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한국어

하늘계단

방문자수

전체 : 2,456,365
오늘 : 3,437
어제 : 3,924

페이지뷰

전체 : 26,339,343
오늘 : 3,437
어제 : 3,924
2018.06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23

2009-Nov

믿음의 진수

작성자: blue IP ADRESS: *.84.192.249 조회 수: 4344

et207.jpg  
옛 계명과 새 계명     참빚 선교회      김윤구 목사님

1) 처음 것과 나중 것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고 완전하게 하려 함이로라" (마 5 :17)
주님께서 이 땅에 계셨을 때 옛 계명과 새 계명에 대하여 친히 자세하게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새 계명을 주셨으니 옛 계명은 더 이상 필요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더 완전케 하러 오셨다고 하시며
세상 끝날까지 일점 일획이라도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에 우리의 가슴은 참으로 답답해집니다.
처음 믿을 때는 예수 영접하면 모든 죄 다 사하여 주고 다시는 죄짓지 말라고 해서 기쁨이 넘치고 자신이 있었는데 웬일입니까?
오랜 믿음의 생활에서도 새 계명은 커녕 옛 계명조차 지키지 못하는 생활을 보게 됩니다.
실망도 되고 불안하기도 하여 다시 열심을 내서 성경을 탐독하고 유명하다는 이의 책도 사다 읽어보고 테이프도 구해서 들어보고
산 같은 조용한 곳을 찾아 기도하고 명상을 해보아도 그때만 조금 기분이 나아지고 위안을 받는 듯 하다가 다시 옛날로 마음이
돌아오고 마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 하나님 말씀을 통해서 보고, 듣고, 만져보고, 경험되어진 사실들을 알리고 감추인 사실들을 밝혀서 다시는
침륜에 빠지는 일이 없도록 확실한 진리 가운데 거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먼저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창조의 원리라고 볼 수 있는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라는 첫째날 역사를 살펴봅니다.
저녁과 아침은 어두움과 빛이며 육의 문제와 영의 문제로 분별됩니다.
또 옛 계명과 새 계명, 옛 사람과 새 사람도 마찬가지로 분별되며 모두가 처음 것이 있으니 나중 것이 있는 것입니다.
"죄의 몸이 있은즉 신령한 몸이 있느니라" 하심과 같은 것입니다.

또 처음 태어난 내 겉 사람은 후패해지고 나중에 거듭난 내 속 사람은 새로워진다고 했습니다.
태중에 함께 있다가 태어난 에서와 야곱은 쌍둥이로 태어났지만 하나님께서는 처음 난 에서는 미워하고 야곱은 사랑하셨다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처음 것보다 나중에 된 것이 더 좋고 하나님께서 좋아하심을 성경을 통해 알 수 있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첫 표적인 가나 혼인 잔치에서
처음 내놓은 포도주가 떨어져서 예수께서 물로 만드신 나중 포도주를 맛본 연회장의 말에서도 나타납니다.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요 2 :10)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이며 진리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에서는 처음 것을 버리면
나중에 더 좋은 것을 주신다는 확실한 사실을 알고 믿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나중에 나오는 더 좋은 것을 얻기 위해서는 처음 갖고 있던 것을 버려야만 합니다.
여러 해 전에 제가 육의 아들에게 며칠 후 컴퓨터를 사줄테니 지금 갖고 있는 오락게임기를 작은집 동생에게 주라고 하였더니
매우 기뻐하며 아들은 다른 사람은 손도 못대게 하며 아끼던 좋은 게임기를 딸린 부속까지 줘버리고 용돈을 모아서 사두었던
게임 팩들까지 다 나누어 줘 버렸습니다.
아들은 틀림없이 아버지가 컴퓨터를 사줄 것으로 믿고 더 좋은 컴퓨터를 갖기 위해서 아버지의 말씀을 따르고 행한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우리도 이 믿음을 따라 처음 나온바 본향인 이 세상, 이 땅, 이 몸 보다 더 나은 본향 곧 위에 있는 본향,
하늘의 본향을 향하여 신령한 몸을 입기 위해 부르심의 상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 믿음에 대한 것은 더욱 자세하게 따로 말씀드릴 계획입니다.

