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한국어

우리네 인생

방문자수

전체 : 2,333,154
오늘 : 2,367
어제 : 7,586

페이지뷰

전체 : 26,216,132
오늘 : 2,367
어제 : 7,586
2018.05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21

2007-Sep

탈북자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작성자: blue IP ADRESS: *.168.111.128 조회 수: 5235

et376.jpg


탈북자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이상은


(이 글은 탈북자를 예수님의 사랑으로 돕는 이름없는 한국선교사님들의 헌신적인 선교이야기 입니다.)

새벽녘에 인기척이 있어 사립문밖을 내다보니 입성이 남루한 것이 언뜻 보기에도 북한 사람이 여실했습니다.
내 얼굴을 본 여인은 "여기 오면 살콰준다고 해서 왔수구마." 목으로 기어 들어가는 소리였습니다.
나는 소리 없이 문을 열어주며 "쉬!" 하고 한 쪽을 가리켰습니다.
그 곳은 군불을 땔 수 있도록 만들어서 제법 훈기가 도는 토굴이었습니다.

이것이 그녀와 나의 만남의 시작이었습니다. 벌써 3년 전의 일입니다.
그 때 애가 둘이라고 했습니다. 굶길 수가 없어서 구걸을 하다가 풍문에 듣고 찾아온 것입니다.
성이 김가라고 했으며, 훗날 알았습니다만 청진에서 무슨 대학을 나왔다고도 했습니다.
우리에게 오는 사람들이 다 그렇듯이 얼굴은 붓고 오이 꽃이 핀 것이 속병이 가득한 듯 보였습니다.

그 후 철이 바뀔 때마다 그녀는 이 곳을 드나들었습니다.
다른 사람이 다 그렇듯이 그녀도 갈 때마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무엇이고 짊어지고 갔습니다.
그녀는 한번 올 때마다 한 두 주일은 머물다 갔습니다.
우리가 기도하고 예배드릴 때도 그녀는 전혀 무관심한 체 한쪽 구석에서 딴전만 피우는 등 도무지 말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도 예수 믿으라는 말은 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 해가 지나고 다시 서리가 내릴 때쯤이니까 한 일년은 지나서였습니다.
하루는 그녀가 내게로 다가와서 "선생님 나 성경책 좀 주시오. 나도 예수 믿겠수구마."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그녀의 신앙생활은 시작되었습니다. 오늘 새벽 그녀는 무서리에 옷이 젖으며 떠나갔습니다.
사립문을 나설 때 나는 처음으로 그녀에게서 미소를 보았습니다.
나 역시 이슬 맺힌 눈으로 애써 그녀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습니다.
"선생님! 우리 청진에도 한번 오시오" 하는 그녀의 마지막 한마디가 내 귓가에서 주의 지상명령처럼 들려왔습니다.
떠나가는 그녀의 짐 속에는 30여권의 소형 성경이 들어 있습니다.

지금은 북한의 형편이 좀 나아진 것도 사실이지만
그래도 아직은 배고파하고 굶주리는 자들이 이렇듯 식량을 구하려고 얼어붙은 강을 넘어 하루에도 수 십명씩 넘어옵니다.
입춘이 지났지만 여기 두만강변은 온통 흰눈과 살을 에이는 칼날 같은 바람이 영하 25도의 추위를 실감케 합니다.
우리 선교사들은 식량을 등에 지고 오늘도 눈길을 헤치며 탈북자들이 숨어 있는 토굴을 찾아갑니다.

중국 공안원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 북조선의 특무들의 손길이 미치지 못한 곳에 은밀하게 숨겨 놓고
제자훈련을 시키고 있는 탈북 형제들을 찾아 우리는 겨우내 내린 눈으로 허리까지 빠지는 길을 걷고 또 걷습니다.
땅을 파고 만든 토굴 속에서 10여명의 형제들이 추위와 굶주림을 견디어 내며 어미를 기다리는 어린애들처럼 웅크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호롱불을 밝히고 가지고 간 쌀로 밥을 해서 먹인 후 함께 찬송하고 기도합니다.

주님의 사랑이 여기까지 이르심에 감격하며 눈물을 흘립니다.
우리 선교사 일행들은 한쪽에서 동상 걸린 손발을 치료해 주고, 또 다른 한쪽에서는 챙겨 간 옷가지를 입히고,
성경을 가르치고 주께서 이들을 보살피시기를 기도합니다.
이렇게 우리는 탈북자들을 보살피며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고 예수를 주로 영접하게 합니다.

그리고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챙겨서 다시 북한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주선합니다.
이들이 가지고 간 작은 성경은 복음의 불씨가 되어 지금 북한을 태우고 있는 것입니다.
다행히 우리 선교사들을 만난 탈북자들은 생명을 부지하고 구원으로 인도함을 받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중국 공안원에 붙잡혀 북한으로 강제 송환되고 반동, 반역자, 인민의 수치라는 죄목으로
교화소로 보내져서 말로 다할 수 없는 곤욕을 치릅니다.

이런 비참함을 모면하려고 남편은 중국의 농장으로, 아내는 중국 한족에게 5,000위엔(한국 돈 약 75만원)에 팔려 가기도 합니다.
또 처녀들도 몇 푼의 돈으로 어디론가 팔려갑니다. 배고픔은 가정도 부부도 없고 오직 목숨을 부지하기에만 급급합니다.
이들 대부분은 페결핵, 간염, 영양실조로 인한 복수, 아무 것이나 닥치는 데로 입에 넣어서 생긴 장질환,
동상, 피부, 염증, 장티푸스 등의 질환에 걸려있습니다.

작년 10월까지는 한국의 각 교회에서 입던 옷이라도 정성껏 모아 보내주셔서 어려운 것을 면했습니다만,
지금은 중국 세관에서 헌 옷 반입을 일체 못하게 하는 바람에 부득이 중국 현지에서 새 옷을 구입해서 보내고 있습니다.
구호 품이나 민간단체에서 정식으로 들어가는 구호품들은 평양의 당간부나 고위층에서 다 착취해 버리고
밑바닥 백성들 특히 함경남북도 일때의 주민들은 구경도 할 수 없기 때문에 그 비참함은 지금도 여전합니다.

북한에 복음을 전하는 일은 한국 성도들에게 그리스도께서 맡기신 지상의 명령이며 사명이라고 믿습니다.
이 일에 동참할 사람들을 주님께서 예비하셨을 줄을 알고 찾고 있습니다.
두만강 변에서 일하는 우리 선교사들은 죽임을 당하는 그 날까지 이 일을 계속 할 것입니다.
주의 은총이 이 글을 읽는 모든 사랑하는 이들에게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위의 글은 두만강변에서 탈북자들을 훈련시켜 북한에 복음을 전하고 있는 Y 선교회 소속 선교사들이 보내온 편지입니다.
주부편지 2001년 4월호에서 발췌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 죽음도 두려워 하지 않았던 북한의 어린 남매- file blue 2007-09-21 9733
» 탈북자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file blue 2007-09-21 5235