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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상 모든 일에 바른 것과 그른 것이 있다.
진리에도 그러하다
진리에 있어서 바른 것은 정통이라 하고 그른 것을 이단 이라 한다.
정통은 생명에 이르고 이단은 멸망에 빠진다

사람들이 자기 마음대로 정통과 이단을 규정 하고 있다. 그러나 정통과 이단은 오직 성경만이 정확하고 명확하게 알려준다.
애당초 판이한 것은 누구나 분별한다 그러나 비슷한 것은 분간 하기 어렵다.
정통과 이단은 비슷하여 실로 알기 어렵다, 허지만 이 유다서에서 밝히게 될것이다.

66권으로 된 성경이 각 권마다 특별한 뜻이 있어 각각 그것의 지닌 뜻에서 제일이 된다.
그 중에 유다서는 정통과 이단에 대한 말씀으로 제일이다.
불과 25절로 된 한장이지만 전 성경이 보이려는 정통과 이단에 대하여 일목 요연하게 알려 준다

유다서 제1부

2009.03.20 13:28

blue 조회 수:5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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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서 제1부

제 1 편 문 안 1,2

1, 발신자 1

1,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야고보의 형제인 유다는

본서는 전체로는 그 첫부분이 문안으로 되여 있다.
신약 27권 중에서 4 복음 외의 23권은 첫부분이 거의 문안이다. 문안에는 발신자, 수신자, 축복의 3가지로  기록 되였다.
발신자 유다가 자기 신분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야고보의 형제" 라고 하였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함은 하나님의 사명을 받은 인간과의 자기 관계이다.
유다가 자기를 소개 한것은 마치 어느나라의 사신이 다른 나라에 갔을때 그 나라에 자기 신분을 제시함과 같다.
본서를 정확히 알려면  유다가 자기를 소개한 말씀을 이해 하여야 한다.

1) 예수 그리스도의 종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함은 다음과 같다.
예수는 주의 사자가 의인 요셉에게 나실 아기의 이름으로 지어준 것이다.
그 뜻은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마 1:21) 하였다.

유다가 예수의 종이라고 함은 자기가 어느 나라나 어떤 사람의 종이 아니라 온 인류를 자기 백성으로 하여
저들의 죄에서구원 하실 그 예수의 종, 곧  그의 사신됨을 제시한 것이다.
온 인류의 왕은  하나님이 몸을 입으시고 세상에 오신분, 바로 예수 이시다.
온 인류의 참되고 완전한 구원은 정치, 경제, 교육으로는 불가능 하다.
온 인류가 죄에서 해방 될때만 가능 하다. 인류의 죄를 속죄 하여 구원 하실이는 오직 예수 밖에  없다.
인류의 모든 고통과 사망은 죄에서 기인된다. 이 죄를 없게 하기 전에는 진정한 구원이 없다.
죄를 없애려고 몸을 입고 세상에 들어 오시어 인류를 구원하실 그의 이름을 예수 라고 하였다.

인류 역사상 유심론적 종교에서 인간의 복을 말 할때 죄를 다루지 않은 종교는 하나도 없다.
모두 그 깨달은 정도 에서 죄의 문제를 말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죄의 삯은 사망" (롬 6:23) 이라고 하셨다.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롬 5:12) 하셨다.

이와 같이 죄의 삯은 사망이니 죄를 지은 자는 다 죽어야 한다.
그 죽을 죄인이 살려면 다른 생명 하나가 대신 죽어야 구속이 될 것이다.
하나님은 "피 흘림이 없은 즉 사함이 없느니라" (히 9:12) 고 하셨다.
피 흘림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한 사람이 죽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아담이 범죄한 때부터 예수 때까지 짐승을 죽여 피 흘린 제사로 속죄의 의를 미리 보여
수 천년 동안 계몽을 시키셨다.
예수가 피 흘려 죽어심이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속죄 하신 죽음 이라는 것을 믿게 하시려는 경륜을 미리 알게 하신 것이었다.

예수 께서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막 10:45) 고 하셨으며 그가 잡히시기 직전 마지막 만찬석에서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마 26:26-28)고 하셨다.
곧 자기 백성의 죄를 저희 죄에서 구하시려고 피를 흘려 죽으실 것을 미리 말씀 하심이었고
그대로 잡혀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던 것이다

어떤 사람이 다른 이를 위해 죽으려면 자기 죄가 하나도 없어야 한다.
만일 한 가지 죄라도 있으면 다른 이를 위하여 죽을 자격이 없는 것이니 자기도 다른 이의 대속의 죽음이 요구되는 죄인이기 때문이다.
성경은 "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 (롬 3:10, 시 14:1-3) 고 하였다.

인생에게 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죄 없는 의인은 하나도 없다.
모두 속죄함을 얻아야 할 위치에 있고 자기 들이 다른 이를 위해  죽어 줄수 있는 존재가 못된다.
그러므로 죄 없으신 하나님이 몸을 입고 사람이 되여 오신 것은 온 인류의 죄를 대속 하시려고 몸을 버려 피 흘려 죽기 위함이었다.

베드로 사도는 구속은
"오직 흠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벧전 1:19) 고 하였고,
"저는  죄를 범치 아니하시고 그 입에 궤사도 없으시며"
(벧전 2:22),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 하셨으니"
(벧전 2:24) 라고 하였다. 예수 자신의 죄가 있어서가 아닌, 온 인류를 대신 하여 피 흘려 죽어심을 증언 하였다.

속죄의 죽으심은 각중에(갑작스례) 된 일이 아니다. 아담 때부터 예수 때까지는 언약의 기간 이었다.
구약 4천 년간  짐승의 피로 예표하여 왔고 예수가 오시어서 이 속죄의 언약을 완성 하심이었다 (요 19:30).
그래서 기독교 성경을 구약(옛언약), 신약(새 계약) 이라고 부른다.

신약은 예수께서 친히 피로써 언약을 세우실 때 하신 말씀
"저녁 먹은 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눅 22:20)는
말씀에서 지어진 이름이다.

이 새 언약은 마치 어느 나라의 죄수가 임금이 아들을 낳았을때 국법인 은전에 의하여 감형으로 특사를 받아 출옥함과 같다.
하나님의 독생자가 이 세상에 탄생 하시고 온 인류의 속죄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누구든지 자기 죄를 회개하고
그의 죽으심이 자기 죄값을 담당 하신 것으로 믿으면,
다시 말하여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면 주홍 같고 진홍 같은 모든 죄를 눈보다도 양털 보다도
더 희게 씻어 주시고 과거의 죄를 다시는 기억지도 않으신다고 하셨다.
이 언약은 사람들이 억지로 만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친히 약속 하신 언약으로 진실한 약속이다.

속죄는 한사람이 피흘려 죽어야 하고 죄가 하나도 없는 이가 죽어야 하지만
또 한가지 중요한 것은 한 사람이라도 억조 창생을 대표 할만한 크신 분이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며 (계 17:14) 그는 삼위일체 되시는 참 하나님이시요 (요일 5 : 20, 마 1 : 23)
참 사람이시니 온 인류를 대표 하실 수 있는 크신 분이다.

이상과 같이 죄가 없으시고 크시며 피 흘려 인류를 저희 죄에서 구원 할 자이므로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였다.
구약과 신약 전 성경은 이 예수에 대한 말씀으로 중심을 이루고 있다.

유다는 먼저 이러한 예수의 종 곧 그의 사신이라고 자기 신분을 제시 하였다.
그러므로 유다는 "예수" 라는 그의 주인의 이름 뜻과 그가 하신대로 모든 사람이 죄에서 구원 얻는 일만을 해야 하는 종된
자신의 사명을 알고 자기를 소개 한 것이다. 그리고 그는 예수와 같이 속죄의 죽음을 당할수 없지만 인류가 죄에서 구원
얻는 일을 위하여  충성된 죽음을 당할 각오가 되어 있다는 자기 소개이다.
이에 대하여 요한도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요일 3:16) 고 하였다. 예수께 속한 종은 예수의 길을 따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기름 부었다" 는 뜻이다 (히 1:9, 행 10:38 ). 구약 원어로는 "메시야" 라고 한다 (요 1:41).
구약 시대에 하나님의 지시에 의하여 선지자와 제사장과 왕의 직분을 세울 때 기름을 부었다.
세가지 직분에 기름 부은 일은 다음과 같다.
"여호와께서 저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 길을 돌이켜 광야로 말미암아 다메섹에 가서 이르거든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 왕이 되게 하고 너는 또 님시의 아들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이 되게 하고
또 아벨므홀라 사밧의 아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너를 대신하여 선지자가 되게 하라"
( "왕상 19 :15,16) 하여
선지자를 세울때 기름을 붓게 하셨다.