2) 육과 영

그런데 위에 있는 보다 더 나은 본향은 육의 세계가 아니고 영의 세계이기 때문에 육의 몸으로는 갈 수가 없습니다.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 받을 수 없느니라" 증거 하셨고
또 다시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처음 것인 육을 버리지 않으면 안됩니다.
육은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기 때문에 옛 것으로는 안되고 거듭난 새 것이라야 합니다.
먼저 난 육은 이스마엘이요 계집종 하갈에게서 난 유업받지 못할 아래 것입니다.
그러나 나중에 난 이삭의 생명은 혈통으로나 육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난 생명이 아닙니다.
 이삭의 생명은 이미 경수가 끊겼고 백세가 된 아브라함에게 어찌 자식을 낳을까 하고 웃었고
사라도 웃었던 불가능한 그 사실이 나타난 생명입니다.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난 것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 되는 생명이 새로운 생명입니다.
이 생명은 "지식에까지 새로 지음을 받은 자니라" 했던 새 생명입니다.
그래서 옛 사람의 헛된 학문과 교만한 지식을 버리고 새로운 생명 안에서 말씀을 받아드려야지 옛 생명인 육으로 받아드리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이 수면에 운행하시는 창조 이전의 역사로 되돌아가게 됩니다.

이것이 처음 말한 옛 사람의 마음으로 다시 돌아가고 마는 현상이며 이러한 일들을 성경은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 계셨던 그리스도의 몸은 혈육의 몸입니다. 곧 우리의 육체와 꼭 같은 혈육에 속했었습니다.
그러므로 육체로 오신 주님을 부정하면 적 그리스도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 위에 달리셨을 때 좌우에 있던 구원받은 강도와 구원받지 못한 두 강도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처음에 구원받은 강도가 나 인줄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깊이 들어가 깨닫고 보니 주님의 몸 부분이 나이며 머리 부분이 주님이신 것을 알았습니다.
물론 구원받은 강도의 믿음도 중요 하지만 그 믿음은 주님의 몸과 내가 연합하여 받는 구원보다
한 단계 아래의 구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몸과 연합한 구원과 한편 강도가 받았던 구원은 마치 결혼식장에서 신부의 영광과 하객의 영광이 다른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의 영광은 해의 영광이 다르고 달의 영광이 다르고 별의 영광이 다른데 별과 별의 영광이 또 다른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에 대한 지식과 믿음은 자꾸 자라서 머리이심 그에게까지 자라게 되는 것입니다.
주와 합한 자 곧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는 또한 그의 부활을 본 받아 연합된 구원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은 죽은 후에도 창에 찔려 피와 물이 나오는 완전한 죽음입니다.
예수는 인자 곧 사람의 아들입니다. 그분은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가 사람이 아니면 우리의 구원은 없습니다.
사람으로 십자가에 못박혀 피흘려 돌아가신 후 다시 살리심을 받아 첫 구원의 열매가 되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 분은 우리의 머리가 되셨습니다.

주님께서도 땅에 계셨을 때 육의 소욕이 있었습니다.
죽음을 미리 아시고 기도 하실 때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하신 말씀은 죽기 싫다는 뜻입니다.
예수님도 육의 몸을 지니셨기 때문에 죽기가 싫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셨고
내 원대로 라는 나의 소욕이 처리되어야 할 다윗의 혈통인 옛 사람이 있었습니다.
옛 사람이 있으면 하나님 나라가 임할 수 없습니다.
육 있는 곳에는 영이신 아버지께서 함께 거할 수가 없습니다.
빛과 어두움이 함께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정과 욕심을 가진 육체는 주와 함께 십자가에서 처리하여 나의 소욕을 지닌 옛 사람을 벗어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기록되기를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았느니라" 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두움을 삼키고 회전하는 그림자조차 없는 완전한 빛의 자녀들로 나타나지기를 바랍니다.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또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하시는 말씀대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도달할 때까지 그리스도와 함께 한 성령 한 몸 한 지체로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형제라 부르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시는 주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게 됩니다.
이것이 축복이요 우리의 소망입니다.

3) 율법과 구원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요 1 :17)

율법은 몽학선생으로서 육신에 있는 자들에게 주신 것으로 살리는 법이 아니라 죽이는 법입니다.
모든 사람을 죄 아래 가두었고 죄인 줄 몰랐는데 죄로 심히 죄 되게 하여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다 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새의 직분은 정죄의 직분이요 육에 대한 직분입니다.

