물론 후손에까지 미치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여자가 가로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고하시리이다" (요한 4:24 )

하나님은 영이시니 육적으로 형상을 만들어 절하거나, 떡과 고기를 차려 놓는다고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는 영적인 행위(기도, 찬양)와 진리(성경 말씀)로써만 경배드리고 기쁘게 해 드릴 수 있습니다.

"너희도 이것을 정녕히 알거니와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 (에베소서 5:5)

사도 바울은 우상을 숭배하는 자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단언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보다 인간이 만든 교리를 중시하고,
우상(마리아, 교황)을 섬기는 카톨릭에서는 구원 받을 수 없습니다.
우상은 단지 형상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골로새서 3:5)

"내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요 아버지의 것은 내 것이온데
내가 저희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았나이다" (요한 17:10)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 믿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우상입니다.
하나님보다 돈을 더 사랑하면 돈이 우상이요, 하나님보다 애인을 더 사랑하면 애인이 우상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모든 것이 아버지의 것일 뿐만 아니라 아버지의 모든 것은 자신의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면 하나님 안에 모든 것이 있으므로 오히려 모든 것을 얻게 될 것입니다.

26. 견진성사 (Confirmation)

천주교는 견진성사가 구원에 필요한 요소이고, 여러 유익을 준다고 합니다.

견진성사는 세례성사의 은총을 완성한다. 견진성사는 하나님의 양자로서 더 깊히 뿌리내리게 하고,
그리스도와 더 굳게 결합하며, 교회와 유대를 더욱 튼튼하게 하고, 교회의 사명에 더욱 깊히 참여케 하며,
말과 실천으로 그리스도교 신앙을 증거하도록 돕는 성사이다. (제2편 p.485)

천주교에서는 세례 받은 후 7년이 지나면 견진성사를 받을 수 있는데,
세례를 통해 맺어진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가 견진성사를 통해 확고해진다고 믿습니다.
견진성사는 주교가 집전해 신자에게 안수하고, 성유를 바르며,
성령의 은사를 받았다고 믿게 합니다.
그러나 성경에 근거 없이 머리에 기름 바른다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확고해지지 않습니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로마서 8:38)

하나님과의 관계는 오직 주 예수를 믿고 하나됨으로써 주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통해 확고해 집니다.
그 어떤 사탄, 마귀, 권세라 할지라도 온전한 사랑으로 다져진 하나님과의 관계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북한의 기독교인들이 온갖 핍박을 받으면서도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져 버리지 않는 것은
예수님의 뜨거운 사랑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세례성사와 마찬가지로 견진성사도 그리스도인의 영혼에 영적인 표지
즉 지워지지 않는 인호를 새겨 준다. (제2편 p.486)

견진성사로 신자들(세례 받는 자들)은 더욱 완전히 교회에 결합되며 (제2편 p.475)

카톨릭은 견진성사를 받으면 영혼에 구원을 보증하는 표식이 새겨진다고 합니다.
그러나 어떠한 행위나 의식도 인간을 의롭게 하지 못하고,
오로지 믿음과 죄사함으로 인한 하나님의 은혜로 의로와 집니다.
결국 카톨릭은 견진성사를 통해 신자를 성당 안에 영원히 가둘려는 속셈을 가졌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27. 고해성사 (Confessing Sins to Priest)

카톨릭은 사제에게 죄를 고백해 죄사함 받아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하나님과 교회와 화해하고자 하는 사람은 진지하게 양심을 성찰해서 기억해 낸,
아직 고백하지 않은 모든 대죄를 사제에게 고백해야 한다. (제2편 p.544)

교회의 권위자에게 사죄권을 받은 신부들만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죄를 용서할 수 있다. (제2편 p.544)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께 직접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라고 가르칩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요일 1:9)

하나님은 우리의 친아버지와 같습니다.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시고, 보살펴 주시고, 언제든지 주님을 믿고 구원 받기를 원하십니다.
그런 하나님 아버지에게 직접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받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고해성사는 하나님과 예수님이 가진 죄사함의 권한을 침해하는 월권행위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히브리서 10:19)

우리가 사 후 하나님 앞에 당당히 나아갈 수 있는 것은 내가 죄를 짓지 않음이 아니라,
예수의 보혈로 내 죄가 눈보다 더 희게 씻김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즉, 죄사함의 주체는 하나님과 예수님이고, 죄사함의 수단은 예수의 보혈입니다.
카톨릭의 고해성사는 신자들을 조종하고 재산을 헌납 받기 위해 죄사함의 권한을
하나님으로부터 가로채 자신들이 소유한 것처럼 꾸민 일입니다.