또한  " 너는 그들에게 나를 섬길 제사장 직분을 위임하여 그들로 거룩하게 할 일이 이러하니
곧 젊은 수소 하나와 흠 없는 숫양 둘을 취하고  무교병과 기름 섞인 무교과자와 기름 바른 무교전병을
모두 고운 밀가루로 만들고  그것들을 한 광주리에 담고 그것을 광주리에 담은 채 그 송아지와 두 양과 함께 가져오고 
너는 아론과 그 아들들을 회막문으로 데려다가 물로 씻기고  의복을 가져다가 아론에게 속옷과 에봇 받침 겉옷과 에봇을 입히고
흉패를 달고 에봇에 공교히 짠 띠를 띠우고  그 머리에 관을 씌우고 그 위에 성패를 더하고  관유를 가져다가
그 머리에 부어 바르고  그 아들들을 데려다가 그들에게 속옷을 입히고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띠를 띠우며 관을 씌워서
제사장의 직분을 그들에게 맡겨 영원한 규례가 되게 하라 너는 이같이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위임하여 거룩하게 할지니라 "
(출 29 : 1-9) 하여 기름 부어 제사장 직분을 세웠다 ( 레 4 :3, 21  10, 민 35 : 25 ).

그리고 " 사울의 오기 전 날에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알게 하여 가라사대 내일 이맘때에 내가 베냐민 땅에서
한 사람을 네게 보내리니 너는 그에게 기름을 부어 내 백성 이스라엘의 지도자를 삼으라"
( 삼상 9 : 15,16 ),
" 이에 사무엘이 기름병을 취하여 사울의 머리에 붓고 입맞추어 가로되 여호와께서 네게 기름을 부으사
그 기업의 지도자를 삼지 아니하셨느냐 "
( 삼상 10:1 ) ( 삼상 12 : 7, 왕상 1 : 29, 삼상 16 : 1, 12,13 ) 라고 하셨다.

이와 같이 산자자와 제사장과 왕을 세울 때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기름을 부어 세웠다. 그 기름을 관유라 한다.
그 제조법은 여호와의 지시에 의하였다.
"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또 일러 가라사대  너는 상등 향품을 취하되 액체 몰약 오백 세겔과
그 반수의 향기로운 육계 이백오십 세겔과 향기로운 창포 이백오십 세겔과 계피 오백 세겔을 성소의 세겔대로 하고
감람 기름 한 힌을 취하여 그것으로 거룩한 관유를 만들되 향을 제조하는 법대로 향기름을 만들지니
그것이 거룩한 관유가 될지라 " (출 30 : 22-25 ) 고 하였다.

이상의 모든 것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예표 의식 이었다.
다시 말하여 온 구약의 말씀은  구세주로 오실 메시야에 대한 예언 이었다.
빌립은 나다니엘에게
"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
(요 1 : 45 ) 하여 예수는 선지자와 제사장과 왕되신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임을 증거 하였다.
예수가 선지자와 제사장,  왕 되시는 일에 관하여 말한 성경을 살펴 보기로 하자.

그가 선지자 되심에 대하여 모세는
"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의 중 네 형제 중에서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너를 위하여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를 들을지니라 "
(신 18 : 15 ),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그들의 말이 옳도다 내가 그들의 형제 중에 너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그들을 위하여 일으키고
내 말을 그 입에 두리니 내가 그에게 명하는 것을 그가 무리에게 다 고하리라 "
( 신 18 : 17,18 ) 고 하였다.
베드로는 " 모세가 말하되 주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너희 형제 가운데서 나 같은 선지자 하나를 세울 것이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그 모든 말씀을 들을 것이라 누구든지 그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아니하는 자는 백성 중에서 멸망받으리라 하였고
또한 사무엘 때부터 옴으로 말한 모든 선지자도 이 때를 가리켜 말하였느니라 "
(행 3 : 22-24 ) 하였다.

요한은 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쯤 되는 큰무리를 배불리 먹이고 남은 조각이 열 두 바구니에 찬 것을 보고 
"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신 그 선지자라" ( 요 6 : 15 ) 하던 무리들의 말을 소개 하였다.
마태는 예수께서 어린 나귀를 타시고 입성 하실 때
" 무리 들이 가로되 갈릴리 나사렛에서 나온 선지자 예수라"
( 마 21 : 45,46 )고 하였다.
그 때의 모든 무리가 예수를 선지자로 믿고 있었음을 말하고 있다.
이와 같이 예수는 온 인류의 선지자 였다.

그가 제사장 되심은 다음과 같다.
구약 시대의 모든 제사장은 당시의 제사장 이면서 예수 그리스도가 제사장 되실 예표였다.
그들은 자신을 위하여서도 속죄 제사를 드려야 하였지만  예수 그리스도이신 제사장은 죄가 없으므로
자신을 의한 속죄 제사는 드려야 할 필요가 없었다.
그들은 짐승의 피로 제사를 드렸으나 그리스도 께서는 자기의 피로 하셨고,
그들은 수 천년 동안 헤일수 없이 많은 제사를 드렸으나 그리스도 께서는 단번에 드리셨다.
그들은 죽었으므로 다른 이가 뒤를 이어  행하였지만  그리스도는 부활 하셔서 홀로 영원히 제사장 되시며,
그들은 땅의 성소에서 제사 하였고 그리스도 께서는 하늘의 지성소에서 하시고, 그들은 사람의 기름 부음을 받았지만 
그리스도 께서는 하나님이 기쁨의 기름을 부으셨다 ( 히 1 : 9 ).
그들은 제물을 성소 제단에 드렸으나, 그리스도 께서는 갈보리산 위 십자가 제단에서,
그들은 사람 중에서 뽑았지만 그리스도 께서는 삼위 일체 되신 삼위 중에서,
그들은 오직 이스라엘을 위하였지만 그리스도는 만민을 위해서였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사장 되심에 관하여 히브리서 기사는 말하였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히 4 : 14-15 ),
"또한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 되심도 스스로 영광을 취하심이 아니요 오직 말씀하신 이가 저더러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니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다 하셨고 " (히 5 : 5 ), 오직 하나님께소 "또한 이와 같이 다른 데 말씀하시되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이라 하셨으니 "
(히 5 : 6 ) 라고 하였다.
그는 영원한 대제사장이시며 (히 6 : 20 )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다.
율법은 약점을 지진 사람들을 제사장으로 세웠거니와 신약 때의  제사는 영원히 온전케 되신 아들을 세우셨다. (히 7 : 27-28 ).
또 이 제사장은  하늘 보좌 우편에 앉으사 참 성소와 근본 장막에서 대제사장의 일을 하신다 (히 8 : 1-2 ).

구약 시대의 모든 제사 제도는 예수 오실 때 까지의 모형이요 율법으로 정하여 둔 것이었다 ( 히 9 : 10 ).
"그리스도께서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 ( 히 9 : 11-12 ),
"그리스도께서는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오직 참 하늘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고"
(히 9 : 24 ) 라고 하셨다.
이모든 말씀은 구약 제사의 근본 제사는 예수 그리스도 께서 제사장의 역사를 이루신 것으로 완성됨을 말한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 (요 19 : 30 ) 하시고 온 인류의 죄를 위해 운명 하실 때 성전 휘장이 찢어지고 무덤이 터지며
의인들이 나타난 일들은 대제사장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죄로 막혔던 장벽이 무너짐이었다.
그 때에 그리스고 께서 한편 강도에게 "네가 오늘 나와 같이 낙원에 있으리라" (눅 23 : 43 ) 하셨음은
막혔던 낙원의 길이 열리게 될것을  말씀 하심이었다.
이에 대하여 히브리서 기자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인류의 죄를 구속 하시기 위하여 죽어실 때 찢기신 그 육체 속으로
새 영생의 길이 열렸다고 하였다 ( 히 10 : 20 ).
그의 육체가 찢길때 성전의 휘장이 찢기며 무덤이 열린것은 죄와 사망이 찢어진 것을 보임이다.
대제사장이 되신 그리스도 께서 완전하신 대제사장의 임무인 속죄가 이루어 졌을 때 하나님께 들어가는 길이 막혔다가
찢어짐으로 열리게 된 것이었다.
그리스도 께서는 승천 하시어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재림 하실 때까지 제사장의 일을 하시게  될것이다.

그리스도의 왕 되심은 다음과 같다.
그는 33 년간 지상에 오셔서 인류에게 친히 모든 진리를 가르쳐 알려 주시는 선지자가 되셨고,
잡혀 쥭어신 때부터 부활 승천하사 재림 때 까지는 제사장이 되시며, 재림 후 영원히 왕이 되실 것이다.
이 세가지 직분으로 인류를 완전하게 구원하실 것이다. 그가 왕되심도 갑자기 된일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미리 계획 하셨던 것이다.
여러 선지자를 통하여 예고해 주셨고 그가 초림 때에는 그와 사도들이 증거 하였다.

이 사실은 약 2천년 동안  온 세계 역사가 증명해 가고 있다.
지금 모든 인류가 목수 요셉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영향을 얼마나 많이 받고 있는가 ?.
이 지구 위에서 그를 통하여 참화와 가쁨과 기도가, 그리고 정치, 문화, 역사가 숨쉬고 있다.
그는 지금도 온 지구를 다스리시는  왕으로 존재 하신다. 실로 진정한 왕이시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본격적인 왕 되심은 재림 하신 후부터 영원히 평화의 왕으로 계실 것이다.