육이 있는 곳에는 사람이 살 동안만 주장하는 율법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에 율법과 육은 뗄래야 뗄 수가 없습니다.
그 관계가 끝나려면 어느 한편이 없어지면 되는 것인데 율법은 이 세상 끝나는 날까지 일점 일획도 없어지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결국 옛 사람이 없어져야 하는 수밖에 다른 방도가 없습니다.
육이 없어져야 율법이 끝나기 때문입니다. 율법의 마침이 되는 곳이 십자가입니다.
그래서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향하여 죽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 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고후 5 :14)」하신 대로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향하여 죽었으면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죄에게 종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라는 말씀이 응해질 줄 압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죄의 법에서 해방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참으로 십자가로 가는 것을 싫어합니다.
일생에 하나밖에 없는 목숨인데 죽기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일생에 매어 종노릇하는 종의 몸을 벗어버리면 아들인데 죽기를 무서워하여 종의 본질을 벗어버리지 못하고 사는 것입니다.
노예 생활 속에서 종노릇하던 애굽땅으로 돌아가자고 했던 이십세 이상의 장성한 자들은 광야에서 다 죽었고 종의 자질을 벗어버리고
자기를 부인해 버린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간 사실을 우리는 성경을 통하여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종의 자질을 가진 우리의 육은 죽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은 나사렛 예수는 첫 사람이요. 육있는 자요. 다윗의 혈통을 가진 인자입니다.
그래서 그가 죄는 범치 않았지만 육의 몸이 있었기 때문에 "인자는 죽어야 하리니" 하신 대로 죽었습니다.
또 온갖 시험을 받았고 늘 자기를 이겨 나갔습니다. 그 속에는 이김의 생명이 있었기 때문에 이긴 것입니다.
그와 함께 합한 우리들 속에도 이김의 생명을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영으로서 몸의 행실을 쳐서 복종시키며 사는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세상 생활 속에서 우리 한 사람은 넘어지기 쉽지만 여럿이 모이면 여러 겹의 실이 끊어지지 않는 것처럼
모임의 생활을 통해서 피차 권면 하면서 서로 붙들어 주고 모이기를 폐하지 말라는 말씀을 마음속에 새기고 나아가면
굳건한 믿음 위에 더욱 은혜와 진리가 넘치게 될 줄 압니다.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는 말씀대로 우리 모두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습니다.
이것은 믿음입니다.
이 믿음이 사실로 이루어져 실상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바라는 것의 실상입니다.
이제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 수 있겠습니까?
옛 사람의 온갖 더러운 음행과 육신의 일을 위하여 살지 않고 이제는 영을 쫓아 살게 되니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녀로
영원히 아버지의 집에 거하게 됩니다.

이 사실을 여러분이 받아 들이면 죄의 종에서 해방되고 의에게 종이 되어 영원한 아들의 새 생명을 얻게 됩니다.
우리가 율법에 대해서 죽임을 당한 것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로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히게 하려 함입니다.
죽임을 당하신 그리스도의 몸과 살아나신 그리스도의 몸은 다릅니다.
죽임을 당하신 몸은 다윗의 혈통을 받은 육의 몸이고 부활하신 몸은 신령한 몸입니다.
이제 신령한 영의 몸으로 덧입을, 말로 다 할 수 없는 즐거운 소망 중에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며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로 살기를 바랍니다.


"보라! 지금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 아멘

4) 옛 사람과 새 사람

맨 먼저 이해를 돕기 위하여 옛 사람과 새 사람에 대하여 잠깐 언급하였지만
이제부터 좀더 깊은 말씀 속에서 확실한 진리 안에 거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치 말라" (마 5 ;21) 라는 말씀 속에서 우리는 옛 사람을 구약시대의 사람들 즉 모세를 따라 나왔던
시간과 공간 속의 사람들로 생각하고 역사성을 따져서 그 시대 속의 사람들로만 생각하는데, 아닙니다.

영적으로 볼 때 옛 사람은 내 겉사람으로 육이요 땅에서 난 사람 입니다. 옛 사람은 죄의 사람이요 불순종의 사람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복종하는 생활로 나타나 내 옛 사람이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십자가에서 함께 죽고 함께 장사 지내면
그의 부활과 함께 연합하는 생활이 이루어져서 새로운 생명으로 내게 그리스도가 사시는 순종의 생활을 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내 겉 사람은 쳐서 복종시키고 내 속 사람은 어린양을 따라가는 순종의 사람이 되어집니다.
순종의 생활이 이루어지는 새 생명이 바로 새 사람입니다.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하는 이전 것은 옛 사람이요 새것은 새 사람입니다.
이제 새 사람을 입었으니 그리스도인입니다.