28. 대사: 면죄부 (Indulgence)

카톨릭은 신자와 지옥에 있는 자들이 대사(大赦) 즉 면죄부에 의해서 죄를 용서 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신자들은 대사(大赦)로써 자신들과 연옥 영혼들을 위하여 죄의 결과인 잠벌 즉
일시적인 벌을 면제 받을 수 있다. (제2편 p.545)

대사란 이미 용서되어 소멸된 죄 때문에 받아야 할 일시적인 벌(잠벌)을 하나님 앞에서 면제해 주는 것인데
선한 지향을 가진 신자가 일정한 조건을 충족시켰을 때 교회의 행위를 통해 얻는 것이다.
교회는 구원의 분배자로서 그리스도와 성인들의 보속의 보물을 자신의 권한으로 나누어 주고 적용한다.
(제2편 p.539)

카톨릭은 죄에 대한 벌을 자신들이 면제해 줄 수 있다고 합니다.
이를 위해 일정한 조건을 충족시키라고 하는 것으로 봐서 막대한 기부금 등을 내었을 때 시행할 것입니다.
마치 재판에서 실형을 받았으나 보석금을 내고 석방되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과 정죄를 성당에 돈 몇 푼 낸다고 막을 수는 없습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야고보서 1:15)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로마서 6:23)

하나님의 법정은 변호사도 필요 없고, 3심제도 없으며, 죄에 따른 형량도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그 사람의 죄가 있으면 사망이고, 죄가 없으면 생명입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크던 작던 몸에 죄가 남아 있으면 영원한 고통인 지옥행이고,
예수의 보혈로 죄사함 받아 몸에 죄가 남아 있지 않으면 영원한 영화와 축복인 천국행을 보장받습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에베소서 2:8)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인한 선물이고, 그 어떤 행위도 구원을 보장할 수 없습니다.
또한 인간은 살면서 죄 짓지 않고 사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스스로 의로울 수 없습니다.
그럼 죄사함만 받고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구원 받습니까?

"이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니라" (야고보서 4:17)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시키는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의 일꾼으로서 이 세상에 할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마귀 사탄과 싸워 이기고, 하나님과 예수님을 증거하고 찬양하며,
전도하고 가르쳐 생명을 살리는 일입니다.
그런데 그런 선한 일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공무원의 직무유기 같은 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구원 받은 자의 의로운 행실은 구원을 보장하는 일이 아니라, 의당 해야 할 도리입니다.

29. 성경 해석 (Interpreting God's Word)

카톨릭은 오직 교황과 주교만이 성경을 해석할 수 있다고 강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권위 있게 해석하는 책무는 오직 교회의 교도권 즉 교황과
그의 일치하는 주교들에게만 주어졌다. (제1편 p.46)

천주교는 오직 교회 지도자만이 성경을 해석할 수 있으므로, 신자들은 성경을 해석해서는 안되며,
주어진 교리만 신봉해야 한다고 합니다.
심지어 1229년  발렌시아 공회 때 성경이 평신도들에게 금지되고, 금서 목록에 포함되기도 하였습니다.
교황청이 신자들이 성경을 읽는 것을 싫어 하는 이유는 자신들의 거짓말이 들통나,
통솔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입니다.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사도행전 17:11)

베뢰아 사람들은 사도들로부터 복음을 전해 듣고, 매일 성경을 보며 말씀의 진위를 확인하였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므로 매일 보고 익혀서 하나님의 심정과 뜻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 어떤 권위도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는데 걸림돌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요한 16:13)

성경을 읽다 보면 크게 깨우치고 가슴에 와 닿는 구절이 있는데
이는 성령이 내게 감동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진리의 성령님은 나의 스승이요, 내게 성경을 해석해 주시는 분입니다.
구원은 영원한 고통과 저주냐, 영원한 영화와 측복이냐를 가르는 중대한 문제입니다.
구원은 다시 물를 수도 없는 너무도 중대한 문제이기 때문에
누구나 성경을 통해 진리를 확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30. 카톨릭의 기도 (Catholic Prayer)

카톨릭은 자발적으로 기도하는 것을 금하고 카톨릭의 전통과 형식에 따라 기도하라고 가르칩니다.