인류의 처음 사람 아담 때에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
(창 3 : 15 )고 하셨다.
장차 여자의 후손인 예수 그리스도 께서 사단의 머리를 쳐 이기시고 만왕의 왕이 되실 일의 예언이다.
아담의 칠세손 에녹은 "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 이는 뭇 사람을 심판하사 (유 14) 라고 하여
예수 그리스도는 심판의 주 곧 심판의 왕 이심을 말하였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
(창 12 : 3),
"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 만민은 그를 인하여 복을 받게 될 것이 아니냐 "
(창 18 : 18),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 (창 22 : 18),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케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을 인하여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 (창 26 : 4) 하셨으며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내 사래는 이름을 사래라 하지 말고 그 이름을 사라라 하라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로 네게 아들을 낳아주게 하며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로 열국의 어미가 되게 하리니
민족의 열왕이 그에게서 나리라"
(창 17 : 15-16) 하였다.
이는 모두 그의 자손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 께서 만왕의 왕으로 오실 것을 예언  하심이었다.
이약속의 예언은 이삭과 (창 26 : 1-4) 야곱에게도 (창 28 : 10-14) 계속 되었다.

발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왕으로 탄생 하실 때의 일을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한 홀이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나서" (민 22 : 17) 라고  예언 하였다.

다윗왕도 시편에 기록 하였다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허사를 경영하는고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 기름받은 자를
대적하며 우리가 그 맨 것을 끊고 그 결박을 벗어 버리자 하도다 하늘에 계신 자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저희를 비웃으시리로다
그 때에 분을 발하며 진노하사 저희를 놀래어 이르시기를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시리로다 내가 영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내게 구하라 내가 열방을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 네가 철장으로 저희를 깨뜨림이여 질그릇같이 부수리라 하시도다 "
(시 2 : 1-9 ) 라는 말씀은 말세에
온 세계 영국과 민족과 세상의 군왕과 관원들이 일어나 기름 받은 만왕의 왕이시며 평화의 왕 예수 그리스도를 대적 하다가
왕의 진노로 멸망하고 영원한 평화의 왕으로 계시게 될 것을 약속 하심이었다

이사야는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
(사 9 : 6-7) 하였으니 예수 그라스도의 완되실 일을 예언 함이었다.

또한 그가 왕이 되실 때의 정사에 대하여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사 11 : 1),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거하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
(사 11 : 6-8),
"그 날에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서 만민의 기호로 설 것이요 열방이
그에게로 돌아오리니 그 거한 곳이 영화로우리라 "
(사 11 : 10) 하였다.
이 모든 예언은 예수 그리스도의 왕국 때의 일이다'

예레미아는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때가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행사하며 세상에서 공평과 정의를 행할 것이며 "
(렘 23 : 5) 하였다

다니엘은 느부갓네살왕의 꿈을 해몽 할때 우상의 정금 머리와 은가슴과 팔과  철 종아리와 얼마씩의 철과 진흙의 발을 쳐서
부셔 뜨리는 사람 손대지 않은 뜨인 돌이 태산을 이루어 온 세계에 가득 찰것이라고 하였다.
이 일은 예수 그리스도 께서 역사의 마지막에 오셔서 역사를 심판 하시고 만왕의 왕이 되실 일을 예언한 것이다.
또  "이에 다니엘이 왕이 바벨론 박사들을 멸하라 명한 아리옥에게로 가서 이르매 그에게 이같이 이르되
바벨론 박사들을 멸하지 말고 나를 왕의 앞으로 인도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 해석을 왕께 보여 드리리라 "
(단 2 :24) 하였다.
느부갓네살왕은 다니앨의 해몽을 듣고
"크도다 그 이적이여, 능하도다 그 기사여, 그 나라는 영원한 나라요 그 권병은 대대에 이르리로다 " (단 4 : 3) 고 하였으며
다리오왕은 "내가 이제 조서를 내리노라 내 나라 관할 아래 있는 사람들은 다 다니엘의 하나님 앞에서 떨며 두려워할지니
그는 사시는 하나님이시요 영원히 변치 않으실 자시며 그 나라는 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그 권세는 무궁할 것이며
그는 구원도 하시며 건져내기도 하시며 하늘에서든지 땅에서든지 이적과 기사를 행하시는 자로서 다니엘을 구원하여
사자의 입에서 벗어나게 하셨음이니라 하였더라 "
(단 6 : 26-27)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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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같이 예수의 왕 되실 일을 이방 왕들 까지 믿었다.
다니엘은 "나라와 권세와 온 천하 열국의 위세가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민에게 붙인 바 되리니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이라
모든 권세 있는 자가 다 그를 섬겨 복종하리라 하여 "
(단 7 : 27)는 사자의 말을 들었다.
또 가증한 물건이 거룩한 곳에 선 때부터 일천 이백 구십 일과 기다려서 일천 삼백 삼십 오일을 지낸 직후
왕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일을 예언 하였다 (단 9 : 25-27, 12 : 11,12).
스가랴는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공의로우며 구원을 베풀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새끼니라 "
(슥 9 : 9 )고 하였다.
구약시대 수 천 년간 여러 선지자를 통하여 예언된 하나님의 말씀이
신약시대에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왕의 역사가 펼쳐지게 되었다.
마태는 이를 "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 (마 1 : 1)고 예수 그리스도를 왕의 계보로 소개 하였다.
그리고 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잉태 되실 때 천사가 마리아에게 이르기를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저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에 왕 노릇 하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
(눅 1 : 31-33) 하였다.
그가 나실 때 별을 보고 찾아온 동방 박사들은  예루살렘에 이르러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 (마  2 :2 ) 하고
왕 되신 아기에게 경배 하였다. 들에 있던 목자들은 천사의 지시로 메시야를 만났고 (눅 2 : 8-20)
성전의 시므온과 안나는 성령의 감동으로 아기 예수를 보고 찬송과 증거를 하였다.

예수께서 그의 공생애 중에 자신이 친히 왕이라고 말씀 하셨다.
그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 (마 11 : 28) 하셨으니
이는 전능왕으로서만 할 수 있는 말이었다. 또한 세배대의 아들 야고보와 여한이 예수 왕 되실 때 좌우 정승을 부탁 하였다.
예수께 서는 "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가 나의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나의 받는 세례를 받을 수 있느냐  저희가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나의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나의 받는 세례를 받으려니와 "
(막 10 : 38-40)고 하셨다.
그리고 평강의 왕이 탈 것이라는 어린 나귀를 친히 타시고 입성 하셨으며 (마 21 : 1-11) 입성 후 성전에서 제자들이게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하시니 " (요 12 : 32) 하셨다.

빌라도가 예수께 "네가 유태인의 왕이냐"고 물었을 때 예수께서는
"빌라도가 가로되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려 함이로다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소리를 듣느니라 하신대 "
(요 18 : 37) 라고 친히 왕 되심을 말씀하셨다.

제자들도 그가 왕 되심을 증거 하였으니 나다니엘은 예수께서 나아와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요 1 : 49 )하였다.
제자의 온 무리는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 " (눅 19 : 38 )라고 찬양하였으며,
누가는 이 예수 그리스도를  땅의 모든 족속들이 아브라함의 씨로 인하여 복을 받으리라고 약속 하신
그 씨로 증거 하였고 (행 3 : 24-25 ), 바울은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 (딤전 6 : 15 ) 라고 하였다.

사도 요한도 예수 그리스도를 만주의 주시며 만왕의 왕이라 하였고 (계 17 : 14, 19 : 16 )
천년동안 부활 성도와 함께 왕으로 계시다가천지가 불탄 후 천국에 옮기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 (계 20 : 4 ).
이같은 왕을 알지 못했던 로마 군인들과  유대 군중들은
예수를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는 패를 써붙었다 (마 27 : 37, 막 15 : 26, 눅 23 : 38 ).

그 세 나라 문자는 히브리어와 희랍어, 그리고 당시에 세계어인 라틴어였다.
그러나 지금은 온 인류의 언어로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하며 경배 하고 있다.
이제 까지 예수께서 선지자, 제사장, 왕의 직분을 가진 그리스도 즉 메시야임을 밝혔다.

예수의 기름 부어심은 요단 강변에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 오실 때 하늘로 부터였다 ( 마 3 : 13-17 ).
그리고 인간 세계에서는 마리아가 예수께 기름을 부옸다 (마 26 : 6-7).
특히 이 그리스도의 뜻 곧 기름 부음을 작은 직분인 선지자, 제사장, 왕의 사실을 한 간단한 기록에서 찾아 볼수 있다.
예수 께서 요한 복음 14장에 말씀 하시기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
(요 14 : 1-3 )
는밀씀이다.
이말씀 중에 세 가지가 있으니 "거할 곳"을 알려 주시는 선지자 되심과 "가서 있을 곳을 예비" 하신다는 속죄의 죽음과
부활 승천으로보좌 우편에서 제사장이 되실 일과 "다시 와서 함께 있게 하리라"는 왕이 되실 일을 말씀 하신 것이다.

사도 요한은 게시록 1 장 5절 에서 세 가지 직분을 말하였다.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 라는 말씀이다.
"충성된 증인" 은 선지자 되심이요 "땅의 임금들의 머리" 라 함은 만왕의 왕이 되신 것을 뜻함이다.
또 요한은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계 1: 13) 라고 하였다.
발에 끌리는 옷은 제사장의 의복이며 금띠는 왕의 의복을 뜻하나 선지자의 의복은 없다.
이것은 마땅한 일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선지자의 직분은 초림때 부터 영원까지의 직분이니 두 가지 의복만 입고 계신 것이었다.
그는 과연 세상에 오셔서 33 년 동안 선지자의 일을 하셨고,
십자가에 돌아 가신 때부터 다시 오실 때까지 우리의 제사장이 되시며,
장차 재림 하시어 만왕의 왕이 되심으로 인류를 완전히 구원에 이르게 하실 겄이다.
다시 말하면 자기의 백성들을 저희 죄에서 구원 하시는 예수의 구원의 역사를
선지자와 제사장과 왕되시는 그리스도의 역사를 통하여 완성 하신다는 사실에서 그를 "예수그리스도"라고 한다.