옛 사람을 벗어버리는 해결점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못 박히신 골고다입니다.
그런데 벗어버리는 것이 온전치 못하면 성령으로 시작은 했는데 다시 육신의 잔재가 살아나서 육으로 마치려는 갈라디아 교회처럼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갈 3 :1)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됩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눈앞에 밝히 보이는 그 죽음 속에 우리 죽음도 함께 연합되었음을 알고 믿어야 합니다.
이 사실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함께 죽었으면 함께 살 것이라고 되어 있기 때문에 함께 죽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 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 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롬 6 :5)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죽지 않고서 어찌 그의 부활과 연합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정녕 죽으리라" 했던 말씀대로 유한된 죽음의 생명을 갖고 있습니다. 그것은 아래에 있는 생명입니다.
위에 있는 생명은 영원히 죽지 않는, 죽음이 없는 영원한 생명입니다.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으리라" 했던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은 옛 생명을 벗어 버렸기 때문에 얻는 것입니다.

옛 사람을 벗어버리지 않으면 새 사람을 입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시간 우리는 옛 사람과 새 사람에 대한 문제에 분명한 가름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하기 위하여 죽을 죄의 몸은 멸해 버려야 합니다. 육의 몸이 있은 즉 신령한 몸이 있습니다.
육의 몸이 없으면 신령한 몸은 논할 수가 없습니다. 어두움이 없으면 빛이 없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죽었던 옛 사람, 즉 사망의 몸, 죄의 몸인 나, 이 몸이 있은 즉 신령한 몸이 있는 것입니다.
죄를 범하던 육의 내 몸. 곧 내가 죄인 중에 괴수니라 하는 이 사실을 객관성 있는 말씀으로 지나치지 말고 분명한 내 사실로

내 속에 경험되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그랬었고 요한 또는 베드로 사도가 그랬다는 것이 아니고 그들의 경험과 사실이 오늘 우리 안에서 사실화 될 때
그들과 한 지체가 되고 한 영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 는 말씀대로입니다.

"옛 사람에게 말한 바" 하는 것은 육의 문제를 논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그리스도는 옛 사람이 아닙니다.
새 생명을 주시려고 오셨기 때문에 첫 사람이 아니고 마지막 아담 곧 둘째 사람입니다.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고후15 :47)

밤이 있으니 아침이 있습니다. 우리 육의 몸이 있은 즉 또한 신령한 몸이 있습니다.
우리가 첫 사람, 첫 아담, 불순종의 사람이었기 때문에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좇아 둘째 사람, 마지막 아담,
곧 순종의 사람이 또한 있습니다.

첫 사람의 우리는 아래 것인 계집종 하갈에게서 난 이스마엘의 아들입니다.
죄를 범치 않는 인생이 하나도 없는 우리는 아래에서 난 사람이고 그리스도는 위에서 난 사람입니다.
"너희는 아래에서 났고 나는 위에서 났다" 하셨고 또 다시 "사람이 다시 (위에서) 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유업 받을 수 없다" 고 하셨습니다.
땅에서 난 첫 사람인 우리는 이성 없는 짐승같이 본능으로 아는 그것을 열망하고 흙에 속한 우리는 벌레요 짐승 같지만
둘째 사람 곧 하늘에 속한 자는 천사와 동등한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천사와 동등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참으로 거듭난 우리는 천사와 동등이요 부활의 자녀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 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후사로 세우시고 또 저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히 1:1∼2)

이미 나눈 말씀대로 옛적을 구약시대 같은 시간적 공간대로 생각지 말고 옛 사람인 내가 아직 죽지 않았으면
율법 아래에 있는 그 시대 속의 사람입니다.
영의 세계에서는 육의 세계가 옛적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난 새 사람이 된 우리가 볼 때 옛 사람 곧 혈육의 사람은 우리의 조상입니다.
영의 사람인 마지막 아담이 볼 때 첫 아담이 조상이며 둘째 사람이 볼 때 첫 사람이 조상입니다.
우리 속 사람이 볼 때는 겉 사람은 조상이며 선지자들로 말씀하신 옛 사람입니다.
이제 우리는 새로 지음을 받아서 영 가운데 거하는, 거룩한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복 있는 형제요 자매입니다.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신 이 모든 날 마지막은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입니다.
에서의 시대는 지나고 야곱의 시대이며 밤이 지나고 아침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우리에게 나타나는 행실은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롬13 :13∼14)」는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는 것은 확실히 구분되는 단계가 있는 것이 아니고 이어지는 변화입니다.
그래서 겉 사람은 날로 후패해지고 속 사람은 날로 새로워진다고 했습니다.

