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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은 어떤책인가?

2009.08.07 12:36

blue 조회 수:46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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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은 어떤책인가?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구약이란 성경의 첫 번째 부분이라는 점이다.
구약은 성경의 나머지 부분인 신약보다 대략 세 배 이상 길다.
성경은 언약을 의미하는 라틴어 '테스타멘툼'을 따라서 구약과 신약으로 불린다.
구약과 신약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과 맺으신 옛 언약과 새 언약에 대해서 말한다.
그 백성이 바로 구약에서는 이스라엘이고 신약에서는 기독교 공동체인 교회이다.
여기까지는 아무 문제가 없다. 하지만 기독교인과 유대인이 모두 구약을 거룩한 말씀으로 간주한다는 사실과
그들이 서로 이 기록을 다르게 이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할 때 문제는 조금 복잡해진다.
기독교인들은 대체로 구약이 신약에서 성취되었다고 생각한다. 만약 신약이 없다면 구약은 불완전한 기록이라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구약 자체를 완전한 책으로 간주하고 있다. 유대인들은 구약을 히브리어 성경이나 히브리어 성서란 말로 부르기를 더 좋아한다.
왜냐하면 아람어로 기록된 「다니엘」 일부와 「에스라」를 제외하고는 이 책들이 모두 히브리어로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읽고 있는 성경이 구약과 신약의 말씀을 모두 수록하고 있는 까닭에, 우리는 편의상 기독교인의 명칭인 "구약"을 사용하려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유대적인 용법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구약의 구분


유대인과 기독교인은 성경의 각 책을 배열하고 인쇄하는 순서에서 서로 다르다.
유대인은 율법서, 예언서, 성문서라는 옛 히브리적인 구분을 지키고 있다.
예언서는 다시 전기 예언서(「여호수아」에서 「열왕기하」)와 후기 예언서(「이사야」에서 「말라기」)로 세분된다.
때때로 소 예언서라고 불리는 「호세아」에서 「말라기」에 이르는 책들은 유대인 뿐 아니라
여러 사람들 사이에서 특별히 「열두 권의 책」으로 알려져 있다(자세한 것은 "성경책 각 권의 이름과 순서"를 보라).
이런 구분은 대체로 이스라엘에서 그것들이 권위 있는 말씀이나 정경으로 받아들여지게 된 역사적 순서를 따른 것이다.
히브리어 정경은 예수 시대에 사실상 완성된 것이나 다름없다.

기독교 성경책의 배열은 이렇지 않다. 기독교 성경책은 초기 교회가 폭넓게 받아들였던 옛 그리스어 역본과 라틴어 역본의 순서를 따르고 있다.
기독교 성경책은 역사서(「창세기」에서 「에스더」), 시문학(「욥기」에서 「아가」), 예언서(「이사야」에서 「말라기」)를 분명하게 구분하고 있다.
70인 역본이나 불가타 같은 고대 역본의 구약에는 히브리어 원문에는 없는 책들이 많이 들어 있다.
가톨릭 교회는 이런 책들을 제2 경전이라고 부른다. 말하자면 두 번째 정경에 속하는 책이라는 뜻이다.
이 책의 가치를 인정하면서도 그것을 히브리어 성경과 똑같이 취급하지 않는 개신교도들 가운데서도 제2 경전이란 용어가 사용되고 있다.
개신교도들은 전통적으로 이 책을 "감춰진 책"이란 뜻에서 "외경"이라고 부른다. 동방정교회는 주로 그리스어 용어인 '아나기노스코메나'를 사용하고 있다.
그 뜻은 "읽혀야 되는 책"이다. 이것은 동방정교회가 이 책을 교회가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책으로 간주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대한성서공회는 1977년 외경을 수록한 성경책을 가톨릭 교회와 함께 출판하였다. 이 때 외경은 구약과 신약 사이에 독자적인 묶음으로 삽입되었다.
이 외경은 특별히 구약의 후반부에 묘사된 유대인의 세계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구약의 형성