유다는 이러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자기를 소개 한다.
예수께서 인류에게 모든 것을 알도록  가르쳐 주신 선지자가 되셨고,
인류의 죄를 위하여 자기의 목숨을 대속물로 십자가에 돌아 가셨다가
부활 하셔서 산 제사장으로 계시며 (롬 8 : 34, 히브리서 ), 다시 오셔서 영원하신 평화의 왕이 되실 (계 20 : 4, 17 : 14),
그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자기를 소개 하였다.

유다가 어떤 죽은 성자나 정치가인 제왕의 사신이 아니라
영원히 살아 계시고 오직 홀로 인류를 구원하실 예수 그리스도의 종 곧 사신이라고
자기를 소개 할 때의 그 감격과 영광스러움과 권세는 능히 세상을 이기도고 남을 것이다.
어떤 인간의 힘도 그를 꺽지 못할 것이며 세상의 권새와 영화가 그를 유혹하지 못 할 것이다.
그러기에 구역의 참 선지자와 신약의 사도 들이 말씀을 전 할때와 들이나 편지로 사람들에게 보낼 때에는 
반드시 먼저 자신들의 신분을 권세 있게 제시 하고 그 직분에 임하였다.
그러므로 어느 인간이나 세상의 힘에 의지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과 말씀만 의지 하여 단신으로 자기의 사명을 완수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유다는 자기를 소개 한 그대로 예수의 종이니 예수께서 자기의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 하시는 일에,
그리고 그리스도의 종이니 선지자와 제사장과 왕 되는 세가지 뜻과 그러한 일에만 자기 직분의 사명이 있음을 알고
그일에 죽도록 충성 하는 종이 되었다.
즉 자기도 인류가 죄에서 구원 얻는 (예수), 선지자, 재사장, 왕 (그리스도)의 일을 대리로 봉직 하였다

종은 원어로 "뚤러스" 라고 한다.
그 뜻은 자기 의사를 포기 하고 주인의 명령을 기다려 명령을 복종 하되 죽기 까지 복종 한다는 뜻이다
어느 때 어느 나라에서나 종의 제도가 있을 때의 종은 모두 이 네가지 뜻이 있다.
주인이 있는 종은 자기 의사를 포기해야 하며 주인의 뜻과 그 지시를 받아 죽기 까지 복종 하는 것이 종의 당연한 일이다.

유다는 자기 의사를 포기하고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지시와 명령을 따라 죽기 까지 복종 하는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자기 신분과 사명을 제시한다.
그러므로 본서는 종된 유다의 글이 아니요,
주인 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지시를 받아 기록한 말씀이다.
곧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다 (딤후 3 : 16 ).

종에 관하여 자세히 설명 하려고 한다.
첫째로, 종은 먼저 "자기 의사를 포기" 하여야 한다.
여기서 포기 하라는 의사는 양심적인 자기 의사를 말한다.
아무리 자기의 양심적인 의사 라도 그것은 자기의 생각이요 주인의 뜻은 아니다.

베드로가 예수께서 십자가에 돌아 가실 뜻을 밝히셨을 때 "주여 마시 옵소서" 하던 말은 결코 악한 뜻에서 한 말이 아니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
(마 16 : 21-24)고 책망 하셨다.

예수께서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 하실 때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  (마 26 : 39-44 ) 하여
자기의 뜻을 포기 하시고 아버지의 뜻에 죽기까지 복종 하셨다 (빌 2 : 8 ).
여기서 예수가 포기한 의사는 인간이 되신 입장에서 온 인류를 대신 하여 드린 기도 인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종된 자들은  자기 의사를 포기하고 주인의 명령 곧 하나님의 명령을 기다려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 하시고 온전 하신 뜻을 알아 순종 하여야 한다 (롬 12 : 2 ).

자기 좋을대로 살며 자기 고집대로 하던 자색옷 입은 부자는 음부에 가게 되였다는 것을 명심 해야 할 것이다 (눅 16 : 25, 30 ).
예수께서 말씀 하셧다.
심판 때 어떤 자들이 와서 자기들이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귀신을 쫏아내며 많은 권능을 행 하였다고 하였을때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 (마 7: 23 ) 하실 것이라고 말씀 하셨다.
종된 자들이 자기 의사대로 일하면서 주의 이름으로 한 줄로 착각 하였던 것이다.

또한 말세 교회가 진실한 종들을 교회와 교파에서 쫏아 내면서 자기 들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 줄로 알 것이라고 하셨다 (요 16 : 1, 2 ).

이와 같이 구약시대와 신약시대의 진실한 종 선지자와 사도들을, 심지어 예수까지를 잡아 죽인,
곧 자기 의사대로 종 노릇한 종교가들이자기들을 하나님의 일에 충실한 종이라고 자처 하고 있었다.
지금도 말세에도 그러할 것이다.

현대 교계에 인격적인 양심을 지닌 종은 적은 것 같다.
이권과 명예를 위하여 악한 마음의 계획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백주에 자행 하면서 하나님과 교회를 위하여 하는 충성이라고 열변 한다.
중상과 모락과 허위 날조로 당을 지어 성명서와 선전과 난투국과 법정 투쟁 으로 인간의 야심을 채우는데 밤낮을 가리지 않는다.
그 모습과 말과 태도는 불신자 보다 더 나은 것이 없다. 악독과 간교와 허세와 외식으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참 종이 되기 원하는 사람은 마땅히 먼저 자기 의사를 버려야 한다.
양심적인 의사 까지도 버리라는 말씀이다.

둘째로, 종은 주인의 명령을 기다려야 한다
주인의 명령을 기다린다는 것은 깨어 있음을 말한다.
기다리는 종이 잘 수는 없다. 어느때, 어디에서, 어떻게 명령 하실지 정말 정신 차려 깨여 있어야 한다.
세상의 모든 유혹에 미혹 되어 자지 말고 깨어 있어야 한다.

주인의 명령은 여러가지 모양으로 나타난다.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말씀 하신 하나님이 마지막에 아들 예수로 말씀 하셨다 ( 히 1 : 1, 2 ).
즉 환상과 이상과  꿈 또는 빚과 음성으로 , 때로는 천사가 작접 나타나서주인 되신 하나님의 명령을 전하였다.
지금도 그러 하실 수 있다.
그러나 위와 같은 일들에는 악령도 하나님의 광명한 사자처럼 나타나
우리를 속일 수 있는 위험과 인격적인 신비도 있으니 주의 해야 한다.

우리의 주인 되신 하나님의 정확한 명령은 신구약 성경이다.
이 성경은 주인의 뜻이요 명령서 이다.
그러므로 성경을 그의 명령서로 알고 읽어 자세히 깨달아야 한다.
이것이 구약과 신약때의 모든 종들이 걸어 가던 길이었고
예수의 일생도 성경에 나타난 아버지의 뜻을 따라수종 하심으로 시종 하셨다.

예수께서는 얘언의 말씀대로 동정녀 마리아에게 잉태되여 태어 나셨고 (사 7 : 14, 눅 1 : 34-35 ),
나실 때 예언의 별이 나타났으며 (민 24 : 17, 마 2 : 2 ),
나신 후 모든 예식 곧 할례와 결례를 율법에 따라 행하셨고 (레 1 : 2, 촐 13, 눅 2 : 21-24 ),
잡혀 죽임 당하실 첫번 이유가 된 성전 청결은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 하더라" 하였다 (시 69 : 9, 요 2 : 14-17 ).
 
광야에서 사탄이 시험 할 때에도 오직 하나님의 말씀 곧 구약 성경의 말씀으로 이기시고 그 말씀 만을 붙드시고 일어 나셨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심 8 : 3, 마 4 : 4 ),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신 6 : 26, 마 4 : 7 ),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신 6 : 13, 마 4 : 10 )는 말씀이었다. 

그는 이미 있는 구약의 하나님 말씀으로 그의 일생을 응하게 하셨다.
예루살렘에 입성 하실 때 에도 어린 나귀를 타셨으며 (슥 9 : 9, 마 21 : 1-11 ),
겟세마네 기도 때에도 아버지의 예정 하신 뜻대로 하시기를 바라셨다 (사 53, 마 26 : 36-46 ).
베드로가 환도를 쓸 때에도 예수 께서는 환도를 집에 꽂으라고 책망 하시고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시게 된다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 지리요" (마 26 : 54 ) 하셨다.
십자가 위에서도 성경을 응하게 하시려고 목마르다고 하셨으며 (시 69 : 21, 요 19 : 28 ),
돌아가신 흐에도 뼈가 꺽이우지 않아 성경을 응하게 되였다 (시 34 : 20, 요 19 : 36 ),
예수의 옷을 제비 뽑아 가진일 (시 22 : 18, 요 19 : 23-24 ) 이며
부자의 새 무덤에 장사 된일 (가 53 : 9, 마 27 : 57, 61, 막 15 : 42-47, 눅 23 : 50-56, 요 19 : 38-42 ),
그가 부활 (시 16 : 10, 눅 24 : 46, 마 26 : 32 ) 하신 이 모든 예수의 일생은
오직 하나님의 뜻이 기록된 성경을 응하게 하는  곧 하나님의 뜻에 죽기까지  복종 하심이었다.