기도는 내적인 충동이 자연발생적으로 분출되어 하게 되는 것이 아니다.
곧 기도하려면 먼저 기도하려는 원의가 있어야 한다.
성서가 기도에 대해서 알려 주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하니 기도하는 방식도 배워야 한다.
그런데 성령께서는 살아 있는 전승인 성전(聖傳)을 통해서 믿고 기도하는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기도하는 법을 가르치신다. (제4편 p903)

천주교는 기도가 자연발생적으로 분출되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내가 나의 목소리로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그 성산에서 응답하시는도다 (셀라)" (시편 3:4)

다윗은 자신의 의지와 목소리로 하나님께 기도드리고, 응답 받았습니다.
그러나 천주교는 묵주를 가지고 이미 주어진 기도문을 끊임 없이 반복하라고 가르칩니다.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 부언하지 말라
저희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마태 6:7)

예수님이 기도에 대해 가르치면서 이교도들처럼 주문하듯이 헛된 말을 되풀이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말을 많이 한다고 하나님께서 들으시는 것이 아니니, 필요한 말만 하라고 하셨고,
주 기도문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입니다.
만약 애인이 옆에서 매일 똑같은 말만 되풀이 하면 좋겠습니까?
하나님도 우리의 솔직한 심정을 듣고 싶어 하지,
녹음기 틀 듯 똑같은 말을 되풀이 하는 것을 싫어하십니다.

카톨릭은 또한 성서가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주지 못하니
카톨릭의 전통적인 기도하는 방식을 배워야 한다고 합니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마태 7:7)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빌립보서 4:6)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시므로 형식에 구애 받지 않고 우리가 원하는 것을 구할 수 있습니다.
어린 아이가 부모에게 장난감 사 달라고 자꾸 조르면 사 주듯이,
하나님도 우리의 간곡한 기도를 들어 주십니다.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당황하지 않고 오히려 감사하며 하나님께 우리의 사정을 알리고 부탁하면
하나님께서는 자기 자식을 돌보듯이 우리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

31. 보속 (Penance)

카톨릭은 죄를 완전히 씻고 벌을 받지 않기 위해 돈을 내고 보속을 받으라고 권장합니다.

용서는 죄를 없애 주지만 죄의 결과로 생긴 모든 폐해를 고쳐주지는 못한다. 
죄에서 다시 일어선 사람은 완전한 영적 건강을 회복해야 한다. 
그러므로 그 죄를 갚기 위해서는 무엇인가 더 실행해야 한다. 
적절한 방법으로 죄를 보상하거나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이러한 갚음을 보속이라고 부른다. (제2편 p.534)

카톨릭 교인들은 자신의 죄값을 치루고,
완전한 영적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서 보속을 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행위는 성경에 근거 없고, 면죄부와 같이 카톨릭의 또 다른 돈 벌이 수단일 뿐입니다.
또한 이는 예수님이 십자가 희생을 통해 우리 죄를 대신한 대속(代贖, expiation)과,
죄인된 우리를 십자가 보혈로 사신 구속(球贖, redemption)을 완전히 무시하는 처사입니다.

"또 저희 죄와 저희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이것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드릴 것이 없느니라" (히브리서 10:17~18)

성령께서는 십자가 보혈로 우리 죄를 사한 후에는
우리의 크고 작은 죄를 다시는 기억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죄를 완전히 용서받았으므로 더 이상 속죄제나 다른 형식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카톨릭은 보속을 받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까지 묘사합니다.