히브리어 구약을 이루는 39권의 책들은 천 년이 넘는 오랜 세월 동안 형성되었다.
원래는 이야기와 전승이던 것이 구전으로 여러 세대를 거쳐서 전수되었다.
그러는 과정에서 많은 이야기와 전승이 글로 옮겨지기 시작하였고 작은 수집물 형태로 정리되었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지만 구약에 언급된 「야살의 책」(수 10:13; 삼하 1:18), 「솔로몬의 실록」(왕상 11:41),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왕상 14:19 등)과
「유다 왕 역대지략」(왕상 14:29 등) 같은 책이 바로 여기에 해당된다.
이와 비슷한 형태의 수집물이 구약의 다른 부분에서도 토대를 이루고 있다. 아브라함 이야기(창 12-24장)나, 야곱과 그 자식들 이야기(창 27-50장) 같은 것들이다.
십계명(출 20:3-17; 신 5:7-21)은 그것이 현재 자리에 배치되기 훨씬 이전에 이미 독자적으로 존재했던 본문일 가능성이 크다.
「시편」이나 「잠언」은 각각 여러 사람이 쓴 것을 수집해 놓았음을 밝히고 있다(시편과 잠언에 대한 개론을 보라).
그것은 보다 큰 수집물인 예언서와 「열두 권의 책」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저자문제


구약의 저자가 누구인지를 생각하려고 할 때에, 우리는 구약이 오늘과 같은 모습으로 형성되기까지 오랜 세월이 소요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인쇄술이 발명된 이후에는 한 작가가 한 책을 쓰는 것이 하나의 관행처럼 굳어버렸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글을 인용하거나 활용할 때 그 글의 출처를 밝혀야 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 되었다.
그러면서 누군가가 쓴 글을 저작권으로 보호하는 일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이같은 상황은 구약 시대에서는 판이하게 달랐다.
어떤 한 부분을 기록한 사람은 전체를 기록하신 분으로 여겨지는 하나님보다 덜 중요하게 여겨졌다.
어떤 기록이 거룩한 말씀으로 간주되는 일에서 원래 그 글을 쓴 사람이 누구이냐를 묻는 질문이란 그렇게 긴요하지 않았다.
이 말씀을 보존하게 된 중요한 이유는 신앙공동체가 자기 역사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그것이 중요한 역할을 하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대부분의 선지자들은, 에스겔 같은 경우를 제외하고는, 설교하고 외치는 이들이었지 결코 작가가 아니었다.
그런 까닭에 "모세 오경"으로 여겨지는 책 속에 모세의 죽음에 대한 기사가 들어 있다는 것이나,
여러 다양한 사람이 썼다고 분명히 말하면서도 그것을 각각 "다윗의 시"나 "솔로몬의 잠언"이라고 부르는 것을 결코 이상하게 여겨서는 안 된다.
이러한 제목들은 오늘날의 의미에서 저자가 누구인지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모두 그렇게 불리는 책 속에 수록된 위대한 전승을 창시한 사람이 누구인지를 드러내는 표현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구약의 다른 부분에서도, 이를테면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같은 책에서도 이같은 점은 마찬가지이다.

구약의 본문


구약이 그 원본이나 번역본에서 문제를 야기하게 되기까지에는 오랜 세월이 걸렸다.
앞에서 이미 언급한 대로, 구약의 여러 부분들은 일찍부터 거룩한 말씀으로 간주되었다.
그 말씀은 아주 조심스럽게 보존되고 필사되었다.
사실상 히브리어로 기록된 여타 문서들이 사라져버리고 없기에 이스라엘은 엄격한 의미에서 "성경책의 민족"이 되고 말았다.
거룩한 말씀이 보존되는 과정 중에 의심스럽다거나 온전하지 못하다고 여겨지는 사본들은 종종 파괴되었다.
그 결과 오늘날 고스란히 남아 있는 구약 사본이란 거의 없다시피 하다. 히브리어 본문의 표준판이 확립된 것은 마소라 학자들의 헌신적인 노력을 통해서였다.
서기관이자 학자들인 마소라 학자들이, 주후 100년 이후에는 표준판으로 삼은 히브리어 본문에 어떤 수정도 가해지지 않도록 지켰으며,
주후 1000년 이후에는 아예 더 이상의 수정이 행해지지 않도록 표준판 본문을 확보하였다. (오늘날 우리는 구약의 히브리어 표준판을 마소라 본문이라고 부른다.)
그렇지만 서기관도 사람인 이상 결코 잘못이 없지는 않았다.
오랜 세월 본문이 보존되는 동안에 많은 실수와 불분명한 것들이 소리 없이 텍스트 속에 자리잡게 되었다.
이런 경우가 한번 생기고 나면 후대의 서기관들은 종종 선배들이 저질러놓은 일을 바로잡거나 수정하는 데 필요한 자원이 부족함을 느꼈다.
그 결과 서기관들이 남겨놓은 실수들은 다른 본문들과 함께 충실하게 필사되어 전수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이유로 이 '굿뉴스 스터디바이블'에 수록된 본문 해설에는 히브리어 원문이 분명하지 않다거나,
히브리어 본문보다는 70인역본 같은 옛 번역본을 따르고 있다는 설명이 자주 등장하게 된다.