물론 하나님 아버지의 보좌 우편에 계시는일 (시 110 : 1, 마 22 : 44, 막 16 : 19, 행 2 : 33, 7 : 55, 롬 8 : 34,
엡 1 : 20, 골 3 : 1, 히 1 : 3, 8 : 1, 10 : 12, 12 : 2, 벧전  3 : 22, 계 3 : 21 ) 과
다시 재림 하실 일 (마 24 : 14, 29 -34, 37-39, 44-51, 25 :, 요 14 : 1-3, 행 1 : 11, 살전 4 : 16, 히 9 : 28, 벧후 3 : 1,
유 13, 계 1 : 7-8, 19 :, 22 : 20 )도 성경대로 이루어질 것이요, 천지가 불탄 후 영원한 주가 되실 것이다.

에수께서는 친히 율법의 일점 일획도 페하지 아니 하시고 이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며
그가 완전케 하러 왔다고 말씀 하셨다 ( 마 5 : 17-18 ).

그는 성경을 응하게 하셨고, 응하게 하시며, 응하게 하실 것이다.

참된 종들은 선지자 때와 사도들 시대에 그러했둣이 지금부터 세상 끋날 까지 인간의 의사를 포기 하고,
주인 되시는 하나님의 뜻이며 그의 명령인 성경을 읽고 주야로 묵상 하며 죽기 까지 순종하고 복종 할 것이다.

유다는 이같은 예수 그리스도의 종된 자신을 의식 하며 수신자에게 자신을 제시하였다.
이런 종은 참된 종 곧 정통의 종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선지자와 제사장과 왕 되시는 완전하신 구원의 주로써
현세와 내세, 생과 사를 모두 주장 하시며 살아 계신다.
그를 주인 으로 모신 유다가 어떻게 세상의 썩어 없어질 인간의 정욕적인 유혹에 무릎을 꿇을 것인가 ?.
당연히 분토같이 내버리고 거룩하고 귀하며 영원한 구원의 진리에 종이 되었어야 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종은 그 종된 영광과 감격을 지니고 주인을 위하여서
주인의 명령에 살고 죽으며 종된 본분을 다할 것이다.
현대 신자들과 주의 종의 위치에 있는 이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종된 영광과 감격이 그마음에, 생활에, 그리고 봉사에 뜨겁게 불타는 역사가 있기를 바란다.

지금 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종"에 대하여 설명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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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야고보의 형제

이는 인간과의 관계를 밝힌 자기 소개이다.
당시 예루살렘 안에 힐렐 신학교와 삼마이 신학교가 있었다.
그리고 큰 단체인 바리세인 교파와 사두개인 교파가 있었으며 대제사장과 서기관 , 교법사, 율법학자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계통과는 전혀 상관 없이 다만 야고보의 형제인 유다 라고만 소개 하였다.
야고보는 당시 예수교에서 명성이 컸다.

유다는 영육 간에 야고보의 친형제였다.
예수의 제자 가운데 세배대의 아들 야고보 (마 4 : 21 )와 알패오의 아들 (행 1 : 13 )이 있었고
이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에게는 그 형제 (그의 아들로 된곳도 있음, 행 1 : 13 )인 유다가 있었다.
그러나 야고보서와 유다서를 쓴 저자는 예수의 아우인 야고보와 유다이다.
어떤 이들은 이 유다를 알패오의 아들이며 야고보의 형제인 사도 유다라고 한다.
허나 유다 자신이 17절에 자기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 중의 한 사람이 아닌 것을 말하고 있다.
어느 야고보의 현제인 유다가 저자이든자 유다서의 진리가 조금도 달라질 것이 없다.

첫째는, 그들이 어떻게 큰 종이 되었을까 ?.
그들은 자기들의 형 예수를 구세주로 믿지 얺았다.
목수로 일하던 그가 돌연히 촐가 하여 광야에서 40 일을 금식 하시고 산과 들과 해면으로 다니실때
사귀 들렸다는 소문이 자자 하였다.
그래서 어머니와 동생들이 그를 찾이 다녔다 ( 막 3 : 30-35 ).
그리고 그들이 형된 예수를 명예 야심가로 취급 아였으며 (요 7 : 3-5).
그가 죽은 후 에는 나무에 달려 죽은 저주의 죽음이라 하여 시체도 상관치 않았다.
그리 하던 그들이 어떻게 귀한 종들이 되었을까 ?.
그 경위는 다음과 같다.

예수 그리스도는 온 인류의 구주이시다.
그리고 그의 몸을 의탁 하셨던 가족에게도 책임을 다하였다.
그 어머니 마리아에게 대하여는  제자 요한에게 부탁하신 아들의 효를 다하셨고 (요 20 : 26-27 )
동생들 에게는 조금도 그의 무례를 탓하지 않고 부활 하신 후에 큰 동생 야고보에게 보이셨다. (고전 15 : 7 ),
그리하여 그의 형제들이 마가의 다락에서 제자들과 같이 기도에 힘써 성신을 받음으로 귀한 종들이 되었다. (행 1 13-14 ).
야고보는 초대교회 공의회의 의장이 되었고 (행 12 : 17, 15 : 13, 21 : 18 ).
다른 형제들도 다 하나님의 종으로 일하였다 ( 고전 9 : 5 )

바울도 야고보에게 가끔 보고를 하였다 (갈 1 : 19, 2 : 9,12 ).
그리고 그들이 야고보서와 유다서를 쓰기 까지 하였다.
이 일을 생각 할때 우리는 예수께서 가족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완수 하신 것을 배워야 할 것이다.
형 예수에게 그처럼 무례 하였던 그들이 보활의 그를 뵈옵고 승천 하심을 친히 복격한 후 다락방 기도로 성령의 충만함을 얻었다.    

그래서 예수를 육신의 형이라고만 할 수 없는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 이심을 깨닿게 되었다.
유다는 감히 예수 그리스도의 형제라는 말을 쓰지 못하고 야고보의 형제 라고 만 말하였고,
그 형 예수 그리스도에게는 자기를 종이라고 칭하였다.
이때 유다에게는 다른 이가 가질 수 없는 또 하나의 감격이 넘쳤을 것이다

둘째는, 예수의 친 동생들이 과연 있었을까 하는 문제이다.
요셉과 마리아 사이에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가 있고 또 누이들이 있었다.
예수까지 다섯이 있었고 또 누이들이 있었으니 적어도 7 남매가 된다 (마 13 :55-56 ).
어떤 교파에서는 위의 네사람은 친척된 형제들이고 마리아는 성령의 잉태로 예수만 낳았다고 주장 한다.
그들이 성경을 쓴 야고보와 유다는 예수 제자 중에 있는 이들이라고 한다.

그러나 사도행전 기자는 예수의 제자들 외에 예수의 아우들이 있음을 밝혔으니
"들어가 저희 유하는 다락에 올라가니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와 빌립, 도마와 바돌로매,
마태와 및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셀롯인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가 다 거기 있어
여자들과 예수의 모친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로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 "
(행 1 : 13-14 )고
기록 하여 사도들 중의 친척된 아우들 외에 예수의 아우들이 있었음을 입증 하였다.
바울도 "주의 형제들" (고전 9 : 5 ), "주의 형제 야고보" (갈 1 : 19 )라고 하였다.
이와 같이 마리아는 7 남매 이상을 낳았다.
여기에서 일남 일녀가 부부가 돠어 자녀를 낳는 일이 신성한을 알게 된다.
하나님께서 일남 일녀를 창조 하시고 생육 하고 번성 하라고 축복 하셨다 ( 창 1 : 28 ).
애녹은 3 백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는 생활과 자녀를 낳는 생활을 함께 하였다 (창 5 : 21-22 ).

히브리서 기자는 혼인을 귀히 여기고 침소를 너럽히지 않게 하며 다만 간음과 음행을 하지 말라고 하였다. ( 히 13 : 4 ).
말라기 선지자도 하나님께서 일남 일녀를 지어심은 경건한 자녀를 얻고자 하심이라고 하였다. ( 말 2 : 15 )
모든 성경은 말하기를 남편은 아내를 생명같이 사랑 하고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 하며 자녀를 낳아 번성 하라고 하신다.
다만 음란 하지 말라고 말씀 하신다.
마리아가 요셉으로 더불어 자녀를 낳음이 신성한 바른 도리이다.
오히려 말세의 이단들이 혼인을 금할 곳이라고 성경은 말한다 (딤전 4 : 1-4 )

마태가 기록 하기를 여셉이 아내 마리아를 데려 왔으나 아들을 낳기 까지 동침치 아니 하였다고 하였다. ( 마 1 : 24, 35 )
이 말은 아들을 낳은 후 에는 동침 하였다는 말이다.
마리아의 신성을 주장 하는 자들이마리아가 부부 생활로 다른 자녀를 둘수 없다는 것은,
이것이 바로 진리를 깨닫지 못한 까닭이거나 이니면 이단자 들의 고집이요 주장인 것이다.