보속은 기도일 수도 있고, 헌금 자선행위, 자발적인 절제, 희생이 될 수도 있으며,
특히 우리가 져야 할 십자가를 인내로 받아들이는 일일 수도 있다.

보속을 헌금을 통해 받을 수 있다고 하면 너무 속 보이니까
기도, 선행, 절제, 희생, 고난 등도 함께 제시합니다.
그러나 어떠한 선한 행위로도 우리의 죄를 사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갈라디아서 2:16)

사도 바울은 사람이 율법이나 의식적인 행위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로워진다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과 구속을 믿는 것이기도 합니다.
어떠한 행위로도 하나님 기준에 의롭다 칭함을 받을 수 없으나,
오직 예수님을 믿는 것 하나만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칭함을 받으니
이 얼마나 기쁜 소식입니까?

32. 그리스도를 자칭하는 천주교인 (Catholics represent themselves christ)

카톨릭은 신자가 스스로 구세주 그리스도임을 밝힙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단순히 그리스도인이 된 것 뿐 아니라
우리가 그리스도 자신이 된 것을 기뻐하고 감사드립니다. (제1편 p.309)

그리스도인이 신을 닮아가려고 노력하는 것은 맞으나
그리스도인이 스스로 그리스도 자체가 되지는 않습니다.
이는 인간이 스스로 신이 될 수 있다는 뉴에이지적 사고방식입니다.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케 하리라" (마태 24:5)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며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았느니라" (고린도전서 8:6)

하나님의 기름 부음을 받은(전권을 위임 받은) 그리스도는 오직 한 분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이 우주를 창조하시고, 구원의 문이 되시며, 지옥과 무저갱의 열쇠를 가지고 계십니다.
자신도 구원 못하고 늙어 죽게 되어 있는 인간은 감히 그리스도의 자리를 넘볼 수 없습니다.
스스로 그리스도라 함은 예수님을 대적하는 일이요, 지옥의 판결을 피할 수 없는 일입니다.

33. 세례 - 천국의 보증수표

카톨릭은 성당에서 세례를 받으면 천국행이 보장된다고 합니다.

교회는 영원한 행복에 들기 위한 확실한 보증으로 세례 이외의 다른 방도를 가지고 있지 않다.

단지 세례라는 형식을 통해 천국행이 보장된다고 유혹하지만 전혀 성경에 근거가 없습니다.

"또 가라사대 너희가 너희 유전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잘 저버리는도다" (마가 7:9)

예수님은 하나님의 계명보다 자신들이 만든 유전과 전통을 더 따르는 유대 지도자를 비판했습니다.
세례는 구원 받은 다음 행하는 기념식이지, 구원의 보증이 될 수 없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요한 3:3)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 (고린도후서 13:5)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한 1:12)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 하시더라" (마태 12:50)

구원을 보증하는 것은 '거듭남'입니다.
온전히 거듭나 내가 그리스도 안에, 그리스도가 내 안에 있으면 언제 죽어도 천국행이 보장됩니다.
거듭나서 주님 뜻대로 사는 사람은 이미 하나님의 아들이고, 예수님의 형제요 자매입니다.
거듭나 주님 뜻대로 사는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요,
주님의 형제가 되었으니 하늘나라에 가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34. 화해 (Reconciliation)

하나님과 화해하게 된 카톨릭 신자는 동시에 카톨릭 교회와도 화해하게 된다고 교리문답서는 주장합니다.

죄를 용서받음으로써 하나님과 화해할 뿐 아니라 교회와도 화해한다. (제2편 p.535)

이러한 주장은 역으로 교회와의 관계가 좋지 않으면 하나님과의 관계도 좋지 않게 됨을 암시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과의 화해만 강조하지 교회와의 화해는 언급한 적이 없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고린도후서 5:18)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골로새서 1:20)

화해란 안 좋았던 관계를 좋게하는 것을 말합니다.
구약시대에는 화목제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좋게 하였습니다.
신약시대에는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좋아지고 가까워 질 수 있습니다.
또한 십자가 보혈로 죄를 깨끗이 사함 받음으로써 죄로써 끊어졌던
하나님과의 관계가 다시 이어져 화해하게 됩니다.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 (에베소서 4:15~16)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가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에베소서 2:19~22)