사해 근처 쿰란에서 발굴된 고고학적 유물은 히브리어 본문의 초기 전달 과정과 그 본문의 실질적인 정확성을 확인하는 일에 크게 도움을 주었다.
쿰란 발굴물 중에는 유대인들이 기록한 두루마리나 사본의 단편들이 남아 있었다.
그 중에는 그 때까지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던 히브리어 본문의 전승을 아주 가깝게 따르고 있는 「이사야」나 구약의 다른 부분이 포함되어 있었다.
필사하는 과정 중에 생긴 오류 외에도 문제는 또 있다. 특히 히브리어 성경을 이해하는 과정에 그 긴 역사와 독보적인 위치 때문에 생기는 문제들이 등장한다.
어떤 언어의 낱말도 천 년이 넘는 긴 세월을 거치다 보면 그 의미가 달라지게 마련이다.
성경 히브리어의 어휘도 그 점에서는 예외가 아니다. 철자법상의 수정도 있었고,
여러 자음을 연결하는 방식에서도 변화가 생겼으며, 글자를 써가는 도구들도 시대에 따라서 변천을 겪었다.
구약 시대에 히브리어로 기록된 다른 문헌들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대단히 많은 낱말들이 한 번이나 두 번만 나타나고 있고,
그 용어가 때로는 그 문맥 안에서 무엇을 의미하는지가 분명하지 않다.
예를 들어 우리말 성경의 왕상 10:22와 대하 9:21에서 "원숭이"로 번역된 단어는 동시에 "공작"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한 경우에 번역자를 포함한 학자들은 두 개의 보충적인 자료를 사용하게 된다.
하나는 히브리어 낱말의 뜻을 보다 잘 알고 있던 때에 이루어졌던 옛 번역본의 자문을 받는 일이다.
다른 하나는 히브리어와 연관된 여러 언어를 검토하면서 그와 유사한 용어를 추적해 보는 것이다.
이 두 작업 중 어느 것도 히브리어 말씨의 의미를 모두 확실하게 규정해 주지는 못한다. 그러나 그 작업 자체는 귀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구약에는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여전히 그 의미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구절들이 남아 있다.
그러한 경우 학자들은 종종 히브리어 원문이 변경된 것으로 간주하기도 하고, 아니면 그것을 수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 굿뉴스 스터디바이블의 시 22:15에 있는 "히브리어 원문에는 '힘'으로 쓰여 있지만 역본에 따라서는 '목구멍'으로 읽기도 한다"는 해설이 그런 예이다.
그렇지만 구약 학자들은 대부분 본문 수정을 최후의 수단으로 여기면서, 그런 수정을 거의 하지 않으려고 한다.
두 히브리어 자음이 그 모양이 비슷해서 서로 쉽게 혼동되는 경우에 특히 그런 경향을 보이고 있다

문화의 차이

 번역자에게 있는 또 다른 어려움은 히브리어 본문에서가 아니라, 구약 시대와 우리 시대 사이에 놓여 있는 문화의 차이에 있다.
어떤 격언은 그 첫 번째 독자들에게는 친숙하나 우리는 알 수 없는 일상 생활의 한 단면이나 이스라엘 백성의 예배를 넌지시 말하고 있다.
어떤 언어에서도 시에서는 은유적인 표현이 자주 사용된다. 어떤 경우에는 문자적인 의미와는 아예 상관 없는 경우도 있게 마련이다.
구약에는 많은 언어 유희가 있을 뿐만 아니라, 의도적으로 청중이나 독자의 관심을 끌고 그들로 하여금 의미가 무엇인지를 스스로 생각하게끔
유도하는 (예수의 비유 같은) 수수께끼 같은 표현도 있다.
이 굿뉴스 스터디바이블은 여러 설명과 용어 해설 등에 오늘날 독자들이 그 같은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우려고 애쓰고 있다.
그렇지만 해결되지 않은 어려움들이 여전히 남아 있다.
그 외에도 이 굿뉴스 스터디바이블은 문자적 번역이 오늘날 독자들에게 본문의 의미를 충분히 전달하지 못하는 곳에서는
그 의미가 무엇인지를 해설하는 다른 번역을 싣고 있다.
사 11:1과 렘 22:7의 문자적 번역과 의미상의 번역을 비교해 보라.