이상과 같이 우다가 예수의 친아우라고 볼때 두 가지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
결국 발신자 유다는 자기가 무례히 대하였던 형 예수께 감히 형제라고 하지 못하고
겨우 종 된다고 하며 다만 당시 교회의 의장인 예수 다음 되는 형 야고보의 형제라고 자기를 소개 하였다.
우리 에게도 우리를 미쳤다고 하고명예 야심가로 생각 하며 또 우리가 죽은 후에 시체도 돌아 보지
않을 정도의 가족이나 교계가 있을 수 있다.
그때 우리는 예수와 같이 끝까지 그들을 위하여 사람과 기도로 깨우쳐 구원 받게 하고
그들로 하여금 큰 일을 하게 하며 또 우리에 대한 바른 앎에 이르게 하는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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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수신자 1

1:1 부르심을 입은 자 곧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사랑을 얻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심을 입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라


유다는 수신자의 자격을 "부르심을 입은 자" 라고 하였다.
그리고 부르심을 입은자를  두 가지로 설명 하였다.
첫째는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사랑을 얻고,
둘째는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심을 입은 자라고 하였다.
부르심을 입은자는 사랑을 얻고 지키심을 입은 자라고 하신 것이다.
입은자 얻은자 라는 말씀은 인간 편에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편에서 불러 주시고 얻게 하시며 지켜 주셨다는 말씀이다.
즉 정통 신앙을 가지게 된 자들이다.
이는 이들 만이 진리를 받을 자가 돨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면 그 뜻을 알아 보자

1)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사랑을 얻고

이는 브르심을 입은자 속에는 그리스도의 영이 자란다는 말씀이다.
하나님은 전부가 사랑이시다.
그 중에 툭별하신 사랑은 독생자 예수를 세상에 보내신 일이다.
요한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 요 3 : 16 ) 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 하심을 얻은, 부르심을 입은 자는 그 속에 그리스도의 영이 계신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영이 없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고 하였다 (롬 8 :9 ).

2)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심을 입은자


이는 하나님이 지켜 주시는 모든 보호로써 예수 그리스도만 위하여 사는 사람을 말한다.

이상과 같이 "하나님 안에서 사랑 하심을 얻고 " 라는 말씀은 부르심을 입은 자의 내적 상태요,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싱을 입은자" 라는 말씀은 부르심을 입은자의 외적 상태이다.
부르심을 입은자의 속에는 그리스도의 영이 계시고 그 밖의 외적 생활은 예수 그리스도만 위하여 생활하는 자라는 말씀이다.
즉 부르심을 입은 자의 안과 밖의 신앙 인격이다.
그르므로 그 속에 그리스도의 영이 계시고 외적 생활에 있어서 하나님이 지켜 보호 하여 주신 축복을
예수 그리스도만 위하여 살고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사람임이 확실 하다.

이 사람이 이단이 아닌 정통 신앙을 가진 사람이다.
특히 이사랑을 얻은 자는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얻는다고 하였다.
이는 예정 안에서 얻는다는 말씀이다.
본항에 있어서 매우 주의할 한 가지는 수신자를 모든 사람에게로 하지 않고 부르심을 입은 자라고 제한한 일이다.
여기에 중요한 내용이 있다.
영혼이 있는 사람의 글이  각혼만 있는 짐승에게 이해가 될 수 없음과 같이,
속에 그리스도의 영이 없고 예수 그리스도만 위하여 생활 하지 못하는 사람은
신자 혹은 교역자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하나님의 말씀이 이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수신자에 대하여 세 가지로 설명 한다.
첫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자요,
둘째는 그 사랑을 얻은 자며,
세째는 그의 지키심을 입은 자라고 한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불러 주시고 사랑을 얻게 하시며  지켜 주심을 입은 자들 이라는 말씀이다.
그러나 본문의 부르심을 입은자 "곧" 이라는 말은 아래 기록된 말씀이 부르심을 입은 자에 대한 설명임을 말한 것이다.
부르심을 입은 자라는 것이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사랑을 얻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심을 입은 자들이라는 설명이다.

기독교 안에서 이 부르심을 입은 자에 대한 문제는 매우 중요 하다.
왜냐 하면 많은 신자 들의 관심이
자기가 하나님의 예정에들어서 택하심을 입어 부르심을 입은 자인지 아닌지에 대하여 심각 하기 때문이다.
유명 하다는 지도자들을 찾아 자기가 택정된 여부를 애타게 문의 한다.
부르심을 입고 못 입음은 구원과 멸망에 직결 되기 때문이다 .

이단자들은 이 사실을 악용하여 자기와 자기 교회에 온 자는 다 택하신 자요,
다른 이와 디른 교회에 속항 자는 모두 택함을 받지 못 했다는 공갈과 위협으로 유혹한다.

누가 이 중대한 문제를 정확히 답변 해 줄것인가 ?.
오로지 성경에서 그 답을 얻어야 할 것이다.
바울은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
(롬 8 : 29-30 )고 하여
부르심의 유래와 그 과정을 말 하였다.

유다는 부르심을 압은 자의 증거를 간단 하게 두 가지로 말하였다.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사랑을 얻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심을 입은 자라고 하였다.
부르심을 입은 자들의 체험된 사실을 들어 부르심을 입은 사실을 확정 하였다.

1)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사랑을 얻고

이는 브르심을 입은자 속에는 그리스도의 영이 자란다는 말씀이다.
하나님은 전부가 사랑이시다.
그 중에 툭별하신 사랑은 독생자 예수를 세상에 보내신 일이다.
요한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 요 3 : 16 ) 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 하심을 얻은, 부르심을 입은 자는 그 속에 그리스도의 영이 계신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영이 없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고 하였다 (롬 8 :9 ).

2)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심을 입은자

이는 하나님이 지켜 주시는 모든 보호로써 예수 그리스도만 위하여 사는 사람을 말한다.

이상과 같이 "하나님 안에서 사랑 하심을 얻고" 라는 말씀은 부르심을 입은 자의 내적 상태요,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싱을 입은자" 라는 말씀은 부르심을 입은자의 외적 상태이다.
부르심을 입은자의 속에는 그리스도의 영이 계시고 그 밖의 외적 생활은 예수 그리스도만 위하여 생활하는 자라는 말씀이다.
즉 부르심을 입은 자의 안과 밖의 신앙 인격이다.
그러므로 그 속에 그리스도의 영이 계시고
외적 생활에 있어서 하나님이 지켜 보호 하여 주신 축복으로  예수 그리스도만 위하여 살고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사람임이 확실 하다.

이 사람이 이단이 아닌 정통 신앙을 가진 사람이다.
특히 이사랑을 얻은 자는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얻는다고 하였다.
이는 예정 안에서 얻는다는 말씀이다.
본항에 있어서 매우 주의할 한 가지는 수신자를 모든 사람에게로 하지 않고 부르심을 입은 자라고 제한한 일이다.
여기에 중요한 내용이 있다.
영혼이 있는 사람의 글이  각혼만 있는 짐승에게 이해가 될 수 없음과 같이,
속에 그리스도의 영이 없고 예수 그리스도만 위하여 생활 하지 못하는 사람은
신자 혹은 교역자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하나님의 말씀이 이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수신자에 대하여 세 가지로 설명 한다.
첫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자요,
둘째는 그 사랑을 얻은 자며,
세째는 그의 지키심을 입은 자라고 한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불러 주시고 사랑을 얻게 하시며  지켜 주심을 입은 자들 이라는 말씀이다.
그러나 본문의 부르심을 입은자 "곧" 이라는 말은 아래 기록된 말씀이 부르심을 입은 자에 대한 설명임을 말한 것이다.
부르심을 입은 자라는 것이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사랑을 얻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심을 입은 자들이라는 설명이다.

기독교 안에서 이 부르심을 입은 자에 대한 문제는 매우 중요 하다.
왜냐 하면 많은 신자 들의 관심이 자기가 하나님의 예정에들어서 택하심을 입어
부르심을 입은 자인지 아닌지에 대하여 심각 하기 때문이다.
유명 하다는 지도자들을 찾아 자기가 캑정된 여부를 애타게 문의 한다.
부르심을 입고 못 입음은 구원과 멸망에 직결 되기 때문이다 .

이단자들은 이 사실을 악용하여 자기와 자기 교회에 온 자는 다 택하신 자요,
다른 이와 디른 교회에 속항 자는 모두 택함을 받지 못 했다는 공갈과 위협으로 유혹한다.
누가 이 중대한 문제를 정확히 답변 해 줄것인가 ?.
오로지 샹경에서 그 답을 얻어야 할 것이다.

바울은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
(롬 8 : 29-30 )고 하여
부르심의 유래와 그 과정을 말 하였다.

유다는 부르삼을 입은 자의 증거를 간단하게 두 가지로 말하였다.
곧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사랑을 얻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심을 입은 자라고 하였다.
부르심을 입은 자들의 체험된 사실을 들어 부르심을 입은 사실을 확정 하였다.

