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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Feb

일요일 꼭 교회에 가야하나 ?

작성자: blue IP ADRESS: *.82.181.221 조회 수: 86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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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꼭 교회에 가야하나 ?   

맑은샘님의 글

만일 요즈음 사람들에게 기독교인의 이미지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과연 어떤 대답이 나올까요?
여러가지 대답이 있겠지만 제 생각으로는 아마도 "일요일날 교회에 예배드리러 가는 사람"이라고 할 것 같습니다.
다시말해서 '기독교', 또는 '기독교인' 그러면 언뜻 생각나는 이미지가 '예배'라는 종교행위를 연상시킨다는 말입니다. 

그만큼 예배는 기독교인들의 신앙생활의 여러가지 부면 중에서 가장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사실 예나 지금이나 어느 지역, 어떤 교회를 막론하고 예배는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종교행위요
하나님을 경배하는 최고의 신앙 표현으로서 지금까지 지켜져 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과연 이러한 의식으로서 행해지는 예배가 하나님께서도 인정하시는 최고의 신앙행위일까요?
그래서 예배는 신자라면 누구나 마땅히 드려야할 가장 중요한 신앙적 행위인가요? 

사실 그동안 아무도 별 문제삼지 않고 있는 바로 이 점을 우리가 심각히 고민해봐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예배지상주의로 인해서 파생된 여러가지 오류와 폐해들이
오늘의 기독교와 신자들의 신앙 생활에 막대한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보여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먼저 예배란 무엇인지 신약성서의 말씀을 살펴봅시다

요한복음에 보면 예배에 관하여 예수께서 친히 언급하신 구절이 나옵니다.
바로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지니라' (요4:24) 라는 말씀입니다.
필자의 짧은 소견으로는 성서에서 예수님께서 직접 예배에 관하여 언급하신 것은
아마도 이 대목이 유일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 말씀은 잘 알다시피 사마리아 수가성의 한 우물가에서 물길러 온 여인과 나눈 대화중에
참된 예배란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신 말씀입니다.
(물론 이 말씀은 예수님이 친히 하신 것이라기 보다는 요한이 예수님의 입을 빌린 것이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할수도 있겠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이 구절을 예배에 관련된 가장 중요한 근거로 여깁니다.
그래선지는 몰라도 많은 교회에서 이 구절을 예배시작문구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 의도는 예배를 드리러 온 사람들에게 이 구절을 선포함으로써 경건하고 진지하며
간절한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도록 하려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런데 과연 이 말씀의 깊은 의미가 그런 의식적 예배를 잘 드리라는 것일까요? 

우선 먼저, 지금의 주제인 "예배할 지니라" 라는 구절을 검토해 봅시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기서 말하는 '예배'를 오늘날 보통 교회에 모여서 드리는 예배로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분명히 의식적인 예배를 말함이 아닙니다.
여기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예배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삶을 사는 것이며,
그런 삶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참된 예배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사실, 조금만 주의깊게 이 구절의 문맥과 상황을 연구해보면 그런 의미임을 쉽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당시 유대인들은 예배는 오직 예루살렘 성전에서만 가능하다고 믿은 반면,
사마리아 사람들은 오직 그리심 산에서만 가능하다고 믿었습니다.
사실은 둘 다 예배의 문제를 장소적인 것으로 본 것이지요.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것을 참된 예배의 본질로 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참된 예배란 어떤 장소같은 문제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란 말씀입니다. 

더 나아가 예수님은 아예 '예배'를 어떤 제의적인 행위로 여기지 않고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라는 구절의 뜻은 물론 예배의 자세나 태도, 방식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간단히 제 견해를 설명하자면, "신령으로" 란 것은 세속적이고 물적이며 육신적인 것을 통칭하는 이른바
"육"적인 것에 반대되는 개념으로서 "영적으로" 라는 뜻이며,
또한 "진정으로" 란 것은 "진리의 가르침을 따라서"란 뜻입니다. 

즉,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지니라" 란 뜻은 결코 예배의식을 경건하고 진지하게 드리라는 것이 아니라,
세속적인 마음과 세상적인 가치관, 이기적인 탐욕의 마음을 버리고,
하나님의 본성을 따라서 거룩한 마음과 정신으로, 참된 진리의 가르침을 따라서 삶을 살아감으로써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이 참된 예배란 뜻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의 의미는 예배의 본질은 예식 그자체에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일상의 삶이 곧 하나님께 드리는 산 예배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또한 사도 바울의 예배관이기도 합니다.(롬12:1- 2).
사실 이러한 이해는 이미 오래 전부터 구약성서에서도 나타난 사상이기도 합니다.
구약에서 말하는 참된 예배란, 제물을 바치는 제의적인 예배가 아니라,
이웃에 대한 자비와 정의를 실천하는 삶이라는 것 아니겠습니까? (사 1:10-17/ 렘 7: 1-11). 

그러나 현실은 어떻습니까? 오늘날 교회는 과연 이런 관점으로 예배를 이해하고 있습니까? 