사 11:1의 문자적 번역(개역개정판)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이 굿뉴스 스터디바이블에 소개된 다른 번역
다윗 왕가는 잘라진 나무와 같으나
새 순이 줄기에서 자라나
한 새 왕이 다윗의 후손 중에 일어나 왕이 될 것이요
렘 22:7 상반의 문자적 번역(개역개정판)
내가 너를 파멸할 자를 준비하리니
이 굿뉴스 스터디바이블에 소개된 다른 번역
내가 그것(유다의 왕궁)을 파괴하기 위해서 사람들을 보내리니

구약의 고대역들


오늘날 구약의 신실한 번역들은 모두 히브리어 원문이나 아람어 본문을 대본으로 사용한다.
그렇지만 오랜 기간 동안, 여러 곳에서 기독교 공동체는 고대 번역본을 의지하였다.
예컨대 동유럽에서는 70인역본을, 서유럽에서는 불가타를 사용하였다. 신약을 기록한 자들은 대부분 70인역본을 사용하였다.
그래서 신약에 인용된 구약 구절들은 그 형식에서 히브리어 성경과 다르다("신약에 사용된 구약"을 보라).
이 옛 번역본들은 또 다른 고대 언어로 번역되었다. 예를 들어 그리스어에서 슬라브어로 번역된 경우인데, 이런 경우 구약은 부정확한 구절을 더 많이 지니게 된다.
그러나 고대 역본들은 기독교인들이 여러 세대를 거쳐 계승해 간 믿음을 보존하고 있기에, 그 중 어떤 것들은 그 자체가 영감을 받은 것으로 간주되기에 이르렀다.
이런 고대 번역본들이 오랫동안 폭넓게 존경받아 왔지만, 구약을 히브리어에서 직접 번역하는 긴 전통도 동시에 존재하고 있다.
이러한 일의 개척자가 위대한 기독교 학자인 성 제롬(St. Jerome, 대략 341-420년)이다.
제롬은 유대인 선생으로부터 히브리어를 배운 후 히브리어에 기초하여 당시 사용되던 라틴어 번역본을 개정하였다.
그렇게 해서 그는 불가타 (또는 "통속적인") 라틴어 번역본의 기초를 마련하였다.
비슷한 방법으로 개신교 종교개혁은 구약이 히브리어로부터 당시에 유럽에서 사용되던 각 나라의 방언으로 번역되는 계기를 만들었다.
이러한 일에 뛰어든 사람이 바로 마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년)이다.
마틴 루터는 1522년에 먼저 신약의 독일어 번역을, 1534년에는 전 성경의 독일어 번역을 출판하였다.
루터와 그의 동료들 일부와 그 후계자들에게는 유대 성서학자들의 작업을 충분히 활용할 능력이 있었다.

구약의 현대적 읽기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어떻게 구약을 읽어야 할까? 거기에는 어떤 한 방법만 있지 않다.
성서공회나 교회나 성경 읽기 모임이 발간한 여러 종류의 성경 읽기 안내는 많은 사람들에게 구약 읽기에 도움을 준다.
기독교인이나 유대인에게는, 그렇지만 성경은 성경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근본적인 원칙이 있다.
말하자면 어려운 구절은 보다 넓은 맥락, 곧 성경 전체의 관점에서 이해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에게는 산상수훈에 기록되어 있는 예수의 가르침 속에도 어떤 갈등이 있다.
한편으로 예수는 구약이 여전히 성경의 권위적인 가르침이라고 말한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마 5:17)

다른 한편으로 예수는 구약에 대해서 과격할 정도로 새롭게 말한다. 예를 들면,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마 5:43-44)
"네 원수를 미워하라"와 같은 말은 일반적으로 고대 서아시아를 비롯한 이스라엘 종교가 주창했던 사상과 실천을 비교적 잘 요약한 말이다.
그렇지만 구약은 그 어디에서도 "네 원수를 미워하라"고 꼬집어서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원수를 사랑하고 그를 위해서 기도하라는 예수의 가르침은 구약에 있는 그 어떤 가르침보다 훨씬 더 앞서 나간 것이다.
기독교인은 구약을 읽을 때 예수께서 히브리어 성경에 대해서 지녔던 것과 똑같은 자세를 갖도록 노력해야 한다.
또한 예수께서 구약을 이해하셨던 방식대로 구약을 읽도록 애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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