수신자를 제한하여 부르심을 입은 자라고 한 일을 좀더 알아 보기로 하자.
그리스도의 영이 있는 자들만 이해 할 진리이기 때문이다 (고전 2 : 10-15 ).
유다는 그리스도의 영이 없는 사람들을 "이성 없는 짐승"(10) 같다고 하였고, 또 "육에 속하고 성령은 없는자"라고 하였다.
바울은 성령이 없는 일군들을"개들" (빌 3 : 2 )이라고 하였으며 베드로는 "개와 돼지" (마 6 : 6 )라고 하였다.
혼과 몸 두 가지만 있는 자들은 (19) 영과 혼과 몸이 세가지 (살전 5 : 23, 롬 8 : 9 )가 있는
종들을 통하여 전달된 말씀과 성경을 도저히 이해 할 수 없다.

에수께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못한 니고데모에게 그가 이스라엘의 선생이요, 바리세인 이며
유대인의 관원이었지만 하늘 나라를 알 수 도 볼 수도, 들어갈 수도 없다고 말씀 하셨다 (요 3 : 1-10 ).
이같은 사실에서 수신자를 제한 한 것이다.

부르심을 입은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사모 하듯 하며,
갓난 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 한다 (밷전 2 : 2 ).
꿀송이 보다 더달게 먹으며 천 만금 보다 더 소중이 여기고 말씀을 이해 하여 말씀대로 살고 죽는다.

그러나 부르심을 입지 못한 자들은 그와 정반대 되는 자들이다.
그들의 속에는 그리스도의 영이 없다. 그러므로 육신의 생각이 가득하다.
때로는 거짓의 영이 그들 속에 거하기도 한다.
그들의 외적 생활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지 않고 자기들의 육신의 정욕을 위하여 산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산다는 것도 미명 일뿐실은 자기 들의 육신을 위하여 악용 한다.

저들은 말씀을 듣고 보고 또 입으로 말하지만 참 뚯은 알지 못하며 아는 것 같아도 실천하지 못한다.
마치 길가에 떨어진 씨와 같다.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알지는 못한다 (마 13 : 14 ).
유다는 저들에 대하여  "이는 가만히 들어온 사람 몇이 있음이라 저희는 옛적부터 이 판결을 받기로 미리 기록된 자니
경건치 아니하여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색욕거리로 바꾸고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니라 "
(유 4 )라고 하셨다.
특히 "이 사람들은 당을 짓는 자며 육에 속한 자며 성령은 없는 자니라"(유 19 )하였다.

저들은 죽은 찬송과 기도를 계속 한다.
자기도 알지 못하는 찬송과 기도를 열심히 하지만 자기들 생활과 아무 상광이 없다.

우리는 우리 속에 그리스도의 영이 계시는가 아니면 육신의 생각이 가득한가를 살펴보며
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사는가 육신의 정욕을 위하여 사는가를 반성 해야 할 것이다.
바울은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
(고후 13 : 5 ) 고 하였다.

오늘날 사이비의 기독교가 성행되어 여러 보양의 거짓 선지자들이 많이 일어났다.
믿음에서 떠난 학자들의 학설과 성령 아닌 미혹하는 영을 받아 능력과 기사를 보이는 신비와,
또는 학자의 신비가 아닌 잡다한 속이는 자들이 이 말세에 많이 있다.
그들이 현대 교계를 소란케 하고 다닌다. 이는 말세에 있으리라 한 예언이 이루어 짐이다.
부르심을 입은 자들은 하나님과 성경 말씀만 믿고 순종 하여야 한다.

[주] 헬라어에 "부른다"는 말 "칼레인 "은 다음과 같은 뜻이 있다.
1, 사람을 불어 직분이나 임무를 주어 맡기는데 쓰이는 말이다.
    유다서의 수신자인 신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일에 직무를 맡아
    책임을 다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라는 말씀이다"
2, 사람을 잔치에 초대 할 때 사용 되는 말이다.
   유다서의 수신자 들은 하나님의 잔치에 초대받은 손님이다.
3, 사람을 재판에 부를때 쓰이는 말이다.
   유다서의 수신자인 신자들은 장차 예수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출두 하도록 소환을 받을 것이다.
   이상과 같이 신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봉사 하기 위하여, 그로 더불어 혼인 잔치에 기쁨을 깉이 하기 위하여,
   그리고 장차 그의 심판을 받도록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다.


"부르심 " (롬 1 : 1,7 & 8 : 28 & 11 : 29,
              고전 1 : 1,2,26 & 7 : 20,
              엡 1 :18 & 4 : 1,4,
              빌 3 : 14,
              살후 1: 11,
              히 3 : 1,
              벧후 1 : 10 ) 에 대하여 상고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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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축복

2절 긍휼과 평강과 사랑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찌어다


이 세 가지 축복은 하나님이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 내려 주시는 축복이다.

1) 긍휼과 평강과 사랑

긍휼은  불쌍히 여겨 도와 준다는 뚯이다.
값이 싼 것으로 돕는 것이 아니라 심혈을 쏟아 도와 준다는 말이다.
삼위 일체가 되신 하나님의 긍휼도 그러하였다.
성부는 독생자를 주셨고 (요 3 : 16 )
성자는 생명을 주셨으며 (막 1 : 45 )
성령은 무한하신 탄식으로 기도 하시며 도와 주신다 (롬 8 : 26 ).
특히 본서는 이단의 유혹이 심한 때 주신 말씀이다.
그러므로 부르심을 입은 자글에게 긍휼이 더욱 필요한 때이다.

하나님의긍휼을 입은 자들은 다른 이를 위하여 심혈을 기울여 긍휼의 생활을 한다.
사도 요한은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요일 3 : 16 )하였다.
참으로 하나님의 긍휼을 체험한 부르심을 입은 자들은 구약시대와 신약시대를 통하여 생명과 재산을 바쳐 충성 하였다.

그러나 가만히 들어온 사람 곧 성령이 없는 이단자인 거짓 선지자들은 자기들의 생명과 제산을희생 하는 자들이 아니요,
도리어 자기 들의 야욕을 위하여 다른 이들의 생명과 재산을 노린다.

그리고 하나님과 교회와 인류를 위한다는 미명 아래 명예와 이권과 지위를 쟁취 하는데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우리는 자기가 그러한 자가 되지 않아야 할 것이며 또 그런 자들에게 미혹을 받지 않아야 한다.
진실한 성도와 종이된 이들은 긍휼이 없는 그들의 핍박을 받을 것이다.

평강은 하나님의 평강 곧 진리의 평강이다
이단이 많은 때에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 있어야 할 축복이다.
이 평강을 둘로 나눌 수 있는데 세상이 주는 평강과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이다

세상의 평강은 근심을 겸하여 주고 영원성이 없으며 심판을 받는다.
그러나 하나님의 평강은 근심이 없고 영원하며 영광을 얻는다. (잠 10 :22, 눅 16 : 25, 롬 8 : 6, 약 1 : 9-11, 벧전 1 : 24 ).

예수 께서도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요 14 : 27 )고 하셨고
"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 (마 11 : 28 )하셨다.

기독교의 목적 중에 하나는 인류를 평강케 함이다.
그런데 이단자들은 하나님이 주신 평강 보다 세상이 주는 평강을 얻으려고한다.
허나 부르심을 입은 자녀들은 세상의 즐거움을 분토 같이 내버리고 하늘의 평강을 누린다.
그러기에 이 문안의 축복에서 이러한 평강이 더하라고 축복 하는 것이다

이제 부터 인생의 평강에 대하여 알아보자.
인생의 즐거움(평강)에는 세 종류가 있다
그리고 이 세가지의 즐거움을 얻게 하는 매우 귀한 진리가 있다.
첫째로, 세 종류의 즐거움이란 육체의 즐거움, 마음의 즐거움, 영혼의 즐거움을 말한다 (살전 5 : 23 ).
육체와 마음과 영혼은 한사람에게 있으면서도 같지 않고 전혀 달라서 각기의 의식을 따로 가지고 있다.
육체에는 즐거워도 마음에는 괴로운 일이 있고 마음은 시원하고 즐거워도 영혼이 우는 때가 있다.
예를 들면 어느 사람이 불의한 향락으로 육체의 톼락을 느꼈어도 마음에는 고민이 있다.

또 어느 악한 사람이 징치 받는 것을 보고 악의 필연한 보응 이라고 마음으로 쾌재를 불러 시원히 생각 했을 때
그의 깊은데 숨어 있는 영혼은 울 것이다.
아무리 악인 이라도 그의 불행함을 왜 내가 기뻐 하였을까 하는 영의 가책이다.
이와 같이 한 사람에게 각각 달리 의식하는 육체와 마음과 영혼이 있다.
 
인생의 참 즐거움은  육체와 마음과 영이 모두 즐거워야 한다.
육체는 즐거워도 마음과 영이 괴로와 한다면 이는 인생들이 바라는 즐거움이 아니다.
이 세 가지 즐거움을 달리 분류 할 수도 있다.
육체의 즐거움은 동물적인 즐거음이고 마음의 즐거움은 인격적 즐거움이며 영의 즐거움은 성도의 즐거움이라 할 것이다.