의식으로서의 예배를 가장 중요한 종교행위로 믿고 있기때문에,
교회의 모든 역량을 예배를 어떻게하면 좀 더 감동적이고 은혜롭게(?) 드릴 것인가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위해서 최고의 음향기기, 영상기기들, 최고의 성가대 등, 예배의 분위기를 최고조로 만들기
위해 온갖 노력을 쏟아붇고 있는 것입니다.
혹은 요즘 유행하는 경배와 찬양팀을 세워서 예배의 감정을 고조시키는 방법을 선호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과연 그런 식의 분위기나 감정띄우기 방식의 예배행태가 예수님께서 원하신 예배일까요?
그런 고양된 분위기나 감정에 사로잡혀 몰아적 태도로 예배드리는 것을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만일 그렇다면 그것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완전히 왜곡하고 있는 것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예수께서는 이미 이천년 전에,그런 의식적 예배를 드리는 시대는 지나갔음을 선포하시고
일상의 삶 속에서 진실하고 바른 실천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야 말로 참된 예배라고 가르치셨는데,
오늘날 또다시 "성전화"된 건물 안에서의 예배를 거룩하고 경건하게 드려야하는 것으로
이 구절을 오용하고 있는 꼴이 아닌가 말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의식예배중심의 신앙관으로 인해서 나타나는 폐해가 말할수 없이 크다는 사실입니다.
그 중 몇 가지의 예를 들어 봅시다 : 

1. 의식예배가 신앙생할의 중심이되면 그것은 필연적으로 "제사화"됩니다.
예배의 제사화란 그 예배를 드림으로서 신앙생활의 의무를 다하는 것으로 여기게 되는 '형식화의 경향'을 말합니다.
이것이 가장 큰 폐해라 할 수 있습니다.
즉, 신앙생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삶'은 없어지고 껍데기뿐인 '형식'만 남는 것입니다, 

예배가 의식이 되다보니 그날 의식에만 참여하고 나면 신앙생활은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물론 반드시 주일 대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예배시간에 졸든지 딴 생각만 하고 앉아있든지 간에 아무튼 참석하는 자체가 중요한 것으로 가르쳐집니다.
그 결과 다른 날은 그냥 세속적이고 악하게 살아도 별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반면에 주일예배를 드리지 못한 경우는 그것이 아무리 피치못할 사정이라고 해도 일단(?) 죄인이 됩니다.
마치 옛날 이스라엘의 성전제사의 경우와 비슷하게 되어버렸습니다. 

2. 이런 식으로 예배가 의식이 되면 예배를 인도하는 목사는 마치 구약의 제사장이 되고
자연히 목사와 평신도 사이에는 범접할 수 없는 경계선이 그어집니다.
강단은 거룩한 제단이므로 아무나 함부로 올라가서는 안되는 성역이 됩니다. 신발도 꼭 벗어야 합니다.
거기는 평신도 금지구역입니다.
목사의 설교는 설령 엉터리 사설을 늘어놓는다 해도 감히 그 권위를 의심해서는 안되는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이 됩니다.
목사는 하나님의 대리자가 되어 떠받들어야 할 존재가 되어버립니다. 

3. 예배를 드리는 건물은 거룩한 제사를 드리는 "성전"이 됩니다.
왜냐면 하나님은 그 의식 가운데 임재해 계시는 것으로 가르쳐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을 가장 아름답게 짓기 위해서는 아무리 돈을 많이 들여도 그저 황송하고 부끄러울 뿐입니다.
그러니 수백억씩 하는 건물을 너도나도 경쟁적으로 짓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의식을 좀더 멋지고 화려하고 장엄하게 드리기위해서 온갖 투자를 다합니다.
강대상의 꽃장식에만 수백만원이 들어가도 아무도 그것을 비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높이기 위해서! 

이렇게 되다보니 이 글 서두에 말했듯이 많은 사람들에게 기독교인들이란
그저 예배라고 하는 의식을 열심히 드리는 사람들로만 비쳐지고 있습니다.
복음적인 삶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외형만 '일요일날 예배드리러 교회가는 사람들'로 비아냥거리가 될 뿐입니다. 

이것은 그 옛날 구약의 선지자들이 그토록 질책하고 경고했던 이스라엘의 형식적인 신앙생활과 과연 무엇이 다릅니까!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  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사 1 :11-14)

그러므로 이러한 의식으로서의 예배는 예수께서 의도하신 참된 예배와는 거리가 먼 행태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재차 말하거니와, 예수께서는 결코 의식적 예배를 강조하신 것이 아니라 삶의 실천을 요구하신 것입니다. 

참된 예배는 의식이 아닙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드려야하는 예배는 의식이 아니라 삶입니다.
물론 신자들간의 교제와 다른 여러가지 목적을 위해서 모임이나 집회가 필요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모임이나 집회는 결코 제사와 같은 의식을 거행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런 모임이나 집회의 목적은 공동체적 기도를 위해서, 

또 말씀을 듣고 연구하고 토론하고 나누는 시간을 통해서 신앙을 새롭게 각성하기 위하여,
또한 교우들 간의 친교를 통해서 같은 길을 함께 걸어가는 동지로서의 연대를 강화하는 시간으로서,
그 목적과 관점을 바꿔야 합니다. 

만일 과도기적으로라도 꼭 예배를 드리고 싶다면 다만 무슨 기념일 의례행사처럼만 해야할 것입니다.
결코 또다시 그 의례에 어떤 특별한 거룩성을 부여해서는 안된다는 말입니다. 

교회에 모여서 드리는 예배(집회)는 그것이 신앙생활의 끝이 아니라 시작입니다.
지금까지처럼 주일예베를 어김없이 드린다고 신앙생활 다 한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신앙생활의 진정한 목표점은 매일의 삶 가운데서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며 살아가는 삶입니다.
교회 안이 아니라 교회 밖에서, 이웃들 속에서 말씀의 가르침대로 살아내는 것이 참된 신약적 예배인 것입니다. (롬12:1). 

이와 같이 우리의 신앙생활을 예배의식 중심에서부터 생활 속에서의 신앙실천 중심으로 바꾸어갈 때,
우리의 모습이 그저 형식적인 예배만 드리고 있는 껍데기뿐인 신자가 아니라 참으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이라는 그 본래의 이름에 걸맞는 신앙인의 모습을 회복할 수 있게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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