동이 트고 날이 새서 아침이 오는 것을 우리는 흔히 새벽 별이 뜨는 것으로 기준하게 됩니다.
샛별이 우리 마음에 떠오르면 새 아침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빛의 자녀들입니다.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신 그 말씀이 우리 귀에 들려질 때
"내 양은 내 소리를 듣느니라 내 양은 나를 알고 나를 따르느니라" 는 말씀이 우리 가운데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새 노래를 부르며.....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기 때문에 어떤 환경과 장소와 시간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시공을 초월합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진리의 말씀에만 거하면 한 성령으로 어디에서든지 하나가 됩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나타나지는 생명들이 연합되어질 때 이것이 오늘날 성령이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켜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까지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옛 사람의 세계에서는 어떤 장소와 시간과 육의 만남이 꼭 필요하지만
새 사람의 세계는 영으로 함께 하는 새로운 세계이기 때문에 바로 우리 속에서 확인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 나라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로 되어지는 것은 어두움이 끝난 사람에게 이루어집니다.
그 이루어짐이 한꺼번에 천지 개벽되는 것처럼 일시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마치 동이 트듯이 겉 사람은 날로 후패해지고
속 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심과 같이 자기 일을 쉬느니라" (히 4 :10)

영의 세계에서는 이미 쉬는 세계도 있고 아직 일하는 세계도 있고 지금도 일 하기 전의 세계도 있습니다.
그래서 잠자는 자, 깬 자, 깨서 일하는 자가 있고 일을 하고 마지막 상급을 받는 자까지 있기 때문에
내가 어디까지 이르렀는지, 어디까지 자랐는지 또는 어느 시점에 도달되었는지 확증하고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라가기를 바랍니다.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그 안에서만 자랄 뿐입니다.
"너희가 어디에까지 이르렀던지 그대로 행할지니라" 하신 말씀대로 그의 안에서 그대로 자라나야 합니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하셨으니 주님의 생명 안에서 새 사람을 입는 역사가 우리 속에서 완전케 되기를 바랍니다.

5) 새 생명의 삶

전에는 우리도 그리스도를 병 고치고 떡 먹이고 포도주를 만드는 세상의 주 나사렛 예수로 바라보았으나
그리스도의 몸과 연합하여 육체와 함께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은 우리는 이제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하는 새 생명을 받아 아무 사람도 육체대로 알지 아니하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하심대로
흠과 티나 주름 잡힘이 없는 온전한 하나님의 자녀로 나타날 줄 믿습니다.
이렇게 되면 아버지의 우편에 앉아 계신 맏아들 임마누엘 예수를 바라보며 믿음 소망 사랑이 항상 넘치는 새 사람으로 살아갑니다.

"시온이여 깰지어다 깰지어다 네 힘을 입을지어다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며 네 아름다운 옷을 입을 지어다 너는 티끌을 떨어버릴지어다.
예루살렘이여 일어나 보좌에 앉을지어다 사로잡힌 딸 시온이여 네 목의 줄을 스스로 풀지어다" (사 52 :1∼2)
우리는 지금 목의 줄을 스스로 풀 수 있는 시점에 와 있습니다.
진리를 알게 되면 자유케 됩니다.

이제는 진리를 알고 70년 바벨론 포로의 생활에서 스스로 목의 줄을 풀고 벗어나야 합니다.
70년 육신의 포로에서 그만 벗어나서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옷을 입고 자유 안에 거하는 새 사람의 생활이
우리 속에서 이루어질 때 입니다..

생명은 둘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와 한 영이요 한 생명입니다. 이 생명은 아버지께서 주신 거룩한 생명입니다.
아버지와 아들간에는 믿음이 있습니다. 옛 사람을 버리면 새 사람을 입습니다.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우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날 것 입니다.

마지막 권고의 말씀을 적어 봅니다.
깊이 새겨서 진리 안에 항상 거하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엡4 :22∼24)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3 하나님의 약속 file blue 2009-12-28 4567
» 믿음의 진수 file blue 2009-11-23 4344
1 제 삼일에 file blue 2009-10-30 4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