둘째로, 인생은 이 세가지 즐거움을 모두 얻을 수는 없을까 ?, 여기에 문제점이 있다
어떤 이들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영혼의 즐거움을 얻으려면 육신의 즐거움을 포기 해야 하며 육신의 평강을 얻으려면 영혼의 평강을 포기 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인생에 대한 경륜은 친히 육체와 마음과 영혼이 있게 하셨고  그 인생으로 하여금 즐겁게 살게 하시려는 뜻이었다.
하나님은 인간이 영의 즐거움을 얻음으로 육체와 마음도 즐거울 수 있다고 하신다.
성경에서 그런한 즐거움을 지녔던 사람들을 첮아볼 수 있다.

영의 즐거움을 얻은 스테반은 돌에 맞아 살이 찢기고 뼈가 부셔지는 순교의 광장에서
영의 즐거움이 인간의 지각에 뛰어나 그 아픔을 삼켜 버리고도 남음이 있었다.
그래서 육채인 얼굴은 천사 같이 빚났고 그를 죽게한 자들을 위하여 기도 하는 마음의 평강이 넘쳤다 (행 6 : 16, 7 : 55-60 ).
베드로는 옥중에서 단잠을 자고 있었으며 (행 16 : 25 )
바울과 실라는 깊은밤 옥중에서 기도와 찬송을 하였으니 (행 16 : 26 ) 그들의 영과 마음과 몸이 다 평강 하였다 ( 낟 6 :, 3 : ).

사도 요한은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 (요삼 2 )고 하였고
예수께서도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 (마 6 : 33 )고 하셨다.
이 말씀들은 영혼의 평강을 얻을 때 마음도 육체도 형통 하고 잘 되어 함께 즐거울 것을 뜻하신 것이다.

신자나 블신자들이 영의 즐거음을 얻으려면 육체와 마음의 즐거움을 아예 포기 해야 한다고 오해 하고 있다.
그러나 기독교는 천륜과 인륜이 평행된 종교이다. 인륜에 있어서 부부의 도, 부자의 도가 함께 명령 되었다.
인간과 인간 관계에서 무한한 행복을 누리며  즐겁게 살라고 하신다.
주 안에서 서로 사랑 하며 살라고 하심은육체의 즐거움 까지 내포한 말씀이다.
다만 죄가 있어 잘못된 즐거움 곧 영이 슬퍼하는 육체와 마음의 즐거움을 금한다.
왜냐하면 그 즐거움은 곧 즐겁지 못한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결국 그러한 즐거움을 금하는 것도 역시 인생의 참 즐거움을 가지라는 하나님의 사랑이시다.
진실로 영의 평강은 높고 깨끗하며 완전하고 영광 스러우며 영원한 즐거움이다.
그리고 육체와 마음과 영이 하나님과 함께 길이 누릴 즐거움이다.

이 영의 평강은 어떤 것이며 어떻게 얻게 되는 것인가 ?.
정치, 문화, 경제, 사상에서 얻어 지는 것일까 ?.
그러면 이 진리를 같이 경건과 겸손한 마음으로 알아 보자.

이영의 평강 곧 영의 즐거움에 세 단계가 있다.
사죄의 평안,
성화의 평안
보호(믿음)의 평안
이다

사죄의 평안이라는 것은 자기의 모든 죄를 회개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 공로를 믿음으로 사유함을 받을 때 가지는 평강이다.
사람이 어떤 좋은 환경에서도 병이 있으면 즐겁지 못하다 그러나 그 병이 완쾌 될때는  하늘로 날아 오를듯 기쁜 평강을 얻게 된다.
인생을 즐겁지 못하게 하는 무서운 병이 있다. 그 병의 이름은 죄이다.
아무리 부귀 공명이 있고 몸이 건강 하다고 해도 죄가 있을 때에는 즐거울 수가 없다.
죄를 회개 하여 사죄 받은 즐거움은 죽을 병의 사람이그 병이 치유 되었을 때의 즐거움보다 뛰어나는 즐거움이다
사죄의 평강은 영의 제 1 단계의 평강이다

그 다음으로 성화의 평안 곧 성화의 즐거움이 있다.
이 평안은 영의 제 2 단계 평강이다.
제 1 단계 평강을 얻은 후 점점 더 거룩하여 원수와 칩박자들을 조금도 미워하지 않고
오히려 사랑 할 수 있는, 곧 정과 욕심이 십자가에 죽은 거룩한 성자가 될때그의 육체와 마음과 영이 함께 가지는 평강을 말한다

그리고 제 3 단계의 평강은 하나님의 보호를 믿는 믿음에서 오는 평강이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시 23 : ).
이는 다윗 왕이 하나님의 보호를 믿는 믿는 평강을 영감으로 노래 한 것이다 .

히브리서 기자는 "주는 나를 돕는 자시니 내가 무서워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히 13 : 6 )라고 하였다.

예수께서도 말씀 하시기를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마 10 : 29-31 )고
하나님의 보호를 말씀 하셨다.
그러기에 선지 사도들 및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모든 성도들은 항상 하나님의 보호 안에서 즐겁게 살았다.

영혼의 평강함 곧 속죄의 평강, 성화의 평강, 보호의 평강,
이 세 가지을 얻은 자들은 이 세상의 빈부 귀천이 어떠하든 궁궐이나 초막이나 그 어디나 하늘나라 즐겁게 산다.
무엇이든지 그들의 즐거움을 방해하지 못한다.

이 평강은 거룩하고 영원하며 하늘과 땅, 그리고 하나님과 인간이 함께 축하하고 즐기는 즐거움이요,
영과 마음과 육체가 함깨 즐기는 평강이다.

권하노니 열국이여, 귀를 기울여 들어라.
여기 참 평강을 얻는 진리가 있음을 !.
그러므로 온 세계는 총검을 버리고 사람들의 정치와 사상보다 영의 세 가지 평강을 얻어라.
이 길 외에는 멸망과 심판이 있을 뿐이며 평강을 얻기 위하는 모든 인간의 종말은 번뇌와 죽음 뿐이다.
거짓 선지자들과 거짓 스승 들이여, 너희는 대신 더욱 중한 심판을 받으리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은 이 진리로 온 인류를 구원하기 위하여 시간과 재산과 생명을 다 바쳐
민주주의나 사회주의 군대 보다 강력한 복음 전투에 용전하여야 할 것이다.

사랑에 대하여 말하고자 한다.
이단이 많은 때에 하나님의 사랑이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 더 하시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온 인류를 사랑 하시되 부르심을 입은 자에게는 특별한 사랑을 하셨고 하시고 또 하실 것이다.
부르심을 입은 자는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이미 사랑을 얻은 자이다.
그리고 그들의 모든 생활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사는 자들이니 어찌 사랑 하시지 않으시랴.
더우기 가만히 들어온 이단이 설할 때 하나님은 반드시 그들을 더 사랑하사 지키시고 보호하셔야 한다.
그러므로 긍휼과 평강을과 사랑을 더 주셔야 하며 그들을 더 얻어야 한다.

어떤 이는 수신자에 대한 축복의 세가지 곧 긍휼과 평강과 사랑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해설 하였다.
긍휼은 부르심을 입은 일에,
평강은 하나님 안에서 사랑을 얻은 일에,
그리고 사랑은 지키심을 입은 일에 관련 된다고 하였다.
이것은 생각해 볼수 있는 설명이라 하겠다.
그리고 세 축복을 삼위 일체 되신 하나님과 관련 지을 수 있다.
긍휼은 성자,
평강은 성령,
사랑은 성부의 축복으로 볼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랑 이시다 (요일 4 : 8 ).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특별한 사랑 이시다 (요 3 : 16, 요일 4 : 9 ).
우리가 하나님을 먼저 사랑함이 아니요, 그가 우리를 먼저 사랑 하셔서 우리 죄를 위하여 독생자를 주셨다 (요일 4 : 10 ).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사랑 하심을 얻은 자들은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께서 항상 그들 안에 계신다 ( 요일 4 : 16 ).
사랑은 항상 같이 있으며 안과 밖에 있고 영원히 사랑 한다 (요일 4 : 19 ).
하나님의 사랑은 아들에 대한 아버지로 (눅 15 : 12-32 ),
아내에 대한 남편으로 (아가서, 마 25 : 1-13, 계 19 : 17, 호세아서 ),
친구의 사랑으로 (요일 15 : 13 ),
눈동자를 아끼시는 사랑으로 (심 32 : 10-11 ) 우리를 사랑 하신다.

그러나 계명을 지킬 때는 사랑 하시되 (막 10  : 21 ) 계명을 범할 때는 노하시고 미워 하신다.
그는 공의의 하나님 이시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부르심을 입은자 곧 하나님의 사랑을 얻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사는 자들에게  긍휼과 평강과 사랑이 더하라고 하셨다.
이같이 하나님은 사랑과 공의를 함께 지녀셨다.
사랑이 없는 공의는 잔인 하고 공의 없는 사랑은 추악하다.

아내를 사랑하는 남편이나 아들을 사랑하는 어버이가 그 아내와 아들이 악하여 범죄 한 것을 보고도 웃으며 사랑 할 수 는 없을 것이다..
붙들고 눈물로 간절히 호소하며 충고하여 고치게 함으로 비로소 완전한 사랑 이라고 할 것이다.
하나님의 징계는 자기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인생에 대한 또 다른 방식의 사랑이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기자는 그 사랑 하는 자를 징계 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을 째찍질 하신다고 하였다 (히 12 : 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