성경에서 구원과 관련해서 교회의 역할을 강조한 구절은 없습니다.
교회는 머리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몸된 지체로 거듭난 성도의 연합이자,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입니다.
신앙은 궁극적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가는 것이고, 예수님이 나의 유일한 중보자이며,
성령님은 나의 조력자이십니다.
구원은 교회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진리와 믿음과 죄사함과 거듭남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35. 독신생활 (Celibacy)

카톨릭은 사제와 수녀의 독신생활을 강요하지만 이것이 하나님의 뜻일까요? 카톨릭의 전통일까요?

종신부제들을 제외하고 라틴 교회의 서품 받은 모든 봉사 직무자는 원칙적으로 독신으로 살고,
또 하늘 나라 때문에 독신생활을 계속할 의지를 가진 남성 신자들 가운데서 선발한다.
독신생활은 교회의 봉사 직무자가 봉사하도록 축성된 새로운 삶의 표징이다.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인 독신생활은 하나님 나라를 찬란하게 선포하는 것이다. (제3편 p.573)

카톨릭은 사제의 독신생활을 의무요, 축복이니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초대교회의 지도자 중 독신이 의무화된 직분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절제하며 근신하며 아담하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딤전 3:2)

사도 바울은 초대교회의 직분 중 하나인 감독(Bishops)이 한 아내의 남편이라고 한 점으로 보아
당시 결혼을 금하지 않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집사들은 한 아내의 남편이 되어 자녀와 자기 집을 잘 다스리는 자일지니" (딤전 3:12)

집사(Deacons) 또한 한 아내의 남편으로서 가정에 충실하라고 권고합니다.

"모든 사람은 혼인을 귀히 여기고 침소를 더럽히지 않게 하라 음행하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라" (히브리서 13:4)

사도 바울은 결혼이 천하지 않고 존귀한 하나님의 축복이라 합니다.
물론 성직에 있는 사람이 하나님만 섬기고 사랑하기 위해 결혼을 안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건 자율적으로 결정할 문제이지 강요해서는 안됩니다.

오히려 사제의 독신 생활을 강요함으로써
미국에서는 사제의 어린이 성추문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또한 스페인과 멕시코의 수녀원에서는 사제들과의 관계로 태어난 아기가 버려져
유기된 지하무덤이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이 모든 일이 하나님의 순리를 억지로 거스리기 때문에 일어나는 안타까운 일입니다.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웠는지라 사람들이 곧 그의 일로 예수께 여짜온대" (마가 1:30 )

천주교가 초대교황이라고 주장하는 사도 베드로는 결혼한 사람으로
성경에 장모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고 사람의 전통을 따르면 결국은 폐해를 드러내게 되 있습니다.

36 마지막 의례: 노자성사 (Last Rites)

마지막으로 살펴 볼 천주교의 교리는 죽기 전 천주교인이 행하는 노자성사입니다.

그리스도의 파스카 성사로서 성체는 언제나 지상 순례 길의 마지막 성사,
영원한 생명으로 건너가기 위한 노자(路資)성사가 되어야 한다. (제2편  p.552)

마지막 의식은 죽어 가는 사람의 머리에 기름을 바르는 것입니다.
카톨릭은 노자성사가 생명의 씨앗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는 마지막 순간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치 않고 사람의 전통을 따르는 것입니다.
도들 중 한사람도 노자성사를 받지 않았습니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하시고" (마태 15:9)

예수님은 유대인이 하나님의 말씀보다 사람이 만든 교리를 중시하는 것을 한탄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람이 만든 전통대로 하나님께 경배하는 것은 헛되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계명을 내 버리고, 사람이 만든 교리와 의식과 전통을 아무리 열심히 지켜도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없습니다.

이상으로 천주교와 기독교가 다른 36가지 이유를 말씀드렸습니다.
이 글을 통해 기독교의 교리를 더 확실히 이해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하며,
에큐메니컬 운동의 미혹에 빠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또한 천주교에 계신 분은 교리나 전통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중시하여 온전한 구원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